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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28 (토) 23:34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312      
[조선] 장성 필암서원 (민족)
필암서원(筆巖書院)

필암서원 전경. 문화재청 사진

필암서원 확연루. 문화재청 사진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서원. 사적 제242호. 1590년(선조 23) 호남 유림들이 김인후(金麟厚)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장성읍 기산리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24년에 복원하였으며, 1662년(현종 3) 지방 유림들의 청액소(請額疏)에 의해 ‘필암’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7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786년에는 양자징(梁子消)을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신문(神門)·동서 협문(夾門)·전사청(典祀廳)·장서각(藏書閣)·경장각(經藏閣)·진덕재(進德齋)·숭의재(崇義齋)·청절당(淸節堂)·곽연루(廓然樓)·장판각(藏板閣)·한장사(汗掌舍)·고직사(雇直舍)·행랑·창고·홍살문·계생비(繫牲碑)와 하마석(下馬石) 2개 등이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김인후의 위패가, 왼쪽에는 양자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전사청은 향례(享禮) 때 제수(祭需)를 마련해 두는 곳이다. 경장각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판각(墨竹板刻)이 보관되어 있고, 진덕재와 숭의재는 동재·서재로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청절당은 서원의 강당으로, 원내의 모든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장판각에는 ≪하서집 河西集≫ 구본 261판과 신본 311판을 비롯한 637판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으며, 장서각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과 ≪하서집≫ 등 1,300여 권의 책과, 보물 제587호인 노비보(奴婢譜) 외에 문서 69점이 소장되어 있다.

계생비는 향사에 제물로 쓸 가축을 매어 놓는 비로, 제관(祭官)들이 그 주위를 돌면서 제물로 쓸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한다. 1957년 사우를 우동사(佑東祠)라 현액하였으며, 1975년에 사적 제242호로 지정되었다. 유물로는 벼루와 기준(奇遵)이 방문 기념으로 기증한 붓 등이 있으며, 재산은 전답 1만 2700평과 임야 10정보가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 서원은 남북 자오선을 중심축으로 하여 중요 전각들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남북이 길게 장방형으로 담장을 쌓고 정면 중앙에 누문(樓門)인 곽연루를 두었으며, 그 중심축선상 북쪽에 청절당을 배치하였다.

강당 뒤쪽 좌우 대칭되는 곳에 동재와 서재를, 그 북쪽 따로 쌓은 담장 중앙에 내삼문(內三門)을 두고 안쪽으로 사당을 건립함으로써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수법을 이루고 있다.

확연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팔작기와집으로,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첨차·소로(접시받침)·쇠서(소의 혀 모양으로 된 장식)로 결구한 이익공식(二翼工式)을 이루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후면 양측 추녀의 사래를 활주로 받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청절당은 중앙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청을 두고 이의 좌우에 정면 1칸, 측면 3칸의 온돌방을 하나씩 둔 것으로 보아, 본래 이 건물은 진원현(珍原縣)의 객사였던 것을 1672년에 옮겨 온 것이라는 기록을 입증하고 있다.

이 청절당은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쇠서 하나를 내어 초익공식(初翼工式)으로 꾸몄다.

가구(架構)는 오량(五樑)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걸고,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친 일반적인 가구수법을 이루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우동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전면 반 칸은 툇간(退間)으로 개방하였고 나머지는 통간(通間)으로 하였다. 장대석은 바른층쌓기로 처리한 기단 위에 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전면 툇간의 초석은 단면이 팔각형인 장주형 초석(長柱形礎石)을 이루고 있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쇠서 두 개를 놓아 이익공식 구조로 되어 있으며, 처마는 부연(附椽)을 단 겹처마이고 맞배지붕의 양쪽 박공에는 풍판(風板)을 달았다. 이들 중요 전각 외에 진덕재·숭의재는 단순한 민도리집양식으로 되어 있고, 목판고는 이익공식의 팔작기와집이다.

≪참고문헌≫

筆巖書院誌(筆巖書院, 1974), 長城郡史(長城郡, 1982).

<주남철>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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