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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0-03 (금) 12:43
분 류 사전3
ㆍ조회: 527      
[근대] 사회주의 (한메)
사회주의 社會主義 socialism

사회의 부(富)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재산의 사회에 의한 소유와, 노동에 바탕을 둔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려는 사상.

사회주의라는 말은 1827년 영국 오언파(派)의 출판물에 socialism으로 처음 등장하였고, 이와는 별도로 32년 프랑스 푸리에파의 출판물에 socialisme로 등장하였다. 사상과 운동의 역사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별은 엄격하지 않으나, 오늘날 공산주의는 사회주의가 더욱 발전한 평등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회주의사상은 자본주의적인 여러 관계가 급격하게 형성된 19세기 전반에 유럽에서 등장하였다. 영국의 R.오언, 프랑스의 C.H.생 시몽과 F.M.C.푸리에 등은 실업과 빈곤이 없는 사회는 생산수단이 공공의 소유이며, 모두가 노동에 종사하는 협동사회의 조직과 보급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는데, 그들이 역설하는 협동사회는 현실의 자본주의사회가 아닌 유지(有志)에 의해 건설되는 것으로 실생활에서 벗어난 유토피아였다.

[과학적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19세기 중반에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과 결부되었다. 여러 사회주의사상이 나타났으나, 그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K.마르크스와 F.엥겔스의 마르크스주의였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사회의 발전법칙, 특히 자본주의발전의 필연적 결과인 신사회(新社會)로 규정하였다.

즉 자본주의에서 사회의 생산력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대규모생산은 사회적인 성격을 띠게 되지만, 이것은 생산수단의 사유,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착취라는 모순이 심화되어 빈곤·실업, 주기적 공황을 초래한다. 이 모순은 생산수단의 사유폐지와 그 사회화, 국민경제의 계획적·조직적 관리에 의해서만 해결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로의 변혁은 노동자계급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라고 하여, 사회주의사상을 노동자계급의 대중적 운동과 결부시키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인 조직과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혁명을 필요로 하며, 승리한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를 조직하고, 생산력을 급속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국가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계급투쟁은 혁명 후에도 계속되며, 구지배계급의 저항을 물리치기 위해 이행기에는 프롤레타리아독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사회의 생산력이 더욱 발전하고 사람들의 도덕수준이 향상되었을 때, <각자는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받는다>는 공산주의의 원칙이 실현되어, 그때에는 권력조직인 국가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주의는, 역사 및 자본주의 사회·경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므로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하였다.

[사회주의운동]

1864년에 창립된 제1인터내셔널은 각국의 각종 사회주의자의 집합체였는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도적 역할을 하여 마르크스주의의 국제화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1871년에 파리 코뮌이 진압된 뒤, 각국 정부의 탄압으로 1876년에 해산하였다. 각국 사회주의정당의 연합체로서 89년에 설립된 제2인터내셔널의 중심은 독일사회민주당이었다.

1880년대에서 1890년대에 걸쳐 다른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잇따라 노동당·사회당·사회민주당 등이 결성되었다. 이들 정당은 일반적인 경향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그 지도이념으로 하고 있었다. 이들 사회주의정당은 각국의 정치과정에 영향을 주어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켰으나, 1871년의 파리 코뮌을 마지막으로 러시아 등 일부를 제외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혁명적인 상황이 없었다.

제2인터내셔널은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를 기본 원칙으로 하였는데,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사회주의정당의 다수파가 자국의 전쟁정책 지지를 결의함으로써 각당은 분열되고 제2인터내셔널도 붕괴되었다.

[러시아혁명 후의 사회주의운동]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함에 따라 사회주의는 사상과 운동면에서 한 국가에서의 실현과정에 들어갔고,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러시아의 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을 지도한 것은 V.I.레닌을 지도자로 하는 좌파인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었고, 이 당은 1919년 우파(수정주의)인 사회주의정당과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러시아공산당으로 개칭하였다.

