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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23 (월) 19:57
분 류 사전3
ㆍ조회: 1012      
[현대] 광복후의 기업 (민족)
기업(광복 후의 기업)

세부항목

기업
기업(개항과 민족기업의 태동)
기업(한말의 근대기업)
기업(일제강점기의 민족기업)
기업(광복 후의 기업)
기업(참고문헌)

(1) 자유경제체제에서의 기업

제2차세계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종결되고 우리 나라는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찾았으나, 당시의 정치 및 경제적 실태는 국민국가 건설에 유리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국민이 바라는 통일정부가 즉시 수립될 수 없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일제가 남기고 간 경제적 유산이 국민경제 건설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에서 미국군이 남한에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게 되었으며, 미군정은 일제가 실시해 오던 경제통제를 모두 해제하고 자유경제체제를 채택한다고 발표하였다. 경제자유화정책은 일시적으로 시장경기를 가열시켰으나, 생산활동이 마비되어 새로운 제품의 공급이 단절된 상황에서 시장경기의 호황은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생산활동이 마비되고 생활필수품의 품귀현상이 심화되어, 그것을 타개하는 긴급대책은 해외에서 물자를 도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미군정 초기에는 무역이 제대로 행해질 수 없었으므로 무허가 사무역이라고 속칭되는 밀무역(密貿易)이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또, 우리가 생활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국의 원조로서, 미군정 3년간 미국에서 약 4억634만여 달러의 무상원조를 받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정부는 〈한미경제원조협정〉을 체결하였고, 이듬해에는 〈귀속재산처리법〉을 제정, 실시하였으며, 〈농지개혁법〉을 제정, 공포하여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경제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미군정 3년간 들떠 있던 한국경제와 국민생활은 정부수립 후 점차 안정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정계와 사회가 안정됨에 따라 국내 생산활동도 재개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대외무역을 위한 수출품으로서 광복 직후에는 일본인 회사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잡다한 물품이 이미 바닥났으므로, 새로운 수출품이 개발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중석(重石)과 고령토(高嶺土) 등 광물이었고, 국제시장에서 한천(寒天:우뭇가사리를 얼려서 말린 젤라틴 투명막)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면서 수산업자들은 한천가공에 열을 올렸다.

광복 후 비교적 일찍 재건된 공장공업으로는 면방직공업을 포함한 삼백산업(면, 설탕, 밀가루)을 들 수 있다. 면방직공업은 정부 수립 후 정부의 특별 지원을 얻어 시설을 개선하여, 6·25전쟁 직전에는 광복 당시의 생산수준을 능가할 수 있었다. 또, 면방직 외에 동력원(動力源)과 광산 분야도 건설이 촉진되었다.

전력은 1948년 북한의 송전단절로 전력공급에 큰 어려움이 있던 터였으므로, 정부는 화력발전소의 증설을 기도하여 1949년 말에는 총 27만2825㎾의 전력을 개발하였고, 석탄도 정부의 적극적인 증산정책으로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광업 분야에서는 수출과 관련하여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중석과 흑연생산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정부는 건국 초부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으나, 국민의 의욕적인 참여와 미국의 원조를 얻어 각 분야에서 경제를 재건해 나갔다.

그러나 정부 수립 후 2년도 되지 못해 6·25전쟁이 일어나서, 광복 후 점차 안정되어 가던 경제는 다시 대혼란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3년간의 전쟁으로 신생 한국이 안은 피해는 막대하였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직접 피해를 본 공업시설은 생산시설 42%, 공장건물 44%였다. 또, 전비 조달을 위한 막대한 재정지출은 인플레이션을 격화시켜서, 그 뒤의 경제재건에 큰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1952년에 접어 들어 전세는 교착상태로 들어섰고, 휴전설이 대두되면서부터 전재 복구작업이 계획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휴전 후 23억여 달러의 외국원조와 국채·채권 등 인플레이션 요인을 내포한 내자지원에 힘입어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특히 공업화를 지향하면서 발전해 갔다. 그리하여 1954∼1960년의 한국경제는 연평균 4.7%의 성장률을 보였고, 특히 공업 분야는 연평균 12.2%라는 높은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휴전 후 전쟁 피해를 복구하고 급격히 성장한 공업은 섬유공업 분야였다. 이 공업 분야에서는 면방직 및 모방직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일론직물 등 신제품 생산시설도 도입되어, 1957년에는 이미 국내수요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섬유공업 다음으로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진 분야는 화학공업이었다. 화학공업 분야에서는 충주비료·나주비료 등의 대규모 공장이 건설되었고, 시멘트공장이 삼척공장의 보수와 더불어 문경에 새로 건립되었다.

