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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5-03 (월) 09:10
분 류 문화사
ㆍ조회: 4582      
[건축] 서양건축사 (한메)
서양건축사

[서양건축의 역사]

<이념과 기술의 변천>

개개의 건물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로는 취락(聚落)이나 도시의 설계와 건설도 또한 건축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발생적으로는 물리적·생리적으로 인간을 외계로부터 보호하는 피난처로서의 기능을 가진 실용적인 구축물이 선행되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실용목적이 상징성과 결함된 정신성의 표현으로서의 건조물도 일찍부터 건설되었다.

<초기문명기의 건축>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천연(天然)의 동굴을 거처로 하였는데, 이들의 유적으로 프랑스의 랑그도크지방에서 에스파냐의 피레네산맥 부근에 걸쳐 발견된 다수의 동굴이 있다. 그 후 농경과 목축생활을 함에 따라 사람들은 정착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인공적으로 주거나 창고를 건설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갈대·나무·진흙 등을 소재로 한 간소한 건물이었는데, 햇볕에 말린 벽돌이 일찍부터 쓰였고, 오리엔트에서는 BC4000년 이전의 선사시대의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BC4000년 경부터 메소포타비아와 이집트에서 고도의 문화가 전개되고, 장대한 종교건조물을 건조하기 시작하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정상에 신전(神殿)을 올려 놓은 지구라트(聖塔)라고 하는 탑상건조물을 중심으로 한 신전복합체(神殿複合體)가 다수 건설되었다. 질이 좋은 석재가 부족한 이 지방에서는 햇볕에 말린 벽돌 외에 소성(燒成)벽돌도 사용하였으며 아치와 볼트(vault;곡면천장)의 기술도 일찍 개발되었다. 바빌론에서는 마르둑신전과 바벨탑으로 유명한 지구라트를 포함한 신역(神域)이 있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형식을 답습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건축은 풍부한 석재(石材)를 주로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이 주로 쓰였으나, 제2왕조 이후의 왕릉(王陵)과 신전은 모두 석조로서 주로 석회암이 사용되었고, 왕궁과 주택은 벽돌과 목재가 주로 이용되었다. 신전의 건축은 선(先)왕조시대에는 비교적 간단한 형식이었으나, 왕조시대 초기부터 본격적인 건축물로 되었으며 형식도 복잡하게 되어 <신의 전당>으로 손색이 없게 되었다.

영혼불멸을 믿었던 이집트 사람들은 묘의 건축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선왕조시대에는 원형 또는 타원형의 구덩이었으나, 제1왕조시대부터 직사각형의 돌이나 벽돌로 만든 측면이 경사지고 정상(頂上)이 편평한 마스타바분(墳)이 출현하였다. 제3왕조시대부터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왕릉의 형식으로 출현하였고, 제18왕조시대에 인적이 드문 산중 암굴분(岩窟墳)이 등장하였으며, 신전은 분리되어 장제전(葬祭殿)이 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 유물로는 카르나크의 아몬신전, 기자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베니하산의 암굴분 등이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에게해지방에서도 일찍부터 독자적인 문명이 전개되었고 크레타섬에서는 BC2000년경부터 도시적인 미노스문화가 번창하였다. 크레타의 궁전으로는 크노소스왕궁이 대표적인데 이 왕궁은 가운데에 직사각형의 커다란 뜰이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여러 종류의 방들이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아래로 갈수륵 가늘어지는 목조의 원기둥을 특징으로 한다.

BC1400년경부터는 그리스본토를 중심으로 미케네문명이 번영하였는데 미케네적 특색은 특히 건축에 잘 나타나 있다. 크레타와 달리 미케네의 궁전은 언덕 위에 거석의 성벽을 특징으로 하는 거대한 성(城)을 건설하였으며 미케네나 티린스의 산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에게문명을 계승한 그리스인은 동쪽은 이오니아에서, 서쪽은 남(南)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 걸쳐서 고전문화의 꽃을 피웠다. 건축구조는 하중(荷重)과 지지(支持)와의 관계를 조형적으로 세련시켜, 명석하게 표현하는 기둥과 대들보의 구성을 발전시켰다. 이 기둥과 그 위에 얹히는 수평재의 배열형식을 오더(order)라 하고, 오더는 이것을 조성하는 각 부의 비례관계나 기둥머리의 형태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즉 고대 그리스에는 남성적이고 간소한 도리아식, 여성적이며 우아한 이오니아식, 섬세하고 장식적인 코린트식이 있다. 그리스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는 도리아식으로 헤라이온신전, 페스툼의 포세이돈신전, 제우스올림포스신전 등이 있고, 이오니아식으로 아테네의 에레크테이온신전·아르테미스신전, 코린트식에 아테네의 올림피에이온신전 등이 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신전(BC447∼BC432)은 도리아식의 이오니아화를 통해서 그리스정신의 명석성을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화에 의하여 결정(結晶)시킨 영원한 예술작품이다.

