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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10 (토) 09:13
분 류 사전1
ㆍ조회: 2066      
[농업] 조선 초기의 농업 (민족)
농업(조선 초기의 농업)

세부항목

농업
농업(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농업)
농업(상고시대의 농업)
농업(고려시대의 농업)
농업(조선 초기의 농업)
농업(조선 중기의 농업)
농업(조선 후기의 농업)
농업(조선 말기의 농업)
농업(일제강점기의 농업)
농업(광복 후 농업)
농업(참고문헌)

조선 초기 농업 정책의 핵심으로 전제의 개혁을 내세우고 새 왕조를 개창한 태조는 토지제도의 개정과 아울러 그에 부수하는 세제의 강화, 그리고 여러 방면의 권농정책과 수리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태종 때에는 양전(量田)을 다시 실시하고 벽골지의 중수를 명하였으며, 농잠서(農蠶書)의 번역 및 간행도 있었다.

세종 때에는 측우기의 발명, 역서(曆書) 간행, ≪농사직설 農事直說≫의 반포, ≪구황벽곡방 救荒陽穀方≫의 간행 등이 있어 농업기술향상에 공헌이 컸다.

문종 때에는 수리(水利)·방천(防川)·저수(貯水) 등의 계획이 있었고, 단종 때에는 마목장(馬牧場)의 설치와 잠종 배부의 거사가 있었으며, 세조 때에 와서는 양잠장려, 제언(堤堰)의 수리, 농서의 간행, 축산장려 등 여러 가지 실천이 있었다. 뒤이어 성종 때에도 교서발포와 친잠(親蠶) 등 양잠장려, 농기구제조 등 권농사업이 매우 활발하였다.

이와 같이 초기의 농정은 자못 활기를 띠어왔으나 연산군 때의 실정(失政)을 계기로 농정의 문란이 눈에 띄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중종 때에 가서도 제언은 황폐한 것이 많아 개수를 엄명하기도 하였으며, 각 도에 버려진 아이가 많아 거두어 기르기를 명하기까지 하였다. 중종 때에는 권농교서가 자주 나왔고 농잠서의 언해(諺解) 간행, 그리고 향약법(鄕約法)의 제정이 있었다.

대체로 보아 조선 초기의 활발상은 집권의 강화와 재정확보를 위한 토지제도 및 그에 따르는 세제의 확립과 아울러 농본주의를 뒷받침할 권농책의 조밀한 강구에 힘입은 바 크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빈번한 흉농에 대한 대책도 적지 않은 과업이어서 의창제(義倉制)·사창제(社倉制)·진휼청(賑恤廳) 같은 흉년에 대비하여 곡식을 쌓아두는 저곡제도(貯穀制度)와 진대제(賑貸制)가 있었으며, 흉년의 대용식 조리방법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구황벽곡방≫ 등 언해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세종 때의 과학기술진흥은 직접·간접으로 농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칠정산 七政算≫ 내·외편으로 확립된 역법의 실시와 측우법(測雨法)의 개발은 농사지도와 수리사업에 직결되었을 것이다.

당시의 각종 농서와 문헌으로 볼 때에 당시의 벼재배는 건삶이〔乾耕:乾畓直播法〕·무삶이〔水耕:直播法〕·모내기법·밭벼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무논에 볍씨를 직접 파종하여 벼를 기르는 법과 마른 논에 파종하여 마치 밭벼와 같이 벼모를 가꾸다가 장마 때에 물을 가두어 무논에서와 같이 재배하는 건답법이 많이 행하여졌으며, 모내기법은 별로 보급되지 않았다.

모내기는 벼재배면적의 10분의 1을 묘판, 즉 못자리로 만들어 가려낸 볍씨를 뿌려 모를 키우고, 모를 낼 때에는 포기당 3, 4낱모를 넘지 않게 하였으며, 뿌리를 내릴 때까지 물을 깊이 대지 않았다. 그리고 높은 곳이나 물이 찬 곳에는 밭벼를 권장하였으며, 실농을 막기 위하여 피와 팥과 함께 혼작하는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밭작물의 경작방식으로는 2년3작·홑짓기·섞어짓기·사이짓기 등이 작물·토질·기후에 따라 적절히 채택되었다. 밭곡식으로는 기장·조 등을 혼합하여 줄뿌리기 또는 막뿌리기 등 견종법(腔種法:이랑과 이랑사이 골에 씨앗을 뿌리는 방법)을 썼으며, 거름으로는 재거름을 많이 썼다.

보리·밀 등의 파종은 밑거름에 유의하여 재거름과 숙분(熟糞)을 썼는데 앞그루가 조나 콩이었을 때에는 그 짚과 줄기를 깔아 태운 다음에 씨를 뿌리거나 또는 녹두를 재배하였다가 엎어갈아 부숙시킨 뒤에 파종하였다.

