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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9-20 (목) 20:19
분 류 사전1
ㆍ조회: 1172      
[조선] 나선정벌 (두산)
나선정벌 羅禪征伐

조선 후기에 청나라의 요청으로 2회에 걸쳐 조선군(軍)이 러시아군을 정벌한 일.

나선은 러시안(Russian)의 음역(音譯)이다. 러시아는 13세기 이래 몽골의 지배 아래에 있다가 15세기 말부터 독립하여 시베리아를 정복하였다. 그들은 곡식을 생산할 땅과 광물자원을 찾아서 헤이룽강[黑龍江] 쪽으로 남진하였는데, 1644년에 포야르군프, 1649년에는 하바로프의 탐험원정대가 헤이룽강에 이르러 그 지세 등을 조사하였다. 1651년 헤이룽강 북쪽인 야커싸[雅克薩] 하구에 알바진성(城)을 건설하여 군사 ·식민의 근거지로 삼았다. 하바로프가 알바진성에서 다시 헤이룽강 동쪽을 따라 내려와 1652년(효종 3) 우쑤리강[烏蘇里江] 하구에 아찬스크(지금의 하바로프스크)성을 구축하자 그 지방의 원주민인 아창족(阿槍族)과 충돌하였다.

아창족은 당시 그들을 통치하고 있던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여 청나라와 러시아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그때 청은 중국 본토의 공략에 몰두하고 있어서 만주 수비가 허술했던 관계로 1차의 원병은 러시아군에게 패퇴당하였다. 러시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남진을 계속하자 청나라는 사신 한거원(韓巨源)을 조선에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효종은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의견에 따라 원병을 보내기로 하고 함경도 병마우사 변급(邊쇘)을 사령관으로 삼았다. 변급은 정예 조총군(鳥銃軍) 150여 명을 거느리고 1654년 3월 26일 두만강을 건너 영고탑(寧古塔:寧安)에서 출발하여 후퉁강[厚通江:混同江]에 이르러 러시아군과 접전, 호통(好通:依蘭)에서 격파한 뒤 그 자리에 토성을 쌓고 같은해 7월에 돌아왔는데, 이것이 제1차 나선정벌이다.

1658년(효종 9) 3월에 청나라는 재차 구원병을 요청해 병마우후 신류(申瀏)가 선발된 정예군 200여 명을 인솔하였다. 조선군은 청군과 합세하여 같은해 6월 10일에 헤이룽강에 진주하여 격전을 벌인 끝에 적선(敵船) 10척을 불태우고 적군 270명을 사살하였다. 신류는 일단 쑹화강[松花江]으로 철수하였다가 조정의 명령으로 개선하였다. 이것이 제2차 나선정벌이다.

당시 효종은 병자호란 때 당한 치욕을 씻을 생각으로 북벌 계획을 추진중에 있었는데, 2차례의 나선정벌은 조선의 군사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비록 파견된 군사의 수는 많지 않았으나, 조선군의 사기와 사격술이 뛰어났음을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2차례의 나선정벌 후에도 조선과 러시아의 관계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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