로마시대에 와서는 건축의 사상·조형·기술 등이 크게 전환되었다. 로마의 건축은 기둥과 들보로 되는 그리스 건축의 구성과, 에트루리아의 성문이나 분묘에 쓰이고 있는 아치형을 채용함으로써 기념비적인 건축을 건조하였다. 오더의 양식에서는 그리스의 3가지 양식 외에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의 기둥머리를 합친 콤퍼지트양식, 도리아양식의 변형인 토스카나양식이 생겨났다. 구조면에 있어서는 아치형의 채용에 수반해서, 벽돌이나 돌을 가루로 만든 일종의 시멘트가 건축공업에 쓰이게 되어, 거대한 건축의 건조를 가능하게 했다.

가장 대표적인 콜로세움은 80년에 완공된 타원형의 투기장으로 벽돌과 콘크리트를 이용한 외관(外觀) 4층의 대건축이다. 로마의 건축은 외관상의 미를 추구한 그리스 건축과 달라서, 내부 공간의 충실을 기하고 있다. 실용성을 중시한 로마인은 내부의 거주성에 중점을 두고, 내부를 넓게 하기 위하여 벽돌로 아치형을 만들었다. 아치형은 상부의 중력을 원 둘레의 각 부분에 균등하게 분산하기 때문에 기둥의 수를 줄이고 내부를 넓힐 수 있다.

하드리아누스황제에 의한 판테온신전은 둥근 대청의 입구에 코린트식 기둥 8개를 나란히 세운 현관랑(玄關廊)이 있다. 그 외관은 극히 간소하여 충실한 내부의 아름다운 공간과는 대조적이다. 로마건축의 특징은 실용성과 주제의 다양성을 들 수 있는데 이 시대에는 신전을 비롯하여 바실리카·극장·욕장(浴場)·개선문·수도(水道) 등이 건조되었다. 콘스탄티누스황제의 바실리카, 개선문 등이 대표적이다.

<중세 그리스도교 건축예술>

중세건축은 고대그리스·로마건축의 인간존중이나 현실주의와는 달리 상징적이고 초자연적이며, 그 중심을 이룬 것은 교회였다. 중세 건축의 전개는 일반적으로 초기 그리스도교·비잔틴·로마네스크·고딕의 4기(期)로 나누어진다.

콘스탄티누스에 의한 313년의 그리스도교 공인(公認) 후 로마제국에서 건설된 초기 그리스도교건축은 고대가 중세로 옮겨지는 과도기의 건축이었다. 고대의 종교적 신전과 그리스도교회와의 커다란 차이점은 전자가 단순히 거처하는 곳인 데 비해 후자는 성직자와 신도가 모여서 예배상의 의식이나 집회를 행하는 장소였던 점에 있었다. 따라서 후자는 제실(祭室) 이외에 보다 큰 공간이 필요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채택한 건축의 한 양식은 고대로마의 바실리카와 유사한 장축적(長軸的)이고 다랑식(多廊式)인 바실리카 형식의 평면에 기준을 두고 건설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로마의 성 클레멘트성당, 성 마리아 마조레성당 등을 들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시대의 또 다른 하나의 건축방식으로는 집중식이 있다. 로마시대의 묘당(廟堂)·신전 등으로부터 발달하여, 주로 세례당(洗禮堂)의 건축양식으로 쓰였다. 기둥을 원형으로 배열하고 둥근 지붕을 씌우는 형식으로 노세라의 세례당, 라벤나의 세례당 등이 있다.

