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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16 (월) 09:14
분 류 문화사
ㆍ조회: 7563      
[건축] 건축 (두산)
건축 建築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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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물품ㆍ기계설비 등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構築物)의 총칭으로, 용도라는 목적성에 적합하여야 하며,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인 형식을 취하여 안전하게 이룩되어야 하는데, 그 요소는, 예술적 감흥을 목표로 하는 공간형태,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 편리성과 유용성으로서의 기능이다.

I. 개관

건축이란 인간의 여러 가지 생활을 담기 위한 기술ㆍ구조 및 기능을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공간예술이다. 건축은 용도라는 목적성에 적합하여야 하며,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인 형식을 취하여 안전하게 이룩되어야 한다. 이로써 건축의 본질은 쾌적하고도 안전한 생활의 영위를 위한 기술적인 전개와 함께, 공간 자체가 예술적인 감흥을 가진 창조성의 의미를 가진다.

이 공간예술을 다루는 작가, 즉 건축가의 입장에 있어서 건축의 공간은 실용적 대상이고, 3차원의 지각적(知覺的) 대상이며, 자기인식의 실존적 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단순한 건조기술(建造技術)을 구사하여 만들어진 결과로서의 구축물을 건물(building)이라 하고, 공간을 이루는 작가의 조형의지(造形意志)가 담긴 구축의 결과를 건축으로 표현하고 있다.

N.페프스너는 이 건축과 건물이라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차고(車庫)는 건물이고, 대성당(大聖堂)은 하나의 건축이다. 사람이 들어가는 데 충분한 넓이를 갖춘 것은 모두 건물이지만, 건축이라는 말은 미적 감동을 목표로 설계된 건물에만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의 생활을 위해 건조되는 댐ㆍ교량 등의 토목구조물은 건축에 포함되지 않으며, 분묘ㆍ탑ㆍ기념비 등도 역시 건축과 유사한 방법으로 구조되나, 인간의 생활을 담는 기능이 아니므로 또한 건축과 구별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건축을 이루는 요소는, 매우 다양한 결합으로 판단되나, 대체로 다음의 3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① 예술적 감흥을 목표로 하는 공간형태(空間形態), ②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構造技術), ③ 편리성과 유용성으로서의 기능이다.

다만 이와 같은 3가지 요소는 낱낱의 성질로서 남는 것이 아니며, 개별적인 해결로써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건축의 3요소는 서로가 상호 완결적인 관계로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질 속성에 있는 것이다.

인간생활과 공간과 기능을 엮어내는 작업을 설계(設計)라 하며, 이 설계작업 자체도 역시 이 3요소를 종합적으로 결합시키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것만으로, 기능적인 것만으로, 또는 구조체만으로써는 건축을 이해할 수 없고, 이 요소들의 종합적인 해석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건축의 예술성이란 단순히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당히 복합적인 의미로서의 조형(造形)을 통해 그 목적이 달성된다. 이는 ① 성능이 좋은 공간, ② 구조기술의 솔직한 표현, ③ 소재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운 성질, 그리고 이들의 종합으로 이루어지는, 균일한 관계로써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건축은 공공예술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항시 사회문화적인 존재로서 생각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건축은 건축주의 소유가 아니며, 건축가 자신의 것도 아닌 역사와 사회의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건축은 그 자신의 개체적인 건축성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환경적 요소들과 조화되므로, 감흥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벗어날 수 없다.

하나의 거리를 구성하고 있는 건축은 개개의 조형성이 뛰어나면서도, 거리 전체에 대해 균일한 태세에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건축의 수명은 몇 세기에 걸쳐서 유지될 수 있는 역사적 대상이며, 이로써 건축은 개체적인 존재의 의의와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의의를 동시에 갖추도록 하여야 한다는 사회적인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II. 형성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 건축은, 항시 그 환경에 대처하여 적응시켜내는 예지(叡智)로써 진화해 왔다. 여기에서 환경에의 적응이라 함은매우 광범위한 문제이나, 대체로 자연적인 환경으로서 온습도·비·눈·바람·태양광선·물·지형지질(地形地質)과 같은 대지 주변의 조건, 그리고 인문적인 환경으로서생활감각과 습관·정치사회성·산업력, 특히 공업력 등의 여건에 따라 특징지어지면서발달해 왔다.

이를 다시 건축의 3요소와 결부하여 생각하면, 사회적·경제적요소로서 기능문제, 응용과학 공업기술에서의 구조문제, 문화적 환경에서의 예술적요소들의 끊임없는 영향 속에서 이루어져 온 바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건축예술역시 한 시대조건의 반영으로서, 한 시대에 이루어진 건축들을 관통하는 일반성 및 보편성으로서의 특징을 찾을 수 있을 때 이를 양식(樣式:style)이라 한다. 이와 같이 범주적 국면성(範疇的局面性)으로서 건축의 양식을 해석할 때, 민족성과 지역적 특성을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그 시대의 사회·과학·문화의 양상이 곧 한 시대의 건축적 특성을 이루게 하는 조건이라는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III. 설계

건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계획·설계·시공·사후관리라는 과정을 거친다.즉, 계획에서부터 설계조직에 의한 설계도서 작성작업과, 현장에서의 구축작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를 다시 인적 구성으로 살펴보면, 기획가(企劃家:planner)·계획가(計劃家:designer)·기술자(技術者:engineer)로써 구성된다고 할 수 있으며, 각 분야는 다시 보다 세분된 전문가의 구성으로 조직된다.

