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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5-12 (월) 23:27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038      
[근대] 선비 같은 소박한 교회 온수리성당 (이덕주)
선비 같은 소박한 교회 온수리 성당

강화읍에서 온수리(溫水里)로 가려면 '전등사' 표지판만 보고 가면 된다. 강화에 오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전등사라서 그런지 길도 시원하게 잘 뜷려 있다. 강화읍을 떠나 냉정리ㆍ두운리를 지나 문고개를 넘으면 길상 땅이다. 길상면에 들어서 길직 마을 구비를 돌면 우뚝 솟은 산이 눈에 들어온다. 강화 성산(聖山)의 하나인 정족산(鼎足山)이다.

'솥의 세 발'처럼 봉우리 셋이 있다고 해서 정족산이라 하였는데 아기를 보듬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억센 사내로부터 정절을 지키려는 처녀의 웅크린 모습 같다고나 할까? 한분에 보호 본능이 강하게 느껴지는 산세다. 전등사는 이 정족산 남쪽 치마폭 안에 오롯이 자리잡고 있다. 정족산이나 전등사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의 목적이 성공회 온수리 성당(정식 명칭은 온수리교회이다)이기에 눈길을 돌리기로 한다.

들어앉힌 집

온수리 성당을 찾아가는 길도 쉬운 편이 아니다. 산꼭대기에 우뚝 솟은 강화성당을 예상하고 가다간 성당 들어가는 입구를 놓치지 십상이다. '눈길을 위로 두고' 온수리로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 정족산 산자락에 막 건축을 끝낸 붉은 벽돌 교회가 한눈에 들어오고 거기서 조금 더 멀리 눈길을 주면 장흥 가는 길목에 역시 조그만 크기의 붉은 벽돌 교회당이 보이는데 온수감리교회와 여기서 갈라져 나간 온수중앙감리교회다.

두 교회 모두 우람하기는 한데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패'와 '방주'를 혼합시킨 '서양풍' 건물로 십자가만 없으면 영락없이 서울 독립문에 있던 '붉은 집' 같다. 두 교회 사이에는 전등사를 찾는 관광객들을 맞을 호텔과 술집들이 즐비하다. 온수리 성당은 이런 빌딩 형태의 건물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온수리 성당을 찾아가려면 '눈길을 아래쪽으로' 두어야 한다. 그래야 보인다. 초행자는 아예 그곳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이 안전하다.

온수리 성공회 성당은 온수감리교회 길 건너편 마을 한가운데에 있다. 도로변에 성당 입구 표지판이 있기는 하지만 눈에 잘 안 띈다.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한 굽이 지나면 비로소 한옥으로 된 아담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제법 규모가 큰 한옥 사제관들이 두어 채 있고 야트막한 고갯길을 오르면 정문에 이른다.

온수리 성당 정문은 강화성당의 외삼문(대문)처럼 솟을대문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가운데 지붕은 우진각으로 처리하여 조선 시대 성곽의 망루 같은 분위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솟을 지붕 아래 종을 매달고 사방으로 벽을 터서 종 소리가 퍼져나가게 꾸몄다. 일제 시대 이곳에는 영국 해군이 기증한 종이 달려있어 그 소리가 곱고 맑은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 종 역시 일제 말기에 '징발당해' 사라지고 말았다.

