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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12 (수)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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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쇄 (한메)
인쇄 印刷 printing,press

[인쇄와 인쇄물]

판(版)에 잉크를 묻히고 판면의 문자·그림 등을 종이·천 등에 찍어내는 것.

여러 벌의 복제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목판으로 연하장을 만들려면 엽서 크기의 그림을 목판에 붙이고 조각칼로 파낸 다음 잉크를 묻혀 용지 위에 찍어내면 된다. 이때 처음에 그린 그림을 원고, 판을 만드는 작업을 제판이라 하고, 잉크를 묻혀서 용지에 대고 누르는 작업만을 가리켜 좁은 뜻의 인쇄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목판인쇄는 판 위에 용지를 올려놓고 그 위를 솜뭉치 같은 것으로 두드리거나 문질러서 인쇄를 하지만, 다른 인쇄법에서는 기계를 사용한다. 이 기계를 인쇄기라 하며 용지를 판 위에서 강하게 눌러주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강하게 눌러주는 작업을 프레스라고 하기 때문에 인쇄기를 일컬어 프레스라고 하며,

또한 인쇄나 출판, 신문·잡지편집 등의 저널리즘을 통틀어 프레스라고도 하게 되었다. 프레스하려면 강한 압력에 견디는 견고한 기계가 필요한데, 점차 압력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 강구되어 최근에는 전자공학의 힘을 이용한 무압인쇄(無壓印刷), 잉크를 미세한 알갱이로 만들어 종이 위에 뿜어내는 잉크제트인쇄 등의 인쇄법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인쇄속도는 빠르지만 인쇄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적절한 압력을 가하여 인쇄하는 방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판이 없는 인쇄법 외에, 사진 역시 화상(畵像)을 여러 개 만든다는 점에서는 인쇄와 유사하다. 사진에 의하여 만드는 것은 컬러필름과 컬러프린트인데, 인쇄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필름이나 인화지 화상을 표현하는 최종재료를 사용한다. 또한 그 공정은 감광재료를 사용하는 점이 일반적인 인쇄와 다르다.

최근에는 중간과정에 관계없이 인간이 눈으로 느끼는 정보를 여러 형태로 처리하여 먼 곳으로 보내 새로운 화상 형태로 변형시키는 기술까지 포함하여 인사공학(印寫工學)이라 하는데, 인쇄도 인사공학의 하나이다. 인쇄는 원고(문자·그림·사진 등)를 우수한 품질의 복제품으로 값싸고 신속하게 대량으로 만들 수 있어 그 위력과 영향력이 매우 크다. 그리고 고급용지에 인쇄된 것은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으므로 기록, 보관하는 수단으로도 매우 유용하다. 최근에는 종이 이외의 매체에 잉크를 옮기는 것도 가능해져 인쇄물의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인쇄의 역사]

BC 30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조그마한 원통형의 돌에 문자와 그림을 새긴 뒤 부드러운 점토판 위에 이것을 굴려 원하는 문자나 그림을 만들어 냈다. 종이가 없던 시대에는 이와 같이 돌·진흙·금속·나무나 대나무에 글자를 새겼는데,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papyrus)라는 풀을 이용한 종이가 발명된 뒤로 두루마리모양의 파피루스에 먹물을 사용해서 서사(書寫)하였다. 이외에도 서사재료로 양피지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오늘날의 종이와 비슷한 것이 만들어진 것은 중국 후한(後漢)시대(AD105년 무렵) 채륜(蔡倫)에 의해서이다.

또한 751년 무렵 사라센군에게 붙잡힌 당(唐)나라 군사가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해줌으로써 중앙아시아에도 제지공장이 생기게 되었고, 13세기 무렵 서양에도 전해졌다. 한국의 종이 도입시기에 관한 자료는 없지만 4세기무렵에 백제(百濟)에서 사서를 편찬했다는 기록과 고구려(高句麗) 승려 담징(曇徵)이 종이제조기술을 일본에 전수한 시기(610년)로 보아 4∼7세기 사이로 추측할 수 있는데 4·5세기 무렵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장 오래된 인쇄물은 목판인쇄에 의한 것으로 한국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751)》을 꼽을 수 있고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목판으로 인쇄되었다고 전한다.

<활판인쇄의 발명>

서양에서는 14세기 무렵부터 목판인쇄를 시작하여 판 위에 종이를 놓고 문지르는 초기적 방법으로 인쇄를 하다가 1445년 독일의 J.구텐베르크가 활판술을 발명하였다. 한국에서는 이미 고려시대인 1230년 구리활자를 만든 기록이 있고 중국에서도 인쇄가 활발하였다.

마르코 폴로가 이와 같은 동양의 사정을 전하자 자극을 받은 구텐베르크가 활판술을 집성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구텐베르크는 현재도 쓰이고 있는 납의 삼원합금(납·주석·안티몬)활자를 만든 점, 포도즙을 짜는 기계에서 착안하여 강한 압력을 이용한 인쇄기를 만든 점, 유성잉크를 사용한 점, 스스로 발명한 활판술을 이용하여 뛰어난 인쇄물을 만든 점 등의 업적으로 인쇄술의 시조로 불리고 있다.

금은세공사였던 그는 기계적 기술에도 뛰어났던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라틴어 문법서적 등의 인쇄물에 대한 수요가 많았는데 목판인쇄에는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므로 좀더 능률적인 인쇄방법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따라서 미리 독립된 활자를 만들어 두고 필요에 따라 짜맞추는 활판술은 하나의 큰 혁신을 초래하였으며, 화약·나침반과 함께 르네상스시대의 3대발명품이 되었다.

