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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8 (월) 20:40
분 류 사전1
ㆍ조회: 1487      
[성씨] 여흥민씨 (가가당)
민(閔)씨

본관인 여흥은 경기도 위치한 여주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골내근현인데 신라 경덕왕이 황효현으로, 고려 초에 황려현, 고종때 영의(永義)로 개칭되었다. 조선 태종 때 여흥부로, 예종조에 여주목으로 하고 1914년 경기도 여주군이 되었다.

민씨는 중국 농서현에서 계출된 성씨로 성인 공자의 10제자중 한사람인 민손(閔損)의 후손민칭도(閔稱道)가 고려 중엽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에 정착한 것이 우리나라 민씨의 시원이 된다.

민씨의 본관은 여흥을 비롯하여 황려, 영주, 여주, 대전, 해남 등 32본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나 모두가 동조동근(同祖同根)으로 여흥민씨의 세거지명에 불과하다. 민씨는 시조의 증손 영모(令謨)가 문하시랑평장사를 거쳐 태자 태사에 이르렀고, 신종조에서 형부상서에 오른 아들 식(湜)과 판병부사와 태자 소보를 지낸 공규(公珪) 형제를 낳아 가문의 양대 산맥을 이루어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상서공 식(湜)의 후손에서 그의 증손 지(漬)가 여흥군에 봉해졌으며 문장이 탁월하여 [세대편년절요]와 [본국편년강목]을 저술했고, 아들 상정(祥正)과 상백(祥伯)이 뛰어났다.

특히 조선 초기의 인물로는 여평군 적의 손자 제(霽)와 개(開)의 형제가 두드러진다. 공민왕 때 19세로 문과에 올랐던 제는 예조판서와 한양부윤을 역임했고, 조선 태조 때 정당문학이 되어 여흥백에 봉해졌으며 그는 사치와 오만을 배격하고 건강 양성에 힘을 쏟아 병자에게 약을 주는 방을 전국에 보내 보건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아들 이름이 무구(여강군),무질(여성군), 무휼(한성윤), 무회(여산군)로 수양대군의 처남이 된다.

명종과 선조대의 명신 기(현령 세류의 아들)는 여흥 민씨의 중흥 인물이다. 다섯의 나이로 천자문을 배울 때 진(晋)·초(楚) 두 글자를 익힐 무렵 아버지에게 묻기를 "진나라와 초나라가 있기 전에는 이 글자의 뜻을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하여 아버지를 당황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는 후에 선조 때에 우의정에 올랐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했던 정중(鼎重)은 참찬의정부사를 지냈으나 숙종이 즉위하자 남인의 득세로 장흥부에 유배되었다가 경신대출적으로 풀려나와 좌의정에 올랐다. 숙종 때 명망이 높았던 유중은 여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장흥의 연곡서원과 벽동의 구봉서원에 제향되었고, 그의 딸이 폐비의 비운을 겪었던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이다. 유중의 아들 진원(鎭遠)은 누이인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다시 등용되어 병조정랑과 사복시정을 거쳐 전라도 관찰사로 나갔다. 후에 신임사화로 성주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우의정에 이어 좌의정에 올랐다.

여양부원군 유중(維重)의 5대손인 치록은 딸이 명성왕후(조선 제 26대왕 고종의 비)가 되자 여흥민씨의 세도정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명성왕후는 16세때 왕비로 뽑혀 한말 국내외의 정치적 거센 바람을 한 몸으로 감당하며 대원군과 권력 싸움으로 파란 많은 일생을 살았다.

그밖의 인물로는 치록의 아들 승호(升鎬)가 여동생 명성왕후를 도와 국정전반에 참여하여 민씨일족의 거두로서 세도가 등등했으며, 영의정에 오른 규호(奎鎬)와 함께 명성을 떨쳤다.

한말의 순국열사 영환(泳煥: 겸호의 아들, 태호에게 입양)은 여흥민씨가 자랑하는 인물로예·형·병조의 판서를 비롯한 한성판윤 등 여러 요직을 역임한 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미 대세가 기울어짐을 보고 전동 이완식의 집에 가서 "아,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로 시작된 유서 3통을 남기고 자결했다.

그가 자결한 후 피묻은 옷을 지하실에 간직하고 그 방을 봉했는데 이듬해 봄 그 자리에서 대가 솟아올라 사람들은 이것을 그의 충절을 말하는 혈죽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외에도 영익(泳翊), 종식, 긍호(肯鎬), 치도(致道), 형식(衡植), 제호(濟鎬), 필호(弼鎬) 등이 구한말과 일제 암흑기에 겨레와 민족의 자주 독립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여흥민씨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민씨는 남한에 총 33, 706가구, 141,32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성촌

충북 중원군 일원, 전남 영광군 신북면 갈곡리, 충북 영동군 심천면 금정리, 경남 산청군 오부면 오전리, 전남 화순군 이양면 오유리,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일원, 전남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 노하리, 황해도 벽성군 추화면 마용리.

경주 대전 여주 여흥 영운 영원 영인 정선 창원 청주 해남 총 11개의 본관과 141,328명이 있다.(1985년)

여흥 민씨(驪興 閔氏)

민씨는 본래 공자의 10제자 중의 한명인 자건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왔다가 여흥(경기도 여주)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고려 때 벼슬을 했다. 고려 충숙왕(27대) 때에 수정승을 지낸 학자인 민지를 시조로하는 '문인공파'와 같은 시기에 대제학을 지낸 민적을 시조로하는 '문순공파'로 나뉘어 진다.

항렬표

24세 백(白)/ 25세 혁(赫)현(顯)/ 26세 치(致)/ 27세 호(鎬)용(鏞)/ 28세 영(泳)/ 29세 식(植)/ 30세 병(丙)/ 31세 기(基)규(圭)배(培)/ 32세 경(庚)/ 33세 홍(泓)원(源)/ 34세 동(東)/ 35세 희(熙)/ 36세 형(馨)재(在)/ 37세 석(錫)/ 38세 준(準)/ 39세 권(權)/ 40세 용(容)/ 41세 범(範)/ 42세 선(善)/ 43세 순(淳)/ 44세 상(相)/ 45세 영(榮)/ 46세 원(遠)/ 47세 종(鍾)/ 48세 태(泰)/ 49세 주(柱)/ 50세 양(陽)

출전 : 가가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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