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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15 (일) 09:32
분 류 문화사
ㆍ조회: 4056      
[건축] 교회건축 (두산)
교회건축 敎會建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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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신앙의 가르침을 선포하며 예배의식이나 종교적 회합을 하기 위한 건축물.

I. 개관

주로 그리스도교의 교회건축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교 초기 사도시대(使徒時代)에는 예배하기 위한 특정한 형식을 갖춘 건물은 없었다. 신약성서(新約聖書)의 여러 곳에 보이는 기술에 의하면, 적당한 개인 집의 일부를 신도들의 모임에 이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도의 수가 자꾸 늘어나고, 그리스도교가 더 많은 지역에 전파되어 가면서, 개인의 집과는 별개의 예배나 집회를 목적으로 하는 회당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문헌상으로는 그 규모나 구조에 관한 기록이 없고, 유적도 발견되지 않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유대의 회당(會堂)과 비슷한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도교 교회건축을 건축양식상으로 분류해 보면, 초기 그리스도교식·비잔틴식·로마네스크식·고딕식·르네상스식·근대식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ll. 초기그리스도교식

사도시대부터 박해가 계속된 그리스도교시대 초기에는 교회건축면에서는 보잘 것 없는 시기였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아직 공인을 받지 못해 당시의 예배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상에 건축물을 지을 수 없던 그들은 박해를 피할 수 있는 장소로서 카타콤베(catacumbae:지하에 만든 분묘)를 만들어 이곳에서 예배를 보았다.

로마 법률에 의하면 카타콤베는 시교외에 1세기 후반경부터 건조되기 시작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심할수록 그 수나 규모가 더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카타콤베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 점차 없어졌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받아 법에 의해 보호받는 시대가 된 후에는, 로마제국 전역에 잇달아 장려(壯麗)한 교회가 건설되었다. 이 교회는 두 가지 형식의 건축으로 대별되는데 하나는 직사각형의 평면을 가진 바실리카식(basilica式) 교회이며, 다른 하나는 둥근 지붕[圓蓋:cupola]을 중심으로 원형ㆍ팔각형ㆍ정사각형의 평면을 가진 집중식(集中式) 교회이다.

lll. 비잔틴식

비잔틴의 교회건축은 4세기 중반 이후 주로 동로마제국에서 발단한 양식인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 그 대표적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고대풍의 원당형식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지만, 그 대공간(大空間)과 장려함은 절대적 신의 세계를 표현ㆍ달성하고 있다. 9세기 이후 비잔틴식 교회당 건축은 그리스 십자형의 성당형식이 정형(定型)이 된다.

이것은 정사각형의 중앙에 돔을 올리고, 이것을 전후좌우로부터 십자형으로 교차되는 반원통(半圓筒) 볼트(vault)로 받치고 십자가의 네 끝에 작은 돔을 두어 교묘하게 균형을 잡는 형식이다. 여기에는 이제 고대풍의 장려한 원주열도, 널찍한 공간도 없으며, 두꺼운 벽체로 구획된 당내는 돔의 높은 원고형기단(圓鼓形基壇)의 창에서 채광(採光)이 되는 형식이다.

아르메니아의 교회건축은 6∼11세기에 이르는 동안 매우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하였다. 그 특징은 돔을 이고 선 집중형식으로서 종류도 많고 변화도 풍부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사각형 가운데서 그리스 십자형을 보이는 고전적 형식은 중기 이후의 비잔틴 교회형식의 정형이 되었다.

lV. 로마네스크식

동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한 교회건축 양식이 비잔틴식인 데 대하여, 서로마를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발달한 교회건축양식이 로마네스크식이다. 이 건축양식은 바실리카식 평면에 목조지붕 대신 석조 반원통 볼트를 덮은 것으로, 창ㆍ입구ㆍ기둥 사이에, 그리고 추녀 아랫부분에도 이 반원 아치가 있다. 이 건축양식은 발달해가는 과정에서 나라나 지방의 특색에 따라 수많은 유파로 나뉘었다.

11세기 말에서 12세기에 걸쳐, 프랑스ㆍ롬바르디아ㆍ독일ㆍ노르망디ㆍ영국 등 각지에서는 로마네스크 교회건축의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하였다. 이것은 다시 서유럽의 석조 교회건축 발달의 정점인 고딕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교회 내부의 배치는 서유럽에서 몇 가지 형식이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것은 독일 교회의 대표적 형식이 되는 것으로, 동서 양쪽에 후진 또는 내진(內陣)을 설치한 이중내진식(二重內陣式) 배치이다.