구텐베르크가 초기에 만든 활자와 인쇄기로 인쇄한 것은 라틴문법책 《도나투스(Donatus)》와 성서인데 특히 《36행성서》와, 그가 착수하고 P.쇠퍼가 이어받아 1455년에 출판한 《42행성서》은 인쇄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인쇄물로, 현재까지도 극소수가 전해지고 있다. 그때 사용한 활자 서체는 당시의 필사 서체였는데, 이렇게 완성된 책이 인쇄본임을 감추고 필사본인 것처럼 팔린 것은 글씨를 베껴써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의 반대를 우려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는 활판을 발명하여 인쇄본을 만들었으나 이익을 얻지 못하고 부채 때문에 채권자인 J.푸스트와 그의 사위 쇠퍼에게 공장을 넘겨주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협력자를 만나 따로 책을 만들었지만 1462년 마인츠의 공장을 전화(戰火)로 잃게 되자 직공들은 각지로 흩어져서 인쇄소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이후 50년 동안 유럽 전역에 1000개가 넘는 인쇄소가 생겼다. 프랑스인 N.장송이 로마자체를, A.머누서스가 이탤릭체를 디자인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고, 이 밖에 벨기에(당시의 네덜란드)의 C.플랑탱, 프랑스의 에티엔 일가, 영국의 W.캑스턴 등이 활자서체의 디자인과 활판기술의 기초를 다졌다.

<자동활자주조기의 발명>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납활자는 1843년 문자가 새겨진 모형과 주형 사이로 용융 납합금을 흘려 넣는 방식으로 기계화되었다. 기계는 수동식으로, 활자의 마무리는 수공에 의존하였다. 활자를 하나하나 골라내어 판으로 만드는 방법은 효율성이 떨어지므로 기계화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19세기 말 자동활자주조기가 완성되었다.

1886년 무렵 미국의 O.매건탈러가 라이노타이프를 발명하였는데, 필요한 모형을 1행분씩 모아 놓은 곳에 납을 흘려 넣는 방식으로 1행분씩 짜맞춘 데서 라인을 의미하는 라이노타이프라 부르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미국의 T.랜스턴이 모노타이프를 발명했는데, 이것은 1자씩 활자를 주조해서 자동적으로 나열해가기 때문에 모노타이프라 하였다. 라이노타이프가 알파벳 키를 두드려 주조하기까지 1대의 기계로 수행되는 데 비해 모노타이프는 키보드부분과 주조부분이 별개의 기계로 되어 있다. 키보드로 테이프에 문자 부호를 천공해서 주조기에 걸면 부호에 따라 해당하는 모형에 납이 흘러 들어가고, 1자씩 활자가 만들어져 배출되어 조판이 이루어진다. 이 2종류의 자동조판기계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지만, 1970년대부터 점차 자동사진식자기로 대체되었다.

<인쇄기의 발달>

구텐베르크 인쇄기의 나사가 목제에서 금속제로 바뀐 것 외에는 약 350년 동안 인쇄기에 본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C.스탠업이 철제 인쇄기를 만들었는데, 이는 정교한 레버를 이용한 기구로 약간의 힘으로 핸들을 잡아당기면 나선형의 막대를 회전시켜 압반이 하강함으로써 인쇄시 강한 압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스탠업형 인쇄기는 발명 당시 《런던타임스》 등의 인쇄에 사용되었는데, 1시간에 200매나 300매 정도의 인쇄 밖에 할 수 없었다. 당시 유럽은 나폴레옹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로, 전황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으로 신문발행부수가 증가했기 때문에 고속인쇄기가 필요하였다.

1814년 독일의 F.쾨니히는 판면을 올려 놓는 판을 왕복운동시키고 그 위에 원통형의 압통을 놓아 압력을 가하는 압통(壓筒式) 인쇄기를 발명하였다. 당시 타임스는 3대의 스탠업형 인쇄기를 사용해서 12명이 2페이지의 신문을 철야로 8000매 인쇄했는데, 이 쾨니히형 인쇄기를 사용해서는 같은 시간에 9900매를 인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원압인쇄기(圓壓印刷機)가 발명되고 점차 그 속도도 빨라졌으며, 1892년에는 자동으로 용지를 인쇄기에 넣는 장치가 발명되었다.

또한 쾨니히형 인쇄기에서 발전하여 판을 원통모양으로 만들고 압통과의 사이에 두루마리용지를 통과시키는 윤전기가 발명되었는데, 이를 타임스발행에 사용하여 1시간에 편면 인쇄 7500매를 인쇄할 수 있게 되었다. 원통면에 활자를 식자(植字)하기가 까다로왔던 이 윤전기는 미국 남북전쟁을 계기로 지형연판법(紙型鉛版法)의 실용화가 진척되어 윤전기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1862년 런던에서는 1회전에 4페이지씩 신문인쇄가 가능한 윤전기가 실용화되었으며 이에 자극받아 독일·프랑스에서도 같은 종류의 윤전기를 제작하였다.

<평판인쇄의 발명>

평판(平版)의 시초인 석판은 독일의 A.제너펠더가 1798년에 발명하였다. 악보를 인쇄하려고 대리석으로 볼록판을 만드는 실험을 하던 중 이 돌의 표면이 다공질(多孔質)이어서 물을 뿌리면 오랜 시간 마르지 않으며 마른 표면은 지방성 잉크와 결합해서 특수한 물질이 되어 물과 반발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같은 평면인데도 잉크가 묻는 부분과 묻지않는 부분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석판인쇄이며 유럽에서는 포스터인쇄 또는 리소그래피(lithography)라고 하여 인쇄예술로서 환영받았다.

