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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12 (수)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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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889      
[예술] 음악 (두산)
음악 music 音樂

소리를 소재로 하여 박자·선율·화성·음색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I. 개관

그렇다고 모든 소리가 소재로 쓰여지는 것은 아니며 주로 악음(樂音)에 한정된다. 또 악음의 종합이 그대로 음악이 되는 것도 아니며 이는 넓은 의미에서의 인간의 정신활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음악은 시대나 민족에 따라 다양한데 그것은 각기 그 시대나 민족이 어떻게 독자적인 형식으로 소리를 포착하였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음악은 일반적으로 ‘시간예술’로 불리고 있다. 회화·조각·건축물 등의 조형예술은 3차원의 세계에 실재하는 구체적인 소재에 바탕을 두고 공간적인 대상을, 말하자면 항구적인 형태로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음악은 문예나 무용과 더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生成), 전개되어 간다.

따라서 조형예술을 정적이고 공간예술이라 부르는 데 대해 음악 등은 동적이고 시간예술이라 불리는데, 같은 시간예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각각 독자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다. 곧 문예는 언어의 사용으로 관념적인 의미내용을 표현하고, 무용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함으로써 시각적이고 형상적인 데 반해 음악은 소재인 소리의 순수성(純粹性)에다 시간적인 성질에 바탕을 둔, 가장 단적인 시간예술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음악은 발생적으로도 언어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또한 무용·연극과도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음악은 이와 같은 예술의 장르와 연관을 갖고서 독자적인 형식이 창출되는 것 외에도 회화 등과는 달리 그때마다 재현할 필요가 있어, 이와 같은 의미로서는 재현예술로서의 공통적인 기반 위에 성립되어 있다. 음악을 ‘유동하는 건축’, 건축을 ‘언(凍) 음악’이라 부르는 것은 비유적(比喩的)인 표현이기는 하나 소재가 지닌 순수한 질서성(秩序性)이나 통일성이라는 점에서 공통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라는 말은 ‘music’과 대응하는 말인데 뮤직은 원래 그리스어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어 무시케(musik曉)는 무사(musa)들이 관장하는 기예(技藝)라는 뜻이다. 무사(複數로는 무사이)는 그리스신화의 주신(主神) 제우스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에게 낳게 한 9명의 여신으로, 시신(詩神), 또는 시의 여신으로 번역되며, 각기 서사시·서정시·비극·희극·무용·역사·천문 등을 맡아보았다. 따라서 그리스에서의 무시케는 아주 넓은 의미를 지녔고, 특히 역사나 천문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무시케가 시간이나 운동과 깊은 관계를 지닌 인간활동의 총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며, 역사나 천문도 그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라틴어의 무시카(musica)도 독특한 의미를 가진 말이다. 소리와 울림에 관한 이론 및 실천의 양면을 포함하는 이 무시케는 기초학과로서의 자유7과 가운데 수(數)에 관계되는 4과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뮤직이라는 의미로서의 음악이 소리를 소재로 하는 예술활동으로서 파악되기에 이른 것은 근세 이후의 일이다. 동양에서도 처음부터 음악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아니다.

중국 및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악(樂)’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여왔다. 이 말은 원래 악기와 이를 거는 걸게(架)를 나타내는 상형문자(象形文字)였다. 그리고 중국의 고대나 한국에서의 ‘악’은 고대 그리스의 무시케와 같이 도덕이나 윤리와 밀접 불가분의 관계를 지녀 이를 예악(禮樂)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개항 이후 1880년대에 선교사들이 들여온 서양음악을 아악(雅樂) 등 재래의 음악과 구분해서 양악이라 불렀는데 일반인이 오늘날과 같은 상식적인 의미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전후의 일이다.

II. 소재·요소

음악의 소재인 소리는 주로 주기성(周期性)을 지닌 규칙적인 진동이 있는 소리, 즉 일정한 높이를 지닌 악음이며 이는 성음(聲音)과 넓은 의미의 악기음으로 성립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순음(純音)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 현실의 음악에서는 음향학적으로 소음(騷音)으로 치는 소리도 때때로 미적 효과를 수반해서 쓰이고 있다.