기획이란 주어진 과제를주로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풀며, 계획이란 건축 전체의 기본적인 구성을, 그리고 기술은 구조·전기·위생·기계·시공 등의 공학적인 영역에서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들 문제에 대해 건축가(architect)를 중심으로 하여 종합해서 하나의 건축작업이 형성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생활을 담기 위한 기능을 공간에 조직적으로 엮어내는 작업을 설계라 하고, 이 목표를 처음의 가장 추상적인 단계에서 구체적인 형상으로끌어 올리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계획과정이란, 사실상 건축의 당해문제에 따라 채택방법이 다르나, 보편적으로 착상(着想)→분석(分析)→종합(綜合)→전개(展開)→이상화(理想化)라는 기본적인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목표로 하고자 하는 건축의 성격은 이 기본계획 과정에서 대부분 이루어지게 되며, 거의 한 건축가의 모든 역량이 발휘되어 건축적인 성과를 가름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계획설계가 완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하여 실제적으로 공사에 임할 수 있는실시 설계도를 작성한다.

이 설계도란 마치 교향악단에서의 악보와 같은 것으로서, 가급적 면밀한 내용을 정확히 기술하지 않으면 안된다. 설계도의 내용은 토목·구조·건축·가구·실내장식·전기·위생·냉난방 기계설비 그리고 조경(造景)을 대상으로 하는 설계도와 시방서(示方書)·내역서 등을 포함하여 작성하는 작업이다.

물론설계자는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시공자에게 해석하여 주고, 설계 당시에없던 문제점이 발견되면, 현장에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감리과정이 뒤따른다. 이 감리과정 역시 공사가 설계도대로 이행되는지를 감독하고, 공사의 정밀도, 공사결과의하자요인을 예방하게 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IV. 구조

건축은 우선 물리적으로 토지에 정착하여, 바닥·벽·지붕의 요소를 결합하는 공간의 구축수단으로 이루어진다. 즉 건축의 구조는 건축에 미치는 자연 또는 인위적인 여러 현상을 합리적으로 이어 짜맞추는 방법으로서, 구조공학은 수학과 역학(力學)에서 출발하여 응용역학·재료역학·구조역학 등의 분야를 포함한다.

사실상 건축이란 이와 같이 여러 분야에서 모색하는 가장 안전하고 내구적이며,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종합적 수단을 통하지 않고서는 최선의 건축이란 불가능하다. 이는 결국 건축이란 그 과정이야 어떻든 만들어진 종국적인 결과로서 존재가치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의 구조는 구체적인 양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분할 수 있다. 구체재료(軀體材料)에 의한 분류로서는, 나무구조·벽돌구조·블럭구조·철근콘크리트구조·철골구조·철골철근콘크리트구조로나뉘고, 구성양식에 따라 조적식구조(組積式構造:masonry structure)·가구식구조(架構式構造)·일체식구조(一體式構造), 그리고 특수구조로서 입체트러스·절판구조(折板構造)·셸구조(shell 構造)·현수구조(懸垂構造)·공기막구조(空氣膜構造)로 구분된다.

구조의 형식을 다시 시공과정에 의해 분류하면, 건식구조(乾式構造)·습식구조·현장구조(現場構造)·조립식구조로 나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의 형식이란 대부분 여러 가지 형식이 복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며, 구축하여야 할 공간의 성격에 따라서 보다 다양한 응용구조형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역사적으로 고대 그리스 건축은 석조의 가구식구조였으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석조의 조적식구조기술의 역량이 발휘된 결과였고, 근대까지의 건축은 주로 철과 콘크리트에 의한 일체식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구조형식은 보다 급격히 발달한 금속·합성수지 등의 재료공학과, 특수구조공학에 의해 일정한 구조형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창안들이 실험되고 있다.

한국 전통건축의 구조양식은 목조에 의한 가구식구조양식이며, 이 구조법의 다양한 응용으로 양식적 특성과 조형성의 완성을 이루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건축의 구조는 그 자체가 이미 건축의 양식을 이루는 주요 요소가 되는 것이며, 결국 건축미(建築美)의 해석이라는 것도 이 구조의 결과가 일차적인 문제로 출발점이 된다.

V. 시공

설계도에 의하여 지정된 구조방식에 따라 재료를 구사하여 건물로 구현시키는 기술과정을 건축시공이라 한다. 건축주의 주문에서 시작하여 기술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루어지는 건축의 생산에는 자금·재료·공학적 기능, 그리고 노동력의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이때 공사에 관계하는 인적자원으로서는 기업주·설계감리자·공사관리자·도급자·건설노무자 등으로 구성되며, 시공방식은 공사의 규모, 경제적·입지적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형식이 취해질 수 있다.