그 뒤에 석판석 대신 아연판이나 알루미늄판의 표면에 가느다란 요철, 모래 크기의 흠집을 새긴 재료가 판으로 사용되고 이를 원통에 감아 윤전형식으로 담배 포장지 등의 인쇄에 사용하였다. 미국의 I.W.루벨은 잉크를 판에서 용지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일단 고무롤러에 인쇄한 뒤 이것을 다시 용지로 옮기는 간접인쇄기계를 만들었는데 그 방식이 바로 오프셋인쇄이다. 이 인쇄방법은 판이 싸고 고급용지가 필요없으며 고속인쇄할 수 있기 때문에 잉크부착이 좋지 않다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컬러인쇄에 많이 이용되었다.

또 1970년대에는 PS판(presensitizedplate;제조회사에서 미리 감광액을 도포한 평판)의 보급과 자동처리기가 일반화되어 사진제판의 시간이 단축되었기 때문에 사진식자와 오프셋을 결합한 문자인쇄도 성행하게 되었다.

<오목판인쇄의 발달>

1839년 프랑스의 L.J.M.다게르가 은판사진을 발명한 이후 여러 종류의 사진법이 고안되었는데, 영국의 M.판튼이 중크롬산염의 감광성을 이용해 콜로타이프인쇄발명의 기초를 만들면서 사진제판법이 확립되었다. 오목판 방식은 1460년 무렵 이탈리아의 M.피니게라가 조각오목판 기술에 혁신적인 방식을 만들어 놓은 이래 네덜란드의 R.렘브란트 등이 예술적인 <에칭>을 사용하여 판화를 제작하였으며, 187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K.클리치가 사진인화법을 응용해 산분식(散粉式) 사진오목판을 만들었다. 이것이 유명한 <그라비어>이다. 사진을 고속으로 다량 인쇄하거나 용제성(溶劑性) 잉크를 사용해 종이 이외의 물질에 인쇄할 때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주간지 인쇄에 많이 쓰이고 있다.

[인쇄방식과 그 특징]

<압력을 가하는 방법에 따른 분류>

판에 잉크를 묻혀 인쇄용지를 깔고 인쇄할 때, 목판과 같이 용지 뒷면을 문질러야하는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용지 뒷면이 상할 수도 있다. 이를 대신하는 방법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견고한 프레스로 평평하게 밀어붙이는 방법이었다. 이를 평압식(平壓式)이라 하는데 용지 뒷면이 상하지 않아서 양면 인쇄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 방법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압통을 굴려 압력을 가하는 원압식(圓壓式)이 고안되었다. 이것은 용지를 판 위에 올려놓고 압통을 굴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인쇄할 용지를 압통의 상부 또는 하부에서 집어넣어 판을 왕복운동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평압식에 비해 인쇄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압통을 원위치로 되돌리거나 판을 왕복운동시킬 수 있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판을 원통모양으로 만든 윤전식이 고안되었다. 이것은 판 자체를 원통모양으로 만들거나 원통에 감아 이것과는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압통 사이에 용지를 끼워 인쇄하는 방식이다. 용지는 낱장인쇄도 가능하지만, 두루마리용지의 인쇄속도가 더 빠르다.

<판의 형식에 따른 분류>

⑴ 볼록판[凸版]

잉크가 묻는 부분을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파낸 판. 판에서 튀어나온 부분에 잉크를 묻혀 인쇄하는 형식으로 목판이나 활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인쇄물의 문자나 화선(畵線)이 선명하고 인쇄상태가 양호하다. 볼록판 인쇄물은 가는 선의 뒷면이 어느 정도 융기되어 있는지와 화선의 가장자리 부분의 잉크 농도가 짙은가를 살펴서 판단한다. 이 가장자리부분을 경계부분(margin-alzone)이라 하는데 인쇄물이 선명해보이는 요인이 된다.

이것은 판에 요철이 있기 때문인데, 나무나 금속에 요철을 만드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다. 목판은 파내기 쉬운 나무의 판면 또는 가로지른 면에 볼록한 모양의 화선을 만드는데, 판면을 사용하는 것은 동양식 목판, 기로지른 면에 새기는 것은 서양식 목판이다. 현재는 둘 다 판화제작에 사용되며 나무 외에 고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활판은 활자를 짜서 만든 판으로 신문·잡지·서적 등의 문자인쇄에 널리 사용된다. 이 활판에는 만화 등을 넣기 위한 선화볼록판과 사진을 넣기 위한 망점판(網點版)이 있다.

⑵ 평판(平版)

판면은 화선부와 비화선부가 요철되어 있지 않고 동일평면상에 있는데, 화선부는 화학적으로 처리하여 잉크가 묻게 되지만 비화선부는 잉크와 반발하는 상태가 된다. 이것은 평판의 최초 형태인 석판석(대리석의 일종)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한 것으로, 인쇄할 때 판면에 먼저 물을 묻히면 화선부에는 물이 겉돌고 비화선부에는 물이 묻는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잉크를 묻히면 비화선부에는 물이 있으므로 잉크가 묻지 않고 화선부에만 묻는다.