현대의 구상음악이나 전자음악에서는 음악의 음소재(音素材)가 크게 확대되었다. 음악은 일정한 질서 아래 악음이 조화 ·결합되어 성립되며, 음악이 지닌 기본적인 속성은 길이[持續]와 높이이고 이 밖에 음색과 강약도 포함된다. 계기(繼起)하는 소리의 길이에 일정한 시간적 질서를 부여하면 리듬(律動)이 생기고,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소리를 수평적 ·계기적으로 결합하면 멜로디(旋律)가, 수직적 ·동시적으로 결합하면 넓은 뜻에서의 하모니(和聲)가 생긴다. 이들 리듬 ·멜로디 ·하모니를 보통 음악의 3요소라 하여 음악작품의 불가결한 구성요소로 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주로 근대 서양음악에 바탕을 둔 것이며 음악현상을 시대적 ·지역적으로 널리 보면 화성이 결여된 음악도 적지 않다. 또 특수한 경우, 일정한 음률을 지니지 않는 타악기에 의한 음악은 화성 ·선율 모두가 결여되었지만 음악으로서 충분히 성립된다. 이에 비해서 리듬이 결여된 음악은 생각할 수 없다. 멜로디만의 음악이라도 그것이 멜로디로서 음악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시간적 질서(리듬)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3요소 가운데 리듬이 음악에 있어 가장 근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III. 형식

음악에서 형식의 개념은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음악의 소재나 요소에 질서를 부여하고 의미 있는 통일체를 형성하는 원리로서의 형식으로, 내용개념과 대치(對置)되어 음악미학의 고찰자료가 된다. 음악은 뛰어난 형식적 예술이라 불리고 있다. 이것은 가사나 표제를 수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음악작품의 의미내용은 형식에 의해서 보장되어 순수한 절대음악에서는 형식 그 자체가 음악의 내용이라고까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E.한슬리크가 음악은 “울려퍼지면서 운동하는 형식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조형예술과는 달리 음악의 형식은 그 운동성, 즉 시간적 경과 속에서 현상되고 파악되는 데에 특징이 있다.

그 둘째는 개개의 음악작품이 지닌 형태 내지 형식구조이다. 이를 악식(樂式)이라 하며 그 이론이 악식론, 또는 음악형식학이다. 음악형식은 많은 구성요소의 질서 있는 결합 ·배열로 해서 성립되는데, 일반적으로 의미통일체의 최소단위를 동기(動機:모티프)라고 한다. 개개의 음의 소리가 언어에서의 음절(音節)이라고 한다면 동기는 단어에 해당한다. 또 동기의 발전 병렬(竝列)로써 악구(樂句:프레이즈)가 생기며, 악구가 모여서 어떤 의미형상(意味形象)을 만들면 언어의 글에 해당하는 악절(樂節)이 성립된다. 고전파음악의 경우, 악절은 일반적으로 전악절과 후악절로 이루어지는데, 양자의 관계에는 원리적으로 세 개의 가능성이 있다. 즉 순수한 반복(a~a), 변화한 반복(a~a'), 대비(對比:a∼b)가 그것이다.

이들은 음악형식의 기본적인 원리로 이것이 복잡하게 조화 ·결합되어 예술음악이 성립된다. 예를 들면 변주곡형식은 ‘변화한 반복’이며, 소나타형식이나 론도형식은 반복과 대비를 다른 형식으로 결합한 것으로 음악형식은 궁극적으로는 ‘통일과 다양’이라는 원리의 여러 표현방법으로 환원된다. 또한 성악곡, 특히 중세 ·르네상스의 성악곡은 가사의 내용에 의존하는 면이 많다. 기본적인 원리는 개개의 형식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시대 ·민족 ·개인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구체적인 작품의 형식은 각 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형식은 악종(樂種)과 혼동되기 쉽다. 예를 들면 교향곡이나 피아노 소나타는 악종(악곡의 타입)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형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소나타형식이나 리트형식은 많은 악종에 공통되어 있으나 악종은 반드시 동일형식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든에 의해서 확립된 고전교향곡과 같이 한정된 경우 등에는 어느 정도 공통적인 형식을 인정할 수 있다.

IV. 종류

음악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음악이 오늘날보다 넓게 해석되고 있던 시대에는 고대 아리스토쿠세노스의 ‘이론적 음악’과 ‘실천적 음악’, 중세 보에티우스의 ‘우주 ·천체의 조화’ ‘인간에 있어서의 육체와 혼의 조화’ ‘현실의 음악’이 있고, 15세기 말에 시작되는 ‘이론적 음악(음악의 학문적 연구)’ ‘창작적 음악(작곡)’, ‘실천적 음악(연주)’의 분류는 18세기에도 유효하였다.

