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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20 (금) 21:09
분 류 사전1
ㆍ조회: 661      
[조선] 한국의 성리학 (두산)
한국의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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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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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리학

한국에 성리학이 들어온 것은 고려 말기,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元)나라에 갔던 안향(安珦)이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가져와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성균관의 유학자들에게 수용되어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으로서 새로운 학풍을 이루게 되었으며, 그 대표적 인물로서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정도전(鄭道傳) 등을 들 수 있다. 이색 ·정몽주 ·길재 등은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유교를 숭상할 것을 주장하는 데 그쳤고, 또 신왕조에 협력하지도 않았으나 정도전 ·하륜(河崙) ·권근(權近) 등의 성리학자는 불교의 폐단뿐만 아니라 교리(敎理) 자체를 논리적으로 변척(辨斥)하는 동시에 이태조를 도와 법전(法典)의 제정과 기본정책의 결정을 통하여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는 조선조가 성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정몽주의 학풍을 이은 길재는 의리학(義理學)의 학통을 세웠고, 그 학통은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그리고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지면서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의 희생을 겪었으나 도학의 의리정신은 면면히 계승되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였으며, 송대의 성리학이 이 땅에 전래된 지 300년 가까이 되어서였다.

즉, 이때 한국 유학의 쌍벽인 이퇴계(李退溪)와 이율곡(李栗谷)이 태어났으며, 서화담(徐花潭) ·이항(李恒) ·김인후(金麟厚) ·기대승(奇大升), 그리고 성혼(成渾) 등도 모두 같은 시대의 성리학자들이다. 그들은 성리학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함에 있어 자연이나 우주의 문제보다 인간 내면의 성정(性情)과 도덕적 가치의 문제를 더 추구하였으니, 이퇴계와 기대승 및 이율곡과 성혼의 사단 칠정(四端七情)에 관한 논변(論辨)이 바로 그것이며, 그들은 이 논변을 통하여 ‘이기성정론(理氣性情論)’을 활발히 전개시켰다.

한편, 내면적 도덕원리인 인성론(人性論)은 송익필(宋翼弼) ·김장생(金長生) 등에 의하여 유교의 행동규범인 예설(禮說)로 발전하였다. 이퇴계와 이율곡에 앞선 서화담은 그 이론이 송나라 장재와 같은 기일원론(氣一元論)이라 할 수 있으니, 곧 “태허(太虛)는 맑고 무형(無形)이나 이름하여 선천(先天)이라 한다. 그 크기가 바깥이 없으며, 거슬러 올라가도 시작이 없다”고 하며 기(氣)의 본체를 말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화담은 이러한 기 가운데 “갑자기 뛰고 흘연히 열림이 있으니 이것은 누가 시키는 것인가? 저절로 그렇게 되며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곧 이치(理致)가 시간으로 나타남인 것이다”라고 기의 작용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화담은 기라는 것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기만 있을 뿐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반하여 퇴계는 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본 학자였다. 그는 정통 정주학의 계통을 따라서 항상 이우위설(理優位說)의 입장을 강력하게 견지하였으며, 이의 구극성(究極性)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무릇 옛날이나 오늘날의 학문과 도술(道術)이 다른 까닭은 오직 이 이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극히 허(虛)하지만 지극히 실(實)하고 지극히 없는 것(無) 같지만 지극하게 있는 것(有)이다. …능히 음양 ·오행 ·만물 ·만사(萬事)의 근본이 되는 것이지만 그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찌 기와 섞어서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만유(萬有)를 명령하는 자리요, 어느 것에서 명령을 받는 것이 아니다”.

퇴계는 이와 기를 엄격히 구별하여 그 혼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태극 또는 이로 표현되는 것을 다름 아닌 인간의 선한 본성의 궁극적 근원으로 보았던 것이다. 성리란 곧 인간의 본성을 이루는 것이며, 인간은 그것을 확충하고 발휘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된 소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체적 ·물질적 조건에서 유래하는 것과는 엄격히 구별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퇴계는 당시에 사화(士禍)가 연달아 일어나서 올바른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는 부조리한 사회현실에서 진실로 선악과 정사(正邪)를 밝히고 올바른 진리를 천명함으로써 사람들이 나아갈 바 표준과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퇴계의 이같은 성리학설은 후세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 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퇴계보다 35년 후에 태어난 이율곡도 퇴계와 마찬가지로 정통 성리학파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성리학만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불교와 노장철학(老莊哲學)을 위시한 제자(諸子)의 학설과 양명학(陽明學) 등 여러 학파의 사상도 깊이 연구하였다. 그러면서도 율곡은 유학의 본령(本領)을 들어 그 기본정신에 투철하였으며, 이를 철학적으로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현실문제에까지 연결시켰던 것이다.

그는 논하기를 “성리학은 형이상학적 성격을 지녔다 하더라도 공자가 가르친 효제충신(孝悌忠信)이라든지 인의(仁義)와 같은 일상적으로 인간이 행할 도리를 떠나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규범(規範:所當然)만을 알고 근본원리[所以然]를 알지 못하면 그 행위가 결과적으로 선행(善行)에 합치한다 하더라도 도학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자애(慈愛)와 효도와 충성과 우애라 하더라도 그것을 행하는 이유를 추구하는 의미에서 형이상학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율곡 성리학의 요령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실(경험성)에 근거하여 그 까닭을 추구함(논리성)에 있어 논리적인 모순이나 비약을 배제하고 그 본원성(本源性)을 체계적으로 나타내는 철학사상이라 할 수 있다. 율곡은 진정한 학문이란 내적(內的)으로 반드시 인륜(人倫)에 바탕을 둔 덕성(德性)의 함양과 외적으로 물리(物理)에 밝은 경제의 부강(富强)을 겸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당시의 피폐한 현실을 역사적 갱장기(更張期)로 파악하고 국방력의 강화, 경제적 부강, 사회정의의 확립 등을 주장하는 동시에 이러한 실리를 주장하다 보면 의리(義理)에 어긋나고 의리를 추궁하다 보면 실리를 망각하기 쉬우므로 이러한 모순을 원만히 타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권능(權能)과 의리가 상황에 따라서 창의적으로 그 마땅함[宜]과 알맞음[中]을 얻는다면 의(義)와 이(利)는 그 가운데 융화된다고 하였다.

이상과 같은 퇴계 ·율곡의 성리학은 인간성의 문제를 매우 높은 철학적 수준에서 구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공허한 관념을 벗어나 역사적 ·사회적인 현실과 연관을 가지고 영향을 주었으며, 후세에 실학 사상(實學思想)으로 전개되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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