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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14 (화) 08:42
분 류 사전2
ㆍ조회: 416      
[고려] 전민변정도감 (두산)
전민변정도감 田民辨整都監

고려 후기 권세가에게 점탈된 토지나 농민을 되찾아 바로잡기 위하여 설치된 임시 개혁 기관.  

고려 중기 이후 권신들은 여러 명분으로 토지를 점탈하였고,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세력가들의 노비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1269년(원종 10)최초로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는데,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 뒤 1288(충렬왕 14) ~ 1301(충렬왕 27), 1352년(공민왕 1), 1366년~1381년(우왕 7), 1388년(우왕 14)에도 각각 설치되었다. 그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거나 또는 유명무실하여 더 이상 필요가 없어 폐지되었다.

전민변정도감은 당시 사회가 부패하고 권문세가의 독점적 권력이 비대해진 정치ㆍ경제적 모순을 개혁할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첫 번째 단계, 권신으로 오랫동안 권력을 누리다가 실각된 자들이 그 동안 불법으로 점탈한 토지와 농민을 추쇄(推刷-노비를 붙잡아 원래의 주인에게 또는 본고장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하여 속공(屬公-주인이 없는 물건이나 노비를 관부나 관아로 넘겨주는 일)하거나, 또는 새로 등장한 권신에게 지급하기 위하여(또는 차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1269년의 것은 최씨 무인 정권을 몰락시킨 김준(金俊)의 전민(田民, 토지와 노비)을 임연(林衍)ㆍ임유무(林惟茂) 부자가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1288년의 것은 환관 최세연(崔世延)과 그 무리들이 소유하였던 전민을, 1381년의 것은 이인임(李仁任)과 그 무리들, 그리고 1388년의 것은 임견미(林堅味) 일파가 소유한 전민의 추쇄를 목적으로 설립하였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두 번째 단계, 노비법의 적용이 불합리하여 이의 개선을 목적으로 1301년에 설치되었다. 즉, 원나라 정동행성평장사(征東行省平章事) 활리길사(濶里吉思)가 소유하였던 노비를 추쇄, 환본하고자 설치되었다.

세 번째 단계, 국가의 개혁 정책에 부응하여 당시 혼란의 극을 달리던 토지와 노비제도를 과감히 정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설치된 관부로서, 1366년에 설치된 것이 이에 해당된다. 1363년 5월에 공민왕은 20여 항목에 걸친 개혁 내용을 하교(下敎)하여 여러 가지 폐단과 불법ㆍ부정을 바로잡으려 하였다. 바로 그 이듬해에 왕의 정치적인 지위가 안정되면서 새로운 정치 변혁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365년에는 당시의 실권자였던 최영(崔塋)을 계림윤(鷄林尹)으로 폄출하는 등 강력하게 무신 세력을 거세하였다. 대신 공민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승려 출신인 신돈(辛旽 : 편조 遍照)을 등장시켜 권력 구조를 새롭게 재편성하였다. 이후 신돈은 권력의 정상에 서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되었고, 신돈이 집권하면서 전민변정(整)도감을 설치하여 추진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활동이 바로 전민의 추정사업(推整事業)이었다.

신돈은 한해(旱害)와 관련하여 1365년에 설치된 형인추정도감(刑人推整都監)의 기능을 확대 전환하여 명칭을 전민변정도감으로 바꾸고, 스스로 판사(判事)가 되어 의욕적으로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미 공민왕대에 이르면 권문세족들이 공사전(公私田)을 탈점하는 한편, 양인 농민층을 노예로 삼고 역리(驛吏), 관노(官奴), 백성 등의 유역자(有役者)를 은루(隱漏)시키는 부정을 저지르며 거대한 농장을 확대시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홍건적(紅巾賊)의 난 이후의 사회 변화로 말미암아 농장은 획기적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농장의 확대는 궁극적으로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유역(有役) 인구를 감소시키고 재정적 결손을 초래하였다. 전민변정도감은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농장의 확대를 억제하며, 호강한 무리들의 부정 폐단을 개혁하자는 목적에서 설치된 것이다. 그리하여 농장은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고, 그에 소속된 노비는 양인이 되려고 하면 환량(還良)시켰다.

전민변정도감은 고려 후기의 사회상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려는 유학자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고, 당시 일반 민중으로부터도 크게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신돈의 여러 개혁 정책이 지나치게 과격한데다가 전민변정사업이 당시 위정자들의 이해와 크게 상충되고 불만이 커져 신돈이 실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 개혁 사업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류재택>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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