우선 직영방식(直營方式)은 시공주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직접 재료구입·고용·공사·감독 등 모든 공사과정을 자기 책임 아래 시행하는 것으로서, 시공내용이 단순하고, 용이한 경우에 채택된다.

반면 도급방식(都給方式)이란 설계서에 따라 도급업자와 공사계약을 체결하고, 그 책임 아래 공사를 완성시키는 것으로서 도급업자는 공사에 소요되는 일체의 재료·노무·시공 관계를 일정한 도급액으로 공사하는 방식이다. 이 도급방식에는 일식(一式), 총도급(總都給) 또는 분할도급(分割都給)·공동도급(共同都給)의 방식으로 나뉜다.

도급금액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정액도급(定額都給)·단가도급(單價都給)·실비청산보수가산도급(實費淸算報酬加算都給)·성능발주방식(性能發注方式) 등이 있다. 공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여러 도급업자의 입찰과 견적서를 동시에 받아 경쟁하여 적격한 업자를 선정하는 입찰방식, 또는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업자 1명에게 입찰시키는 수의계약(隨意契約)의 방법으로 공사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이 체결되면, 각종 수속을 거친 후 공사기간 내에 시공에 들어간다.

시공단계부터는 ① 착공준비, ② 가설공사, ③ 토공사, ④ 정지 및 기초공사, ⑤ 구체공사, ⑥ 방수·방습공사, ⑦ 지붕 및 홈통공사, ⑧ 외벽 마무리공사, ⑨ 창호공사, ⑩ 내부 마무리공사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Vl. 발생과 발전과정

건축은 인류의 생활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자연의 위협에서 스스로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은신처(shelter)로서, 소극적이나마 권역을 공간으로 구축하게 되었고, 그 후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발전의 역사를 이루어왔다. 이 발전의 역사는 물론 매우 진취적인 경험을 통해 이룩되어 왔던 시기도 있었으나, 사회적인 영향에 따라 침체한 시대도 있었다. 양식적(樣式的) 관점에서 볼 때, 대체로 건축이 그 양식적 기원(起源)에서부터 근대건축에 이르는 사이, 항상 이원적(二元的)인 발전과정을 거듭해 왔다고 보여진다.

즉, 건축예술은 이지적(理智的)인 양상과 감성적(感性的)인 양상을 반복하며 이루어져 왔다. 그리스의 건축이 그들의 합리적이고도 순수한 이성(理性)의 문화와 함께 가장 이지적인 고전성(古典性)을 남긴 데 비하여, 로마의 건축은 보다 감각적인 이상의 추구로 건축을 완성한 것 같다.

다시 르네상스의 건축이 보다 이지적인 사고의 결과였다면, 이에 비하여 바로크의 정신이란 상대적으로 훨씬 감성적인 목표에 있었던 것 같다. 더욱이 건축의 역사는 항시 이지적인 것 다음에 감성적인 것, 고전적인 것 다음에 바로크적인 것, 합리적인 것 다음에는 관능적인 것 같은 이원성이 반복하고 회귀(回歸)하는 주기성을 가지고 진화해왔다.

Vll. 서양 건축사

건축의 원류(源流)는 인간의 가장 원시적 생활영역인 주거의 양상에서부터 나타나며, 대체로 구석기시대의 동굴주거에서부터 수혈주거(竪穴住居)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퐁 드 곰(Font de:Gaume), 르 콩바로(Le Combareaus), 에스파냐의 알타미라(Altamira), 카스틸로(Castillo) 등은 동굴주거의 유구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이다.

신석기시대는 주거의 취락형성을 이루게 되었으며, 구조의 기술이 발달하여 점차 항상주거(杭上住居)ㆍ수상주거(水上住居) 등이 지역적 환경에 대처하여 출현하게 되었다. 청동기시대(BC 2200~BC 1200)에는 목재가공법이 발전되어 왔고, 그 중 후기(BC 1700~BC 1200)에는 본격적인 목조건축이 맞춤법을 합리적으로 구사하며 지어지게 되었다.

이집트 건축은 석기시대의 목구조건축에서 시발하여 석구조(石構造)가 기본이 되었다. 나일강 연안에서 생산되는 다량의 석회암ㆍ사암ㆍ화강암 등은 BC 3500년을 전후한 통일국가의 건설 후 이집트 시대의 건축의 특징으로 되어 있다.

또한 ‘고즈 몰딩(gorge molding)’과 연속된 버팀기둥의 역할을 하도록 고안된 경사진 벽체와 기하학주(幾何學柱)ㆍ식물주(植物柱)ㆍ조각주(彫刻柱)의 3기둥의 형상은 이 시대의 건축의 특색이었다. 기념건축물과 분묘로서는 기제(Gizeh)의 대스핑크스(Sphinx)와 사카라(Sakkara)의 디(thi)ㆍ마스타바(mastaba), 그리고 피라미드는 기제의 피라미드(BC 3733~BC 3566)와 케오포스왕의 피라미드(BC 3733) 등이 대표적인 예이며, 베니 하산(Beni Hassan)의 암굴분묘(BC 2500∼BC 2200)와 같은 분묘식 구조물도 있다. 신전건축으로서는 카르나크의 콘스 신전(Khons 神殿, BC 1200)과 아몬 대신전(Amon 大神殿, BC 1500∼BC 325)이 대표적이고, 기념구조물로는 오벨리스크(obelisk)가 있다.