V. 고딕식

12세기 중엽부터 프랑스에는 초기 고딕 건축이 형성되고, 13∼14세기에는 지방색이 강한 소박한 로마네스크풍 교회 대신 대규모의 고딕식 교회가 여러 도시에 세워졌다. 이 건축양식의 핵심은 늑골궁륭(肋骨穹窿)이며, 이것을 첨두 아치(pointed arch)와 버팀도리(flying buttress), 부벽(扶壁) 등으로 지탱한 것으로, 이것은 이미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도 각각 별개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형태상으로는 앙고성(仰高性) 또는 상승감(上昇感)이 강조됨과 동시에, 구조상으로는 사압력(斜壓力)이 현저하게 경감하였다. 고딕 건축에서 가장 중요시한 과제는 벽체(壁體) 괴량성(塊量性)의 제거였기 때문에 벽체는 얇아지고, 창의 면적은 확대되어가지만, 이 취약화한 벽체를 역학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늑골궁륭이 적용되었다. 이 구조는 궁륭의 무게가 지골(支骨:궁륭의 서까래)에 의하여 지주에 집중되므로, 벽체는 중량을 받치는 역할을 거의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외벽에 따라 부벽이 이어져 지주에 걸리는 사압력을 외부에서 버티어준다.

또 궁륭ㆍ입구ㆍ창 등에서의 로마네스크풍 반원형 아치가 고딕에서는 첨두형(尖頭型)이 되고, 첨두의 각도를 넓히거나 좁힘으로써 넓이와 높이를 자유로이 조절하고 성당 내의 공간구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하였다. 13세기 후기가 되어서는 세련된 건축기술을 과시하는 레요낭 양식(style rayonnant)이 행해지고, 14∼15세기에는 창의 디자인에 물결 모양을 병렬해서 불꽃 모양을 나타내는 플랑부아양 양식(style flamboyant)이 유행하여 도시건축에도 많이 활용되었다.

프랑스의 고딕 건축은 이탈리아ㆍ독일ㆍ영국 등 유럽 각지에 전파되어 각각의 지방색이 가미된 양식을 낳게 하였다. 독일에서는 14세기 이후 독일의 독특한 형식인 할렌키르헤(Hallenkirche)가, 에스파냐에서는 이슬람계 양식이 섞여 므데하르 양식이 형성되었다. 영국에서는 13세기 초영식(初英式), 14세기 장식식(裝飾式), 14세기 이후 수직식(垂直式)이라고 불리는 양식에 따라 그 발전이 이어졌다. 성당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하여 아름다운 광선이 흘러들어오도록 하였는데, 이 광선은 신성(神性)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Vl. 르네상스식

르네상스식 건축양식은 고대의 고전양식을 부흥시킨 것으로 바실리카식 고대건축의 영향에서 다시 집중식 성당의 부활을 보았고, 돔을 올리는 것이 유행하였다. 성당 안팎의 구성과 디자인은 수학적 비례와 조화를 적용하고, 반원통 궁륭ㆍ원두(圓頭) 아치로 공간을 덮고, 세부에는 고대건축의 장식법을 이용하였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고딕의 수직성 대신에 수평분절(水平分節)이 강조되어, 고대 이교(異敎) 건축과 유사한 성당도 나타났다.

르네상스식 교회건축물로서 대표적인 것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16세기 초기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대성당 재건을 시작한 때 처음 건축가는 D.브라만테였다. 그는 16세기 건축의 특징인 세부적이며 장식적인 고대 취미보다, 모뉴멘틀 형태나 공간의 조화를 중심으로 하는 건축설계를 하여,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중앙에 대원개를 올린 그리스 십자형식의 성당으로 조성할 것을 의도하였다.

이 성당의 건축은 그 뒤 J.상갈로, S.라파엘로, 페루치에 이어지고, 다시 A.상갈로를 거쳐, 72세의 B.미켈란젤로가 이어받지만, 대원개의 기저부까지만 작업에 참여하고 마무리는 그가 남긴 대원개의 모형에 따라 J.D.페르타와 V.도메니코, D.폰타나 등이 하였다. 이렇게 해서 르네상스 예술 이상의 최고의 걸작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1세기라는 오랜 기간과 차례로 수많은 건축가의 손을 거쳤다고 하는 이 건설공사의 과정에서 브라만테의 구상은 약간 변해 미켈란젤로의 구상으로 옮겨졌다. 브라만테의 구상은 중앙 대원개의 둘레 4곳의 소원개나 그 밖의 부속부분이 아직도 비교적 많은 장소를 차지하고 있었던 데 비해, 미켈란젤로는 대원개를 강조하고 다른 것은 축소ㆍ생략하며, 기주(基柱)나 벽체를 강대하게 해서 집중적ㆍ통일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 이상주의적이며, 고대주의적인 집중형식의 구상은 이미 S.라파엘로 때에 바실리카 형식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그 뒤 17세기 초 C.마데르노가 전방에 네이브를 연장하여 바실리카식으로 되돌아가고, 또 가까이 가면 미켈란젤로의 대원개를 가로막듯이 대현관이 덧붙여졌으며, G.L.베르니니에 의해 마지막으로 대광장을 앞에 추가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Vll. 근대식