근대적 의미에서 예술로서의 음악분류는 사회적 기능이나 용도에 따른다면 독일에서 말하는 ‘실용음악’과 ‘자유음악’으로 크게 나뉜다. 실용음악에는 교회음악 ·식탁음악 ·교육음악 등이 포함되고, 순수하고 자율적인 예술적 향수(享受)를 목적으로 하는 근대의 많은 음악은 ‘자유음악’에 속한다. 또한 세속음악과 종교음악, 예술음악과 민속음악, 순음악(純音樂)과 대중음악 내지 경음악, 클래식음악(serious music)과 포퓰러음악 등의 구별이 중복, 또는 모순이 수반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 또 장소에 따라 야외음악 ·실내음악 ·극장음악 ·가정음악, 또 다른 예술장르와의 결합에 따라서 영화음악 ·무용음악 ·극음악 등으로 분류되고 레코드음악 ·방송음악 등은 전달수단에 의한 분류이다.

다시 표현매체(表現媒體)에 따라 성악과 기악으로 대별되며 이것도 각기 편성이나 악기에 따라 분류된다. 그러나 현대음악에 있어 목소리가 일종의 악기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이러한 구별이 곤란하게 된다. 이 밖에 표현내용이나 표현대상에서 보면 음악이 그 자체만으로도 자율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절대음악과, 음악 이외의 풍경 ·이야기 ·관념 등과 결합되는 비절대음악(描寫音樂 ·標題音樂 등)으로 구별되는데 양자의 구별은 명확하지 않다.

V. 기원

음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신화 전설에서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음악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이나 민족에 따른 음악관의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추구하려는 시도는 18세기 이래 계속되어 왔으나 항상 큰 장애에 부딪쳤다.

예를 들면 유아(幼兒)의 가창(歌唱)에서 음악의 원초적 형태를 생각하는 심리학적인 연구는, 유아가 환경에 지배된다고 하는 사실에 의해서 한계가 있고, 고고학적 연구도 유물의 연대나 수(數)에 한계가 있는 이상 음악의 기원에 이르기에는 어렵다.

오늘날 가장 유력한 것은 민족음악학(비교음악학)에 의해 현존하는 자연민족의 음악을 관찰하는 방법인데 여기에도 제약이 있다. 음악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음악의 근원에도 관계되는 문제이지만 사변적(思辨的) 추측을 면하기는 어렵다.

음악의 기원에 대한 주요학설은 다음과 같다.

성적 충동설(性的衝動說)로 다윈은 주로 새의 관찰에서 출발하여 이성을 끌어들이려는 성적 충동의 발성을 그 기원이라 하였으나 오늘날은 인정하기 어렵다.

언어억양설(言語抑揚說)로 18세기의 루소, 헤르더 이래 주장되어 스펜서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언어의 자연스런 억양에 음악선율의 기원을 구하려는 학설이다. 그러나 언어선율을 지니지 않는 자연민족도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감정표출설(感情表出說)로 흥분된 감정에 의해서 나오는 음성에 기원을 구하는 학설로 언어억양설의 스펜서나 분트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언어억양설과 감정표출설은 언어선율 내지 감정적 발성과 음악선율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간과(看過)한 데 결점이 있다. 음악의 선율은 높이를 바꾸어도 선율의 의미가 본질적으로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이고(移高) 가능성을 특징으로 함에 대해서 부르짖는 소리 등은 높이를 바꾸면 일반적으로 본래의 뜻을 잃는다.

집단노동설로 바라셰크, 뷔히너는 집단노동에서 여럿이 힘을 합쳐야 할 때에 지르는 “이영차 이영차” 등의 리듬현상에 기원을 구하였다. 그러나 인간사회에 있어 집단노동의 발생은 아주 오래된 것이 아니어서 이 학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밖에 음악의 마술적 기능에 입각하는 마술설, 신호로서의 음의 역할에서 발상(發想)한 신호설 등이 있으나 모두 추측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음악의 주요한 요소인 선율과 리듬의 어느 것을 원초적인 것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선율기원설과 리듬기원설이 대립되는데 이 또한 실증적으로 해명되지 않고 있다.