서아시아건축은 BC 3500~BC 1000년을 전후하여 이루어진 메소포타미아 건축과 소아시아의 히타이트(Hittites) 건축, 페니키아 건축, 팔레스티나의 헤브라이 건축, 이란의 페르시아 건축을 통칭하는 것으로서, 발생연대가 오래되고 중심문화의 역할을 한 메소포타미아 건축이 그 중심이 되고 있다.

건축재료로서는 흙벽돌ㆍ소성벽돌과, 표면에 유약을 칠한 벽돌 등으로 발전을 보게 된다. 이와 함께 아스팔트가 접착제와 방수층에 쓰이게 되었다. 벽돌의 사용은 조적식구조법을 발전시켰고, 아치는 원형 아치ㆍ첨두 아치(尖頭 arch)ㆍ반원형 아치로 발전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우르(Ur)ㆍ니푸르(Nippur)ㆍ텔스(Tells) 등지의 지구라트(Ziggurat)와, 사르곤왕의 궁전(BC 722∼BC 705),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의 궁전(BC 1012)이 있다. 그리스 건축의 연대는 에게 시대(Aege, BC 3000∼BC 1104)ㆍ프리헬레닉 시대(prehellenic, BC 1104∼BC 476)ㆍ헬레닉 시대(Hellenic, BC 476∼BC 338)ㆍ헬레니스틱 시대(Hellenistic, BC 338∼BC 146)로 구분되며, 헬레닉 시대가 전성기였다.

남아메리카 마야ㆍ잉카문명의 유적지에도 많은 석조건축들이 남아 있는데, 과테말라의 티갈에 있는 티갈신전, 팔랑케의 태양의 신전, 쿠스코 부근의 마추픽추 유적지의 석조건축들이 유명하다.

그리스 지역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대리석은 아름다운 질의 기념적 재료로서, 선을 정확히 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데 가장 알맞은 재료였다. 이에 따라 그리스 건축은 세련된 형태미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리스 건축은 도리아식ㆍ이오니아식ㆍ코린트식 건축의 규범하에서 발전하였으며, 이 규범의 변화는 엄격함, 선명한 아름다움, 화려한 섬세성 등으로 일련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 건축의 대표적 예로는 미조아 시기의 도리아식 신전인 헤라이온 신전(Heraion temple, BC 640), 페스툼의 포세이돈 신전(Poseidon temple, BC 450), 아그리 겐룸의 제우스 올림푸스 신전(Zeus Olympus temple, BC 470) 등이 있고,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Parthenon temple, BC 447∼BC 432)은 오랜 건축사의 조형(造形)의 표본이 되고 있다.

이오니아식 신전은 아테네의 에렉테이온 신전(Erechtheion temple, BC 420∼BC 393)과 아르테미스 신전(BC 356), 미레투스의 아폴로 디 디메우스 신전이 있다. 코린트식 신전은 아테네의 올림피에이온(Olympieion, BC 174)이 대표적이다.

로마는 세계 제패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 꿈이었으므로, 건축은 그리스의 것과 비교하여 심오하고 세련된 예술성보다는 규모의 방대함과 호화로움을 자랑한다. 재료면에서는 방대한 공사량의 건축을 완성하는 데 있어 대리석만으로는 불가능하여 테라코타ㆍ석재ㆍ벽돌 등을 같이 사용하였으며, 로마 부근에서 생산되는 석회암을 주재료로 하였다.

로마 건축에서는 볼트 구조법을 체계화하여 반원 볼트(tunnel vault)ㆍ교차 볼트(cross vault)ㆍ구면 돔(cupola) 등의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에트러스컨 건축의 개선문(Arch of Augustus, BC 3)과, 로마의 주피터 카피톨리누스 신전(Jupiter Capitolinus temple, BC 509) 등이 있다.

로마 건축은 포룸 신전(Forum)ㆍ바실리카(Basilica)ㆍ공동욕장(Thermae)ㆍ극장ㆍ원형투기장ㆍ경기장ㆍ개선문과, 궁성으로는 로마의 판테온(Pantheon),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211∼217),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 등이 현재까지도 유구로 남아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건축은 고대가 중세로 옮겨지는 과도기의 건축이었다. 건축양식상으로는 로마 건축의 계승이고, 로마가 멸망한 뒤에는 로마의 문화적 유산과 영향이 그리스도교 정신 밑에서 개변(改變)되어 새로운 건축양식 창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건축은 고대 로마의 전통과 기술을 계승하여, 교회당은 로마의 바실리카를 기본으로 삼았고, 전형적인 양식화로서 완성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밖의 건축적인 내용으로서는 로마 신전의 기둥을 그대로 실내에 이용하여 건축하였고, 조화와 형식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바실리카 성당인 로마의 성클레멘트성당, 로마의 성베드로 바실리카성당(330), 성마리아 마조레성당(432) 등이 있고, 세례당 건축으로는 노세라의 세례당(350), 라벤나의 세례당(449∼452) 등이 있다.