같은 해 각국의 좌파 사회민주당·공산당에 의해 제3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이 결성되고, 가입하는 당 명칭은 원칙적으로 공산당이 되었다. 코민테른과 각국 공산당은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정권을 지지하고, 처음에는 러시아혁명을 유럽 여러 나라의 혁명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계의 사회민주당·사회당에서는 우파가 지도권을 장악하고, 그들은 러시아혁명과 소비에트정권을 비판하며 혁명이 아닌 개혁노선을 취했는데, 그때의 모델은 독일사회민주당이 정권에 참가했던 바이마르시대의 독일(1919∼32)이었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하여 나치당 이외의 모든 당을 탄압하고, 파시즘이 수립되어, 사회주의운동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35년 코민테른은 사회주의를 직접 지향하지 않는 반파시즘 통일전선노선을 결정하고, 각국 사회당 사이에도 공산당과의 협력 분위기가 고조되어, 36년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사회당·공산당 등이 참여하는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었으나 프랑스의 인민전선정부는 1938년 해체되었고, 에스파냐의 인민전선정부는 1939년 붕괴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의 사회주의운동]

제2차세계대전 말기부터 그 직후에 걸쳐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전시에 결성된 반나치스 통일전선을 기반으로 공산당이 주도하는 통일전선정권이 수립되었다. 아시아에서도 베트남·북한·중국에 공산당 중심의 새로운 국가가 수립되었으며, 이들도 사회주의국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코민테른은 1943년 해체되었는데, 냉전 개시와 동·서유럽 사이의 긴장이 격화되는 가운데, 1947년 소련과 동·서유럽 주요 국가들의 공산당 연락조정기관으로 코민포름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코민포름은 각국의 상황을 무시한 지도로 인해 구체적인 성과 없이 1956년 해체되었다. 사회당계열의 국제조직은 1951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로 재발족되었는데, 여기에 가입한 사회당·사회민주당의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이탈하였고, 특히 서독의 사회민주당은 1959년 마르크스주의 지도이념을 포기하였다.

[발전도상국과 사회주의]

제2차세계대전 뒤 사회주의사상은 과거의 식민지·종속국이었던 발전도상국으로 확산되었다. 몇몇 국가에서 외국자본과 상인이 지배하는 사적(私的) 경제의 배제, 국유경제의 발전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서유럽제국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과 자국의 사회적·경제적 후진성을 극복하려는 사상이 나타났다. 마르크스주의를 지역조건에 맞추어 수정한 아프리카사회주의, 전통적인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사회주의 등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발전도상국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다.

[현존 사회주의]

제2차세계대전까지 사회주의국가는 러시아와 몽골뿐이었는데, 전후에 그 수가 크게 늘어 1980년대 중반 사회주의국가는 16개국에 이르렀다.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 알바니아는 쇄국주의를 취하고 있으며, 중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소련과 대립하였는데, 1970년대 이후로는 사회주의국가들보다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과의 협력을 중요시하였고, 베트남전쟁 뒤에는 베트남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한편 캄보디아문제를 둘러싸고 베트남·러시아·중국이 대립하였다.

이와 같이 사회주의국가들의 상호관계가 원활치 못했던 기본적인 원인은, 각국의 역사적·사회적 조건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혁명 후 이미 60년이 경과된 소련, 1940년대 후반에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한 나라들, 1950년대 말, 1970년대 중반에 사회주의국가가 된 나라들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또한 사회주의체제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국가, 사회주의가 아직 건설도상에 있는 국가, 사회주의건설이 막 시작된 국가, 한편 경제의 발전 정도에 따라 선진국·중진국·발전도상국으로 나누어지고 있는데, 이같은 차이가 해소되기에는 상당히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서방측의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경제적·사회적으로 낙후되어, 이들 국가들은 후진성 극복을 위해 공업의 급속한 발전에 역점을 두고 사회주의 공업화의 노선을 실행해 왔다.

몇몇 국가에서는 공업화 자금을 농업에서 충당하려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본원축적(本源蓄積) 정책을 취하여 농업생산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었고, 또 노선과 정책의 강행으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확대해석과 개인숭배가 나타났으며, 전통적 정치문화와 권위주의, 그리고 민족주의도 소련의 스탈린문제,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60년대 말에 소련과 동유럽 여러 나라에 <발달한 사회주의> <성숙한 사회주의>라는 말이 나타났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체제로서 안정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발전수준이 높은 사회주의를 뜻하나, 이 기준에서 본 발달한 사회주의국가는 소련뿐이고, 동유럽국가들은 발달한 사회주의로의 과도기에 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자, 소련마저도 경제문제 등으로 서방과의 개방을 시도하던 과정에서 이에 반발한 군부가 91년 일으킨 <8월 쿠데타> 실패 이후 공산당 해체와 함께 새로운 사회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사회주의 경제]

사회주의경제는 기본적인 생산수단, 기본적 경제부문의 국유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농업은 생산농업협동조합이 일반적이지만, 러시아의 경우 국유농장의 비중이 증대하여, 생산농협인 콜호스의 역할은 작아지고 있다.

