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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5-12 (월) 16:46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519      
[근대] 성공회 강화성당 (김창수)
성공회 강화성당

유형문화재 제111호 1995.3.1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250

1890년 한국에 성공회가 전파된 후 1893년 영국인 왕남도(Leonard O. Warner)신부가 갑곶에서 회당 겸 사택을 매수하고 이곳에 전도를 시작하였다. 그후 왕신부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1896년 조마가(Mark. N. Trollpe)신부가 부임하여 강화읍에서 김마가(희준)를 전도하였다. 1897년에는 영화원이라는 보육원을 개설하고 서양의술로 많은 환자를 돌보았으며 1900년 이곳에 현재의 한식중층 건물을 완공하였다.

언뜻 한국의 전통 불교사원을 연상할 만큼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성공회강화성당은 한국교회 건축사에서 매우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1995년 경기도지방 유형문화재 111호로 지정된 성공회 강화성당은 한국적 건축자재를 사용해 바실리카풍과 한국전통양식을 조화롭게 절충시켜 한국교회사는 물론 건축양식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매우 특이한 교회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히고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을 전후해 건축된 당시의 다른 절충식교회와 몇가지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첫째 다른 절충식교회가 ㄱ자형태 등으로 남.녀구분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이 교회는 그런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두번째로 이 교회는 다른 절충식교회가 서양식 고딕과의 절충인데 반해 그 내부가 바실리카풍을 따르고 있다. 장방형의 건물이 여러개의 기둥을 통해서가운데 회중석과 측량으로 구분되었으며, 동쪽 끝에 후진이 있는 점이다. 이와함께 회중석지붕이 옆통로보다 높은점과 옆통로 지붕위에 고창층이라는 창문공간등은 바실리카풍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강화도성당은 길이가 약 35m, 너비가 15m이며, 전체 높이가 약 6m(아래층 3m, 윗층부터 꼭대기까지가 3m)로 기와 지붕의 2층형태를 띠고 있다. 겉에서 보기에 2층에 속하는 부분은 유리창으로 자연 채광을 받게 되어 있다.

60평 남짓한 내부는 가로.세로 40cm가 넓는 16개의 나무 기둥이 양쪽에서 윗쪽의 석가래를 받치고 있는데 쇠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고 있다. 성당 안 앞쪽과 뒷쪽에는 중국인 석공이 만들었다는 제대와 성천(세례를 베푸는 곳)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또한 앞쪽 제단의 왼쪽 기둥에는 칼과 도끼가 그려진 강화성당의 깃발이 걸려 있다. 한편 이 성당의 건물 전면에는 사찰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주련이 여러개 붙어 있으며, 성당의 앞쪽에는 한국식 범종과 보리수까지 자리잡고 있어 매우 독특한 인상을 준다.

성공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890년 코프(한국명고요한:1843∼1921)주교에 의해서였다. 1889년 11월 벤슨 캔터베리대주교에 의해 초대 한국교구장으로 임명된 코프주교는 한국선교에 필요한 준비를 한후 1890년 9월 의료선교사인 랜디스와함께 제물포항구에 도착했다.

이들 두 사람은 서울과 제물포를 오가며 교회-병원 설립, 영어학교와 영어성서반 운영하면서 선교에 힘쓰던 이들은 이후 강화도를 선교활동의 최적지로 판단, 강화도를 [한국의 이오나(Iona)]를 만들어 나갔다. 이후 강화도는 한국 성공회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강화도에는 한때 성공회 성당이 24개나 있었으며 지금은 12개 성당이 있다.

성공회의 강화도 선교는 1893년 워너신부가 갑곶에서 회당 겸 선교사 사택을 매입하고 전도지를 배포하면서 시작되었다. 워너신부에 이어 두번째로 부임한 트롤로프 신부는 250명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규모의 큰 교회를 구상하고 설계 및 계약은 물론 목재구입 등을 직접 했다고 한다.

이때 교회를 짓기 위한 목재는 백두산 기슭의 것으로 압록강을 경유하여 가져왔으며, 돌들은 제물포의 중국인 석재상을 통하여 구입했다고 전한다. 강화교회는 당시 궁궐을 짓던 도편수와 중국인 석공도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공사로 이루어졌다. 마침내 1900년 한국의 전통양식에 성공회 고유의 경건한 분위기를 살린 새 교회가 완성되었다. 강화성당은 "어느 스님이 지나가다 합장을 했다"는 말이 전할만큼 겉으로 한국의 전통사찰을 연상케 한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트롤로프신부가 김희준의 도움을 받아 성당을 완공한 이후 1914년에는 성당 뒤편에 성직자 양성기관인 성미가엘신학원(성공회대학의 전신)을 설립하는 등 한국성공회의 [못자리 교회]로 많은 교인들과 성직자를 배출했다. 트롤로프에게 처음 전도를 받은 김희준은 1915년 성미가엘신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되기도 했다.

출전 : 김창수의 기독교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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