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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8 (수) 13:59
분 류 사전2
ㆍ조회: 1106      
[국가] 터키 (한메)
터기 Republic of Turkey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서아시아의 공화국.

정식명칭은 투르키예공화국(TZrkiye Cumhuriyeti). 면적 78만 576㎢, 인구 6353만(1997). 소아시아반도로 이루어진 아시아 쪽 영역은 아나톨리아, 유럽 쪽 영역은 트라키아로 불리며 면적의 97%, 인구의 90%가 아나톨리아에 속한다. 아나톨리아의 동부·남동부는 러시아·이란·이라크·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트라키아의 서쪽 끝은 불가리아·그리스와 국경을 접한다. 수도는 앙카라.

[자연]

<지형>

지질구조상 대부분 지역이 알프스·히말라야조산대에 속하고 동서방향으로 산맥들이 몇 겹으로 뻗어 있어 전체적으로 산이 많다. 아나톨리아에는 북부의 흑해연안을 따라 폰투스산맥과 이스펜디야르산맥, 남부의 지중해연안을 따라 토러스산맥이 가로놓였으며, 토러스산맥의 동쪽 연장에 있는 동토러스산맥과 안티토러스산맥이 내륙부로 뻗어 있다. 이들 해발고도 2000~3000m급의 주요 산맥 사이에는 산맥이 뻗어 있는 심한 기복의 아나톨리아고원이 있는데 이것은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아르메니아고원으로 이어진다. 또한 아르메니아고원에는 이 나라 최고봉인 아라라트화산(5165m)이 있다.

서부의 에게해연안에 접한 지역에는 해안선과 직각의 단층이 동서방향으로 뻗어 있고, 지루(地壘)산지와 지구(地溝)평야가 나란히 펼쳐져 있다. 아나톨리아고원을 돌아 흑해로 흘러가는 구즐 울마크강과 사카리야강, 남쪽으로 흘러 지중해로 가는 세이한강 등이 있고, 아르메니아고원 및 안티토러스산맥에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발원하여 이라크·시리아로 흐른다. 에게해 연안의 평야에는 메안다[蛇行]의 어원이 된 뷔유크(크다는 뜻)·멘델레스강 등이 흐른다. 내륙부에는 반호수와 투즈호수 등의 함수호(鹹水湖)가 있다.

유럽 쪽의 트라키아에는 북쪽에 우스트란쟈산맥, 남쪽에 갈로스산지가 있으며 모두 해발고도 1000m 정도이다. 전반적으로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그리스와의 국경을 흐르는 메리치강 지류인 엘게네강이 윤택하게 해준다. 아나톨리아와 트라키아의 경계는 함몰에 의해 생긴 마르마라해와 그 북동쪽 끝의 보스포러스해협 및 남서쪽 끝의 다다넬스해협이다. 이들 해협은 모두 길고 가느다란 침식곡(浸蝕谷)이 가라앉아 생긴 것으로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연락수로이다.

<기후>

터키의 기후는 아나톨리아고원 중앙부와 아르메니아고원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온대기후이다. 서부 에게해 연안에서 남부 지중해 연안까지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중위도 고압대가 북상하여 고온·건조하지만 겨울은 지중해의 이동성 저기압 영향으로 온난다우하여 연강수량 500~1500㎜, 지역에 따라서는 2000㎜에 이른다. 식생은 올리브 같은 상록경엽(硬葉)수림이며, 지중해 연안 특유의 마키(maquis)라는 숲이 많다.

북쪽 흑해 연안지역은 1년 내내 흑해의 습기를 받아 연강수량 1000~2000㎜ 또는 그 이상의 비가 오는 습윤기후로서 광엽수림·침엽수림이 무성하다. 아르메니아고원은 겨울에는 -40℃로 기온이 내려가는 냉대습윤기후이다. 아나톨리아고원 내륙부는 폰투스산맥·토러스산맥에 의해 바다의 영향이 차단되며 내륙성이 강한 이란·이라크·시리아 국경지대의 저지대와 함께 연강수량이 500㎜를 밑도는 건조기후지역이며 투즈호 주변 등은 매우 건조하여 반사막경관을 볼 수 있다.

