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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28 (수) 13:39
분 류 사전1
ㆍ조회: 1177      
[조선] 노론 (민족)
노론(老論)

관련항목 : 붕당정치, 동인, 서인, 남인, 북인, 소론

조선 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분당 배경]

서인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정권을 잡고 정사공신(靖社功臣) 김류(金濫)가 영도한 훈서(勳西) 또는 공서(功西)와, 반정을 관망했던 김상헌(金尙憲)이 영도한 청서(淸西)로 양분되었다, 그러나 훈서는 노서(老西)로, 청서는 소서(少西)로 다시 개편되었다.

둘로 갈라진 서인세력은 인조 말에 이르러 훈서파는 원두표(元斗杓)의 당인 원당(元黨)과 김자점(金自點)의 당인 낙당(洛黨)으로 다시 분파되었다.

청서파는 사림의 청의(淸議)를 주장하는 사류들이 중심이 된 산당(山黨)과 권세에 아부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한 한당(漢黨)으로 분립되어 서인은 사분되었다.

그러나 효종ㆍ현종 때에 송시열(宋時烈)을 중심으로 서인이 다시 규합되어 서인 일당이 되었다. 노론은 숙종 때 규합된 서인에서 분파된 것이다.

분당의 계기는 1680년(숙종 6) 당시 영의정이었던 탁남(濁南)인 허적(許積)의 유악남용 사건(油幄濫用事件)과, 서인 김석주(金錫胄)와 김익훈(金益勳)에 의해 고변된 허적의 서자 허견(許堅)의 역모 옥사로 남인이 대거 숙청된 이른바 경신환국 후, 정권을 잡은 서인간의 지도권 쟁탈전에서 비롯되었다.

1683년 노장파인 김익훈 등의 강력한 남인 탄압에 반대한 소장파 한태동(韓泰東) 등이 김익훈을 탄핵, 상소하여 발단하였다. 당시 송시열 등 노장파는 김익훈에 대한 탄핵 상소에 반박해 소장파와 대립하였다. 특히 송시열은 그 문인인 윤증(尹拯)과의 불화로 분파 작용을 가속화시켰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노장파를 노론이라 하고, 한태동을 중심으로 하는 소장파를 소론이라 불렀다. 노ㆍ소론에 속하는 당인은 원래 예학(禮學)의 태두 김장생(金長生)의 문인들로 구성되었다.

즉, 청의를 생명으로 하는 산림(山林) 사림들의 정치 집단이었던 산당(山黨)에 속했던 서인들이었다. 당시 노론의 지도적 인물은 [표 1]과 같다.

[노ㆍ소론의 정쟁]

정권을 잡은 노론은 1689년 희빈 장씨(禧嬪張氏) 소생 왕자 윤(浮)의 세자책봉에 반대한 송시열ㆍ김수흥(金壽興)ㆍ김수항(金壽恒) 등이 물러나고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잡은 이른바 기사환국 때까지 약 10년 간 정권을 유지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를 계기로 소론이 다시 정권을 잡았으나, 숙종 말이래 정국은 노ㆍ소론의 정쟁이 중심을 이루었다. 즉, 경종ㆍ영조 때에는 노ㆍ소론의 당세가 정국을 양분하는 형상이 되었다.
경종ㆍ영조 때의 노론 출신 4대신이 당시 노론의 당세를 말해주는데, 경종 대의 4대신은 김창집(金昌集)ㆍ이건명(李健命)ㆍ이이명(李蓬命)ㆍ조태채(趙泰采) 등이다. 또한, 영조 대의 4대신을 들면, 민진원(閔鎭遠)ㆍ이관명(李觀命)ㆍ정호(鄭澔)ㆍ홍치중(洪致中)이다.

그 뒤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莊獻世子 : 思悼世子)의 폐위와 사사 사건으로 노론은 벽파(僻派)와 시파(時派)로 갈라졌다. 소론은 시파에 속했는데, 시파는 장헌세자의 불행한 죽음에 동정하는 당파이며 벽파는 세자의 죽음을 당연한 처사라고 주장하는 당파이다. 영조 말의 벽파ㆍ시파의 중심 인물을 보면 [표 2]와 같다.

[노론의 독주]

시파와 벽파의 대립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영조 말에는 벽파가 우세했으나 정조 때에는 시파가 득세하였다. 그러나 순조가 즉위한 뒤 벽파인 김한구(金漢耉)의 딸 영조 계비 김씨(貞純王后)가 섭정하여 벽파가 다시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을 계기로 시파인 노론 일부와 소론, 그리고 이에 동조했던 남인세력이 몰락, 노론 독주시대가 전개되었다. 또, 노론의 시파ㆍ벽파의 싸움은 의리를 위한 정쟁이 아닌 인물과 문벌 중심의 세력 다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물성동이론]

노론 중에는 성리설(性理說)을 에워싸고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權尙夏)의 문인 즉, 한원진(韓元震)과 이간(李柬) 사이에 학문적ㆍ이론적 대립이 발생하였다. 즉,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논쟁에서 사람과 동물의 성(性)이 다르다고 주장한 한원진설을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 또는 호론(湖論)이라고 하고, 사람과 동물의 성이 같다고 주장한 이간의 설을 인물성동론 또는 낙론(洛論)이라고 한다.

전자는 한원진의 설을 지지하는 학자가 충청도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후자는 이간의 설을 지지하는 학자가 서울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이 호론과 낙론의 대립은 주자학계에 큰 파문을 던졌을 뿐만 아니라 벼슬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론의 세력은 조선 말기까지 유지되었다. →소론

≪참고문헌≫

肅宗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純祖實錄, 燃藜室記述, 涇憂錄, 黨議通略, 李朝黨爭史硏究(姜周鎭, 서울大學校出版部, 1971), 韓國政爭志(幣原坦, 三省堂, 1927), 韓國黨爭史(成樂熏, 韓國文化史大系 2, 1965), 禮訟과 老少分黨(姜周鎭, 亞細亞學報 5, 1968), 朝鮮後期 朋黨論의 展開와 그 性格(鄭萬祚, 朝鮮後期 黨爭의 綜合的 檢討,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2), 朝鮮後期 老少論의 對立과 그 政論(李銀順, 朝鮮後期 黨爭의 綜合的 檢討,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2).

<홍순창>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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