비잔틴 건축의 특성은 4세기 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돔을 사각형 또는 다각형 평면 위에 구축하는 펜덴티브(Pendentive) 형식을 그 특징으로 한다. 콘크리트나 벽돌구조법은 로마의 기술을 물려받아 구체구성(軀體構成)을 하였고, 그 표면을 대리석으로 포장하는 방법을 썼다.

벽돌 쌓기는 색을 달리하여 횡선을 만드는 비잔틴식 쌓기법을 창안하였으며, 벽 내부는 대리석, 볼트와 돔은 황금색 바탕에 유리 모자이크로 성화(聖畵)를 그렸다. 돔의 구성은 큰 돔을 중심으로 작은 돔 또는 반원 돔이 서로 크기와 높이를 달리하여 회화적으로 구성하였는데, 이는 비잔틴 건축의 아름다움이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콘스탄티노플의 성셀기우스와 바커스성당(527) 및 성소피아 성당(532~537), 라벤나의 성비탈레 성당(526~547), 베니스의 성마르코성당(1042~1085) 등이다.

로마네스크(Romanesque) 건축은 로마가 475년 이래 12세기 말까지 이르는 사이에 로마 예술을 기초로 하여 유럽 전지역에 형성한 건축이다. 건축의 특색으로서 평면의 형식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와 같으나, 아치의 발달과 교회세력의 확장으로 규모가 커지고, 변화가 풍부하였다.

종탑은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창안된 것으로서, 본당과는 분리시켜 세워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볼트에 있어 교차볼트는 둔중(鈍重)하고 시공의 난점들이 있기 때문에, 점차 리브(rib)와 파넬식의 볼트 구성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로마네스크의 기둥머리[柱頭]는 변화가 많고 그 유형도 대단히 다채롭게 되었으며, 기둥(pier)은 아치 가구법과 더불어 점점 복잡해지고, 모서리에 원기둥 또는 반원기둥이 첨가되어 여러 줄기가 모인 형상으로 되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피사의 성당(1063~93), 피사의 종탑, 피사의 세례당(1153~1278), 로마의 성조난비 수도원 및 성파오르 후로리 레 무라와, 베니스의 폰다 코 디 투르키궁전, 몬리일성당(1174)이 있다.

12~16세기 초까지에 걸친 고딕(Gothic) 건축은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서 발전하여 독자적인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이 양식의 특징은 첨두 아치와 플라잉버트레스(flying buttress)의 창안에 있다. 구조적으로는 피어ㆍ버팀기둥ㆍ아치ㆍ리브ㆍ볼트 등이 서로 얽혀 수직력과 수평력을 받아 균형과 안정을 이루는 데 있으며, 볼트의 합리적인 구축법이 고도로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영국의 캔터베리 대성당ㆍ솔즈베리성당ㆍ웨스트민스터사원과, 프랑스의 파리 노트르담성당(1163~1235)ㆍ샤르트르대성당(1194~1260), 림즈대성당(1212~1300) 등이 유명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그 건축양식은 중세의 천편일률적인 표현과 비현실적인 수법을 거부하며, 고전의 형식미를 다시 회고ㆍ부활하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은 전유럽 건축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고전건축에 대한 복귀로 지향하는 징조가 보였다. 로마 건축의 5개의 규범(orders)은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가인 A.팔라디오, G.B.비뇰라, V.스카모치, E.체임버스 등이 정형화시켜, 구조적으로 또한 장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둥이나 엔타블레이튜어 사용은 그 시대의 요구에 적합하도록 새로운 고안을 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B.셀리니, L.기베르티, 도나텔로, F.브루넬레스키 같은 장인(匠人)과 예술가들이 건축을 완성하는 데 협력하여 최고의 예술품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플로렌스의 성로렌초성당(1425), L.B.알베르티가 설계한 플로렌스의 성마리아노벨라(St. Maria Novella), D.브라만테가 설계한 로마의 칸셀레리아궁(Palazzo della Cancelleria, 1495~1505) 등과 S.라파엘로, G.B.비뇰라가 설계한 여러 건축물이 있으며, B.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로마의 카피톨(Capitol, 1540~1644)과 성베드로성당(1506~1626)이 유명하다.

바로크 건축양식은 17~18세기의 반동개혁과 전제정치에 의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고 성대한 문화활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중상주의(重商主義)와 도시문화의 발전, 시민계급의 경제적 성장과 함께 자연과학의 지식이 확대되고, 철학적 이론의 심화가 건축활동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건축은 구조ㆍ표현ㆍ장식이 하나의 건축적 표현효과를 위하여 구사되었다.

따라서, 바로크는 르네상스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전체나 부분 취급이 양감적(量感的)이고 감각적이었으며, 조각적이어서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이 양식은 후기에 이르러 감각적 표현 위주에 몰두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전성기 바로크는 프랑스의 루이 11세 집정기간이며, 프랑스 바로크 최후의 단계는 로코코 양식이 되었다.

