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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11 (금) 22:51
분 류 사전1
ㆍ조회: 1132      
[고려/조선] 광대 (민족)
광대(廣大)

탈놀이·인형극 같은 연극이나 줄타기·땅재주 같은 곡예를 하는 사람, 또는 판소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 배우·배창(俳倡)·극자(劇子)라고도 불린다.

≪고려사≫의 〈전영보전 全英甫傳〉(1451)에는 광대란 가면을 쓰고 놀이하는 사람(假面爲戱者)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였고, ≪시용향악보≫(1504)의 〈나례가 儺禮歌〉에서는 가면을 가리키고 있다.

또, ≪훈몽자회≫(1527)에서는 괴뢰(傀儡), 즉 ‘꼭두각시’를 가리키고, ≪역어유해 譯語類解≫(1690)에서는 가면을 가리키는 말로 풀이하여 목우(木偶)와 가면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민속극에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각시광대’·‘양반광대’ 등으로 가면연희자를 가리키며, 영남지방의 낙동강 서쪽 일대에서도 〈가산오광대〉·〈통영오광대〉 등으로 가면극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전하고 있다.

≪문종실록≫(1451) 6월조에 보면 광대들의 놀이로 규식지희(規式之戱)와 소학지희(笑謔之戱)·음악(音樂)의 셋으로 크게 나눈 것을 볼 수 있고, 18세기 후반에 송만재(宋晩載)가 지은 〈관우희 觀優戱〉에는 광대들의 놀이가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즉, ① 가곡·음률·별곡, ② 판소리 열두마당, ③ 줄타기, ④ 땅재주, ⑤ 정재놀음〔舞樂〕과 가면무, ⑥ 관원(官員)놀이·검무, ⑦ 소학지희, ⑧무가(巫歌), ⑨ 꼭두각시놀음〔傀儡戱〕 등이다.

이러한 광범위한 판놀음의 내용은 광대들 중에 소리하는 사람〔廣大〕과 재비〔樂士〕와 줄타기와 땅재주하는 사람〔才人〕의 분업을 낳게 되어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 京都雜志≫에는 유가(遊街)에 세악수(細樂手)·광대·재인을 대동한다고 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호남지방 당골무당집안의 남자들 중에 많은 명창들이 배출되었는데, 그들 중 성대가 나빠서 ‘소릿광대’되기가 어려우면 기악을 배워서 ‘재비’가 되고, 그것도 재주가 없으면 줄타기를 배워서 ‘줄쟁이’가 되거나, 땅재주를 배워서 ‘재주꾼’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굿판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는 ‘방석화랑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소릿광대가 제일 지체가 높았다. 1824년에 제출되었던 〈완문등장팔도재인 完文等狀八道才人〉이나, 1827년에 제출된 것으로 보이는 〈팔도재인등등장 八道才人等等狀〉에 따르면 광대들이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 사신이 올 때에 그 영접행사에 동원되어 백희(百戱)를 놀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임진·병자의 양란 이후 조정의 악사가 크게 줄어들어 각 고을의 광대들을 징발해서 해마다 몇 명씩 봉상(捧上)하게 되자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광대들의 자치기관인 무계(巫契)를 전국적인 규모로 조직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조직은 각 고을의 재인청(才人廳 : 廣大廳·花郎廳·神廳이라고도 함.)에서 비롯하는데, 천인이며 무당의 남편인 그 고을의 광대는 재인청에 소속되어 원님 행차의 선두에서 삼현육각을 연주하고 잔치 때에는 여러 가지 노래와 재주〔曲藝〕를 놀았다.

고을의 재인청에는 청수(廳首)라고 하는 우두머리가 있고, 그 밑에 공원(公員)과 장무(掌務)가 있어 서무를 맡았다.이러한 각 고을의 재인청이 모여 각 도에 대방(大房)을 두고, 그 밑에 좌도도산주(左道都山主)와 우도도산주가 있으며, 다시 그 밑에 집강(執綱)·공원·장무를 두어 서무를 맡겼다.