VI. 역할

음악은 처음부터 자율적인 예술로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원시시대에는 주술(呪術) ·마술, 다시 노동과도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연결은 어느 시대에나 여러 형태로 변화하면서 존속되었고 종교와의 관계는 특히 깊어 전례(典禮)를 장식하는 일뿐만 아니라 기원(祈願)행위 자체일 수도 있다. 음악은 또한 고대 그리스사상에서 상징되는 것과 같이 인간형성과도 밀접하게 맺어져 윤리적인 교화(敎化)의 힘이 부여되어 있으며, 다시 감정이나 정조(情操)의 육성과도 관계되어 있다. 또한 관혼상제(冠婚喪祭)의 행사에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행사를 장식하는 실제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져 연주되는 일도 많다.

이와 같은 의미로는 사교음악이라 불리는 음악이나 교회의 전례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극장에서 연주되는 오페라 등도 그와 같은 사교적인 음악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작곡 ·연주 ·감상이라고 하는 음악의 과정은 예술음악에서는 명확하게 구별해서 행하여지는 경우가 많으나 원시시대나 미개인종(未開人種)의 음악, 또는 민속음악 등에서는 일체화되어 있어 구분하기 어렵다. 즉흥연주의 형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작곡과 연주는 원래 밀접한 관계에 있으나 악보(樂譜)의 발생 ·발달이 작곡가로부터의 연주가의 분리를 촉진하고, 연주는 독자적인 재현예술 ·추창조(追創造)로서의 영역을 확립하여 갔다. 한편 듣는 쪽의 ‘감상’도 단순히 수동적인 데 머무르지 않고, 작곡가나 연주가의 의도나 기법을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점에서 적극적 ·능동적인 행위인 것이며 그러한 의미로는 창조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평’에의 길도 이로 해서 전개된다.

이와 같은 작곡에서 감상에 이르는 음악의 프로세스는 20세기에 이르러 급속하게 발달된 전기음향학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레코드의 발명에 의해서 음향의 보존, 재생의 가능성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발달, 테이프 녹음기술의 진보 등은 음악 실천형태의 근본적인 변혁까지 실현시키고 있다. 또 전기기술을 응용한 전달수단에 의해서 음악을 애호하는 층은 더욱 증대하고 있어, 종래 연주회장에서의 연주와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음악실천에서의 작곡가 ·연주가와 감상자의 접촉에는 달라진 존재방식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전기음향학의 발달은 신기한 음소재(音素材)를 제공하여 음악창조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른바 악음(樂音) 외에 전기음향학적 수단에 의해서 다종다양한 음향이 생겨나 구상음악이나 전자음악 등에 필요 불가결한 소재가 되었다.

VII. 서양

1. 고대음악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에서 이미 상당히 고도로 발달한 음악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그림이나 조각 ·기록 ·전승(傳承) ·악기 등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단지 음악작품 그 자체는 한 곡도 남아 있지 않아 그 음악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추정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대 유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성서에도 많은 기록이 있어 유대교의 제사와 음악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구약성서의 《시편(詩篇)》도 성가의 가사(歌詞)로서 본래는 일정한 선율에 따라서 노래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유대교도들 사이에는 각기 독자적인 시편창법(詩篇唱法) ·성서낭창법(聖書朗唱法) ·성가 등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고대적인 요소를 남기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어 있다. 또한 그와 그리스도교 성가와의 관련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음악은 사회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찬가 ·무도가 ·결혼가 ·조가(弔歌) 등 여러 종류의 가곡이 쓰여졌다. 호메로스, 사포, 아나크레온 등의 시(詩)도 본래는 낭창을 위한 가사였으며,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의 고대극도 무대 출연자나 코러스(chorus)에 의한 낭창, 기악연주자에 의한 반주 등에 의해서 연주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17세기 초 근대 오페라의 탄생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또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등은 각기 음악의 본질 ·윤리성 ·물리성에 대해 논하여 음조직 ·선법(旋法) ·리듬 등에 관한 그리스의 독특한 음악이론을 확립해 그 후의 유럽 음악이론의 발전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끼쳤다.

