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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1 (수)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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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716      
[근대] 코민테른=인터내셔널 (한메)
인터내셔널 The International

국제 노동운동 조직.

자본주의체제를 타파하여 노동자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사회주의사상과 <만국(萬國)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건으로 상징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한다. 역사적으로 보아 대표적인 것은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제2인터내셔널·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등이다.

혁명적인 국제조직의 시도는 일찍이 L.A.블랑키 등이 조직한 계절사(季節社, 1837년 결성)나, 독일·폴란드·이탈리아 등지에서 온 망명자들에 의하여 창설되고 차티스트운동과도 관계가 있던 우애민주주의자협회(友愛民主主義者協會, 1846년 결성)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독일의 망명자와 직인(職人)들은 1836∼38년경 정의자동맹(正義者同盟)을 결성했는데, 이것은 1847년에 런던에서 공산주의자동맹으로 발전하여 제1인터내셔널의 모체가 되었다.

K.마르크스와 F.엥겔스는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으로 《공산당선언》을 집필했는데, 이것은 과학적 사회주의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 문서이고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인터내셔널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뒤에 인터내셔널의 슬로건이 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말도 이 문서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제1인터내셔널]

정식명칭은 <국제노동자협회>이다. 1848∼49년 유럽혁명의 패배는 한때 노동운동을 침체시켰으나, 1858년 경제공황을 계기로 다시 활발해져서 전유럽 규모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 결성되었으며, 이에 수반하여 노동운동을 국제적으로 결합시키려는 움직임도 되살아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864년 9월 28일 런던에서 개최된 노동자국제회의에서 국제노동자협회가 설립되었다.

마르크스가 창립선언·규약 등을 기초(起草)했는데, 그 속에는 <노동의 해방>이 들어 있었다. 정치단체·노동조합·협동조합 단위의 참가뿐만 아니라 지역별 개인 가입도 이루어졌다. 최고결정기관은 대회이며 1866년 제네바, 1867년 로잔, 1868년 브뤼셀, 1869년 바젤, 1872년 헤이그에서 개최되었다. 집행기관은 런던에 둔 총무위원회이고, 지역마다 지부가 만들어졌으며 조직원칙은 중앙집권적이었다. 실제 가맹인수는 불분명하지만, 제일 많았을 때는 2만 명 정도였다.

활동의 절정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71)에 대한 투쟁과 파리코뮌에서의 연대운동(1871)이었다. 처음에는 노동자의 경제적인 이해(利害)에 공통기반을 두는 정도의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적 조류(마르크스주의, 영국의 노동조합주의, 라틴계 여러 나라의 프루동주의,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바쿠닌주의, 독일의 라살주의)로 되어 있었으나, 1867년 로잔대회에서의 정치투쟁의 승인, 1868년 브뤼셀대회에서의 생산수단과 토지의 공유화 승인, 1871년 런던회의에서의 정치권력의 탈취와 독자적인 노동자정당결성의 결의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차츰 마르크스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1872년의 헤이그대회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M.A.바쿠닌의 무정부주의의 대립이 격화하여 바쿠닌파가 추방되었고, 총무위원회의 소재지도 런던에서 뉴욕으로 옮겨져 제1인터내셔널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마르크스파의 정식 해산선언은 1876년에 필라델피아의 총무위원회에서 이루어졌으며, 바쿠닌파도 1881년 런던대회 이후 인터내셔널의 유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제2인터내셔널]

파리코뮌 뒤의 반동으로 인하여 정체되어 있던 노동운동도 1880년 후반의 경제공황으로 다시 부활하여, 독일사회주의 노동자당(1875년 결성)을 필두로 유럽 각국과 미국에 노동자정당이 생겼다. 이러한 가운데 새로이 인터내셔널을 결성할 기운도 고조되어, 1889년 7월 14일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20개국으로부터 파리에 모여든 사회주의자국제대회에서 제2인터내셔널이 사실상 결성되었다. 제1차대회는 91년 브뤼셀에서 개최되었다.