온수리 성당도 전체적으로 감상하려면 뒤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그러면 이 성당이 자리한 곳이 어떤 곳인지 한눈에 들어온다. 산꼭대기를 파내리고 교회 터를 잡은 강화성당과는 달리 온수리 성당은 언덕 정수리를 비켜서 언덕 자락에 터를 잡았다. 일제 시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집을 짓는데 한국의 전통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등에 업고 개울을 앞쪽에 두는)로 터 잡는 법을 무시하고 땅의 정기가 모여 있는 정수리를 깔아뭉개고 그 위에 집을 얹는 무식하고(?) 당돌한 건축술에 '조선 목수'들이 놀라곤 했다. 강화성당이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온수리 성당은 비록 얕은 언덕이긴 하지만 언덕 기슭에 터를 잡았으니, '집을 앉힌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그런데 같은 영국 신부들이 지은 것인데도 강화성당과 달리 온수리 성당이 이처럼 언덕 마루가 아니라 기슭에 자리잡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지금 성당 오른쪽 언덕엔 본래 무덤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언덕 위에 집 짓기를 좋아하는 영국인들이었지만 차마 남의 무덤을 파 엎으면서까지 교회를 지을 수 없었는지 무덤이 없는 북쪽 기슭으로 비껴앉아 터를 닦은 것이다. 무덤만 없었더라면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언덕 정수리를 깔아뭉개고 교회를 얹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교회보다 먼저 이곳 언덕에 자리잡은 '죽은 조상'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죽은 조상들'이 누워 있던 자리, 뒤쪽 언덕으로 가서 성당을 보면 '앉힌 건물'이라 편안하고, 성당 지붕 위로 멀리 정족산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잇대어 보이는 것이 산수화 같아 아늑하다. 그리고 언덕에서 뒤로 돌아 반대쪽, 동남편으로 눈길을 돌리면 너른 초지(草芝)들판이 보이고 염하 물줄기와 서해 바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소박하고 토속적인 성전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온수리 성당의 아름다움은 그 소박함에 있다. 규모 면에서 정면(전통 건물로 치면 측면) 3칸, 측면 9칸, 도합 27칸 되는 일자형(一字型) 전통 한옥으로 지은 성당은 40칸 규모의 강화성당에 미치지 못하고 지붕도 단층 팔작지붕으로 평범하다. 지붕 용마루 양쪽 치미의 십자가 장식과 지붕 양쪽 끝 합각 벽면에 벽돌로 새긴 십자 장식을 빼놓으면 향교나 관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건물 형태다.

지붕에 공포 장식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단청도 칠하지 않았으며 들보나 서까래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다. 궁궐 부속 건물 같던 강화성당처럼 화려한 장식은 찾아볼 수 없다. 강화성당이 궁궐 드나드는 대감 같다면 온수리 성당은 낙향한 선비가 글 읽는 것 같고, 강화성당이 한껏 차려입은 정경부인 같다면 온수리 성당은 밭일 마치고 돌아와 손 씻고 부엌에 들어가는 시골 아낙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 성당은 언제 찾아와도 문이 항상 열려 있어 더욱 좋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아늑한 어머니 품속 같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온수리 성당 내부는 강화성당과 마찬가지로 '바실리카' 양식을 취하고 있다. 열두 사도를 상징하는 열두 개 기둥으로 지성소와 회중석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강화성당 구조와 달리 측랑이 없고 회중석 가운데 복도가 남ㆍ녀 석을 구분하고, 후진이나 고창층 같은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은 생략되었다.

그리고 지성소가 전체 면적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강화성당과 달리 온수리 성당의 성소는 전체 면적의 6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아 '회중 중심'의 교회 건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천장을 흰 회벽에 들보와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나게 장식하여 전통 한옥의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나, 가운데 가로 들보들과 내림 기둥 모서리마다 당초문 무늬가 새겨진 나무 조각판들을 부착시킨 것에서 토착적인 멋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회중석 위에 있는 중인방 들보를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 굽은 나무들로 올린 것이 소박한 멋을 느끼게 한다. 지성소는 동양 전통의 제단 양식을 본떠 3단으로 꾸며졌고 처음 성당이 건축되었을 때는 제단을 덮는 보에 한자로 '성(聖)'자를 세 자 수놓아 지성소임을 표시했으나 지금은 노란 비단에 남색 띠를 영대(靈帶)처럼 늘어뜨린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소박하고 순수한 토착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온수리 성당의 멋이다. 백두산에서 아람드리 소나무를 가져오고, 서울에서 경복궁을 지었다는 도목수를 데려오고, 인천에서 중국인 석수를 데려다 지은 강화성당과 달리, 온수리 성당은 이곳 교인 집 뒷산에서 베어온 소나무를 이곳 목수들이 다듬고, 이곳 흙으로 구운 기와를 이곳 사람들이 올려 지은 집이기에 훨씬 토속적이다.

(이상 67쪽까지, 미완)

출전 : 이덕주, [눈물의 섬 강화이야기], 대한기독교서회, 2002, 57~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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