2. 중세음악

중세 유럽의 음악사는 그리스도교의 전례(典禮)에 연결되었던 성가의 성립에서 비롯된다. 초기 그리스도교성가는 기본적으로는 고대 유대교성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거기에 여러 지방적 요소가 가해져 여러 동방교회성가 및 서방교회성가가 성립되었다.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가 서유럽세계에 세력을 뻗침과 더불어 로마성가가 큰 발전을 보여 그 후의 유럽음악의 기조(基調)가 되었다. 이 성가의 성립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이룩한 업적이 컸다고 전하여 그레고리오성가라고도 불리며, 오늘날에도 로마교회의 가장 정통적인 전례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세속음악 분야에서도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프랑스의 트루바두르 ·트루베르, 독일의 등의 음유시인(吟遊詩人)에 의한 속어(俗語)의 기사가곡(騎士歌曲)이 번성하였다. 이들 음악은 그레고리오성가를 포함해서 원칙적으로는 교회선법(敎會旋法)에 의한 단성부 음악이었으나, 9세기경부터 다성부의 음악도 나타나게 되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다성음악의 실례는 9세기경의 음악이론서 《무시카엔킬리아디스》에 기록되어 있는 단순한 형태의 오르가눔이나, 실제로는 더욱 복잡한 형태의 것이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유럽의 다성음악이 이 이론서에 의해서 창시된 것은 결코 아니고, 오히려 그 이전부터 다성음악은 민속적 ·즉흥적인 형태로 연주되었을 것이다. 초기 다성음악의 자료는 극히 적고 기보(記譜)도 해독(解讀)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12세기에 이르면 프랑스의 성마르시알 수도원이나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중심으로 발전을 이루고 특히 12세기 말에서 13세기에 걸쳐서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레오니누스 ·페로티누스 등의 2성(聲) 내지 4성의 오르가눔이 나타났다. 또한 클라우술라 ·모테트 ·콘둑투스 등의 악곡도 나타나 중세 유럽음악의 정점(頂點)이라고도 할 발전을 보였다(노트르담악파).

14세기에 들자 신생(新生)에의 시대경향을 반영해 사랑 ·자연미 등을 노래한 세속작품의 수가 증대하고 2박자가 도입되었으며 리듬도 다양해져 아르스 노바(신예술)의 음악이 이루어졌다. 특히 프랑스의 기욤 드 마쇼(1330경∼77경)의 음악에서는 13세기 아르스 안티콰(고예술) 음악의 세속화와 새로운 표현에의 지향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이탈리아의 자코포 다 보로냐(14세기 중반), F.란디니(1325∼97) 등의 세속작품에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고, 영국에서도 3도 ·5도 등을 중용하는 독특한 다성음악 기법에다 종래에는 없던 참신함을 보였다. 그리고 15세기 초의 J.던스터블, L.파우어 등의 영국음악은 그 후의 대륙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3. 르네상스음악

르네상스음악은 15세기 초에서 중반에 걸쳐 부르고뉴공국(公國)의 속령인 플랑드르 출신의 음악가들이 중세 말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의 요소를 종합해서 새로이 꾸며 형성한 국제적인 음악이다. 그 가운데 특히 뒤페의 활약은 괄목할 만하며 그에 의해 음악의 르네상스가 비롯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뒤페 이후는 다시 플랑드르 출신의 음악가 J.오케겜, J.오브레히트, H.이자크 등이 그를 이어 전유럽의 궁정 ·대성당에서 활동하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조스캥 데 푸레의 음악작품은 르네상스음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피엘 드 라 류, A.빌라르트, 필립 데 몬테, 라소 등이 16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배출되어 플랑드르악파의 성악양식을 바탕으로 한 대위기법(對位技法)을 확립, 이는 국제적인 음악어법으로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다른 나라에서도 플랑드르의 기법을 기조(基調)로 해서 각기 민족적인 경향을 반영한 음악을 발전시켜 나갔고, 이탈리아에서는 C.페스타, 루차스키, 마렌치오, 제수알도, 몬테베르디 등의 세속적인 마드리갈과 팔레스트리나의 교회음악을 낳기에 이르렀다. 또 상업도시 베네치아도 그 기풍을 반영한 색채적인 교회음악을 발전시켜 가브리엘리 등의 작품은 다음 대의 바로크음악의 성립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의 C.잔캥, 세르미시 등의 다성샹송, 에스파냐의 모랄레스, 빅토리아 등의 교회음악, 밀란, 카베손 등의 기악음악, 영국의 T.탤리스, W.버드, T.몰리, O.기번스 등의 교회음악과 마드리갈 등도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에 걸친 르네상스음악의 대표적인 악곡들이다. 독일도 16세기에 들어서자 플랑드르, 그 후반에는 이탈리아의 영향 아래 향상을 지속하여, 특히 악기제작과 기악음악면에서 독자적인 면을 개척하여 그 후에 오는 독일음악의 황금시대를 다졌다.