비잔틴건축은 동로마제국에서 급속히 발달되어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황제 시대가 최초의 전성기가 되었다. 비잔틴건축은 그 출발점에 있어서 이미 궁정의 지지를 배후에 입은 그리스도교건축으로서 장대함과 호화로움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집중식에 알맞은 등 공법(工法)과 직사각형의 바실리카식과의 융합은 주로 돔을 중심으로 4방향에 반(半)원기둥형을 붙이는 형식으로 시공되었고, 또는 4방향을 작은 돔으로 둘러싸는 형식도 쓰였다. 콘크리트나 벽돌조법은 로마의 기술을 이어받아 구체(軀體) 구성을 하였고, 그 표면을 대리석으로 포장하는 방법을 썼다.

벽돌쌓기는 색을 달리하여 가로줄을 만드는 독창적인 쌓기법이 창안되었고, 벽의 위쪽·아치·돔·천장은 금색을 바탕으로 하는 다채로운 대리석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성당, 라벤나의 비탈레성당,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성당 등이다.

서로마제국의 멸망(476)과 함께 건축문화도 쇠퇴했는데, 프랑크제국의 카를대제는 라벤나의 성에 팔각당형의 예배당을 건설시키는 등 문화·예술의 부흥에 힘썼다. 초기 중세의 서유럽건축에서는 로마와 비잔틴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게르만이 지닌 낭만적 심성이 그리스도교의 영적 원리와 결합해서 마침내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전개해간다.

6세기에 성 베네딕투스에 의하여 확립된 서유럽의 수도원제도는, 8세기 말에 카를대제 밑에 건설된 캔투라의 산 리키에수도원에서 시작하여 장려한 수도원예술을 로마네스크양식에 의하여 꽃피웠다. 석조의 견고한 벽체 위에 돌천장을 설치하여 통형(筒形) 볼트에서 시작해서 교차볼트를 발달시킴으로써 물질적 중후성으로 둘러싸인 로마네스크교회당은 신의 비호(庇護)를 구하는 인간을 지키는 성채(城砦)이며, 동시에 상방지향적 구성에 의하여 그것이 하늘에 이르는 문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건축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상징성은 고딕교회당의 조형에서 최고도의 표현을 이룩하였다. 프랑스의 로마네스크가 지방적으로 다양하고 의미심장한 형식을 전개한 가운데,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엽에 파리 주변은 특히 클뤼니대수도원이 있는 부르고뉴지방과 노르망디의 건축 및 산티아고에 이르는 순례로에 이어서 건설된 순례교회당에서 많은 것을 채택하면서, 독창적인 고딕건축을 창조·육성시켰다.

고딕예술의 창시자라고 하는 생 드니대수도원장 스게리우스는 그의 수도원교회당에서 빛의 공간을 추구하였다. 돌의 골조와 스테인드글라스를 소재로 해서 현상(現象)하는 <스스로 빛나는 벽>은 물질계를 비추는 신의 빛에 다름없었다(샤르트르대성당의 1194년 착공 부분).

물질성을 소거(消去)시키면서 구조논리를 명쾌하게 표현하는 프랑스 고딕대성당의 공간은, 신의 나라인 궁극적으로 성스런 공간에 이르는 문이며 통로이자,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로서의 동적인 공간이다. 프랑스성당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화려한 랭스대성당(1211년 착공)은 일관된 시각논리를 통해서 성당 내에 비물질적인 공간을 형성하여 구조의 논리를 외부의 조형적·역학적인 구성이 완벽하게 표현하는 건축예술의 극치다.

고딕의 영적인 내부공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첨두(尖頭)아치와 리브가 달린 교차볼트와 비량(飛梁) 등의 구성요소를 통합함으로써인데 본래는 조적조(組積造)인 석축(石築)을 골조구조로 하여 그 최고도의 석조구법(石造構法)을 발전시킨 기술의 시행착오적인 추구에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의 새로운 문화·예술의 사상은, 고딕의 본질을 정당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오더로 대표되는 고전적 질서만을 유일의 판단기준으로 한 G.바사리가 중세 그리스도교 건축 전반을 야만인의 것이라고 하면서 <고트풍>으로 불러 고딕이라는 호칭이 유래되었다.

<근세의 건축예술>

중세에 있어서도 본질적으로 로마·라틴적 성격을 유지했던 이탈리아에서 15세기에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중세적 신에 대한 관념의 부정, 인간중심관의 회복이라는 시점에서, 고대 예술의 부흥(復興)을 위하여 건축가의 개성이 중요시되었다.

