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24 (수) 14:08
분 류 사전1
ㆍ조회: 1227      
[조선] 무과 (민족)
무과(武科)

관련항목 : 문과, 과거

조선 시대에 무관을 임용하기 위해 실시된 과거. 고려 시대도 1109년(예종 4)부터 1133년(인종 11)까지 24년 간 무과가 실시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관들의 반발로 없어졌다가 1390년(공양왕 2) 다시 무과를 설치할 것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고려 시대는 무과가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활발하게 실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무과에는 문과와 마찬가지로 3년에 한번씩 정규적으로 실시되는 식년무과(式年武科)와 그 밖에 임시로 특설되는 증광시(增廣試)ㆍ별시(別試)ㆍ알성시(謁聖試)ㆍ정시(庭試)ㆍ춘당대시(春塘臺試) 등 각종 비정규 무과가 있었다.

식년무과는 식년문과와 같이 초시(初試)ㆍ복시(覆試)ㆍ전시(殿試) 등 세 단계의 시험이 있었다. 초시는 식년(子ㆍ卯ㆍ午ㆍ酉에 해당하는 해)의 전해 가을에, 복시와 전시는 식년 봄에 실시되었다. 초시에는 원시(院試)ㆍ향시(鄕試)가 있어 원시는 훈련원(訓鍊院)이 주관해 70인을 선발하고, 향시는 각 도의 병마절도사가 주관해서 모두 120인을 선발하였다.

처음에는 목전(木箭)ㆍ철전(鐵箭)ㆍ편전(片箭)ㆍ기사(騎射)ㆍ기창(騎槍)ㆍ격구(擊毬) 등 6기(技)를 고시했으나, ≪속대전≫ 이후는 목전ㆍ철전ㆍ편전ㆍ기추(騎芻)ㆍ유엽전(柳葉錢)ㆍ조총(鳥銃)ㆍ편추(鞭芻)를 고시하였다.

초시의 시험 장소는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시험 장소인 각 소(所)마다 2품 이상 1인과 당하관(堂下官)인 문관 1인, 무관 2인을 시관(試官)에, 감찰(監察)을 감시관(監試官)에 임명하였다. 복시는 식년 봄에 초시 합격자를 한성에 모아 병조와 훈련원이 주관해 강서(講書)와 무예를 고시, 28인을 선발하였다. 그러나 식년시 28인이라는 규정은 문과와 달리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훨씬 더 많은 인원을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후기에 오면 식년무과에서 몇 백인을 뽑는 예가 잦았으며, 1894년 마지막 식년무과에서는 1,147인, 문과에서는 57인을 뽑았다.

복시의 시관에는 2품 이상의 문관 1인과 무관 2인, 당하관인 문관 1인과 무관 2인이, 감시관에는 양사(兩司)에서 각각 1인씩이 임명되었다. 전시는 처음에 기격구(騎擊毬)ㆍ보격구(步擊毬)로 시험했으나, 뒤에는 11기(技) 중의 1기 내지 2기로써 등급을 정해 갑과 3인, 을과 5인, 병과 20인 등 모두 28인을 선발하였다. 시관은 복시와 같았으나 다만 의정(議政) 1인을 명관(命官)으로 추가하였다.

한편, 식년 이외에 실시된 각종 별시무과에서는 증광시를 제외한 대개의 경우, 각 지방별로 행하는 초시가 생략되었다. 심할 경우에는 단 한 차례의 시험으로써 급제자를 뽑기도 하였다. 또, 이들 각종 별시무과에서는 뽑는 인원도 일정하지 않았다. 대체로 식년시 규정인 28인보다 훨씬 초과하는 경우가 많아 보통 몇 백인, 심한 경우는 몇 천에 달하기도 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정시의 3,200인, 1620년 정시의 5,000인, 1637년(인조 15) 별시의 5,500인의 급제자를 뽑았던 예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1676년(숙종 2)의 정시에서는 1만 8251인을 뽑아 이른바 만과(萬科)라는 명칭을 낳기도 하였다. 그 결과 조선시대 무과급제자의 총수가 15만인을 초과하기에 이르렀다(문과급제자의 총수는 약 1만 4500인).

한편, 무과의 응시 자격은 애초 규정과는 관계없이 크게 완화되어 서자(庶子)는 말할 것도 없고 천인들도 면천(免賤)이라는 절차를 밟아 얼마든지 응시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무과의 위상은 문과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미천한 사람들만이 무과에 진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미천한 사람들이 대거 진출했고, 그에 대한 사회적 의의가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좋은 가문의 출신들도 많이 진출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문과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經國大典, 大典會通, 學制와 科擧制(曺佐鎬, 한국사 10, 국사편찬위원회, 1974), 韓國의 科擧制度(李成茂, 한국일보社, 1976), 李朝後期의 武科運營의 實態에 관하여-丁茶山의 五亂說을 中心으로-(宋俊浩, 全北史學 1, 1977), 朝鮮初期 武科制度硏究(尹薰杓, 學林 9, 1987), 朝鮮初期 武科制度(沈勝求, 北岳史論 1, 1989).

<송준호>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윗글 [고려/조선] 잡과 (민족)
아래글 [조선] 과거 참고문헌 (민족)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3000 사전1 [알림] 이후의 내용은 '한국사 사전 2'에 이어집니다. 이창호 2010-07-05 2036
2999 사전1 [조선] 김우명의 졸기 (숙종실록) 이창호 2002-11-03 2414
2998 사전1 [조선] 김우명 (한메) 이창호 2002-11-03 2052
2997 사전1 [조선] 김우명 (두산) 이창호 2002-11-03 2003
2996 사전1 [조선] 김우명 (민족) 이창호 2002-11-03 2024
2995 사전1 [조선] 김육의 졸기 (효종실록) 이창호 2002-11-03 2074
2994 사전1 [조선] 김육 (한메) 이창호 2002-11-03 2039
2993 사전1 [조선] 김육 (두산) 이창호 2002-11-03 2167
2992 사전1 [조선] 김육 (민족) 이창호 2002-11-03 2547
2991 사전1 [조선] 회니시비-송시열과 윤증 (김갑동) 이창호 2002-11-03 3258
12345678910,,,30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