금속을 판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표면에 모래알 크기의 흠집을 내어 물을 머금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금속평판의 경우는 직접 판을 통해 용지에 인쇄하지 않고 일단 고무롤러에 인쇄한 다음 이 잉크를 다시 용지에 옮기는 이른바 오프셋인쇄를 한다. 이 방법은 용지의 표면이 약간 거칠지만 인쇄가 깨끗하며, 금속을 파서 판을 만들지 않으므로 제판이 간단하고, 같은 판을 많이 만드는 것이 쉽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오프셋평판이 가장 널리 쓰이지만, 인쇄판면에 물을 묻혀야 하는 점 등 때문에 볼록판방식보다는 화선이 선명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즉 평판인쇄물은 화선과 망점 주위가 조금 흐리게 나타나며, 볼록판방식처럼 경계부분이 두드러져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기술이 향상되어, 인쇄물이 매우 선명한 편은 아니지만 겉으로 봐서는 볼록판방식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명도가 높아졌다. 잡지의 컬러표지, 신문의 원색인쇄, 카탈로그와 포스터 같은 상업인쇄물, 패키지 등 대부분의 컬러인쇄는 평판으로 한다. 또한 최근 사진식자법이 발달함에 따라 문자인쇄도 사진식자로 처리하여 평판인쇄하는 것이 늘고 있다.

⑶ 오목판[凹版]

볼록판방식과는 반대로 잉크를 움푹 패인 곳에 채워 넣고 인쇄한다. <조각오목판>과 <그라비어>가 이 방식에 속한다. 조각오목판은 판의 재료로 구리를 쓰는데 동판을 잘 닦은 뒤 그 표면에다 바늘이나 조각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 부분이 조금 패이게 되므로 여기에 잉크를 고이게 해놓고 용지를 대고 누르면 잉크는 용지로 옮아가는데 잉크가 솟아올라서 더욱 세밀한 화선인쇄물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지폐·증권·명함과 같은 인쇄물에 이용한다.

결점은 비용이 많이 들고 인쇄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그라비어는 동판을 바늘로 조각하는 대신 사진이론을 응용해 화학처리한 판으로, 사진의 상태를 잘 표현하고 고속인쇄가 가능하므로 잡지·그래프 등의 인쇄에 사용된다. 또한 종이 외에 플라스틱과 금속박(金屬箔)에도 깨끗하게 인쇄되므로 포장지인쇄에도 쓰이며, 나뭇결무늬를 인쇄하여 판에 붙인 화장판(化粧版)은 가구나 건축재료로 쓰인다. 이 방법은 인쇄부수가 적을 경우에는 인쇄비용이 많이 든다는 결점이 있다. 오목판인쇄물 가운데 조각오목판은 인쇄물의 화선이 솟아올라 있고, 그라비어는 인쇄물을 확대경으로 보면 망점의 크기가 일정한 정사각형이므로 다른 인쇄물과의 구분이 가능하다.

⑷ 공판(孔版)

화선부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있는 형지(型紙;판)를 사용하여 이 구멍들을 통해 잉크를 판의 앞면에서 뒷면으로 빠져나가게 하여 인쇄하는 방법이다. 등사판인쇄·스크린인쇄가 여기에 속한다. 스크린인쇄는 형지로 명주천을 사용하므로 실크스크린인쇄라고도 하는데, 최근에는 나일론과 스테인리스강도 사용하게 되어 스크린인쇄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량의 잉크를 용지에 옮길 수 있으므로 선명한 인쇄물을 만들 수 있고, 금속·플라스틱·천 등의 표면과 곡면(曲面)에도 인쇄가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판이 손상되기 쉬워 내쇄력(耐刷力)이 없다는 것이 결점이다. 곡면 인쇄, 자동차 차체의 문자와 무늬 같은 점착(粘着)라벨 인쇄 등에 쓰인다.

[인쇄소에서의 공정]

전에는 활판인쇄가 인쇄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평판과 오목판인쇄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활판이 가장 역사가 길고 익숙한 인쇄방식이며 인쇄(press)라는 뜻에 가장 걸맞는 방식이므로, 활판을 예로 들어 인쇄소의 공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고 가운데서 그림이나 사진의 원고는 사진제판법에 의하여 따로 선화볼록판과 망점판을 만든다. 문자원고는 문선(文選)·식자(植字)·교정(校正)·지형연판(紙型鉛版)·인쇄의 순서를 거쳐 활판인쇄물이 된다.

선화볼록판과 망점판은 식자(조판) 단계에서 활자와 함께 짜 넣는다. 인쇄부수가 적은 것은 지형연판의 공정을 거치지 않고 원판쇄(原版刷)가 된다. 문선은 활자케이스에서 원고에 따라 활자를 뽑아 상자에 모으는 작업이다. 잡지의 본문에 많이 쓰이는 8포인트 활자를 문선할 경우, 원고 내용의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시간당 1300∼1400자 정도의 문선이 가능하다. 인쇄를 주문한 쪽에서 원고를 보기 쉽게 정리할수록 문선능률이 높아진다.

이외에 문선능률을 높이는 데 문제되는 것은 활자케이스의 어디에 어떠한 활자를 배열하느냐이다. 한자의 변(邊)과 방(旁)을 기준으로 한 부수별 배열을 할 경우 사용빈도가 높은 문자 일부를 대출장(大出張)이라 하고 이보다 사용빈도가 조금 낮은 문자를 소출장이라 하는데, 이들을 문선공의 손이 잘 닿는 곳에 배치한다. 문선은 구두점이나 행갈이 등에는 신경쓰지 않고 단지 문자만을 모으며, 작업을 해서 모은 활자를 식자공에게 넘겨준다.

