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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7 (화) 11:20
분 류 사전2
ㆍ조회: 637      
[근대] 시안사건 (두산)
시안사건 西安事件(서안사건)

1936년 12월 12일 공산군 토벌을 위하여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 주둔 중인 장쉐량[張學良] 휘하의 구(舊)북동군(만주군)이 난징[南京]에서 독전(督戰)을 위하여 온 장제스[蔣介石]를 감금하고 국공(國共) 내전의 정지와 거국일치에 의한 항일(抗一)을 요구한 사건.

언제 : 1936년 12월 12일
어디서 :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누가 : 장쉐량[張學良] 휘하의 구(舊)북동군(만주군)
무엇을 : 장제스[蔣介石]를 체포하고 국공(國共) 내전의 정지와 거국일치에 의한 항일(抗日) 요구
어떻게 : 장제스 석방

1936년 북동군 총사령관 장쉐량은 서북군 총사령관 양후청[楊虎城]과 산베이[陝北]의 공산군을 포위하였다. 원래 장쉐량은 국민당의 부사령관이었으나 그의 부하 병사들은 내전정지·항일전 등을 지지하였다. 한편 국내를 안정시키고 국외의 사건을 도모한다는 정책을 취하여 항일운동을 억압한 장제스는 스스로 공산군에 대한 작전 독촉을 위하여 장쉐량군이 포진하고 있던 시안으로 들어와서 화칭치[華淸池]에 체류하고 있었다.

마침 시안의 청년들은 12·9 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데모를 하면서 장의 군사행동을 견제하였다. 따라서 장과 양 두 사령관은 민중의 요구에 의하여 12월 12일 장제스를 체포하고 내전의 정지와 항일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였다.

중국공산당은 난징에서 친일파인 허잉친[何應欽]이 패권을 장악하려고 획책한 사실, 난징의 친영국파와 친미국파는 일정한 조건 아래 항일전에 참가할 수 있다는 등의 상황판단에서 평화해결에 나섰는데, 25일 장제스가 석방되어 난징으로 돌아옴으로써 국공 내전의 정지를 보게 되었다. 당시 소련은 시안사건은 일본이 배후에서 조정한 것이라고 그릇된 판단을 내렸으나, 결국 이를 계기로 항일민족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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