로코코는 바로크가 매우 둔중한 인상을 주는 데 비해서 세련된 아름다운 곡선으로 표현되었고, 여성적인 인상을 주었으며, 화려한 것이 특징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궁전의 싸롱에서 애용되었는데, 귀족계급 부인들의 장식품 등 기호ㆍ취미에 영합되어 성행하였다. 이탈리아의 G.베르니니, G.포르타, D., C.마데르나가 초기의 건축가였으며, F.보로미니, A.포조 등의 다재다능한 건축가들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프랑스에서는 F.블론델, J.H.망사르가 대표 건축가이며, 이 시기의 건축물로는 베르사유궁전과 앵발리드사원 등이 있다. 로코코의 건축가로는 A.메소니에와 G.보프랑이 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말에 이르는 근대 과도기의 건축의 시기는 바로크 건축에서 근대 건축에 이르는 과도기적 건축양식인 신고전주의ㆍ낭만주의ㆍ절충주의의 진통기를 겪고 나서 근대 건축에 이르게 되는 시기였다.

신고전주의란 바로크에 반발하여 그리스 고전양식을 모방하여 고전성에 복귀하고자 하는 양상을 말하는데, 프랑스에 있어서는 루이 15세의 최후 20년간과, 루이 16세 및 나폴레옹 통치기간에 행하여졌다. 영국은 18세기 후반 유럽 최강국이 되어 강대한 자본국가로 번영하였다. 이러한 사회정세 아래서 존스, C.렌에 의하여 신고전주의는 발전하게 되었다.

낭만주의는 자유주의 사상에 의한 사회변혁 때문에 생긴 건축적 표현으로서, 고딕과 같은 중세로의 복귀적인 양상이었다. A.퓨긴과 W.퓨긴은 신고전주의를 개척하여 노팅엄성당(1842~44)ㆍ성어거스틴성당(1846~51)의 작품을 남겼다. 바리경의 영국 국회의사당과 K.F.슁켈의 베를린 위병본부(1816), J.나시의 버킹검 궁전 등이 그 시대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이다.

Vlll. 근대건축

유럽의 건축은 19세기 후기까지는 세계 대부분의 문명지역에 보급되었으나 그 양식의 기본적인 성격은 르네상스 이후 과거의 건축양식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변혁으로 인하여 건축에도 큰 변혁을 가져왔다. 대규모의 공장ㆍ창고ㆍ철도역ㆍ시장ㆍ백화점ㆍ고층빌딩 등의 건조, 대도시의 형성이나 주택문제와 같은 새로운 과제로 인하여 주철ㆍ선철ㆍ강철ㆍ철근콘크리트와 같은 신재료가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수공업적 기술의 쇠퇴와 노임의 상승이 전통기술의 유지와 응용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새로운 건축양식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과거 양식에 의존하던 건축미학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미의식의 개혁이 가장 곤란하였다.

W.모리스와 그 일파는 1860년경부터 단순하고 솔직한 표현을 존중하는 공예개혁운동(工藝改革運動)을 일으켜, 주택 합리화를 유도하였다. 모리스의 영향을 받아 1890년대의 벨기에에서 아르누보(Art Nouveau)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과거양식과는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고자 하는 최초의 시도로서 각국에서 일어났으나, 사회적 요구나 기술적인 발전방향과 밀접하게 합치되지 못하여 뿌리 없는 표면상의 예술운동에 지나지 않은 감이 있다. 또한 아르누보는 피상적이며, 예술지상주의자들의 직접적인 표상의 한 발전일 뿐 그 이상의 더 큰 운동으로서의 중요성이나 사회성은 찾을 수 없다.

회화에 있어서는 1890년대부터 세잔과 고갱에 의하여 새로운 발전을 볼 수 있는데, 면(面)ㆍ형태(形態)ㆍ색채(色彩)의 균형 등에서 추상적(抽象的) 회화의 미학이 점점 확립되었다.

P.베렌스가 설계하여, 1907년 독일의 베를린에 건립한 A.E.G 터빈 공장은 근대건축의 새로운 철의 시기를 기념하는 기념비적 존재인데, 베렌스의 작품에 따라다니는 고전주의적 형태가 이 건물의 기념비적 의미를 한층 강조하고 있다. 철골은 명료하게 노출되고, 측면을 벽으로 막는 대신에 교묘하게 구획한 큰 유리면을 쓰고 있으며, 거대한 건물의 중량과 강도를 강조하기 위하여, 모서리에 돌을 사용하는 등, 기하학적 구성에 이르는 건축 디자인을 제시하였다.

