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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1-26 (월) 08:36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200      
[삼국] 신라의 서화 (두산)
신라의 서화

고신라의 화적(畵跡)은 삼국 중 가장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1기의 벽화고분과 고분에서 드러난 단편적인 회화자료에 의하여 최소한의 수준을 헤아릴 수 있다. 벽화고분 1기는 순흥(順興)의 어숙술간묘(於宿述干墓)로서, 벽화는 널길[羨道]과 널방[玄室]의 벽면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이 박락되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돌문짝 표면의 인물상(人物像)과 연도 천장의 연화도(蓮華圖)뿐이다. 인물상은 얼굴과 손이 박락되어 완전한 모습은 알 수 없으나 발끝을 좌우로 벌리고 서 있는 입상(立像)이며 긴 저고리에 주름이 잡힌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다. 채색(彩色)은 적ㆍ흑ㆍ황ㆍ녹ㆍ자색 등으로 하였다. 돌문짝의 뒷면에는 ‘을묘년어숙지술간(乙卯年於宿知述干)’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여기 새겨진 을묘년은 서기 595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화도는 널길 천장에 그려져 있는데 연꽃잎의 끝은 뾰족하고 화판(華瓣)에는 꽃잎 맥이 그려져 있는 붉은색의 7엽 3중 연꽃 무늬이다. 이 연꽃 무늬는 8엽이 아니라 7엽인 점이 특이한데 의식적으로 7엽으로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수한 예술작품으로 그 형태는 백제ㆍ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벽화고분은 삼국시대의 신라벽화고분으로 유일한 것이며, 아름다운 채색과 가는 선으로 섬세하게 그린 벽화로 유명하다.

고분에서 드러난 단편적인 회화자료로서는 경주의 천마총(天馬塚)에서 발견된 자작나무껍질[白樺樹皮]로 만든 말다래에 그린 천마도(天馬圖)와 모자의 둥근 챙에 그린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 및 서조도(瑞鳥圖), 금령총(金鈴塚) 출토품인 모자 챙의 당초무늬[唐草文樣], 황남대총(皇南大塚) 출토품인 칠기(漆器)에 그려져 있는 우마도(牛馬圖) 등을 들 수 있다.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벌 겹쳐 격자형(格子形)으로 꿰매어 만든 말다래 위에 채색하여 그린 일종의 장식 그림이다. 중앙에는 하늘을 달리는 백마(白馬)를 그리고, 사방 주변에는 인동당초무늬띠[忍冬唐草文帶]를 돌렸다. 백색의 천마는 혀를 길게 빼고 갈기와 꼬리털을 휘날리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백마의 몸에는 반달 모양의 무늬가 부각(浮刻)되어 있고 앞가슴과 뒷발 사이에는 각각 갈구리 같은 것이 달려 있다. 천마는 매우 사실적이고 색채도 선명하다. 이 천마도는 주ㆍ흑ㆍ녹ㆍ백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기마인물도는 부채꼴의 자작나무 껍질 8장을 잇대어 둥글게 만든 모자의 챙에 그려져 있는데, 8장의 부채꼴 자작나무 껍질에 질주하는 기마인물을 그렸다. 그림은 윤곽을 먹선으로 그리고 말은 흰색과 갈색을 교대로 사용하여 그렸다. 말꼬리와 말굽의 표현은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狩獵圖)에 보이는 것과 아주 흡사하며 말에 탄 인물은 말의 달리는 모양과는 달리 곧게 앉아 있다.

서조도는 부채꼴의 자작나무 껍질 6장을 잇대어 만든 모자 챙에 그렸는데, 안쪽 둘레에는 단엽연화판(單葉蓮華瓣)을 돌렸고 각부채꼴 만에는 주작형(朱雀形)의 서조(瑞鳥)를 한 수(首)씩 그렸다. 서조의 몸은 모양이 모두 같으나 머리는 쥐 또는 새 모양을 하여 서로 다르다. 그림은 먹선으로 윤곽을 그렸고, 몸체는 주색과 황색으로 채색하였다. 서조의 날개가 반원형으로 올라간 것이라든지 머리에서 배에 이르는 선이 ‘S’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강서(江西) 중묘(中墓)의 주작도와 비슷하다. 금령총의 채화판에 그려진 당초무늬는 당초(唐草)의 줄기에 불꽃무늬 같은 것이 부각되어 있으며 주색과 흑색으로 그려져 있다. 경주의 황남대총에서 드러난 칠기판에 그려진 우마도는 흑색으로 칠한 면에 주색으로 윤곽을 뚜렷하게 그렸는데, 칠기판 윗단에는 소와 말이 서서히 걸어가는 모습을, 아랫단에는 또 다른 소 한 마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위에서 보아 온 고분벽화와 회화자료에 의하여 고신라에서도 고구려나 백제의 경우와 같이 회화작품이 활발히 제작되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솔거(率居)가 그린 황룡사의 노송도(老松圖), 분황사의 관음보살상, 단속사의 유마거사상(維摩居士像)이 있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백제나 고구려와 같이 고분벽화에서는 고분 구조상 벽화를 남기지 못했다.

다만 영풍군(榮豊郡:영주시) 순흥면에서 1971년에 발굴된 촌주(村主)인 어숙묘(於宿墓:石室)에서 연화무늬와 신장도(神將圖)가 발견되었다. 이 벽화는 6세기 말경의 것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73년 천마총(天馬塚)에서 발견된 천마도(天馬圖)는 마구(馬具)의 장니(障尼:말 배가리개)에 그린 것인데 2장이 한 벌로 되어 있는 것으로 패기에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역시 고구려 고분의 기마도를 연상케 하고 있어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있다.

한편 경북 고령군 고아동의 고분에서는 연화ㆍ운무늬의 벽화가 발견되었다. 이 벽화의 형태는 고구려의 것과 같으나 고분 구조는 백제의 형태를 따르고 있어 고분은 6세기 중엽 대가야의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 후의 화가로는 김충의(金忠義)와 승려 화가 정화(靖和)ㆍ홍계(弘繼)의 이름이 전해질 뿐이며, 현재 남아 있는 그림으로는 《화엄경(華嚴經)》 사경(寫經)의 《불보살상도(佛菩薩像圖)》(755)가 있다.

이 그림은 의본(義本) 등이 자주색 저지(楮紙)에 금은니(金銀泥)로 그린 것이다. 글씨는 통일 후 초기에는 왕희지(王羲之)체가 주축을 이루었는데 신라 최대의 명필가는 해동 필가의 조종으로 일컫는 김생(金生)이다. 그는 80평생(성덕왕 때) 서예에 활약, 원화첩이 있었으나 전해지지 않고, 고려 시대에 글씨를 모아 박은 집자비문인 백월서운탑비(白月栖雲塔碑)가 전해진다.

한편 석경(石經)으로는 《화엄경》 석경이 전해진다. 신라 말기에는 구양 순(歐陽詢)체가 유행하였는데 이 때의 화가로는 요극일(姚克一)과 최치원(崔致遠)이 대가로 꼽힌다. 1966년 석가탑 보수시에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751년(경덕왕 10)의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판 인쇄본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신라미술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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