르네상스의 교회건축에서 채용되었던 고전양식은 그 뒤, 17∼18세기의 교회건축에도 이용되었으나, 16세기 중반부터 르네상스와는 다른 근세(近世)의 교회형식을 이루는 새로운 형태의 여러 경향이 나타났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집중형식에서 바실리카식으로 바뀐 것도 그 한 가지 예이지만, 이는 전통적 양식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이르벨티의 설계에 의한 만토바의 산탄드레아 성당에서 보는 것과 같이, 신랑(身廊:회중석)을 강조하고 그 좌우에 단랑적(單廊的) 형식이 나타나며, 볼트는 로마풍의 장중한 반원통 볼트를 쓰고, 원개는 중심부보다 안쪽으로 밀려들어가, 주제단(主祭壇)을 둘러싼 호화로운 장식에 효과적인 조명을 비추었다. 그 외에도 르네상스 교회의 지나친 이교취미(異敎趣味)를 시정하여 장중한 품격을 부여하려고 하였다.

이런 엄격한 형식도 얼마 안가서, 힘있고 자유분방한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되어, 종탑을 더하거나, 정면을 앞으로 밀어내거나, 또 양식에 변화를 주거나 하여 종교상의 요청보다 예술가나 주문자(注文者)의 취미가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로마에서 발생ㆍ발전한 이 양식은 결국 전유럽에 퍼져나갔다. 18세기에 들어와서 세련된 로코코 양식의 반영이 교회당 건축에도 나타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장식이 발달하였지만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낼 정도까지는 가지 못하였다.

18세기 중엽 무렵부터는 새로운 지적(知的)ㆍ고고학적인 고대(古代) 부흥주의가 반영되어 이전보다 충실히 파르테논이나 판테온의 고대신전을 모델로 한 교회당이 세워졌다. 파리의 생트 주네비에브 성당, 마들렌 교회, 토리노의 그랑마드레 교회, 런던의 성 바울로 대성당은 17세기 후반부터 건설된 것이지만, 이 새로운 경향에의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 뒤 19세기에는 서유럽의 교회당 건축은 낭만주의의 풍조와 더불어, 고딕양식ㆍ로마네스크 양식ㆍ비잔틴 양식 등의 중세양식이 많이 부흥하였다. 그리고 철골ㆍ철재의 사용도 시도되었다. 최근에는 근대 건축양식이 교회당 건축에도 받아들여져 점차 이 경향이 일반화되었으며, M.P.데르로에, F.L.라이트, C.E.J.르코르뷔지에, A.가우디 등의 유명한 건축가들이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겼다.

Vlll. 한국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초창기에는 교인들의 사가(私家)를 그대로, 또는 어느 정도 수리하여 교회로 이용하고 있었으며 대체로 초가집들이 많았다. 그 뒤 교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교세(敎勢)가 확장됨에 따라 교회건물을 신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독창적인 건축양식은 거의 없고, 서양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고딕 양식이나 로마네스크 양식, 또는 이들과의 절충적인 양식의 교회들이 건립되었다. 1892년(고종 29)에 건립된 중림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물로 뜻이 깊은데, E.코스트 신부가 설계한 고딕풍 건축이다.

이후 원효로성당ㆍ명동성당ㆍ대구 계산동성당 등 훌륭한 고딕 양식의 교회를 잇달아 건립하였다. 그 중에서도 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가장 유명한 건물은 명동성당이다. 명동성당은 프랑스인 선교사 블랑 주교에 의하여 1892년에 기공되어 98년(광무 2)에 완공되었는데, 설계자는 중림동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였다. 이 성당은 라틴 십자형의 웅장한 건물로, 창은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으며, 내부 천장의 리브 구조가 장엄하여 종교적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개신교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물은 98년에 세운 서울 정동제일교회이다. 이 교회는 단순화한 고딕 십자형 건물로, 완공 당시 지붕이 기와였으나 1926년 증축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독자적인 교회건축으로 특기할 만한 것은 강화도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이다. 이 성당은 1900년(광무 4)에 건립된 한국 유일의 불당식(佛堂式) 교회건축으로, 약간 높은 지대에 성당을 세우고 그 둘레에 담을 쌓아 기와지붕의 큰 대문을 세웠다. 한국 재래의 건축양식에 바실리카 양식을 도입한 건물로, 주위 환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성공회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 22년에 기공하여 26년에 완공되었다. 영국인 A.딕슨의 설계로 된 이 건물의 지붕은 원래 한국 재래식 기와로 올렸으나, 후에 일부를 붉은 기와로 바꾸었다. 8ㆍ15광복 이후 교인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교회건물도 난립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건축양식에 있어서는 특기할 만한 것이 없다. 서울 영락교회의 본당(本堂)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석조전이지만, 내부는 고딕 양식을 따르지 않고 실용적으로 꾸몄다.

6ㆍ25전쟁 이후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교회건축을 보면, 불필요한 장식이 많은 고딕 양식이 대부분이며, 그 밖에 종탑과 사각건물을 기본으로 한 형태와, 이 두 가지를 절충한 양식이 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로는 현대적 감각의 교회건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 건축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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