제1인터내셔널과는 달리, 노동자정당이나 노동조합 등의 집단가입이 원칙이고 개인가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중앙집권적 조직원칙은 없고, 1900년이 되어서야 국제사회주의사무국이 브뤼셀에 설치되었으며, 그것도 사무연락기관이라는 성격이 짙었다. 제2인터내셔널 활동의 제1기라고도 할 수 있는 1889∼1904년은 자본주의의 자유경쟁적 단계에서 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해당되며, 노동자대표의 회의 참가나 출판자유 등의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합법적 활동조건이 생기는 한편, 노동귀족이나 조합관료도 출현하였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제2인터내셔널 가입정당은 대중 사이에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마르크스주의도 노동운동가운데서 지배적인 것이 되었으나,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최종목표(사회주의 달성)를 포기한 노동자의 개량주의·기회주의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895년 그때까지 최고의 지도자였던 엥겔스가 죽은 뒤 급속하게 강해졌으며, 1898년에는 E.베른슈타인이 수정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파리대회(1900)·암스테르담대회(1904)에서는 이 수정주의가 <언어상>으로는 비난을 받았으나, 비판의 선두에 섰던 K.J.카우츠키 자신도 <행동상>으로는 수정주의에 빠졌다.

1904년 전후부터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단계로 돌입했고 열강 사이의 식민지분할과 제국주의전쟁의 시기에 들어가지만, 이시기에 제2인터내셔널로서의 최대문제는 닥쳐오는 제국주의전쟁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태도였으며, 이것을 둘러싸고 제2인터내셔널은 분열·해체되어 갔다. 1907년 슈투트가르트대회, 1912년 바젤대회에서는 레닌과 R.룩셈부르크의 노력으로 일단 전쟁반대 결의를 하고,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는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자본주의 타도에 이용한다는 방침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회주의자에게 지도부를 장악당한 제2인터내셔널 가입정당은 러시아의 볼셰비키당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국정부의 제국주의전쟁 수행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소수파가 된 반전주의자는 1915년 스위스의 치머발트와 1916년 킨타르에서 국제주의자대회를 개최하여 다수파의 태도를 비난하고, 즉시 정전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 소수파 내부도 레닌 등에게 이끌려서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轉化)>를 주장한 <좌파>와 카우츠키·F.아들러 등이 이끄는 <중앙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전자는 제3인터내셔널의 결성을 주장했고, 후자는 제2인터내셔널 부활을 주장했다.

[제2반(半)인터내셔널과 사회주의노동자인터내셔널]

러시아혁명과 제1차세계대전 종결 후, 옛 제2인터내셔널의 우파(右派)에 속해 있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919년 2월 베른에서 재건을 위한 준비회를 개최했고, 1920년에는 제네바에서 제1차대회를 가졌다. 이것은 베른인터내셔널이라고 불린다. 한편 중앙파에 속하는 여러 정당(프랑스사회당·영국독립노동당·독일독립사회민주당·오스트리아사회민주당 등)도 국제적 결집(結集)을 시도하여 1921년 2월 빈에서 국제사회당동맹(國際社會黨同盟)을 결성하였다. 빈인터내셔널이라고도 하는데, 무력에 의한 정권탈취 가능성과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승인 등을 강령으로 내세우면서도 러시아혁명에 대한 태도는 애매했기 때문에 제2반(半)인터내셔널이라고 불린다.

1922년에 베를린에서 있었던 3개의 인터내셔널(① 베른인터내셔널 ② 빈인터내셔널 ③ 코민테른)의 통일을 위한 국제회의가 실패한 뒤, 제2인터내셔널(베른인터내셔널)과 제2반인터내셔널(빈인터내셔널)을 통합하여 사회주의노동자인터내셔널을 결성하였다(1923년 5월). 정치적으로는 제2인터내셔널의 기조(基調)를 계승하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사회민주당은 가끔 정치에도 참가했으나 사회주의적 변혁에 착수할 수는 없었고, 제3인터내셔널과의 통일전선에는 소극적이었으며 파시즘의 대두와 제2차세계대전중에 해체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뒤의 코미스코(1947년 결성)·사회주의인터내셔널(1951년 결성)이 속한다.