[역사]

<고대·중세>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점에 있어 11세기 터키민족이 들어오기 전부터 여러 민족이 거주·교류하며 문화접촉이 이루어졌고 많은 국가가 흥망하였다. 아나톨리아 중앙부 챠타르휴유크에는 BC 6000년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나톨리아 원주민 농경취락유적이 있다.

동기(銅器)를 수반한 트로이 제 1 기 문명은 BC 3500년경에 번영하였고 BC 2000년경에는 청동기문화가 발달하였으며 BC 1650년경에는 인도―유럽어족인 히타이트왕국이 원주민을 정복하고 세계 최초의 철기문화를 기초로 번영하였다.

BC 1200년 트로이전쟁에서 트로이가 그리스에게 멸망한 무렵 히타이트왕국도 프라키아에서 들어온 트리기아인에게 멸망하였다. BC 11~BC 8세기에는 그리스의 식민정책으로 이오니아인·도리스인이 에게해·흑해 연안지역에 들어와 밀레토스·크니도스·시노프 등의 도시가 발달하였다. BC 730년 내륙부에 리디아왕국이 생겼으나 BC 546년 아케메네스왕조인 페르시아에 멸망되고, 그리스의 식민도시를 포함한 소아시아 전지역이 페르시아 지배 아래 들어갔다.

BC 334~BC 333년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정복당한 소아시아는 대왕이 죽은 뒤 페르가몬·카파도키아·셀레우코스 등의 왕국이 난립하였으며 북동부에는 폰토스왕국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BC 2세기 말~BC 1세기 초에 로마에 정복당해 300년 동안 지배를 받았으며, 395년 로마제국이 분열할 때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영토가 되어 콘스탄티노플(옛 비잔티움, 지금의 이스탄불)이 수도가 되었다.

동로마제국은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황제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7세기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이슬람(사라센)제국에 잇따라 위협을 받았다. 11세기에는 중앙아시아 셀주크 투르크족이 소아시아를 침입하여 동로마제국을 제압하고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을 지배하였으나, 몽골족 침입으로 14세기 초에 멸망하였다.

<오스만제국 시대>

아나톨리아 서부에서 일어난오스만 투르크족은 14세기 소아시아 외에 발칸반도까지 영토를 확대하였으며,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여 동로마제국을 멸망시켰다. 그 뒤 오스만제국은 소아시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흑해 연안의 트레비종드왕국을 누르고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개칭하여 수도로 삼아 서아시아·북아프리카·동유럽에 걸친 대제국으로 발전하였으나, 16세기 술레이만 대제 시대에 전성기를 이룬 뒤, 19세기에는 그리스·이집트의 독립을 허용하는 등 차츰 쇠퇴하였다. 제 1 차세계대전 때는 독일·오스트리아에 가담하여 패배하였다. 연합국은 세이블조약으로 터키의 분할을 꾀하고, 그리스는 잃은 땅을 되찾으려 아나톨리아 서쪽에 침입하였다. 그러나 1922년 M.K.아타튀르크의 외교와 전략으로 이들을 타파하고, 23년 로잔조약에 의해 현재의 영토를 확보하였다.

<공화국 발족 이후>

1923년 앙카라를 수도로 정하고 터키공화국이 발족되었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는 정교분리, 로마자 채용, 태양력 채용 등 여러 방면으로 근대화정책을 추진하였다. 제 2 차 세계대전 중에는 중립을 지키다가 그 말기에 독일·일본에 선전포고하였으며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등, 반공·친서방노선을 취하였다. 1960년 이후군부 쿠데타, 테러가 자주 일어나는 등 정치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1980년 9월 에브렌 군참모총장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가 일어나 국가안보평의회(NSC)를 설치, 계엄령 아래 치안이 회복되었다.

[정치·외교·군사]

<정치>

정체(政體)는 공화국이며 국가원수는 대통령(임기 7년)으로 연임이 금지된다. 의회는 과거의 상·하 양원제 대신 단원제(정원수 450, 임기 5년)이다. 83년 11월 총선거 결과, 조국당이 정원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압승, 군인 출신이 아닌 T.외자르당수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전국은 67개 주(州;il)로 나누어져 그 서열은 아다나(Adana)부터 시작하여 종굴다크(Zonguldak)로 끝나는 알파벳 순서에 따른다. 주 아래는 군(郡;ilFe)이며 앙카라·이스탄불·이즈미르에는 대도시권 지역이 설정되어 있다. 주지사는 정부가 임명한다.