또 16세기 전반에 시작된 종교개혁운동에 대응해서 새로운 종교이념에 의한 종교음악이 성립되어 특히 독일 루터파의 코랄, 프랑스 칼뱅파의 시편가, 영국교회의 성가 등은 그 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다시 이 세기에는 악보 인쇄술이 발명 ·보급되고 또한 많은 음악이론서, 계몽적인 음악입문서가 간행되어 폭넓은 음악보급에 도움이 되었다.

4. 바로크음악

바로크음악은 16세기의 르네상스음악에 이어 17~18세기 전반에 전개되었다. 이 음악은 원칙적으로 통주저음(通奏低音:書法)에 바탕을 두고 셈[强]과 여림[弱], 합주와 독주, 명(明)과 암(暗)이라는 두 극(極)의 대비효과로써 심리적으로 감동과 극감(劇感)을 이끌어내려 한 것으로, 이 시대 미술작품에서의 바로크양식에 대응한다.

바로크음악은 주로 극음악과 기악음악 분야에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유럽에서 발전하였는데 극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오페라이다. 극과 음악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그 이전부터 이루어졌으나 16세기 말의 피렌체의 G.카치니, J.페리 등이 당시의 인문주의 이념에 입각, 고대 그리스극(劇)의 재흥을 꾀하여 서창풍(敍唱風)의 모노디양식을 창시해서 근대 오페라의 방향을 잡았고, 그 후 몬테베르디의 작품은 이를 결정적인 것으로 하였다. 1637년에는 베네치아에 공개 오페라극장이 개설되어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파급되었다. A.체스티, A.스트라델라, A.스카를라티, 18세기의 페르골레시, 요멜리 등의 공헌에 힘입어 초기의 모노디양식은 근대 오페라형태로 변화되어 갔다. 또한 오페라의 깊은 영향을 받고 종교적인 제재(題材)에 의한 극음악 ·오라토리오 ·수난곡(受難曲:패션) 등도 작곡되어 G.카리시미 등의 작품을 낳았다. 극음악의 이념을 실내악적인 방향으로 추구한 칸타타에도 볼 만한 작품이 적지 않다.

한편 기악음악의 분야에서도 이탈리아의 주도권이 두드러졌다. 오르간음악의 프레스코발디,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기악합주곡분야의 비탈리, 토렐리, 코렐리, 비발디, 독주크라비아에서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등의 작품은 종래의 성악양식에 의한 서법(書法)을 완전히 청산하고 기악 독자적인 이념을 추구하여 토카타 ·푸가 ·소나타 콘체르트 등의 기악형식을 확립하였고, 또한 장 ·단조에 의한 기능화성법의 바탕을 이루었다.

17~18세기의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들은 전유럽의 악단에서 활약하여 이탈리아음악이 곧바로 국제음악으로 통용되었는데, 프랑스 ·영국 ·독일 등도 각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음악을 전개하여 나갔다. 프랑스의 륄리, 캉프라, 쿠프랭, 라모 등, 영국의 J.블로, H.퍼셀 등의 음악작품이 그것이다. 독일에서는 특히 프로테스탄트 작곡가의 활약이 눈에 띄며 종교음악 ·오르간음악의 장르에서 본고장의 이탈리아를 능가하는 발전을 보여 17세기의 슈츠, 샤이트, 샤인, D.북스테후데, 파헬벨 등의 작품이 나왔다. 크라비아 ·기악합주곡의 장르에서도 걸작이 적지 않아 특히 텔레만의 이름은 높았다.

이와 같이 바로크기는 근대음악의 탄생시대이고 성장시대였는데, 이 시기의 최후에 나타나 여러 경향의 음악을 종합해, 기념비적인 음악작품을 창조한 사람이 모두 1685년생인 헨델과 J.S.바흐의 두 사람이다. 또 기악음악의 발전에 때맞추어 중세 이래의 여러 악기가 개량되어 새로운 종류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바이올린 ·오르간 ·쳄발로 등이 연주되었고 18세기 초에는 피아노도 발명되었다.