여기에서 편집배정(레이아웃)에 따라 표제·구두점을 넣고 행갈이를 하는데, 필요한 경우에는 글자와 글자 사이에 공목(空木;인테르)을 채워넣어 간격을 조정하고 선화볼록판과 망점판을 짜넣어 1페이지의 체재(體裁)를 완성한다. 보통 1페이지를 끝내는 데 1시간쯤 걸린다. 이것을 간단한 인쇄기(교정)에 올려놓고 시험인쇄를 하는데, 이렇게 인쇄된 종이를 교정쇄라 하고, 잘못 뽑은 글자(오식)는 교정쇄를 통해 바로잡는다. 이 작업은 인쇄소와 인쇄를 주문한 쪽이 함께 한다.

최초의 교정을 초교, 2회째 이후를 재교·3교·4교·‥라 하며, 교정종료를 교료(校了), 인쇄소의 책임 아래 바로잡는 지시를 책임교료라 한다. 고료가 된 각 페이지는 8페이지·16페이지·32페이지라는 식으로 늘어놓은 상태로 인쇄한 뒤 접지를 하고 이런 접지를 몇 개 모아 철하면 책이 된다. 활자 등을 짜놓은 판을 원판(原版)이라 하고 이것으로 인쇄한 것을 원판쇄라 한다. 원판쇄는 수천 부까지 인쇄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인 경우 활자가 마모되므로 복판을 만든다.

복판이란 같은 판을 많이 만드는 일로서 활판의 경우 연판(鉛版)이 이에 해당된다. 활판 위에 특수가공한 용지를 깔고 압력을 가해 판과 요철이 반대되는 지형(紙型)을 만들고 여기에 납합금을 부어넣으면 원래의 활판과 같은 연판이 만들어진다. 만약 지형을 둥글게 말아 납을 부어넣으면 둥근 연판을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은 반원통모양이므로 2장을 합쳐 원통에 감아 윤전인쇄기의 판으로 한다. 예전의 신문인쇄는 이 둥근연판을 1페이지씩 만들어 신문윤전기로 인쇄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도입한 CTS(computerizedtypesettingsystem)가 일반화된 추세이다. 그러나 아직도 평평한 연판과 원판에 의한 인쇄도 남아 있다.

[새로운 인쇄·특수인쇄]

<사진식자>

활판은 무거운 납합금을 써야 하고 환경위생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이를 대신하여 발달한 것이 사진식자법이다. 사진식자기는 1910년 무렵부터 유럽·미국에서 고안되어 차츰 발전되었고 지금은 사진을 이용한 타이프라이터 수준에서 벗어나 컴퓨터와 연결됨으로써 매분 수천 자씩 찍어내는 것이 실용화되고 있다. 수동 사진식자기는 유리 문자반(文字盤)을 손으로 조작하여 렌즈를 통해서 사진 필름 위에 문자상이 맺히게 한다. 이를 현상·정착·수세·건조하면 인화지에 검은 문자가 나타나서 활자와는 색다른 조판을 할 수 있다.

문자반의 문자는 다수의 렌즈에 의하여 확대·축소할 수 있는데 0.25㎜를 1급으로 하고 7∼100급까지 다양한 크기의 문자를 만들 수 있다. 이를 기초로 사진이론을 이용하여 판을 만드는데, 볼록판·평판·4판식(四版式) 어느것이나 상관없다. 활판방식의 경우 필요한 종류나 양만큼의 활자를 보관하려면 많은 공간이 필요하며 무겁고 공해문제도 있으나, 사진식자의 경우는 1대의 기계로도 충분하고 조판도 인화지나 사진필름 형태이므로 취급 및 보관이 편리하다.

또한 컴퓨터를 이용한 사진식자기는 미리 문자를 자기기억(磁氣記憶)시켜 두고 키보드를 조작함으로써 필요한 문자를 화면으로 불러내어 편집·정정(訂正)하고 필름 또는 인화지로 출력한다. 출력은 1분당 수천 자씩 할 수 있는데 반해 입력이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컬러스캐너>

컬러인쇄에서는 컬러필름 원고로 4색인쇄용판을 만드는데, 복수의 컬러필름 조합과 색조수정은 컴퓨터 주변장치의 하나인 컬러스캐너로 한다. 컬러필름을 아주 작은 점으로 분할하고 각 점에 대하여 황색·적색·청색·흑색으로 나누어 필름에 노광(露光)시켜 제판용 원판으로 만든다. 한편 인쇄기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잉크공급량을 자동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인쇄기와 제본기는 생력화(省力化)·자동화가 진행되어 고속화되었고 인쇄잉크와 판의 재료도 새로운 합성수지로 바뀌어 성능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특히 제판용 감광재료와 감광성 수지는 작업을 간단하고 쉽게 만들었으며 작업시간을 단축시켰다.

<토털스캐너시스템>

페이지메이크업시스템 또는 레이아웃시스템 등으로도 불리는 전자기술을 이용한 편집·색수정용의 장치가 실용화되고 있다. 문자와 사진판이 한 페이지 안에서 차지하는 넓이 등을 화면에 나오게 하여 자유로이 레이아웃하거나, 컬러원고를 색분해한 후 합성하여 화면에 나오게 하여 복수의 컬러원고를 조합하고 색의 변경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해서 인쇄원판을 만드는 것이다.

