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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16 (월) 09:56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319      
고구려의 복식
고구려의 복식

고구려의 복식은 평양 부근과 통구평야지대를 중심한 고구려 고분벽화 인물상에서 비교적 정확한 형태를 살필 수가 있고, 古문헌에서도 단편적이나마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있다.

먼저 머리에는 남녀 모두 관모를 썼는데, 남자들은 건, 책, 절풍, 입, 변등을 썼고 여자들은 건귁을 썼다.

북방계 유목민있어던 우리 민족은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추위를 피하거나 햇빛을 가리기 위해 '관모'를 썼다.

그러나 기록으로는 '삼국지'의 '부여전'에 금과 은으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처음 나온다.삼국시대에 이르면 여러 가지 관모가 등장한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책이나 절풍을 비롯한 많은 관모가 나타난다. 또'삼국지'난 '후한서'등에는 '고구려에서 는 대가와 주부는 책을, 소가는 절풍을 썼는데, 그 형태는 고깔 모양이었다'라고 씌여 있다.

이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관모는 실용적인 목적외에도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었다.

수산리 고분벽화의 두 남자는 검은 머리수건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게 감싸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관모로 '건'이라고 불렀다.

'당서'나 '구당서'의 '동이전'에는 "부인은 머리에 건귁을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고구려의 여인들은 건귁이라는 머릿수건을 즐겨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건귁은 계속 이어져 내려와 근세 이후 개성 이북의 여인들이 많이 쓰던 머릿수건이 이것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두루마기는 바지, 저고리 위에 덧입는 겉옷으로, 삼한시대 이래 왕에서부터 평민까지 입었다.고구려의 두루마기의 기본형은 곧은 깃에 왼쪽여밈, 좁은 소매였다.

이 두루마기는 저고리인 유가 길어진 것으로, 하층계급의 사람들이 입었다.상류층에서는 둥근 깃에 오른쪽 여밈, 넓은 소매로 된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추위를 막기 위해 입던 우루마기는 점차 의례적인 차림으로 바뀌어 갔다. 저고리는 곧은 깃에 좁은 소매, 왼쪽 여밈으로 되어있고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이가 길었다.

그러나 고구려 벽화에는 소매의 통이 넓고 오른쪽여밈으로 된 저고리가 많이 나타난다. 이것은 식, 조련, 섶등에 대던 옷단, 즉 선과 함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바지는 통이 좁았는데 신분이 높은 사람은 중국식의 통 넓은 바지를 입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짧은 치맛속에 바지를 덧입었다.

치마는 무용총 접견도에 보이는 승복용 치마를 제외하면 모두 여자의 옷이었다.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허리에서 치맛단에 이르기까지 잔주름이 있으며, 저고리와 마찬가지로 치마 끝에 선을 둘렀다.

출전 : http://www.contest.co.kr/98/shiraz/html/고구려.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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