제지 및 고무공장도 이 기간에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제지공업은 새로운 시설을 도입함으로써 수입에만 의존하던 신문용지 등을 전량 자급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고무공업도 새로운 시설을 도입, 확충함으로써 고무신 생산 중심에서 자동차타이어와 고무 호스 등 신종 산업자재 생산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유리공업 부문에서는 1953년에 국제연합한국부흥위원단(UNKRA) 자금에 의하여 인천에 판유리공장을 건설하여 유리공업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이 밖에 합성수지·화약·가성소다 및 일반 화공약품 등 신규제품도 이 기간에 건설·공급되어 공업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 후반기에 가장 성행한 공업 분야로는 제당·제분업을 들 수 있다. 제당업은 1958년 이래 급속히 발달해서 7개 공장이 경합, 건설되어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생산 과잉현상을 나타냈고, 제분업은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원맥 도입에 자극받아 각 업자간에 시설확대를 단행하다 보니, 역시 시설 과잉현상이 나타나 원맥 확보를 위한 암투가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이와 같이 국민생활에 필요한 소비재공업은 급속히 발전을 이루었으나, 제철·제강업 및 기계공업 분야는 이렇다 할 발전을 하지 못하여 낙후성을 면할 수 없었다.

(2) 개발경제체제의 기업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세워진 군사정권은 1963년 말까지 약 3년에 걸친 군사정부 통치를 거쳐, 1963년 말 총선거를 통해 민주공화당 정권으로 이어졌다.

5·16군사정변 후 군사정부는 통치의 기본 방향을 정치·경제의 질서 혁신을 확립하는 데 두었으며, 이에 따라 경제적인 면에서는 구정권과 결탁하여 구축된 경제세력을 거세하고, 새로운 양심적인 경제세력을 육성하여 나간다는 것이었다.

군사정부 및 공화당 정권이 추진한 경제정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하였고, 따라서 정치면에서는 자유민주체제를 어느 정도 규제하는 정책을 택하였다.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건설의 방향, 투자의 우선순위의 결정, 자원배분 등을 통한 규제가 강화됨으로써, 정부주도형의 개발전략이 채택되었다.

그리하여 공화당 정권의 개발정책은 혼합경제체제로 특징지어지는 것이다. 즉, 정부가 주요 경제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국민경제가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는 금융·재정 및 조세 지원 등의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경제 전체에 적극적으로 간여하였다.

이러한 경제운영의 기본 방향에 따라 군사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실시하였다. 1962년부터 실시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1950년대의 한국경제 재건기와 비교할 때, 획기적인 정책전환을 단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성과는 정부가 추구한 성장목표 달성이란 측면에서는 일단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네 차례의 개발계획 기간중 국민총생산 성장률은 연평균 9.3%로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나타내었으며, 수출신장률 또한 연평균 39.9%라는 급속한 양적 확대를 보였다. 경제 성장면에서는 2차산업 부문이 1962∼1978년 기간중 연평균 19.1%의 성장률을 나타냈으며, 1979∼1980년에는 7% 정도의 성장률을 나타내었다.

그 다음이 3차산업 부문이고, 농업을 포함하는 1차산업 부문은 같은 기간중 연평균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차산업 부문의 성장추세는 산업구조를 고도화해서 1960년의 산업구조, 즉 1차·2차·3차산업의 국민총생산 비중이 35.2:19.2:45.6이었던 것이 1978년에는 비율이 18.1:33.1:48.8, 1985년에는 13.8:29.6:56.6의 비율로 나타나, 농업 등의 1차산업 부문의 비중이 감소하고, 2차산업 부문이 급격히 증대한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196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은 주로 공업 부문 성장정책에 의하여 주도되었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2차산업의 높은 성장률은 정부의 집중투자, 조세·금융지원 정책 등 정부의 공업화정책의 결과이다. 즉,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으로 점차 산업구조의 고도화도 달성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국민소득의 증대와 고용증대라는 국민경제의 확대재생산을 낳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이 기간에 설립된 기업의 실태를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 부문의 성장이 가장 두드러졌다. 제조업 부문의 사업체 수와 종업원 수는 1966년의 2만2718개 소와 56만6665명에서 1970년에는 2만4114개 소와 86만1041명, 1978년에는 2만4957개 소와 171만7308명, 그리고 1980년에는 3만823개 소와 201만4701명, 1983년에는 3만9243개 소와 221만5233명으로 나타나 있다. 이로써 양적인 면에서나 규모면에서 모두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제조업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아도 1960년의 8.3%에서 1971년에는 19.6%, 다시 1978년에는 31.6%, 1984년에 30.4%로 증가하고 있어, 공업화가 급속히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조업 부문의 눈부신 성장은 수출 위주의 공업화정책이 가져온 결과로, 정부는 경제계획 기간 동안 수출공업에 대해 집중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아울러 대단위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그에 대해 세제 및 금융면에서 여러 가지 특혜를 주어 공업화정책을 강행하였다.

또, 정부는 1960년대 경공업 중심의 수출산업 육성정책에서 1970년대에는 수출의 선도산업으로서 중화학공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였다. 즉, 1972년부터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실시되었는 바, 정부는 계획의 주축을 수출의 획기적 증대 및 중화학공업의 건설에 두고,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의 수출체제로 이행하였다.

이리하여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공업정책의 뼈대를 중화학공업 건설을 통한 공업화정책에 두고, 6개 전략산업을 선정하여 집중 육성하는 데에 힘썼다.

