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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6-23 (일) 18:03
분 류 사전1
ㆍ조회: 1604      
[조선]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

조선이 건국된지 100년쯤 지난 성종 때 왕조 개창에 참여하고 개혁을 추진하던 기득권 세력(훈구파)은 어느덧 개혁의 의지는 사라지고 권력 주변에서 맴돌기만하면서 세력만을 확장하고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이에 성종은 비대하기만 하고 개혁 의지가 사라진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방에 머무르고 있던 사림 세력을 등용하고는 주로 이들을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포진시킨다. 알다시피 삼사는 6조, 의정부, 왕으로 이어지는 국가 정책 운영 라인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관이다. 꼬장꼬장하고 젊은 패기로 뭉친 사림들은 6조와 의정부 라인에 포진한 훈구파를 비판하고 견제한다.

이에 두 세력은 충돌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사건이 바로 사화이다. 두 세력은 이런 배경말고도 인맥이나 사상면에서 대립될 수 밖에 없었다. 훈구 세력은 조선 왕조 개창에 적극 참여하면서 왕권 강화, 중앙 집권화를 추구하고 현실적인 개혁을 지향하며 현실을 중요시 하다보니 실생활과 실무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한문학을 중요시 여겼다. 이에 비해 사림은 고려 왕실에 대한 지조를 주장하다 죽음을 당한 정몽주의 제자 길재가 영남 초야에 묻혀 후학들을 양성한 가운데 탄생한 세력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당연히 정몽주의 사상을 이어받아 조선 왕조 개창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보다 더 성리학적 명분과 의리, 도덕 정치 실현 사상으로 무장한, 즉 유교적 이상주의 지향 집단이었다. 때문에 이들은 왕의 전제 정치보다는 왕도 정치(왕권과 신권의 균등), 중앙 집권보다는 지방 자치, 한문학보다는 경학(유교 경전 공부)을 중요시 여겼다. 이런 이질적인 두 집단의 만남은 사화로까지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출전 : 포항제철고 이명환의 [국사 국사 용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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