이 시기의 건축가들은 건축을 오로지 예술작품으로서 제작하는 것을 추구하고, 고대건축의 질서 원리를 아름다운 형태로 창작하기 위한 비례론적 조형원리(比例論的造形原理)로서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정적이며 자기완결적인 조형을 추구하였다. 거기서는 당연히 고전 오더가 부활하였는데, 그것은 벽면을 분절(分節)하는 장식적인 조형부재(造形部材)가 사용되었다.

내부공간과 정면의 유기적 일체성은 대부분 무시되었으며 교회당의 정면은 하나의 완결된 예술작품으로서 조형되었다. 교회당에서는 기하학 질서의 구현으로서 유심화가 추구되고, 기능적인 장축식 라틴십자형평면에 돔을 걸치는 것이 과제로 되었다. 14세기에 건설된 교황청(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의 개축은 D. 브라만테에 의한 그리스십자형 평면의 계획으로 착공되어, 미켈란젤로의 설계에 의해 대돔을 만들면서 일단 완성되었다(1590).

그러나 유심적 평면은 다수의 신자를 수용할 교회당의 기능과는 합치되기가 어렵고, 17세기에 C.마데르나가 신랑부(身廊部)를 확장하여 장축식으로 개조하고, 다시 G.L.베르니니에 의하여 당의 전면에 장려한 타원형 광장이 건설되었다(1656∼67). 16세기 르네상스건축은 수법의 세련을 추구해서 이른바 마니에리스모건축을 탄생시키고 17세기의 바로크건축에 대립적으로 계승되어 갔다.

르네상스가 인간의 절대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교적 정신과의 갈등에 빠지면서 결국은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운동을 야기시켰기 때문에, 교황청은 그리스도교적 반성에 입각하여 반종교개혁적 운동을 추진하고 바로크예술의 지주가 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개축은 그러한 움직임의 하나였다.

바로크는 고전사상을 그리스도교와 융화시켜서, 완벽하기는 하지만 정적이고 냉엄한 르네상스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어 동적이고 격정적인 건축을 탄생시켰다. 성 베드로광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타원형은 정적 유심성에 동적 성격을 부여한다고 하는 로마 바로크의 형태적 특질이며, F.보로미니에 의한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교회당(1638∼46)의 종축적(縱軸的)타원형으로 결실을 보게 된다.

그것은 장축적인 유심식 평면이면서 동시에 유심적인 장축식 평면이기도 하다. 비로크의 동적 성격은 똑같은 건축가에 의한 성형(星形) 육각형이라는 기하도형에 근거한 산티보 델라 시피엔차교회의 극적인 공간표현에서 정점에 달한다. 로마의 바로크는 G.구아리니에 의해 토리노에 인계되는데 바로크적 조형은 북유럽의 게르만적 성격에 적합하다. 근세는 세속건축 특히 팔라초(이탈리아의 저택)와 궁전, 저택의 전성기이기도 하였다.

<근대에서 현대로>

19세기 초기에는 전유럽적으로 고대예찬과 프랑스 나폴레옹의 로마제국에 대한 동경을 반영하여 고대 그리스의 양식을 채택하였는데, 특히 프랑스에서는 로마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건축이 많이 세워졌다. 이러한 고전주의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는 프랑스의 개선문과 마들렌성당을 들 수 있다.

그리스의 간결성을 담은 건축은 특히 독일에서 고전주의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F.싱켈의 작품인 베를린의 왕립극장이 유명하다. 나폴레옹 실각 후에는 전유럽에 공통적인 경향으로 낭만주의가 출현하여 중세 고딕양식의 근대화된 채용이 이루어졌다. 또한 동시에 중세의 교회와 건조물의 수리가 성행하였다. 독일에서는 싱켈이 이 방면에서도 활약하였고, 영국에서는 고딕 양식을 채택한 런던의 국회의사당이 유명하다.

19세기 후반에는 단지 한 가지의 역사적 양식을 채택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여러 양식을 결합시켜 새로운 건축비를 창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19세기 후반에는 모든 것이 현대를 향해 급변하는 시대로 궁전과 교회의 건축을 떠나 공중적(公衆的)인 건축이 크게 등장하였다.