<특수인쇄>

종이 이외의 것에 인쇄하거나 종이에 인쇄하더라도 특수한 인쇄법과 가공법에 의한 것을 특수인쇄 또는 줄여서 특인(特印)이라 한다. 판식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① 볼록판형식:실인쇄(sealing)·플렉소인쇄(고무판인쇄) ② 평판형식:전사인쇄(decalcomania)·입체인쇄(three dimensional printing)·OCR(op-tical character reader;광학문자판독기) 인쇄·OMR(optical mark reader;광학마크판독기)인쇄·블랭킷인쇄(blanket printing)·비즈니스폼인쇄(business form printing) ③ 볼록판오프셋형식:튜브인쇄·앰풀인쇄(ampoule printing)·소형전기부품의 인쇄 ④ 오목판형식(그라비어):셀로판인쇄·플라스틱필름·시트의 인쇄·포일인쇄(foilprinting)·화장판인쇄·벽지인쇄 ⑤ 오목판오프셋인쇄형식:오목판전사인쇄 ⑥ 스크린인쇄형식:유리인쇄·플라스틱성형물인쇄·프린트배선·네임플레이트(명찰·표찰)인쇄·발포인쇄(發泡印刷) ⑦ 판식에 구애받지 않는 특수인쇄:식모인쇄(flocky printing)·릴리프인쇄(relief printing)·돋움인쇄·자기인쇄·카본인쇄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이 물과 공기 외에는 무엇에나 인쇄할 수 있을 정도로 재질·형상에 관계없이 다양한 범위에 걸쳐 인쇄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라벨인쇄와 화장판인쇄이다. 라벨인쇄를 전에는 실인쇄라 했으나 지금은 점착필름을 사용하여 실뿐만 아니라 라벨·스티커·네임시트 등 아름다운 컬러인쇄가 가능하며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몸체장식에도 사용된다.

돌이나 나뭇결모양의 무늬를 인쇄하여 플라스틱가공함으로써 표면을 진짜 나무나 돌처럼 만드는 화장판인쇄는 가구·전기기구·건축재료 등에 이용된다. 오목판전사인쇄는 오목판을 먼저 공모양의 고무에 전사한 다음 이것을 곡면접시나 전기부품 또는 시계의 문자반에 인쇄한다. 식모인쇄는 전기력을 이용하여 미세한 섬유 부스러기를 날리어 벨벳모양의 무늬를 만든다. 발포인쇄는 특수한 잉크를 사용하는데, 인쇄한 뒤 가열하여 그 부분을 부풀리는 방법이다.

인쇄와 목적이 동일한 기술로 복사가 있는데 인쇄에서는 원칙적으로 판을 사용하는 반면 복사는 판을 사용하지 않고 사진적·전자사진적으로 원고와 같은 것을 다수 복제한다. 복사는 인쇄에 비해 정밀도·컬러복제·고속다수복제 등 여러 점에서 뒤지지만 적은 양을 빨리 복제하고자 할 경우에는 훨씬 편리하다.

<미래의 인쇄>

인쇄는 1장의 나무판에 많은 수의 글자를 새기는 목판인쇄에서 시작하여 활자를 만들어 짜맞추는 활판인쇄로 발전하였다. 그 뒤 광학기계의 발달에 따라 사진식자 방법으로 문자를 인쇄하는 방식이 널리 보급되었고 이제는 컴퓨터와 사진을 이용하여 1분 동안에 수천 자식 조판 가능한 전산식자방식이 실용화되고 있다. 그리하여 문자인쇄에서는 워드프로세서가 조판기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만일 원고의 집필자가 입력시킨 자기기억매체인 플로피디스크를 인쇄소에 주기만 하면 바로 인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기억매체를 이용하여 깨끗하게 조판체제를 갖춘 사진제판용 원고를 출력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집필자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출판물의 경우 보통 편집자 또는 출판사와 인쇄소와의 중간제작자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인쇄소에서도 고성능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해 원고를 입력하고 전산사식식자기로 출력하는 방법을 실제업무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 컴퓨터산업의 눈부신 발달로 음성을 통한 문자입력과 사람이 쓴 원고를 컴퓨터가 읽고 기억할 수 있는 OCR법도 실용화될 전망이다.

출력에서도 도트 임팩트 매트릭스 방식과 함께 출력 즉시 인쇄되는 잉크제트인쇄가 실제업무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무압인쇄로 전자인쇄처럼 전자의 힘을 빌어 잉크를 뿜어내는 인쇄법인데, 인쇄속도가 빠르고 컴퓨터와의 연계가 쉬우며 대상물과 접촉하지 않고 인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컬러인쇄에서는 컬러스캐너가 발전하여 전산사식기 또는 워드프로세서와 합쳐짐에 따라 컬러용 인쇄판에 문자가 들어가게 되어 화면을 보면서 하는 레이아웃이 이미 실용화되었다.

따라서 출력한 뒤 각 색판을 필름으로 만들거나 이 단계를 지나 바로 판형으로 출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인쇄기나 제책가공·마무리기계는 컴퓨터에 의하여 고도로 자동화되어 관리되는 전자출판(desk top publishing;DTP)의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의 인쇄]

<통일신라시대>

한국에서 목판인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기원이 신라시대의 불교서적 인쇄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불교국가를 이상으로 하여 신라왕조의 자주적 토대를 굳건하게 다지려는 국가정책과 문명국의 위치를 불교문화의 깊이에 따라 좌우하던 당시의 국제 상황이 신라의 불교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이런 문화적 기반 위에서 일찍이 중국으로부터 도입했던 초기단계의 인쇄지식이 목판인쇄술로 발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이미 몇 가지 여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첫째, 금석류(金石類)의 표면 또는 평면에 글자·부호·그림 등을 새기는 기술과 필요에 따라 탁인(拓印)해내는 방법이 개발되어 있었다. 석경(石經)에 새겨진 글자의 필력이 날카롭고 그 기술 또한 정교하다는 점과 각종 금동판에 양각 또는 음각으로 비교적 긴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글자를 새기는 기술이 전반적으로 뛰어났으리라 여겨진다.