5. 근대음악

유럽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과 보조를 맞추어 18세기 중반부터 서서히 근대음악이 형성되어 가기 시작했다. 전고전파로 불리는 독일의 크라운형제, C.P.E.바흐 및 J.C.바흐, J.슈타미츠, 오스트리아의 몬, 이탈리아의 산 마르티니, 벨기에의 고세크, 클레토리 등의 기악음악, 그리고 독일의 글루크, 이탈리아의 파이시엘로와 치마로사 등의 오페라작품 등은 각기 독자적인 방법으로 종래의 바로크음악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였다.

이들의 음악적 시도에 이어서 근대음악의 기초를 확립한 것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빈을 중심으로 활약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3인, 이른바 빈고전파로 불리는 음악가들이다.

그들의 음악은 바로크음악의 통주저음서법(通奏低音書法)을 배제하고 장 ·단조에 입각한 호모포니서법을 중핵(中核)으로 한 것으로 심포니(교향곡), 콘체르트(협주곡), 소나타(奏鳴曲) 등 소나타형식에 의한 악장(樂章)을 중심으로 4, 또는 3 악장으로 구성된 순 기악양식의 곡종(曲種)을 즐겨 썼다. 하이든의 교향곡이나 현악사중주곡에 있어 형식에의 착실한 탐구, 모차르트의 각종 기악작품에서의 자유롭고 다양한 음악적 전개, 또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에서 보이는 강렬한 인간적인 표현의욕 등은 유럽 음악사상 특히 주목되는 것이며, 20세기에 들어서도 더욱 넓은 공감(共感)을 갖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이들의 성악곡 가운데도 중요한 작품이 있으며, 특히 하이든의 종교음악,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종교음악, 베토벤의 《장엄미사곡》, 다시 《제9교향곡》에서의 성악의 도입 시도 등은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세기 초인 베토벤의 만년(1827년 사망)부터 음악은 낭만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고전파의 절대음악형식도 이에 이르러서는 작곡가의 주관적인 시정표출(詩情表出)의 매체로써 이용되게 되고, 또 가곡이나 소(小)피아노곡이 애호를 받게 되었다. 다시 낭만적인 심정은 향토적인 것, 민족적인 것의 재인식으로 발전하여 베버의 오페라 《마탄(魔彈)의 사수(射手)》와 같은 작품을 낳게 하였다.

그를 이은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 슈만 등 낭만파로 불리는 음악가들의 작품에는 방향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경향은 공통되어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한편 베를리오즈, 리스트 등의 대편성 관현악에 의한 표제음악(標題音樂), 바그너의 악극 등은 전설 ·희곡 ·사상 ·인생의 현실과 사랑의 모든 것을 음악 안에 포괄하려 하여 음악세계의 무한한 확대를 시도하였다.

특히 바그너가 당시의 유럽 문화계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며, 그 후에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브루크너, 말러, R.슈트라우스 등의 작품방향을 규정하였다. 이와 같은 경향에 대해서 브람스는 신고전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풍으로 절대기악양식의 회복을 꾀하였고, 또 요한 슈트라우스 등의 통속적인 오페레타도 갈채를 받았다.

민족적인 것을 재인식한 낭만파의 음악은 독일 이외의 나라에서도 큰 반응을 불러일으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이른바 국민음악파의 대두를 촉진시켰다. 러시아의 글린카, 그를 잇는 러시아 5인조에 속하는 보로딘,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다시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등도 넓은 의미의 국민음악파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스메타나와 보헤미아의 드보르자크, 노르웨이의 그리그,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에스파냐의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팔랴 등에서도 작풍에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국민음악파의 두드러진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9세기에도 순 기악음악에는 두드러진 것이 없고 오페라가 널리 애호되고 있었다.

19세기 초에 로시니, 그에 이어 도니체티, 벨리니 등은 선율미(旋律美)를 중심으로 한 많은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이어 바그너와 같은 해(1813)에 태어난 베르디는 그 선율미에다 음악과 극의 합일을 꾀하여 이탈리아오페라를 한층 더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베르디의 뒤에는 베리스모(사실파) 오페라로 불리는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푸치니 등의 오페라가 이어졌다. 또 프랑스에서는 구노, 비제 등의 오페라, 프랑크, 생상스, 댕디 등의 기악작품에 프랑스 특유의 새로운 음악적 표현이 나타나고 특히 포레의 작품에 이르러 결정적인 것이 되어 다음 대의 드뷔시 등에 계승되게 되었다.