소련에서 개인경영은 타인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특정 수공업에 대해서만 인정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들은 상업·서비스업·수공업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경영을 인정하고 있다. 농촌부문에서는 근로자가 가족단위의 영세한 부업경영을 하여 야채 등의 생산으로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의 생활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노동으로 얻은 소득이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은 개인소유이나, 도시의 주택은 원칙적으로 국유·시영, 또는 협동조합 소유의 집단주택이다. 사회주의경제의 중심은 국유경제이지만,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에서 국유기업과 그 통합체는 정부기관이 직접 관리하는 국영이 아니고 독립된 경영단위이다.

국유경제의 관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식(모델)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1930년대에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제도가 오랫동안 공통 모델로 되어 있었다. 이 모델에 의하면, 국유기업은 정부기관의 지도 아래 정부의 계획담당기관이 지시하는 각종 지표에 의거하여 경영을 하고, 기업이 얻은 이윤의 대부분은 국가에 환수되어 재정투자에 이용된다.

정부기관이 기업활동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하여 결정권을 갖는 이와 같은 중앙집권적인 방식은, 공업화와 국민경제의 외연적(外延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이것은 사회주의국가들과 발달된 자본주의국가들의 1950년부터 1974년까지의 공업총생산고 연평균성장률이 사회주의국가가 10.1%, 자본주의국가가 5.2%이었던 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제품(특히 소비물자)의 질과 다양화, 기술혁신의 도입에 의한 신제품의 개발에서 사회주의국가들이 서방국가들보다 낙후되어 있고, 일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1960년대 이후 성장률이 저하되고 있으며, 특히 폴란드에서는 1980년의 경제적 곤란으로 정치적 위기가 조성되어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종래의 국유경제 관리방식이 생산의 질적 향상과 다양화, 과학기술 성과의 도입에 의한 생산의 집약화, 국민경제의 내포적(內包的) 발전이 과제로 되어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와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기업의 자주성을 확대하고, 정부에 의한 계획화와 시장원리를 가장 적합한 형태로 결합시키는 방향에서 경제개혁이 이루어졌는데, 대부분의 경우 중도에서 끝나 성과를 올리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80년대로 접어들자 경제관리의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하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방식을 관료주의·국가개입주의(國家介入主義)라 부르고, 기업 또는 그 내부의 경제조직에 완전한 자주성을 부여하여 기업활동에 시장원리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였다. 이 시장사회주의는 경제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반면, 되풀이되는 물가상승, 만성적인 실업 등을 초래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는 국유개념을 부정하고 기업을 그 종업원의 자주관리에 맡기는 자주관리사회주의를 지도원칙으로 하였다. 다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기업의 특별히 중요한 사항에 관한 결정권을 정부기관 또는 정부기관에서 임명하는 기업간부에게 맡기면서도 종업원집단의 경영관리에 대한 참여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 사회주의적 자주관리라는 개념이 싹트고 있다.

이와 같이 생산단위의 자주관리를 중시하는 상황 아래, 많은 사회주의국가에서 기업단위 또는 그 내부 조직단위인 근로자집단이 사회주의사회의 기본적인 단위, 즉 세포라는 생각이 싹트고 있다. 일찍이 사회주의사상과 운동에서, 사회주의가 이루어지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없어지고 경제는 모두 순조롭게 발전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현실은 사회주의에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있고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관계의 여러 제도에 대한 적시(適時)의 적절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

사회주의국가에서 정치의 중심은 마르크스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각국 공산당이다. 국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인 경향을 보면 공산당의 중앙기관은 당의 하부기관·정부기관·연구기관 등의 협력 아래 국가의 장기적 정책을 장기계획 형태로 결정하며 당면한 중요문제에 관한 정책도 결정한다.

