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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30 (화) 19:42
분 류 사전2
ㆍ조회: 510      
[근대] 러일전쟁 (브리)
러일전쟁 -日戰爭 Russo-Japanese War

1904~05년 만주와 한국의 배타적인 지배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

배경

청일전쟁의 승리로 한국을 독점하려던 일본의 계획은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에 의해 일시적으로 저지되었다. 일본은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을미사변을 일으켜 민비를 학살했으나, 반일 의병투쟁을 야기함으로써 더욱 수세에 몰렸다. 또한 1896년 2월 친러파에 의해 아관파천이 단행되고, 친러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일본이 여전히 한국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청일전쟁 후 조선의 대외무역에서 일본은 수입의 60~70%, 수출의 80%를 차지함으로써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권(利權)면에서도 열강에 분할되는 이권을 최혜국대우 조항에 의해 획득하거나 위협함으로써 확보해 갔다.

한편으로는 조선에 대한 경제적 지위를 확실하게 굳히면서 이를 군사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대(對) 러시아 전쟁을 상정한 군비확장에 주력했다. 일본은 청국으로부터 받은 전쟁배상금 3억 6,000만 엔 중 2억 2,000만 엔을 군비확장에 사용하고, 1896~1903년 예산세출의 평균 5할을 군비로 충당했다. 그러나 일본은 독자적인 힘으로 러시아와 싸워 승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시아에 대한 영국·미국의 이권을 지키는 헌병 역할을 스스로 떠맡고 나섰다. 이로써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외교적·군사적 지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러일전쟁의 막대한 전비 17억 엔 중에서 8억 엔을 영국과 미국에서의 외채모집으로 보충했다.

또한 러시아도 삼국간섭 후 1896년 러청은행을 설립하고, 북만주를 횡단하여 치타와 블라디보스토크를 단거리로 잇는 동청철도(東淸鐵道)의 부설권을 획득했다. 또 1898년 뤼순[旅順]·다롄[大連]을 조차하고 여기에 대규모 해군 근거지를 계획했으며, 조선에 대해서도 1897년 재정고문 알렉세예프와 군사고문을 파견하고, 1898년에는 한러은행 등을 설립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 일어난 이권반대운동과 영·일 양국의 방해로, 알렉세예프는 취임하지 못하고 곧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한러은행도 폐쇄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조선으로부터 일보 후퇴하여 만주에 침략의 발판을 굳혔다. 1900년 의화단사건을 계기로 제국주의 열강과 공동 출병한 러시아군은 만주를 점령, 조선을 일본과의 완충지대로 삼으려 했다. 일본은 1902년 1월 영국과 동맹을 체결하여 대응했으며, 러시아도 양보의 태도를 보여 4월 만주철병을 내용으로 하는 만주환부조약(滿州還付條約)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의해 1902년 10월 제1차 철병을 단행했으나, 이후 러시아의 적극적인 대만주정책으로의 선회로 1903년 4월로 예정된 제2차 철병을 거부하는 대신에 오히려 만주에 군대를 증파했다.

이후 러시아는 봉황성·안동성 일대를 그 지배하에 두고 뤼순을 요새화했으며, 같은 해 7월 동청철도를 완성했다. 또 8월 아무르 지역과 관동지역을 동아시아 총독구로 하는 이른바 동아시아 총독부의 설립을 발표했으며, 1903년 4월 압록강 하류 용암포를 점령하고 군사기지를 설치하여 조차를 요구했다.

이에 일본은 만한교환(滿韓交換)의 원칙으로 수차례 교섭을 시도했으나, 더이상 협상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전쟁을 결의했다.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 교섭 단절과 아울러 개전을 결정했다. 2월 8일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여 전함 2척과 순양함 1척을 파괴하고, 9일 인천항에 정박중인 러시아 함대를 격침시킨 다음 10일 선전포고를 했다.

진행과정

러시아와 일본 간에 전운이 감돌자, 대한제국정부는 1904년 1월 21일 국외중립을 선언하고 열국에게 통고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를 무시하고 2월 9일 서울에 진주했다. 2월 23일 일본은 공수동맹의 성격을 띤 '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게 하고, 병력과 군수품의 수송을 위해 경부·경의 철도 건설을 서둘렀으며, 4월 1일에는 한국의 통신사업을 강점했다. 5월 18일 대한제국정부로 하여금 러시아와 체결했던 모든 조약과 러시아인에게 부여했던 모든 이권의 폐기 혹은 취소를 공포하게 했다.

일본군은 5월초 압록강을 건너 구연성(九連城)과 봉황성을 함락시킨 다음 랴오양[遼陽]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8월 28일부터 일본군 13만여 명과 러시아군 22만 명 간에 대격전이 벌어졌으나, 9월 4일 일본군은 펑톈[奉天]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어 여세를 몰아 1905년 1월초 뤼순항을 함락시키자, 러시아군은 대세를 만회하고자 발틱 함대를 파견했으나,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일본해군과의 격전에서 참패를 당함으로써 전세를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제1차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여 전쟁을 더이상 지속할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권고를 수락하여 일본과 포츠머드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의의

러일전쟁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분할을 위한 열강간의 세력각축의 결과였으며, 이는 한국 및 만주를 둘러싼 양제국주의 국가의 무력충돌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배후에는 영국·미국의 자본이, 러시아의 배경에는 프랑스의 자본이 각각 지원한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계기로 한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승인 내지 묵인하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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