<외교>

터키의 외교는 유럽회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NATO 가입 등 친서방정책으로 일관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준회원국이다. 미국과는 방위경제협력협정을 체결하여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다액의 군사원조를 받고 있다. EU 여러 나라 가운데 몇십만 근로자를 받아 들이고 있는 독일과 관계가 긴밀하다. 인접한 강대국 옛 소련과는 정치·군사면에서 대립하였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경제·과학기술면으로 협력관계가 강화되어 1984년 경제·통상·과학기술협력협정과 무역협정이 조인되었으며 송유관에 의한 천연가스공급계획을 합의하였다.

불가리아와는 그 나라에 사는 수십만 터키계 주민의 대우 등을 둘러싸고 긴장관계에 있다. 한편 이란·이라크전쟁에서는 중립을 지켜 쌍방과 양호한 경제관계를 유지하였으나 걸프전쟁 때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고 UN안보리(安保理)의 이라크 제재결의에 동참, 이라크의 터키 경유 송유관을 폐쇄하고, 다국적군에게 국내기지 사용을 허가하여 서방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리스와 1974년의 키프로스분쟁·에게해 영해문제·해저유전문제 등을 둘러싸고 험악한 관계에 있었으나 1988년 1월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외자르총리와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총리의 회담으로 화해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군사>

NATO에 속한 터키군은 육·해·공 3군으로 이루어져 병역 18개월의 징병제가 채택되고 있다. 총병력 64만 7400 가운데 육군은 52만 5000, 10개군단으로 편성되어 있고 키프로스섬 북부에 2개사단을 파병하고 있으며 전차·헬리콥터·대전차미사일 등을 장비하고 있다. 해군은 5만 5000이며, 구축함·잠수함 등을 보유하고 있다. 공군은 6만 7400, 팬텀전투기·지대공미사일 등을 장비하고 있다. 그 밖에 경찰군(잔다르마;jandarma) 12만 5000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산업]

<경제>

오스만제국 말기에는 유럽 열강의 경제적 식민지상태였으나 공화국창설과 함께 국가자본주의로 유명한 국가주도의 경제발전계획으로 국영 슈메르은행·에티은행에 의한 기업활동과 외국자본계열기업의 국유화 등을 꾀하였다. 제 2 차세계대전 뒤에는 국영기업을 보완하는 형태로 민간기업이 공존하는 혼합경제체제를 취하였다. 1963년부터 경제개발 5 개년계획을 계속 추진, 공업화를 촉진시켰으나 농업의존적인 경제구조는 여전하여, 주로 제 1 차생산품의 수출에 의지하였다.

1973년 이후 석유수입가격의 폭등으로 외자(外資)부족과 인플레이션이 심각하였으나 1980년 쿠데타 후 선진국의 경제원조와 공업화의 진전으로 경제가 회복·발전하는 추세에 있으며, 외자르정권은 시장개방을 통한 외자도입과 수출진흥에 의한 외화의 수입증가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한편 1992년에는 경제교류의 강화와 흑해주변에서 계속되는 민족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목적으로 터키를 비롯한 러시아 및 동유럽 11개국이 <흑해경제협력기구>를 발족시켰다.

<농·임·어업>

농업이 국내총생산의 20%를 넘고 취업인구의 50%를 차지하여 식량은 거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며, 잉여농산물은 수출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주로 내륙부에서 산출되는 밀·보리·포도·사탕무우·해바라기, 지중해 연안에서 재배되는 목화·올리브·오렌지·레몬·바나나, 에게해 연안의 올리브·담배·포도·무화과, 흑해 연안의 옥수수·헤젤너츠·차(茶)·담배 등이다. 근래에는 지중해 동부 연안에서 콩도 생산되고 내륙 서쪽 지역에서는 의약용으로 양귀비도 재배된다.

