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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6-24 (월) 09:51
분 류 사전1
ㆍ조회: 1321      
[조선] 남인 (민족)
남인(南人)

관련항목 : 붕당정치, 동인, 서인, 북인, 노론, 소론

조선 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동인의 남북 분당(南北分黨)은 서인(西人) 정철(鄭澈)의 세자 책봉 문제를 계기로 동인의 내부에서 일어난 강경파 이발(李潑)과 온건파 우성전(禹性傳)과의 대립에서 기인되었다.

[분당 배경]

정철에 대한 강경한 처벌을 요구하는 학대파 이산해(李山海)와 온건적인 불학대파 우성전의 대립, 그리고 전랑(銓郎) 천거 문제를 에워싼 이산해와 유성룡(柳成龍)과의 알력, 이발과 우성전과의 사이에 평양기생 문제를 계기로 발생한 사감 등 여러 가지 분파 원인을 들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분당된 것으로 보인다. 동인이 남인ㆍ북인으로 분당된 것은 집권당 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명칭의 유래]

분열, 대립된 양파 중 이발ㆍ이산해를 추종한 동인의 일파를 북인이라 지칭하였다. 이에 대해 우성전ㆍ유성룡을 수령으로 추대하는 동인 일파를 남인이라고 불렀다. 그 유래는 우성전의 집이 서울 남산 밑에 있었고, 유성룡은 영남 출신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초기 남인의 중심 세력은 이이(李珥)와 교우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이원익(李元翼)ㆍ이덕형(李德馨)을 제외한 대부분이 이황(李滉)ㆍ조식(曺植) 문하의 영남학파 출신이었다. 이들을 도표로 표시하면 [표 1]과 같다.

[남인 정권]

남인은 북인과 갈린 이후, 이황 문인 우성전ㆍ유성룡ㆍ김성일(金誠一) 등을 중심으로 한 때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조식의 문인으로 북인인 정인홍(鄭仁弘)이 1602년 유성룡을 임진왜란 때 화의를 주장했다는 죄로 탄핵, 사직하게 한 다음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 때 서인은 남인인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영입해 남인과의 유대 관계를 맺었다. 인조 때의 당파 세력은 서인을 주체로 한 남인과의 연합세가 중심이었고, 북인 중의 소북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인조 때의 남인은 유성룡의 문인 정경세(鄭經世)를 중심으로 당시의 영의정 이원익을 비롯, 선조ㆍ광해군 이래 남인의 일원이었던 이광정(李光庭)ㆍ이성구(李聖求)ㆍ이준(李埈)ㆍ장현광(張顯光), 그리고 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고 사간원ㆍ정언을 역임한 바 있는 정구(鄭逑)의 문인 정온(鄭蘊)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시기의 남인은 서인과의 유대 관계가 점점 이완, 알력이 점차 표면화되었다. 효종ㆍ현종 때에 이르러 남인은 서인에 대항하기 위해 소북의 잔당을 규합, 남인당을 재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효종 대 이후 정계는 남인ㆍ서인의 대립 형국을 이루게 되었다. 당시의 남인 지도자는 [표 2]와 같다.

[탁남과 청남]

재규합된 남인은 숙종 때 효종의 상에 대한 조대비(趙大妃)의 복상(服喪) 문제, 즉 1659년 기해예론으로 일대 정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정쟁을 통해 서인은 물러가고, 그 대신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 때 서인에 대한 처벌의 완급을 둘러싸고 남인은 다시 온화파와 과격파로 분립되었는데, 전자를 탁남(濁南), 후자를 청남(淸南)이라 부르게 되었다.

허적(許積)을 수령으로 하고 있는 탁남파에는 숙종 때 폐비 문제로 사약을 받은 우의정 민암(閔睦), 경신환국 때 희생된 좌의정 민희(閔熙), 이 때 유배되어 사사된 우의정 오시수(吳始壽)를 비롯, 목창명(睦昌明)ㆍ유명천(柳命天) 등이 그 중심 인물이었다. 이와 대립된 청남파는 서인의 죄를 강력하게 추궁해 문죄하자는 과격파였다. 수령 격인 허목(許穆)을 비롯, 윤휴(尹鑴)ㆍ홍우원(洪宇遠)과 영의정을 역임한 권대운(權大運), 대사헌을 지낸 이봉징(李鳳徵), 경기감사를 역임한 이옥(李沃), 허견사건(許堅事件)에 연루된 오정위(吳挺緯) 등이 이에 속한다.

이후 탁남과 청남으로 갈라져 대립된 두 세력은 노론과 소론과의 정쟁을 위해 남인당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경종 이후 조선 말기까지 남인 집권기는 도래하지 않은 채 정계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이 때 규합된 남인의 중심 인물은 [표 3]과 같다. 정계에서 배척 당한 남인들은 고향에서 학문과 교육에 전념, 뛰어난 많은 학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 후기 사대부 문화를 대변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북인

≪참고문헌≫

朋黨論(李翼), 燃藜室記述, 黨議通略(李建昌), 李朝黨爭史硏究(姜周鎭, 서울大學校出版部, 1971), 韓國政爭志(幣原坦, 三省堂, 1907), 韓國黨爭史(成樂熏, 韓國文化史大系 2,1965), 禮訟과 老少分黨(姜周鎭, 亞細亞學報 5, 1968), 禮訟의 諸學派와 그 論爭(柳正東, 韓國哲學史(中), 東明社, 1978), 朝鮮後期 禮訟硏究(池斗煥, 釜大史學 11, 1987), 第一次禮訟과 尹善道의 禮論(李迎春, 淸溪史學 6, 1989), 服制禮訟과 政局變動-第二次 禮訟을 中心으로-(李迎春, 國史館論叢 22, 1991), 朝鮮時代 朋黨論의 展開와 그 性格(鄭萬祚, 朝鮮後期 黨爭의 綜合的 檢討,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2), 17세기의 禮訟과 黨爭(李成茂, 朝鮮後期 黨爭의 綜合的 檢討,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2).

<홍순창>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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