뒷거름에는 봄·여름 사이에 버들가지를 잘게 썰어 외양간에 깐 지 5, 6일 뒤에 꺼내어 퇴적했다가 쓰면 맥류에 매우 이롭다고 하였다. 콩 종류에는 올콩과 늦콩이 있는데 올콩은 봄갈이, 늦콩은 그루갈이를 하였다.

그루갈이는 맥류의 수확이 끝난 뒤 또는 거두어들이기 조금 전에 고랑 사이에 파종하는 것인데, 가을에는 콩 두렁 사이에 다시 맥류를 파종하였다. 콩에는 거름이 적은 편이 좋고 씨뿌릴 때에는 매 포기당 3, 4알이 넘지 않도록 점뿌림을 하고 꽃이 필 때에는 호미를 쓰지 말라고 하였다.

주요 작물에 있어서는 지방별로 많은 수의 품종이 재배되어 그 특성 및 장단점이 파악되고 알맞은 지역과 익는 때도 잘 알려져 있었다.

농기구도 현재 볼 수 있는 재래농구 이외에 지금은 보기 어려운 따비·끌개·번지·제초기 등도 사용되었다. 비료로는 두엄·외양간두엄·인분·우마분·잠사(蠶沙)·녹비(綠肥) 등이 사용되었으며, 질고 물이 찬 땅에는 객토를 하였다.

각 작물의 품종·명칭에 중국명이나 일본명에서 유래한 듯한 것이 적지 않음을 보면 외국에서 우량품종을 도입하고 시험하여 이 땅에 알맞고 좋은 것을 골라 보급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국내에서도 농경기술을 북쪽으로 전파시키려고 애쓴 일이 있었다. 그 일례로 벼재배와 목화재배를 평안도·함경도의 국경지대에 시험재배를 꾀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의 과목류에는 능금·앵두·대추·배·감·유자·귤·석류 등이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많은 것이 진상품으로 재배가 장려되었다. 감귤류로는 유감(乳柑)·동정귤(洞庭橘)·감자(柑子)·금귤(金橘)·유자 등의 여러 가지 품종이 있었다.

고려 말에 도입된 목화는 그 조사(繰絲) 등 방직법과 함께 관심을 가진 인사들의 연구결과로 발달이 신속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무명의 보급이 활발해졌다.

목화재배의 필요 노동력이나 수확량, 그리고 실 만들기의 편리성 등으로 보아 베나 명주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빛깔과 견고성도 월등하여 우수한 경제작물로 기반이 굳어졌다. 백색무명은 보급도 빨랐지만 정부의 징수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며, 통화로도 쓰이게 되고, 또 가장 중요한 무역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무명의 징수는 태종 때 시작하여 대를 거듭할수록 강화되어 연산군 때에는 절정에 달하였다. 이와 같은 면포의 정치적·경제적 위치로 하여 목화재배의 강력한 장려와 경지의 확대(개간 등)가 이루어졌다.

당시 무명의 생산이 없었던 일본에 면포가 무역품으로 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태종 때이며 중종 때에는 절정에 달하였다. 따라서 목화재배의 장려는 역대 왕의 큰 관심사가 되었다.

세종 때에는 평안도·함길도에 명하여 관가에서 경작하게 하였고, 성종 때에는 삼남(三南)의 목화씨를 평안도·황해도에 나누어보내 적합한 땅에 재배하게 하였으며, 또 당면종(唐棉種)을 얻어 경상도·전라도로 보내어 심게 하였다. 농업증산과 경지의 확대는 농기구의 발달을 이룩하였고, 따라서 축력(畜力) 사용을 더욱 요청하였다.

즉, 소와 말의 증식이 요구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전용(戰用)·역용(驛用)·승용(乘用)·수렵용·무역용 등의 목적으로 특히 목마(牧馬)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고려 시대에 힘썼던 목마사업은 조선시대에 와서 계승, 조직화되었다. 즉, 159개 소의 각 목장에 각기 100필 이상의 암말과 50필 이상의 수말을 책임지고 확보하게 하였으므로 전국 공목장(公牧場)에서 약 2만4000필 이상의 말을 유지하고, 또 매년 각 군에서는 이상과 같이 산출해야만 하였다.

이와 같이, 방대한 목마사업은 엄격한 관리와 상벌로 강행되어 일반국민에게 육식금지·승마금지·매매금지 등의 금법(禁法)과 아울러 마량조달 등 심한 부담을 부과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60여 종이나 되는 말의 품종별 관리와 보호, 품종개량, 마의(馬醫) 양성, 마초(馬草) 생산에 큰 힘을 기울였다.

<이춘녕>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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