프랑스에서는 A.페레가 철근콘크리트의 특성을 살리는 골조구조의 건축양식을 창조하고, 시카고에서는 L.설리반이 고층 빌딩 건축에 대하여, F.L.라이트(1869∼1959), 로마 주택건축에 대해서 나름대로 새로운 건축적 표현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을 계승하고 종합하여 건축에 있어서의 근대 디자인의 방법과 방향을 확립한 사람은 베렌스의 주임조수였던 W.그로피우스이다. 그는 파구스 제화공장(Fagus Fabrik, 1911)과 쾰른 독일공작연맹 전람회의 모델공장(1914)에서 철과 콘크리트와 유리에 의한 자유로운 기하학적 구성과, 이것을 이룩하기 위한 기본적 건축기법을 명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20년대의 독일에서 일어난 보다 자유로운 개성적 표현을 추구하는 표현주의 건축운동은 그 이론적 뒷받침의 미비함으로 인하여 단기간에 종식되었으나, 같은 20년대에 그로피우스는 자기의 수법을 발전시켜 데사우(Dessau)의 바우하우스 교사(Bauhaus 校舍, 1926)를 완성하고, 르코르뷔지에는 주택에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미학을 적용하여 보다 풍부한 조형성(造形性)을 이룩하였으며, M.V.d.로에는 바르셀로나 박람회의 독일관(1929)에 철저한 건축조형의 순수화를 추구하여 나름대로 기능주의와 기하학적 추상미학에 의한 근대 디자인을 성숙시켰다.

30년대는 근대건축의 확립기라고 할 수 있는데, 앞에서 말한 3인 외에 핀란드의 A.알토, 스웨덴의 E.G.아스프룬트, 미국의 R.노이트라의 활동이 두드러졌으나, 독일에서는 나치즘의 대두로 근대화운동이 탄압되었으며, 소련에서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국제적 양식이 억압되었다.

Vllll. 현대건축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건축을 보면, 대전 전에 거장이던 르 코르뷔지에와 로에가 여전히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평탄한 활면(滑面)이나 판(版)의 조형에서 보다 유기적인 곡면(曲面)이나 거친 면으로 싸인 매스(mass)의 조형으로 극단적인 작풍(作風)의 변화를 보여, 마르세유의 아파트(Unite d’Habitation) 등의 여러 건축에서 철근콘크리트가 가지는 자유도(自由度)ㆍ조소성(彫塑性)ㆍ역감(力感) 등을 충분히 발전시켰다. 한편 로에는 근대정밀공업의 높은 가공정밀도를 도입하여, 거의 이상화된 순수기하학적인 근대건축의 구체화에 성공하였다.

시카고의 아파트와, 뉴욕의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은 고도의 시공정밀도와 완벽한 비례에 의해 고전적인 완성미에 도달하고 있다. 이 두 거장을 양극으로 하여 현대의 건축은 전쟁 전의 국제적 성격에 대해서 한층 현저한 지역성과 전통적 특색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동시에 보다 자유롭고 개성적인 형태가 표현되게 되었다. 이러한 다면적 경향(多面的傾向)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이탈리아의 P.L.네르비, 멕시코의 F.칸델라, 에스파냐의 E.토로야 등의 조형적 재능이 풍부한 구조 엔지니어들에 의한 정교하고 치밀한 가구기술(架構技術)의 개척이다.

이것은 가구의 자유도를 풍부히 확대함으로써, 총괄적으로 보아 현대건축의 선단(先端)을 명백히 전쟁 전의 고전기(古典期)를 탈피하고 좀더 자유롭고 동적(動的)인 새로운 양상, 말하자면 근대건축의 바로크적 양상으로 전환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건축활동의 지도적 중심은 유럽과 미국으로 양분되었으며, 미국에서는 로에와 라이트를 양극으로 하여 다양한 고도의 기술성을 추구하는 건축가들이 활동하였다. 라이트의 존슨왁스 연구소(1950), 구겐하임미술관(1946∼59), 로에의 일리노이 공과대학 예배당(1952), 시그램 빌딩(1958), P.존슨의 자택인 유리의 집(Glass House), L.칸의 펜실베이니아대학 의학연구소(1957∼61), E.사리넨의 T.W.A.공항 터미널 빌딩(1956∼62), 달라스 공항 건물(1958∼62)), P.루돌프의 예일대학 예술학부(1959∼63) 등이 대표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유럽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마르세유의 아파트(1946∼52), 롱샹의 교회당(1950∼54), 네르비의 스포츠 전당(1956∼57), M.브로이어의 유네스코 본부(1955∼58), H.샤론의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홀(1956∼63)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건축의 특색은 이상과 같은 선단적(先端的) 변화와 함께 근대건축의 일반적인 보급에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중진국, 아시아ㆍ아프리카 등의 후진지역에서 선진국 이상으로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말하자면 르 코르뷔지에의 인도의 샹디가르(Chandigarh) 종합 도시계획(1950), 요른 웃존(Jrn Utzon)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1956), O.니마이어의 브라질 종합도시계획(1956) 등은 국제적인 관심을 모은 것들이다.

X. 한국의 현대건축

건축은 거기에 관련된 여러 요인, 즉 사회·경제·정치·문화 등이 합성된 요인의 복합적인 결과로서 시대에 따른 형태와 양식으로써 표현된다. 일제강점기의 서구이식 문화의 식민지적 재이식은 광화문 철거 등에서 보듯이 우리의 정통적 건축문화를 말살하려는 것이었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했던 1910∼45년 사이의 한국에서의 건축활동은 일본의 건축문화의 연장으로서, 일본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던 서구문화가 그대로 이식되던 시기였다. 이것은 우리의 근대건축이 형성될 시기였으므로, 우리의 진실한 건축적 기반이 조성되는 것을 방해하였으며, 나아가서는 8·15광복 후 다른 나라와 보조를 같이 하여 현대건축의 길을 여는 것을 막았다.