재료의 변화도 현저하여 철의 사용이 일반화되고 유리의 성능도 새로워지고 철근·콘크리트의 등장 등 건축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놓았다. 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에펠탑은 과학적인 구조기술과 새로운 공간조형을 이룩한 철재 건조물이다. 한편 영국에서는 공예분야에서 W. 모리스의 운동으로, 과거의 양식을 물리치고 새로운 디자인에 의한 간결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개혁은 건축에도 크게 작용하여 과거와 같은 번잡한 양식을 버리고 참신한 건축을 지향하는 운동이 각국에서 일어나 현대를 향해 진전되어 갔다. 20세기에 이르러 철골조는, 특히 미국의 상업건축에 의하여 고층 건축을 대담하게 발전시켰다. W.L.B.제니에 의하여 건설된 시카고의 흄 인슈런스 빌딩(1884∼85)은 기둥이 주철인데, 10층 건물 중 하부의 6층의 대들보는 연철, 상층부의 대들보는 강철로 지어, 고층건축의 선구를 이룬, 시카고에서도 가장 빠르게 강철을 채용한 건물이다.

강철의 사용은 드디어 건축의 조형을 일변시키게 된다. 시카고의 선진적인 건축가 L.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고 하는 생물학적 원리를 바탕에 놓고 표면장식을 배제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건축의 주된 위치로부터 끌어내렸다.

또 이미 유럽 체류(滯留)시대부터, 돌과 벽돌에 의한 조적조(組積造)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조형을 철과 유리를 가지고 추구하여 순수하고 추상적인 공간(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의 독일관, 1929)을 실현시키고 있던 M.로에는 미국 고층건축의 전통과 결연(結緣)하여, 철과 유리에 의한 조형을 완벽한 것으로 만들었다(뉴욕의 시그램 빌딩, 1958).

한편 영국의 기술자 J.스미튼은 고대 로마 이래 오래 잊혀졌던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1759년에 에디스톤 등대의 난공사를 완성하였는데, 1824년 포틀랜드시멘트의 발명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발전을 유도하여 건축의 역사를 일변시켰다.

아나톨 드 보드에 의한 파리의 장 드 몽마르트르 성당(1894)의 선구적인 시도 다음에 드디어 O. 페레의 여러 작품에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건축을 역사양식에서 해방시켜 구조와 조형의 통합을 편성하였다. 조적조의 양괴성(量塊性)은 부정되고 수평재와 수직재에 의한 경쾌한 골조구조가 조형의 원리가 되있다.

콘크리트의 호리호리한 원주 사이를 콘크리트블록과 색유리로 메꾸는 르 랑시의 노트르담 성당(1922∼24)은 고전의 단려(端麗)함과 고딕의 빛의 공간을 프랑스적 기지(機智)로 통합한 뛰어난 작품이다. 이미 19세기 말에는 역사 양식주의에 대한 반역운동이 새로운 조형을 구하기 시작하였다.

아르누보를 거쳐 양식주의의 거점인 O.바그너가 근대건축운동을 불타오르게 하였다. <예술의 유일한 주인은 필요성이다>라고 주장한 바그너는 새로운 재료, 새로운 구조법, 새로운 인간생활의 요구가 새로운 양식을 낳게 한다고 단언하였다. 그의 영향을 받고 과거양식으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빈(Wien) 공방(工房) 등이 힘차게 활동하였으며 이와 같은 합리주의적인 움직임은 W.그로피우스가 주도하는 바우하우스운동으로 정점에 도달하였다.

건축의 본질은 그것이 충족시킬 기능에 있고, 건축의 형태는 기능에서 나온다고 하는 그 견해는 국제적인 평가를 언어 건축에서의 합리주의는 기능주의로서 인식되게 되었으며 따라서 근대 건측은 국제양식이라고 불리는 건축조형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기능주의는 건축형태가 기능에 따라 일의적(一義的)으로 규정된다는 것은 아니다. 기능주의는 본질적으로 휴머니즘의 사상이었다. 인간과 건축에 대한 강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 기능주의는 껍질만 남은 양식주의에서 인간을 되찾는 일을 목표로 하였다.

근대건축의 또 한 사람 선도자로서 후대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 르 코르뷔지에도 또한 건축을 예술의 수준으로 높일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새로운 건축의 5가지 요점(1926)》에서 공간의 연속성과 자유로운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필로티(pilotis) , 건물 밑에서 잃어버린 대지를 되찾는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파사드, 그리고 골조와 벽면의 분리에 따른 연속창(連橋窓)을 근대건축의 특질로서 강조하였다.