이 팔도의 도청이 전국적으로 모여 팔도도대방·팔도도산주·도집강·도장무 등 여러 소임을 두고 지방의 향연으로부터 서울에서의 모든 연예적인 행사에 참가시켰다. 이렇게 그들은 천민집단이면서 관료의 봉건체제를 갖추었고, 그 소임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관아와 사대부의 사랑(舍廊)·회갑연·유가(遊街 : 과거에 합격한 후 친척들을 돌보는 일)·소분(掃墳 : 조상의 분묘에 참배하는 것)·문희연(聞喜宴 : 과거에 합격한 자가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잔치) 등에 불려가 판소리와 각종 놀이를 펼쳤다.

또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에 보면 광대들은 봄·여름이면 고기잡이를 좇아 어촌으로 모여들고, 가을·겨울이면 추수를 바라고 농촌으로 쏠렸고, 이 밖에 창촌(倉村)과 사찰 등에서 각종 민속연예를 놀고 그 대가로 행하(行下)를 받으면서 각지를 순회하였다.

특히 그들이 조정의 나례나 산대잡희(山臺雜戱)를 하기 위해 선출되어 서울로 내왕할 때에는 호조에서 만들어 나누어준 도서(圖書 : 원래 인장의 뜻이나 일종의 증명서)를 가지고 전국의 관아와 절 등을 돌면서 걸량(乞糧)이라는 비용을 받았다.

이러한 광대들의 생태는 조선조 후기 이래 1920년대까지도 우리 나라 농어촌과 장터를 돌아다니며 민중오락을 제공해 왔던 사당패나 나중에는 굿중패 또는 남사당이라고 불리던 유랑연예인들로부터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의 주요 공연종목은 풍물(농악)·버나(대접돌리기)·살판(땅재주)·어름(줄타기)·덧보기(가면무극)·덜미(꼭두각시놀음) 등으로 재인광대들의 이른바 가무백희의 전통을 이어받은 후예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조 말엽 판소리가 크게 성행해서 양반은 물론 궁중에서까지 판소리의 판이 벌어짐에 따라서 광대라고 하면 흔히 ‘판소리에서 창을 부르는 직업적인 예능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신재효(申在孝)는 〈광대가〉에서 인물·사설·득음·너름새 등 네 가지를 광대가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로 꼽았다.

판소리를 부르는 광대는 창을 위주로 하는 ‘소릿광대’, 아니리와 재담을 위주로 하는 ‘아니리광대’, 용모와 발림 등 연극적인 개념을 중시하는 ‘화초광대’ 등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하는데, 소릿광대를 가장 바람직한 광대로 평가하고, 아니리광대는 광대를 낮게 평가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국창·명창·상투제침·또랑광대와 같이 그 명성과 기예에 따라 서열을 두고 있었다고도 하는데, 창의 실력과 수준이 낮아서 겨우 한 고을에서나 행세하던 광대를 ‘또랑광대’라 하고, 직업적으로 여러 고장으로 불려 다니던 광대를 ‘명창’이라고 했다.

그리고 ‘상투제침’은 원래 소년명창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명창과 또랑광대의 중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국창’은 명창 중에서 ‘전주대사습’이라는 경연대회에서 장원을 하거나 궁중으로 불려가서 판소리를 하는 기회를 얻었던 사람에게 붙여준 명칭이었다. 국창에게는 감찰·통정 등의 벼슬이 주어졌다.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에는 판소리를 잘 불렀던 광대들의 이름이 특징적인 창법과 함께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이들의 출신 지방을 보면 호남지방이 대부분이고 충청도·경상도 출신이 약간 있고 경기도는 한 명 뿐이다.

판소리광대는 권삼득(權三得)과 같이 양반출신도 있지만 대개는 하층계급에서 나왔으며, 특히 무당의 남편인 ‘화랑이’에서 훌륭한 명창이 많이 나왔다. 양반 출신의 광대를 ‘비개비’ 혹은 ‘비갑이’라고도 부른다.

≪참고문헌≫

朝鮮唱劇史(鄭魯湜, 朝鮮日報社 出版部, 1940), 韓國音樂硏究(李惠求, 國民音樂硏究會, 1957), 韓國歌謠의 硏究(金東旭, 乙酉文化社, 1961), 韓國假面劇(李杜鉉, 文化財管理局, 1969), 國文學史(金東旭, 日新社, 1976), 韓國演劇史(李杜鉉, 學硏社, 1985).

<백대웅>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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