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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5-13 (목) 08:14
분 류 사전4
ㆍ조회: 539      
[원시] 원삼국 시대 (두산)
원삼국시대 原三國時代

원삼국 시대 토기와 유물 사진 보기

한국 고대사에서 서력 기원 전후부터 AD 300년경까지의 시기.

야요이 토기 / 원삼국시대(1~3세기)에 경남지역에서 사용한 일본식 토기이다. 당시 일본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원초기의 삼국 시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래 문헌사학에서는 이 시기를 삼한시대 또는 부족국가시대로 불렀고, 고고학계에서는 김해 시대(金海時代) 또는 초기철기시대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들 용어들은 이후 삼국의 체제 정비와 일원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게 됨에 따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로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원삼국 시대 개념이 제기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유적지로는 한강 유역에 경기도 가평군 마장리(馬場里), 양평군 대심리(大心里), 서울 풍납동토성(風納洞土城) 등이 있고, 낙동강 유역에는 창원 다호리(茶戶里), 대구 달성(達城), 고성 송천리(松川里), 김해 양동(良洞)ㆍ지내동(池內洞)ㆍ부원동(府院洞), 부산 구서동(久瑞洞)ㆍ노포동(老圃洞), 경주 조양동(朝陽洞)ㆍ황성동(隍城洞), 합천 저포, 마산 성산 등이 있다.

이 시대에는 청동기의 실용성이 소멸되고 철제 도구가 널리 보급되어, 이전에 청동기와 철기가 함께 사용되던 시기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이에 따라 발달된 철제 농기구를 바탕으로 농업 생산력이 크게 증대되었을 뿐 아니라 철과 철기 등을 낙랑과 일본에까지 수출하여 교역의 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리하여 마장리와 대심리 유적지에는 제철(製鐵)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철제도끼 등의 농기구가 출토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돌도끼ㆍ돌화살촉ㆍ반달모양의 돌칼 등 석기를 사용한 흔적도 남아 있고, 때로는 짐승의 뼈로 만든 골기(骨器)도 사용되었다.

토기는 회색경질(灰色硬質)의 돗자리무늬[繩席文]토기인 김해식토기와 소위 와질토기(瓦質土器)라 하는 경질의 토기가 대표적이다. 이들 경질토기는 재래의 민무늬토기에 중국식 회도(灰陶)의 기술이 가미된 것으로, 태토(胎土)가 보다 정선되고, 이전의 노천요(露天窯) 대신에 온도를 더 높일 수 있는 밀폐된 평요(平窯)나 등요(登窯)에서 소성되었다.

원삼국 시대의 농업은 삼한 지역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많이 행해져 김해 조개무지에서는 탄화된 쌀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특히 이 시기의 철기 문화가 낙동강 하류의 삼각지에서 발달하고 수많은 저수지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은 당시에 벼농사가 많이 행해진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루의 출현은 농경의 발달과 곡식 섭취가 일상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주거지는 움집[竪穴]이 대부분이지만 지상 가옥의 형태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가옥내부의 난방방식은 바닥 한편에 양벽과 뚜껑을 평편한 돌 또는 흙판으로 조립해 터널식으로 설치하거나, 아니면 평편한 돌을 1m 정도의 타원형으로 편 뒤 그 위에 진흙을 덮고 한쪽에 바람막이 돌을 세워놓는 형태의 화덕이 사용되었다.

묘제(墓制)는 원삼국시대 초기에 독무덤과 덧널무덤[木棺墓]이 크게 유행하였으나, 후기에는 덧널무덤이 발전하였다. 이와 아울러 무덤의 규모도 대형화되고 부장품도 풍부해졌다.

그러나 그 시기 구분에는 많은 문제점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기원전 2세기 말 이후 지속적인 발전 과정에 있던 철기 문화를 서력 기원을 전후하여 새로이 시기 구분하는 것은 오히려 문화의 연속성을 단절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다음으로 기원후 300년이라는 시간적 기준을 가지고 각기 다른 발전 상태에 있던 삼국을 한데 묶어서 설명하는 것도 곤란하다.

물론 삼한 지역의 경우에는 기원후 300년 무렵이 시기 구분의 중요한 획기임이 분명하지만, 고구려는 사회문화적으로 백제ㆍ신라보다 최소한 1∼2세기 앞선 수준에 있었다. 또한 현재 고고학계에서 사용하는 원삼국 문화라는 용어는 고구려를 제외한 중부 이남 삼한의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원삼국이라는 개념과도 맞지 않는다. 이처럼 한반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문화 수준의 편차가 크므로, 소위 원삼국시기의 문화성격을 파악하는 방식에서도 굳이 원삼국 시대라는 용어나 시기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서로 다른 접근 방법들이 시도되어야 한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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