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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14 (금) 05:23
분 류 사전2
ㆍ조회: 1968      
[조선] 조선 역사 개관 (한메)
조선 역사 개관

관련 문서

한국사의 시대구분
원시사회
고대사회
고려사회
조선사회
근대사회
민족의 수난과 저항
현대사회

[조선사회]

<조선왕조의 성립과 발전>

조선왕조는 고려 후기에 누적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몽골ㆍ홍건적ㆍ왜구의 침략과 명(明)의 압박으로 인한 민족적 시련을 극복하려는 참신한 이념을 지닌 사대부문인층(士大夫文人層)과 일부 무장(武將)들에 의해서 개창되었으며, 여기에 하층민의 협조도 크게 작용하였다.

고려 말의 신흥 사대부 문인들은 대체로 송학의 이념을 지표로 삼아 불교에 의해서 지탱된 구질서를 온건한 방법으로 개혁하려고 하였으나, 개혁의지를 왕조교체로까지 몰고 간 것은 특히 신분이 낮은 문인과 무인들이었다. 새 왕조는 이렇듯 급진적 성향을 가진 세력에 의해서 개창되었으나, 차츰 온건파 사대부가 참여하여 두 흐름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수성(守城)이 마무리되었다.

그리하여 15세기 100년간에는 중앙집권체제가 강화되면서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으며, 하층민의 경제생활이 개선되고,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를 폭넓게 절충한 실용적이며 개성 있는 문화가 꽃피었다.

16세기에는 대외관계가 안정되어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었지만, 안으로는 권력과 부(富)가 지나치게 중앙에 집중하는 폐단이 생기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서 향촌의 자율성을 높이고 문인 위주의 도덕정치를 구현하려는 정치세력이 성장하였다. 이들이 곧 사림(士林)으로서 그들의 이상주의가 현실주의적인 정치감각을 가진 훈구세력(勳舊勢力)과 몇 차례 충돌을 일으키다가 마침내 16세기 말(선조)에는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사림정치는 정치의 지방적 확산과 활발한 비판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였으나, 지나친 문약과 파벌〔朋黨〕간의 대립으로 왜란과 호란을 자초하는 결과를 빚어냈다.

두 난을 거치면서 일부 사림들은 주자학적 사회질서와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한계를 느끼고 양명학ㆍ고증학ㆍ천주교 등 새로운 외래사조와 민간신앙을 흡수하면서 세계사의 진운에 발맞추어 사회를 개혁하려고 하였으나, 대부분의 지도층은 주자학을 고수하면서 구질서를 지켜 나가려고 하였다.

18세기 중엽의 영ㆍ정조시대에 부분적으로 개혁이 시도되었으나, 보수적 유림의 반발로 미봉에 그치고, 19세기 이후로는 보수파의 일당독재가 출현하였다. 이른바 세도정치(勢道政治)가 그것이다. 세도정치하에서 국가기강은 극도로 무너지고 부패가 만연하여 민생은 어느 때보다도 피폐하였으나, 이 시기에도 세계사의 조류에 발맞추어 사회를 혁신하려는 농촌 출신의 향반층(鄕班層)과 도시 출신의 중인층(中人層)은 꾸준히 성장하였다. 그들은 실학을 더욱 과학적으로 발전시켜 갔으며, 농민ㆍ상인ㆍ노동자층과 연결하여 민란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왜란과 호란>

당쟁이 격화하던 시기에 왜구(후기 왜구)가 내습하였다. 계속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대군이 침입하여 전후 7년간(1592∼98)에 걸쳐 전국토가 병화(兵禍)를 입었다. 이에 대해서 양반ㆍ유생ㆍ승려 등이 농민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다. 또 해상에서는 이순신(李舜臣)이 일본의 해군을 격파하여 보급을 차단했으며, 명(明)의 원군(援軍)도 참가하여 결국 일본군은 성과를 얻지 못하고 철퇴(撤退)하였다. 그 뒤 후금(淸)군이 2차례(1627,1636∼37) 침입하였고, 조선은 청에게 사대의 예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품화폐경제의 발전>

이러한 외적의 침입, 특히 일본의 침입은 막대한 재해를 입혔다. 그러나 조선사회는 멀지 않아 전재(戰災)로부터 일어나면서, 새로운 발전을 시작하였다. 17세기후반 이래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여, 정기시인 장시(場市)가 전국에 성립되었고, 주조화폐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다.

농업에서는 2모작의 보급에 의해 상품작물의 재배가 성행하였고, 종래의 양반지주 외에 농민 출신의 서민지주가 나타났다. 18세기가 되면서 농업에서 분리된 전업(專業)의 수공업자가 증가하였고, 광산에서는 부역노동에 의한 임금노동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 구래(舊來)의 특권적 어용상인에 대항하여, 장시를 돌아다니며 행상과 점포를 개설하는 객주(客主)ㆍ여각(旅閣;問屋)이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경제의 발전은 농민층의 분해를 이끌게 되어, 일부는 부농화(富農化)ㆍ지주화(地主化)하였고, 대다수는 영락(零落)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관직과 양반신분의 매매가 일어나 전통적 사회질서를 동요시켰다.

<새로운 사상ㆍ문화의 대두>

사회적 변동은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창출하였다. 국교(國敎)로서의 권위를 과시한 주자학이 관념론(觀念論)과 의례론(儀禮論)에 얽매이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자연과 사회의 합리적 인식과 현실비판을 목적으로 한 실학(實學)이 대두되었다.

자연과학ㆍ철학ㆍ역사학ㆍ지리학ㆍ농학ㆍ언어학에서 문학ㆍ미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새로운 기운이 일게 되었다. 그즈음 중국을 경유하여 천주교가 전래되면서, 지식층과 농민층에 폭넓게 퍼져 나갔다. 새로운 사상의 대두를 정부는 두려워하였는데, 이에 천주교에 대한 대탄압(1801, 신유사옥)이 시작되어 전통질서를 비판하는 사상을 사설(邪說)로서 이단시하였다. 이 때문에 실학의 정상적인 발전의 길은 저지되었고 소수의 지식층 중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 밖에 농민들 사이에서는 1860년에 최제우(崔濟愚)가 창시한 동학(東學)이라고 하는 민족종교가 널리 퍼졌는데, 이는 서양의 침략에 반대하는 동시에 기성의 신분질서를 부정하였고 농민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였다. 최제우는 처형당했으나(1864) 동학은 농민들의 신앙심을 모았다. 사상계의 변동과 아울러 19세기에는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洪景來)의 난(1811∼12), 남부일대를 소란으로 몰아넣은 진주민란(1862)은 대표적인 예로서 왕조지배체제를 동요시켰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대한민국-역사' 항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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