둘째, 쇠붙이·돌·상아·나무 등의 재료에 부호·이름·관직명 등을 새긴 인장에 인주나 먹을 칠해 문서에 찍거나, 불인(佛印)과 탑인(塔印)을 종이나 깁에 찍어 대량 생산한 것이 인쇄와 공통성을 지닌 점이 목판인쇄술의 생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 조각기법과 날인방법은 《다라니경》 등의 불서를 베껴쓰는 대신 소형 나무판에 새겨 종이에 찍어내는 단계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셋째, 한국에서는 희고 두꺼우며 질겨서 오래 견딜 수 있는 장점을 지닌 닥종이를 삼국시대부터 생산하였는데 이 점 역시 인쇄문화 생성에 큰 구실을 하였다. 넷째, 예전부터 인쇄에 필요한 먹을 생산해낸 것도 목판인쇄술을 발전시킨 한 요인이다. 중국의 목판인쇄는 대략 7세기 후기에서 8세기 초기의 당(唐)나라 때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목판인쇄발전의 여건을 갖추고 있던 한국에 전해지면서 바로 목판인쇄술이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1966년 경주(慶州) 불국사(佛國寺) 석가탑(釋迦塔)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목판인쇄술의 성격을 완전하게 갖춘 초기의 것으로, 당시 한국의 인쇄문화가 상당히 발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 인쇄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던 불교가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국교(國敎)가 되고 그 진흥책이 강구되어 불경 간행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보협인다라니경(寶협印陀羅尼經, 1007)》으로 이것은 중국에서 경문을 도입하고 그것을 새겨 탑에 안치하는 불사(佛事)의 영향을 받았지만 실제 판각과정에서는 창의성을 발휘하여 독자적인 방법으로 정서·정각한 것이다.

⑴ 대장경의 판각

① 초조대장경

거란의 잦은 침입으로 인한 국란을 불력으로 타개하고자 거국적으로 발원하여 1011년(현종 2) 무렵에 대장경 판각에 착수, 1087년(선종 4)에 일단락을 보았다. 이 초조대장경은 571함 6000권으로, 최근 140여 권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검토한 결과 북송(北宋)의 《개보칙판대장경》의 판식을 기준으로 하였으나 새로운 판각용 정서본을 마련하여 판각한 사실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② 재조대장경

부인사(符仁寺) 소장의 초조경판이 몽고의 침입으로 1232년(고종 19)에 소실되자 이를 다시 새겨 불력으로 몽고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2차로 판각하였다. 36년부터 51년까지 16년에 걸쳐 8만 1000여 판에 달하는 경판을 완성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해인사(海印寺)의 팔만대장경이다. 재조대장경은 판각의 정교함이 초조본보다는 떨어지지만 본문은 동양에서 가장 뛰어나 일본에서는 불교전파의 초석으로 삼고 끊임없이 수입해갔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간행된 축쇄대장경(縮刷大藏經)·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은 재조본을 정본으로 삼아 간행된 것이다.

③ 속장경

문종의 넷째 왕자인 의천(義天)이 편찬·간행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그는 국내는 물론 송(宋)·요(遼)·일본 등지에서 교장을 수집하여 4000권의 교장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권)》을 엮어냈다. 그 뒤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본문의 오류를 바로잡아 판각한 것이 바로 속장경이다. 이것은 동양 학승들의 교장을 최초로 집대성한 것으로 판각은 달필의 서예가가 판각용 정서본을 마련하여 정성껏 초각(初刻)한 조본(祖本)인 점이 특징이며, 판각술의 정교함은 당시 인쇄술의 발달 정도를 추측하게 한다.

⑵ 금속활자

금속활자의 발명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3세기 초기 이전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이미 개경(開京)에서 주자로 찍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사용하여 강화도(江華島)로 천도한 1239년에 다시 책을 간행했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정예문(詳定禮文)》을 주자인쇄로 28부 찍어 각 관서에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시기는 대략 1234년∼41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 외에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1377년)》이 전해지는데 이 책은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는 전시회에 출품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인정받았다. 한편 동양에서 활자판이 만들어진 것은 송나라의 필승(畢昇)이 1041∼48년 사이에 만든 교니각자(膠泥刻字)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 활자는 재료가 흙이어서 조판인쇄가 매우 까다로웠을 뿐 아니라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어 실용화되지 못하였다. 이후 왕정(王楨)이 쓴 《농서(農書)》에서 1271년 이후 금속활자를 사용한 기록을 볼 수 있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45년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에 비해 고려의 주자인쇄는 훨씬 앞선다.

<조선시대>

⑴ 활자인쇄

조선시대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활자인쇄가 발달하였다. 조선의 관판(官版)은 중앙관서가 중심이 되어 실시했는데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책은 목판으로 간행한 것도 있으나 주로 활자를 만들어 필요한 책을 수시로 찍어내어 문신을 비롯한 중앙 및 지방의 관서·학교·서원 등에 널리 보급하였다. 1403년(태종 3)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구리활자의 주조를 시작했는데 계미자(癸未字)가 그 시초이다.