국토의 약 12%를 차지하는 목초지에서는 양·염소·소 등의 목축업이 활발하며 특히 앙카라지방에서 나오는 앙고라염소는 유명하다. 아나톨리아 남동부와 토러스산맥에는 유목민이 있으나 도시 근교에서는 근대적 낙농업과 양계업이 영위된다. 삼림자원은 고대·중세부터 장기간에 걸친 남벌과 개간에 따른 파괴로 황폐화되었으나 공화국 창설 후 국유화되고, 아타튀르크의 지도아래 식수사업을 진행한 결과 자원 회복과 함께 소나무·삼나무 등 용재(用材)의 원목반출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제지원료이며 용재로 쓰이는 포플러를 밭작물로 농경지에 심기도 한다. 연안 각지에서는 도미·가다랭이·고등어·정어리·새우 등이 잡힌다.

<자원>

지하자원은 철·석탄·아연·크롬 외에는 매장량이 많지 않지만, 국내자원에 의한 경제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흑해 연안의 종굴다크 탄전과 부근의 철광산지는 카라뷔크 등의 철광업 기반이 되고 있다. 크롬은 유럽을 비롯한 해외시장 수출용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석유는 동부의 바트만 부근에서 산출된다. 화력발전을 지탱해주고 있는 아탄은 매장량 50억t으로 짐작되며, 탄전에서 가까운 곳에 대형 화력발전소건설이 활발하다. 수력자원도 풍부하여 최근에 유프라테스강의 케방댐과 쿠즐 울마크강의 힐판르댐 등이 건설되어 댐식 발전이 본격화 되고 송전시설 정비로 수력전기 의존도를 높여 가고 있다.

<공업·관광>

공화국 창설과 함께 근대공업 육성에 역점을 두어 1930년대에는 카라뷔크제철소를 비롯하여 섬유·제당·시멘트 등의 공장이 여러 곳에 세워졌다. 63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철강·금속제련·화학비료·농업기계·식료품·화학섬유·석유정제·자동차·전기기구 등 많은 업종이 공업화되어 각 지역에 대공장이 세워지고 있다. 국민총생산에서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근래에는 농업을 앞질렸다. 한편 옛 전통을 지닌 도자기·융단·피혁·유리세공 등도 각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다양한 민족과 국가 흥망의 역사로 사적이 많으므로 관광사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히타이트의 수도 유적 보아즈교이(히트우샤유), 프리기아의 수도 유적 골디온, 그리스·로마시대의 도시유적 투르와(트로이)·에페스(에페소스)·베르가마(페르가몬), 헬레니즘시대의 소왕국 코마게네왕조의 분묘가 있는 넴루트다산, 비잔틴시대의 사적이 많은 이스탄불·이즈니크(니케아)·트라부종(트레비종드), 같은 셀주크시대의 콩야·시바스·엘즈룸 및 오스만시대의 이스탄불·부르사·에디르네 등이 관광지로서 유명하다. 자연관광자원으로는 경치가 수려한 아라라트화산, 석회의 결정(結晶)이 계단식모양의 경관을 지닌 팜크칼레, 응회암의 침식지역과 동굴주거유적으로 유명한 교레메(카파드키아) 등이 있다.

<무역>

터키의 수출품은 공업화가 진행된 최근에 섬유제품·직물 등 공업제품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곡물·과일·담배·면화 등 농축산물과 1차 생산품인 크롬 등이 여전히 주류를 이룬다. 수입품은 절반 정도가 원유·석유제품이며, 그 밖에 공업제품·기계류 등이 상위를 차지한다. 주요 수출상대국은 독일·이탈리아 등 EU 여러 나라와 인접한 이라크·이란 등이며, 수입상대국은 독일·미국 및 석유수입에 관련된 이라크·이란·리비아 순이다. 무역수지는 1960년대부터 적자로 그 폭은 73년 오일쇼크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82년부터는 석유가격하락으로 호전되었지만 만성적인 적자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적자는 관광수입, 해외근로자들의 본국 송금 등 무역외 수입으로 어느 정도 보완되고 있다. 1인당 GNP는 1820달러, GNP는 1038억 8800만 달러이다(1991).