이 당시(1920∼30)는 일본의 건축계가 절충주의와 전위적인 서구건축의 시세션(secession) 유파의 건축이 횡행하던 시기이다. 이 당시의 일본 건축계의 사정이 바로 우리 건축계의 현실이었다. 이렇게 한국의 근대 건축은 일본인 또는 외국인의 손을 빌려서 일본인에 의하여 서구건축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의 대표적 건물로는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1912년 준공)·구 조선호텔(1914)·경성우체국(구 중앙우체국, 1915년 준공)·서울역(1925) 등이 있으며, 이들은 르네상스 건축의 아류(亞流), 또는 절충주의 건축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양식적 표현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합리주의적 건축의 최초 시도는 1927년 건립된 남대문 옆 구경성상공장려관(대한무역진흥공사 구사옥)이다.

이러한 경향의 건물이 일본에 출현한 시기는 한국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27년의 도쿄[東京]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 28년의 신주쿠[新宿] 무사시노관[武藏野館] 등인데, 이런 사실로 미루어 일본 건축의 식민지적 연장이 그대로 실현된 것을 알 수 있다.

8·15광복 이후 건축문화의 발전을 기대하였으나 식민지 후유증으로 인하여 모진 진통을 겪게 되어, 10년 남짓한 문화발전의 단절기가 오게 되었다. 말하자면 일본은 한국의 기후·전통·민족성을 무시한 채 그들 섬나라의 건축양식을 이식한 결과, 한국 민족만의 건축을 실현할 기회를 얻지 못한 혼란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1950년 6·25전쟁으로 건축문화가 단절되었고, 1955년부터 61년 군사혁명에 이르는 자유당 집권기는, 뒤늦게 개화를 본 국제 건축양식의 무비판적인 도입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정치적 혼란 및 경제적 빈곤으로 인하여 건설에 큰 기대를 걸 수 없었던 시기였지만, 운크라(UNKRA)와 유네스코(UNESCO)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서울 대방동에 740평의 국정교과서 주식회사의 인쇄공장이 건립되어 효시를 이루게 된 것은 의의 있는 일이었다.

1955년 김태식 작 국영 제1방송국, 정인국 작 인하공대 기공관 및 기숙사, 종합설계 작 공군본부 청사, 1956년 강윤 작 이화여대 강당, 송민구 작 동국대학 본관, 1957년 강명구 작 서울농대(수원) 기숙사 등은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한국의 근대 건축기술 발전의 시초로 볼 수 있다.

소재로 엮어진 기능 위주의 건물이기 때문에 특이한 차이가 있을 수 없는 한국적 형의 여러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1957년 르 코르뷔지에에게 수학하고 귀국한 김중업(金重業)의 작품으로 명보극장과, 현상설계를 모집하긴 했으나, 실제로는 이천승의 주관으로 설계된 구(舊)시민회관 설계가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작품들은 보다 참신한 건축양식을 띠었다.

1959년에는 ‘가장 기능적이고 이상적인 국회의사당,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으로서의 품격이 구현된 건축양식’을 내세워 국회의사당 현상설계를 모집한 결과, 재일교포로 구성된 박춘명·김수근·강병기·정경·정종태의 설계팀이 당선되었다.

1962년 위커힐 건물, 같은 해 을지로 입구 오양 빌딩(김수근 작)은 사무소 건축으로 새로운 경지를 보였는데 마감재료의 새로운 경향인 익스포즈드 콘크리트(exposed concrete)를 소재로 하여 새로운 면을 보였으며, 63년 마포아파트 건설은 주택공사의 주관 아래 새로운 도시주거 형태를 제시하였다.

1964년 김수근의 자유센터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저(김중업 작) 이후 2번째로 등장한 획기적 작품으로 대두되는 등, 보다 적극적인 건축발전을 보게 되었다. 1965년은 건축가의 직분이 확립되는 해였다.

건축사법이 공포된 지 2년 만에, 제1회 건축사자격시험을 개최하여 많은 건축사를 배출하였다. 1968~69년의 한국 건축의 특징은 점차적인 건물의 대형화·고층화 현상이다. 정부종합청사(21층), 조선호텔(20층), 대연각호텔(20층), 삼일빌딩(31층) 등이 세워졌다. 종합청사는 특이한 구조를 자랑하였고, 조선호텔은 상업건물로서 특이한 평면형과 모든 세부처리방법 등이 한국적 경지를 초원한 예로 들 수 있다.

1969년을 장식하는 건축군으로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서 보다 새로운 감각으로 주위환경에 조화하는 단지를 조성하였다. 1970년대 플라자호텔, 구 반도호텔 자리에 건설된 롯데호텔, 남산의 하얏트호텔과 1980년대에 대한생명63빌딩, 무역센터, 예술의 전당 등 국제적 수준의 건물들이 들어서서 건축 양상은 다채로워졌다. → 교회건축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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