[제3인터내셔널]

정식명칭은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이며, 코민테른이라는 약칭이 사용되었다. 제1차세계대전에서의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를 확인하고, 러시아혁명을 승리로 이끈 레닌은 이 혁명을 세계혁명으로 확대·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1919년 1월 제3인터내셔널을 소집한다는 격문(檄文)을 발표하고, 같은 해 3월 26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국제공산주의자회의에서 제3인터내셔널의 창립을 선언하였다.

창립회의에는 21개국 35개 조직을 대표하는 52명의 대표가 참석했으나, 그 중심은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및 1918년 말에 갓 결당(結黨)한, 제3인터내셔널 창설은 당초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보이던 독일공산당이었다. 제3인터내셔널의 활동은 1919∼23년 혁명적 정세기(情勢期), 1924∼28년의 상대적 안정기, 1929∼33년의 대공황기, 1934∼38년의 반파쇼투쟁기, 1939∼43년의 제2차세계대전기로 대략 구분할 수 있는데, 그 4반세기의 활동을 통하여 서유럽의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에 공산주의정당을 결성하고 공산주의사상을 보급시켜서 수많은 공산주의 활동가를 육성하였다.

레닌이 살아 있던 초기의 코민테른은 러시아혁명의 세계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특히 독일혁명의 성공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제1차세계대전 뒤 자본주의의 부흥과 제2인터내셔널 재건의 움직임 속에서 우선 각국 공산당의 사상강화와 대중화(大衆化)의 우회(迂回)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프롤레타리아통일전선과 노동자정부수립 전술이 채택되었다(1922년 제4차대회).

레닌의 죽음과 독일에서의 노동자정부 수립의 시도가 실패한 뒤 제3인터내셔널은 차츰 소련공산당의 정책에 좌우되게 되었으며, 이데올로기적으로는 I.스탈린이 해석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적으로는 볼셰비키당의 조직원칙이었던 <민주집중제(民主集中制)>가 각국 공산당을 구속하게 되어, 각국 공산당은 <단일세계당(單一世界黨)>의 지부로서 모스크바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복종할 것을 강요당하였다.

이로 인하여 1920년대 후반의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일국사희주의(一國社會主義)> 등을 둘러싼 정쟁(政爭)은 각국 지부에도 파급되었으며, 제명당한 트로츠키파는 나중에 <제4인터내셔널>을 결성하였다. 또한 대공황기에는 소련 내에서 <일국사회주의건설>의 강행(공업화와 농업집단화, 제1차5개년계획)에 조응(照應)한 좌익주의적 전술(사회파시즘론·계급대계급론·적색노동조합주의)이 채용되어 통일전선적(統一戰線的) 전술은 뒤로 밀려났다.

1935년 7∼8월의 제7차대회에서 반파시즘의 광범한 통일전선·인민전선으로 그 전략을 전환시켜서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인민전선정부 수립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만면에 소련의 내정(內政)과 외교에 차츰차츰 종속되어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스탈린숭배가 강해졌고 조직적으로는 소련의 국외적(局外的)역할까지도 담당하게 되었으며, 모스크바에 있던 제3인터내셔널 활동가 중 많은 사람이 스탈린 숙청의 희생물이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과 반파시즘 미·영·소 연합의 성립으로 인해, 소련의 입장으로서는 제3인터내셔널은 별 의미가 없게 되어, 대회도 열지 않은 채 해산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 47년에 유럽공산당·노동자당 정보국(코민포름)이 결성되었으나, <스탈린비판>과 함께 1956년 해산되었다. 그 이후의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유로코뮤니즘 등 자주적인 조류(潮流)의 대두와 함께 각당 사이의 개별적 교섭·연락에 위임되고 있다.

<이운용>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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