6. 현대음악

20세기의 음악은 다른 예술 ·문화 ·과학 ·사상 등과 같이 다양한 변화와 혼돈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미 바그너의 음악에서 과도한 반음(半音)의 사용으로 종래의 기능화성법은 하나의 붕괴점에 이르렀는데 다시 드뷔시는 직관적인 인상을 음형상화(音形象化)하는 시도로서 화성을 색채로 쓰고, 또한 중세의 선법이나 이국적인 5음음계, 반음이 없는 전음음계(全音音階) 등을 사용하여 감각적인 세계를 전개하여 갔다. 이 인상파(인상파음악)의 방향은 다시 라벨 등에 계승되었다.

또 러시아의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발레곡 《불새[火鳥]》 《봄의 제전》 등은 포비슴(야수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원시적인 리듬과 색채감으로 격렬한 충동을 이끌어냈고, 또한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등의 12음음악에 의해 조성(調性)은 완전히 파괴되어 그에 대신하는 음렬(音列)에 새로운 질서가 요구되었다.

다시 코다이, 바르토크 등에 의한 민족주의적 경향,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미요, 오네게르, 플랑크 등의 프랑스 6인조 등 신고전파의 경향도 주목된다. 또 아메리카 흑인의 음악에서 비롯된 재즈는 그 신선한 리듬으로 통속음악으로서뿐만 아니라 예술음악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녔다.

제2차 세계대전 후는 구상음악, 전자음악, 다시 미국의 존 케이지에서 비롯되는 우연성의 음악 등 종래의 음악개념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전위적인 시도도 행하여져 혼돈은 한층 깊어졌다.

이와 같은 종류의 창작은 거의 일반청중이 관여하지 않은 장소에서 이루어져, 청중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18∼19세기의 음악에 열중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이와 같은 혼돈이 혼돈으로 끝이 날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이제까지 있어온 것과 같은 하나의 질서와 체계가 생겨날 것인가는 아직도 불명하며, 장래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VIII. 동양

동양에서는 문화의 형성에도 지역화 ·연대화를 달리하는 중국문화 ·인도문화 ·오리엔트문화의 3대 문화계가 있어 유럽문화와 대립되고 있다. 음악도 이에 따라 중국음악계(중국 ·한국 ·일본 ·몽골 ·베트남 ·라오스 ·타이 ·캄보디아 등), 인도음악계(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아라비아음악계(아랍諸國 ·이란 ·터키 ·아프가니스탄 ·북아프리카 이슬람敎圈 ·발칸諸國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3대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음악은 모두 음률 ·음계 ·선법 ·미적(美的) 평가 등에서 모든 것을 달리하고 있으며, 동양음악으로서의 일관성은 없다. 또 동양 여러 민족들은 이 3대 계통의 하나를 바로 전승하거나 또는 둘 이상의 계통을 잘 소화해서 각기 민족음악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음악에 있어서도 그들의 고유음악에 인도 ·페르시아계의 음악이 혼교(混交)해서 수 ·당시대의 중국음악 최성기를 이루었다. 인도네시아도 민족적 원시음악에 인도음악이 힌두교 ·불교와 함께 도입되고, 또 여기에 중세 이슬람교와 함께 이슬람의 악기가 들어온 데다 다시 근세에 이르러서는 에스파냐 ·네덜란드 등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음악이 성립된 것이다.

IX. 한국음악

한국에서는 상고시대로부터 내려온 고유한 향악(鄕樂)에 중국에서 당악(唐樂)이 건너와 함께 어울려 내려왔고, 고려시대에는 다시 송악(宋樂)이 건너와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116년(예종 11)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옴으로써 한국의 음악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고,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全期)를 통해 아악은 궁중의 정악(正樂)으로, 향악 등의 재래음악은 속악(俗樂)으로 그 나름대로 각각 틀을 잡아왔다. 특히 조선의 세종 이후 아악은 다른 동양음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양식으로 국악화의 길을 꾸준히 걸었다.

그러나 1880년대 이후 서서히 서양음악이 스며들고, 거기에 1910년 이후 일제가 들어와서 제례음악(祭禮音樂) 등을 폐지함에 따라 아악은 위축일로의 길을 걸어왔으나, 동양 최고의 악으로 현재 한국에만 남아 있고 당악 ·속악도 아악과 더불어 국악이란 이름으로 보존 전승되어오고 있다. 이들 국악은 서양음악과 어울려 내용은 국악을 주제로 하며, 형식은 서양음악을 빌어 작곡 ·연주되기도 한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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