이 계미자는 밀랍에 잘 꽂히도록 끝을 송곳모양으로 뾰족하게 만들었으나 인쇄중에 움직여서 자주 밀랍을 녹여 부어 바로잡아야 했다. 이 조판기술은 20년(세종2)에 만든 경자자(庚子字)에서 크게 개량되었는데, 활자와 조판용 동판을 만들어 서로 잘 맞추어 인쇄중에 활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계미자보다 효율적이었다. 세종은 34년에 또다시 개주에 착수, 구리활자 20여만 개를 주조하게 하여 갑인자(甲寅字)를 만들었다. 이 갑인자는 활자의 네모를 평평하고 바르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조판용 동판도 조립식으로 튼튼하고 정교하게 개조했기 때문에 대나무만으로 빈틈을 메워 조판하고 인쇄하는 단계까지 발전하였다.

갑인자는 선조 초기에 재주할 때까지 장기간 사용되어 전해지고 있는 인본이 가장 많다. 1436년에는 진양대군(晉陽大君)이 쓴 큰 글자를 바탕글자로 삼고 납으로 활자를 주조했는데 이것이 병진자(丙辰字)로 최초의 우리 글자체 활자였다. 1447년에 인출된 《석보상절(釋譜詳節)》 등은 고딕체의 한글활자로 정교하게 찍었다. 이 활자는 강직하며 굵은 직선의 인서체(印書體)였다.

1455년(세조 1) 강희안(姜希顔)의 글씨를 바탕글자로 삼아 구리로 활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을해자(乙亥字)이다. 이 활자에서는 한글활자가 함께 쓰여져 많은 국역서적이 인출되었는데, 임진왜란 직전까지 갑인자 다음으로 오래 쓰였으므로 그 인본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1465년에는 대·중·소의 구리활자를 만들어 을유자(乙酉字)라 했다.

16세기에 접어들어 1516년(중종 11)의 병자자(丙子字) 등을 거쳐 인력주자(印曆鑄字)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무쇠로 주조되었으며 연주활자(連鑄活字)가 많이 쓰였다. 효종조 후반기부터는 필서 또는 행서체 목활자가 혼용되는데 이 목활자는 1668년(현종 9) 무신자(戊申字)의 대대적인 주조로 주자인쇄가 다시 부활되기 전까지 쓰였다. 주자인쇄가 부활된 뒤 1677년(숙종 3) 《현종실록》을 찍어내기 위한 전용 구리활자를 주조했는데 이를 현종실록자라 한다.

숙종조에는 교서관이 명조체(明朝體)의 간본을 바탕글자로 삼고 인서체 무쇠활자를 만들었다. 1895년(고종 32)부터 몇 년 동안 학부(學部) 편집국이 개편·인출한 교과서에는 목활자가 쓰였다. 관서의 목활자인쇄로는 그 밖에도 관상감이 간행해 온 책력이 있다.

근대의 신식 납활자는 1880년 일본에서 만들어 《한불자전(韓佛字典)》을 찍어낸 것이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1883년 박문국(博文局)이 설치되고 그 뒤 신문과 서책이 인출·보급되었다. 그에 따라 옛 활자 사용이 차츰 줄어들었지만 20세기 전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한국 전통문화 전파에 한몫을 담당하였다. 그 밖에 개인 및 민간의 활자인쇄는 전반적으로 활기를 띠지는 못했다.

⑵ 목판인쇄

조선시대의 관판본은 활자인쇄가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활자인쇄는 인출부수에 제한이 있어 전국에서 요구하는 책의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숭유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유교경전을 비롯한 역사·시문 계통의 서적을 전국 규모로 펴내야만 했기 때문에 목판인쇄가 촉진되었다. 주자소에서 찍어낸 활자본 또는 중국책을 복각하거나 판각하여 그 책판을 간직하였다가 필요할 때에 찍어내어 공급하였다.

목판인쇄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유교 서적의 국역간행 및 공급에 힘쓴 세종 때부터였으며, 세조 역시 불경의 국역 간행사업을 위해 1461년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였다. 그 밖에 민간인들이 영리를 목적으로 판각하여 찍어낸 책을 방각판(坊刻板)이라 하는데, 인쇄에는 목판 이외에 나무와 쇠로 만든 활자를 사용하였으며 주로 각종 학습서·과거시험용 도서·소설책을 만들어 서민에게 공급하였다.

사찰에서도 많은 불경을 간행하였는데 초기에는 주로 고려본을 복각한 것이었으며 15세기 초기부터는 독자적인 판본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대의 사찰본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은 있지만 사찰에서 꾸준하게 조판업무를 수행한 것은 한국 목판인쇄술 발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근대 이후>

한국 인쇄사에 있어서의 근대는 근대화된 서양인쇄기가 도입된 1883년 이후로 생각할 수 있다. 서양보다 200여 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도 다른 나라와 기술교류가 거의 없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외국으로부터 근대화된 인쇄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83년 박영효(朴泳孝) 등의 건의로 설치된 박문국에서 수동식 활판기를 도입, 《한성순보(漢城旬報)》를 발행하였고, 1884년 목활자 인쇄를 해오던 최초의 민간출판사 광인사인쇄공소(光印社印刷公所)가 근대식 인쇄기계와 납활자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최초의 국한문혼용서적을 간행하였다.

1886년에는 배재학당 내에 인쇄부가 설치되었고,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면서도 인쇄기술은 꾸준히 발달하였다. 현재는 고등교육기관에 인쇄과가 개설되어 있고 등록인쇄소는 3000여 개에 이르며 컴퓨터식자시스템의 활용단계에 이르고 있다.

<김부조>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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