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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15 (화) 22:52
분 류 사전1
ㆍ조회: 2780      
[조선] 붕당정치 (한메)
붕당정치 朋黨政治

조선 중기·후기에 같은 주의와 이익을 추구하는 붕당을 만들어, 이를 정치세력의 기본적인 범주로 삼아 운영하였던 정치형태. 원래 《시경(詩經)》에는 <무리> <동류(同類)>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관자(管子)》 <법금(法禁)>에는 <붕당을 만드는 것을 벗을 사귄다 하고, 악(惡)을 가리는 것을 인(仁)을 실천한다>고 하여 당파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순자(荀子)》 <신도(臣道)>에서는 <붕당을 만들어 끼리끼리 친하며 임금을 둘러싸고 사사로운 이익만을 도모하기를 일삼는다>고 하여 붕당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고 있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지적대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고관들이 자기 파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붕당을 만들고, 자기 붕당과 의견이나 이해(利害)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서로간에 붕당이라고 공격하며 죄인으로 몰아서 추방하거나 처형한 일이 종종 일어났다.

그러므로 송(宋)나라 때의 구양수(歐陽修)는 이러한 부정적 당파성을 지닌 붕당정치를 지양하기 위하여 《붕당론》을 썼으며, 청(淸)나라 때의 옹정제(雍正帝, 재위 1723∼35)는 《어제붕당론(御製朋黨論)》을 지었다.

[조선시대의 붕당정치 개관]

조선의 붕당정치에 의한 당쟁은, 16세기 후반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조신(朝臣) 내의 당파에 의한 정권 장악의 항쟁을 말한다. 이와 같은 정권을 둘러싼 항쟁은 1568년(선조 1) 문신의 인사권을 장악하는 관직을 두고 벌인 싸움을 계기로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분열, 대립한 데서 시작되었다. 즉 전랑(銓郞) 관직을 둘러싸고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이 암투를 벌임으로써 조정이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동인(김효원)과 서인(심의겸)으로 갈라진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우세하였던 동인은 91년 서인인 정철(鄭澈)의 실각 때에 서인에 대하여 온건한 태도를 취하였던 남인(南人)과, 준엄한 태도를 보였던 북인(北人)으로 분열하였다. 북인은 선조 말년과 광해군 때에 정권을 잡았으나,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로는 서인이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다가 1660년(현종 1) 이후 송시열(宋時烈) 등의 서인과 허목(許穆) 등의 남인 사이에 왕대비의 복상문제(服喪問題)에 관한 대립의 예론(禮論)이 일어나자 격렬한 대립 양상을 보이면서 정권은 서인과 남인 사이를 오갔다. 그리하여 당쟁은 1680년(숙종 6)의 경신출척(庚申黜陟) 때의 남인에 대한 대숙청처럼 피비린내 나는 대결로 변했으며, 각 당파간의 폐쇄성과 대립은 점점 치열해 갔다.

1680년대에 서인은 남인에 대한 강경파인 노론(老論)과 온건파인 소론(少論)으로 분열되어 양파는 1725년(영조 1)까지 격렬하게 항쟁하였다. 붕당의 분열은 동·서 분당 이후 끝없이 계속되었는데, 기본적인 주체세력은 노론·소론·남인·북인 등 사색(四色)이었다. 그러다가 영조·정조 때는 탕평책(蕩平策)으로 당파간을 조정하였으므로 당쟁은 완화되었지만, 그 후에도 노론의 우세 아래 은연한 당쟁이 계속되었다.

[붕당정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이와 같이 붕당정치로 말미암은 당쟁은, 예컨대 복상문제나 세자책봉문제 등 사회성이 결여된 관념적인 정치론을 주제로 하여 매우 편협한 배타적 태도로 대립하였으므로, 올바른 인재 등용의 길이 막히고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결국 국력이 약화되는 등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자유로운 인간성이 억압되고 사회적 개혁이나 문화적 발전도 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에 의하여 한국 민족 자체 내에서 그 이전의 정치사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사상적 동향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양반정치를 청산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일제 식민주의 사학자들은 그들의 식민 통치 정책에 발맞추어, 한국의 정치적 전통을 왜곡하고 잠재적 정치역량을 말살하기 위하여 조선시대 정치사를 이용하여 붕당정치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이른바 식민주의 역사관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왜곡된 조선시대 정치사의 인식은 8·15 후 오랜 기간 통설로 받아들여졌으나 근래에 들어와 붕당정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붕당정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평가]

중국의 붕당정치의 폐해를 지적하고 부정적 당파성을 가진 붕당을 없애기 위하여 송나라 때의 구양수가 《붕당론》을 지은 것처럼 조선 영조 때의 이익(李瀷)은 형 잠(潛)이 당쟁으로 희생된 바도 있지만, 《붕당론》을 써서 붕당의 큰 폐해를 지적하였다.

종래 한국에 있어서의 붕당정치로 인한 당쟁은 조선 중·후기 전체 또는 조선시대 전체의 정치운영을 뜻하였으나, 이것은 타당하지 못한 인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정치는 시대적 변천에 따라 단계적으로 파악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정치가 기본적으로 붕당에 의해 운영되었던 것은 선조 때에 사림 세력(士林勢力)이 중앙 정계를 장악한 이후의 일이다. 이러한 정치운영이 공존과 상호비판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 형태를 붕당정치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한국의 중세적 정치 운영의 후기적 전형을 이룬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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