6개 전략산업은 철강공업·비철금속공업·조선공업·기계공업·전자공업 및 화학공업이었다. 철강의 자급화와 다양화를 목적으로 설립한 포항종합제철은 1973년에 제1공장을 완공한 데 이어 이 기간에 확장공사를 단행하여, 1979년까지 제철 526만7천 , 제강 862만5천 , 압연 935만3천 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비철강공업에서는 중화학공업의 소재공업 개발을 목적으로 동제련(銅製鍊)·연(鉛)·알루미늄 공장 등을 건설하였다. 조선공업에서는 국내수요와 수출을 목적으로, 대형 조선소 5개 소, 중형 조선소 2개 소, 원양어선 조선소 2개 소를 건설하였다.

전자공업 부문에서는 구미공업단지를 건설하고, 1981년까지 11억9천여만 달러를 투자하여 25억 달러의 전자제품 수출을 계획하였다. 화학공업 부문에서는 울산 석유화학 공업단지를 국제 규모로 확장함과 동시에 여수에 종합 화학단지를 건설, 석유화학 계열공업을 육성하도록 하였다.

자본 규모면에서 이 기간의 기업실태를 보면, 1960년대 이후 재벌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이 급속히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기업이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정부 주도형 경제정책 아래 정부의 지원이 대기업에 편중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수입대체 산업에서 전진하여 수출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는 방침 아래, 수출 지원체제를 다져 나갔으며 이를 위해 금융·세제면에서 수출산업에 대해 집중적인 특혜를 주었고, 수출을 통해 이와 같은 특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기업이었다. 대기업의 성장이 현저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을 거느리는 대규모 재벌의 성장이 특기할 만하였다.

1983년 현재 삼성·현대·대우 그룹의 경우를 보면,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을 비롯하여 24개 기업을 포함하고 있고,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등 23개 기업, 대우그룹은 대우조선을 비롯하여 28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이 밖에도 쌍용그룹·럭키금성그룹 등이 모두 20여 개 이상의 많은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한편,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수출공업으로서, 1960년대에는 합판공업·섬유공업·신발류공업 등 경공업이 급격히 성장하였고, 1970년대에는 전자공업·자동차공업·조선공업 및 화학공업 등 중공업 부문이 크게 발전하였다.

전자공업의 경우, 텔레비전·냉장고 등 가전제품 중심의 생산기술에서 진일보하여,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반도체산업에 적극 뛰어들어 컴퓨터 등 고도의 기술집약적 상품 생산에 몰두하였다.

자동차공업은 수출산업으로서뿐만 아니라 국내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1980년대 초반의 업체 통폐합과정을 겪으면서, 현대자동차·대우자동차·기아산업 등이 집중적으로 투자에 나섰으며, 조선공업도 거제도에 대단위 조선공업단지를 조성하고 대우조선·삼성조선 등이 크게 성장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내 주택건설이 활발해지고 중동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건설업이 급격히 성장했다. 그리하여 1970년대 중반 이후는 국내 제조업 부문의 생산이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의 선도로 경기가 호전되었다.

건설업 부문의 생산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구성비는 경상시장가격으로 1962년의 3.4%에서 1967년에는 3.9%, 1973년에는 4.8%였고, 1980년에는 9.4%로서 급속한 신장세를 나타냈다. 그리하여 1970년대 이후에는 건설업 부문의 기업이 많이 출현하였다.

한편, 이 기간에는 외자도입이 본격화하면서 차관에 의한 근대공업의 건설과 합작투자, 외국인 직접투자 활동이 활발하였다. 정부는 외자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여러 법령을 제정, 공포하였고, 직접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지역을 설정하고 여러 면에서 특혜를 주었다. 이에 따라 차관도입이 급증하였고, 이의 배분을 통해 새로운 기업이 생기거나 기존의 기업이 급속히 성장하는 현상을 보였다.

이상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계획이 시행되면서 수출지향적 공업화전략이 계속되었고,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기업이 급속히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외자의 도입이 급증하면서 외자에 의한 기업의 성장도 현저하였다.

초기에는 원조물자, 뒤에는 외자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본 기업은 역시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이다. 정부의 지원과 외자, 국내 금융기관의 특혜 금융을 통해 1970년대를 통해 급성장하였다.

그리하여 상품시장의 해외 의존도와 투자재원의 해외비중이 과도하게 증가하여, 국민경제의 재생산과정이 국내에서 완결되지 못하고 해외 부문으로 유출됨으로써, 국내의 수직적 분업체계가 성립되지 못하고, 산업구조가 이중구조로 고착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특혜를 통해 급성장한 재벌기업을 포함한 대기업들의 효율은 매우 낮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재벌기업 중심의 국민경제 구조를 중소기업과 신기술 중심의 벤쳐기업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국내경제에서 발달되지 못한 부문에 속하는 농업·중소기업·내수 부문 등에 대하여 투자를 확대하고, 이들 부문을 성장시켜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 경영, 경제, 산업

<조기준>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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