1927년 제네바의 국제연맹본부의 경쟁설계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안이 무시되고 전통양식이 채택된 이듬해, 근대건축가들은 지크프리트 기디온과 르 코르뷔지에를 지도자로 하여 반(反)전통주의를 표방하는 근대건축국제회의(CIAM)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33년에는 기능적인 도시계획에 관한 <아테네 헌장>을 발표하여 이후의 건축운동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근대 건축 운동은 건축의 사회적 측면을 중시하고 주택과 생활환경의 개량 운동에 눈을 돌렸다. 예술·공업·공예의 협력하에 조형의 단순성과 합리적 즉물성(卽物性)을 추구하여, P.베렌스 등에 의해 1907년에 설립되었던 독일공작연맹이 27년에 M.로에를 정점으로 당대의 우수한 건축가들을 모아서 슈투트가르트에서 개최한 주택박람회나, 바이센호프지들룽은 이와 같은 지향성(指向性)의 결정(結晶)이었다.

미국에서는 F.L. 라이트가 미국의 풍토 속에서 유기적 건축을 장시하고, 대지에 뿌리박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 내어 유럽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와 같은 화려한 근대건축운동과 나란히 건축구조학도 착실하게 발전하고, 철근콘크리트조의 영역에서는 셸 구조와 곡선상의 골조구조가 새로운 조형을 가능케 하였다.

이탈리아의 구조기술자 P.L.네르비는, 피펜체의 경기장(1932)에서 시작하여 아름다운 리브상 그물코구조에 의한 팔라초 델로 스포르토(스포츠 전당, 1958∼60)에 이르기까지 구조학과 조형과의 멋진 일치를 실현시켰다.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기술의 발달은 곡선을 사용하지 않고서 대(大)스팬의 가구(架構)를 가능하게 하고, 프리 캐스트 코크리트는 부재(部材)의 공장 생산을 진전시켜, 양자가 서로 작용해서 건축 산업의 근대화를 추진시켰다.

근년작으로는, 리브구조이면서 바람에 부푼 돛을 연상케 하는 셸 모양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자랑하고 있다. 강철구조의 분야에서는 스페이스프레임(입체 골조구조)에 의한 대스팬가구의 추구를 들 수 있으며 또 강(鋼)과 경금속을 골조로 하는 돔 구조의 연구도 왕성해졌다. 최근에는 현수지붕구조와 막(膜)구조 즉 플라이 오토 등의 새로운 형식도 시도되고 있다.

건축부재의 규격화와 공장생산에 의한 고품질·저가격·대량생산이 매우 진전되어 있는데, 조형과의 결합에는 아직도 충분히 성공하지 못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구조에서 뿐만 아니라 기능과 조형에서도 다양화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건축적 과제는 생활환경의 재구성과 쾌적성의 회복이다.

일찍이 1956년에는 스미슨 부부·바케메·캔딜리스 등 청년건축가들이 <팀텐>을 결성하여 근대건축 국제회의(Cl AM)를 제10회 회의에서 붕괴시키고 유동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생활공간과 건축을 지향함으로써 근대건축국제회의는 최종적으로 59년의 회의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자본주의 경제가 탄생시킨 사무실 건축을 정점으로 하는 실용주의적 건조물이 발전하는 한편, 기능주의가 가지는 국제성에 대립해서, 일찍부터 지방성과 민족성이 다시 증시되기 시작하였다. 현대의 건축조형은 다양하고 통일적 이념이 결여된 다원론적 시대라고 하겠다.

<김동한>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건축' 항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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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 문화사 [고대] 로마미술 (브리) 이창호 2004-05-03 1883
1191 문화사 [고대] 로마미술 (한메) 이창호 2004-05-03 2677
1190 문화사 [고대] 로마미술 (두산) 이창호 2004-05-03 2519
1189 문화사 [고대] 콜로세움 (브리) 이창호 2004-05-03 2105
1188 문화사 [고대] 콜로세움 (한메) 이창호 2004-05-03 2147
1187 문화사 [고대] 콜로세움 (두산) 이창호 2004-05-03 3658
1186 문화사 [건축] 로마건축 (브리) 이창호 2004-05-03 3278
1185 문화사 [건축] 로마건축 (한메) 이창호 2004-05-03 2518
1184 문화사 [건축] 로마건축 (두산) 이창호 2004-05-03 2912
1183 문화사 [건축] 서양건축사 (한메) 이창호 2004-05-03 4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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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