당의 결정은 국가기관과 사회단체에 의해 구체화되어 실시되는데, 그때 당의 하부기관과 당원은 결정사항의 실시에 있어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상과 같은 과정에서 당 내외의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제각기 독자적인 이익을 지닌 사회계층과 사회집단이 이 과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사회주의 여러 나라에서 체험된 바에 의하면 당지도부에 의한 독단, 객관적 조건의 과소평가, 당원과 일반국민의 정치적·사회적 의식의 경시, 사회과학 성과의 무시, 당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민주주의의 침해는 일시적으로는 성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혼란과 후퇴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는 근대적 합리주의의 소산인데, 실제로는 일부 국가에서 당의 최고 지도자를 신격화하고 그 언동을 정치의 절대적인 지침으로 삼는 권위주의적인 개인숭배로 나타났으나, 개인숭배는 지도자의 사망과 함께 붕괴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의 중심적인 권력기관은 공선에 의해 구성된 중앙과 지방의 의회이다. 의원선거의 중점은 후보자 선출과정에 있다. 일반적으로 각 선거구에서 정수와 동수의 후보자만을 내세워 투표로 그 신임을 묻는 방식이 채택되고 있는데, 정수 이상의 후보자를 내세워 최종적인 선택권을 선거인에게 부여하는 방식을 취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의원의 대부분은 본래의 직업을 가진 근로자이므로 의원활동에 전념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의회에 의해 선출되는 정부 및 그 밖의 집행기관, 그 지휘를 받는 행정기구가 실제 통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커지나, 관료주의와 비능률이 끊임없이 문제로 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에서 노동조합·청년단체 등의 역할은 크다. 이들 단체는 정책형성에 참여하고, 대표가 의원으로 선출되며, 각종 행정위원회와 심의회에도 대표가 참여하고 있는데, 사회단체는 전국적인 큰 조직이므로 일반근로자의 의사가 평상시의 정치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회주의국가에서 공장 등 기업근로자의 집단을 사회주의 정치제도의 기반으로 하는 개혁이 진행되어 왔다.

예를 들어 유고슬라비아에 의원은 직장단위에서 선출된 자와 지역에서 선출된 자의 2종류로 이루어진다. 러시아에서는 직장단위의 집회가 선거후보자를 뽑고, 그 적격성을 검토하며, 당면한 정치문제를 검토하는 장소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직장의 중시는 헝가리에서 공장민주주의로 불리고 있으며, 지역단위 주민집회의 역할도 중요시되고 있다.

[사회주의와 자유]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 헌법은 개인(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대하여 상세하게 규정하고 이의 존중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들이 이제까지 주장한 다수의견에 따르면, 개인의 권리의 중심이 되는 것은 노동의 권리, 노동에 상응하는 급여를 받을 권리, 유급휴가를 포함한 휴식의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무료로 진료를 받을 권리, 주택보유의 권리, 무상교육을 받을 권리 등 사회적·문화적 권리이다.

사회주의의 성과는 이들 권리로 구현되고 있고, 언론·출판의 자유 등 정치적 자유는 위에 든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의 강화에 도움을 주는 정도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의 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제일의적으로 중요시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들은 선거권을 포함한 국가와 사회의 업무에 참여하는 개인의 권리를 인권체계의 중심에 두고 있다.

제3의 견해는 참여의 권리와는 별도로 언론·출판이라는 표현의 자유가 독립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그 보호의 강화를 제안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들의 현실은 정치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 그가 속하는 집단과 단체를 통하여 조직적으로 전체에 반영되는 방법이 취해지고 있는 실정이며, 집단과 조직을 벗어나서 개인의 의사가 자유롭게 전달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 개인의 의사형성의 재료가 되는 것은 정보인데, 정치에 관한 중요정보는 조직 내에서만 전달되고 공표되지 않을 때가 있다.

1970년대부터 몇몇 사회주의국가에서 이상과 같은 상황에 대한 시정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정보공개, 정보에 대한 권리, 알 권리가 헌법과 공산당의 결정에 등장하고 있다. 또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국민의 의사, 즉 여론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거세어지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많은 사회주의국가에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발전이라는 정치개혁이 과제로 되고 있다.

<김성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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