<교통>

철도는 오스만제국시대인 1856년부터 독일 등 외국자본으로 부설되었으며 공화국창설 후 모두 국유화되어 터키국영철도가 경영하고 있다. 노선 길이는 서아시아에서 가장 긴 약 1만㎞이며 주요 도시는 철도로 연결되고 있으나 대부분 단선이고 디젤기관차이다. 따라서 속도·운행회수의 한계가 있어 장거리교통기관으로서의 편리함이 결여되고 있다. 앙카라·이스탄불 등 대도시 근교지역은 전철화·복선화되고 통근전동차도 운행되고 있다. 이스탄불 실루케지역(驛)에서 유럽 여러 나라와 연결되는 국제열차가 발착한다.

한편 국도·주도의 포장정비가 진행됨에 따라 도시 사이의 여행은 철도보다 장거리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1973년 완공된 보스포러스해협교는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자동차교통을 한층 용이하게 해준다. 흑해·에게해·지중해에 둘러싸인 터키의 연안에는 이스탄불·이즈미르의 2대항구와 삼순·메르신·이스켄데룬 등의 항만이 있어 해운공사가 주요 항로(航路)를 운영하고 있다. 앙카라·이스탄불·이즈미르·아다나의 국제공항과 주요 도시에 공항이 있으며, 터키항공(THY)이 국제선과 국내선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문화]

<주민>

주민 대부분은 터키인이지만, 아나톨리아 남동부 이란·이라크와의 국경지대에 약 300만명의 쿠르드인이 살며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아랍인·유대인이 여러 곳에 소수 거주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리스인·아르메니아인이 많았으나 그리스인의 대부분은 1974년 키프로스전쟁으로 악화된 터키·그리스관계 때문에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아르메니아인은 제 1 차세계대전중 터키정부의 탄압으로 약 60만명이 죽고 약 100만명은 추방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인의 반터키 테러활동은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쿠르드인도 이란·이라크에 사는 쿠르드인과 연대하여 독립을 요구하며 때로는 군사력을 동원하기도 해서 쿠르드인 문제해결이 터키의 최대 난제이다.

<언어>

언어는 터키어가 공용어이다. 문자는 8세기부터 1928년까지 아라비아문자를 썼으나 그 뒤 아타튀르크의 제안으로 29문자로 이루어진 로마자를 채택하였다. 쿠르드인은 아직도 쿠르드어(페르시아어계)를 관용하지만, 쿠르드지역은 터키식 지명으로 바뀌고 있다. 인구는 제 2 차대전 후 해마다 거의 21∼27‰증가하고 있으며, 연령별 인구 구조도 전형적인 피라미드형을 나타낸다. 농촌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의 인구이동으로 근래에는 도시인구의 증가가 뚜렷하다.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르 등의 대도시에는 시가지에 인접한 구릉 등에 무허가의 강행공사에 의한 급조가옥인 게제콘듀(하룻밤 사이에 세운 집)가 급증하고 있다.

<교육·종교>

취학연령은 7∼12살이며 의무교육은 국민학교 5년까지 이루어진다. 식자률은 76%(1985, 15세 이상)최근의 문맹률은 약 35%로 높은 편이다. 식자율은 65% 정도이다. 각각 3년 과정의 중학교·고등학교와 전국에 22개 국립대학이 있다. 그 가운데 앙카라대학·중동공과대학(앙카라)·이스탄불대학·이스탄불공과대학·에게대학(이즈미르)·아타튀르크대학(엘즈룸) 등은 유명하다. 종교는 터키인 외에 쿠르드인·아랍인을 포함하여 수니파 이슬람교가 주류이다. 아타튀르크의 근대화정책에 입각한 정교분리책으로 이슬람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안식일(금요일)과 모스크에서의 예배·순례·단식 등 종교적 행사는 여전히 실시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터키는 6·25전쟁 때 참전국이다. 현재 남한 단독 수교이며 1957년 3월 수교 6월 주(駐) 터키 한국공관이 설치되었다. 74년 문화협정, 76년 항공협정, 77년 통상진흥 및 경제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이스탄불에 총영사관이 설치되었다. 82년 12월 터키의 에브렌 대통령이 방한(訪韓)하였으며, 92년 6월 주한(駐韓) 터키공관이 설치되었다. 92년 대한 수입 3억 6269만 달러, 대한 수출 3억 893만 달러였다. 1987년 6월 현재 터키에는 교민 19명, 체류자 122명이 거주하고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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