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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28 (금)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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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922      
[현대] 대한민국11-해외의 한국연구 (한메)
대한민국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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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11-해외의 한국연구

해외에서의 한국연구

[개관]

외국인에 의한 한국학술연구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일본을 제외한 외국(주로 미국과 소수 유럽국가)에서 한국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움트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에 대한 학술활동은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져 있다.

그런 중에서도 1970년대 이후,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한국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기본수단으로 해외학자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왔고, 국내의 지식인들도 해외의 한국학 발전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해 왔다. 한국학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역사·지리·정치·철학·문학 등)의 교육이고, 둘째는 이에 대한 연구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교육은 외국의 대학 수준의 교육기관에서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서 한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학 연구 또한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외국에 있는 학자들이 한국학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해외에서의 한국연구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충분한 자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등의 불리한 점이 있으나,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미국]

미국내 한국학은 일반적으로 <지역학> 혹은 <소수 민족학>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즉, 한국학의 위치는 미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며 주도해 온 민족들의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문분야, 예를 들어 미국사학·미국문학·영문학 등에 비교할 수 있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다른 지역학이나 소수 민족학, 특히 중국학·일본학 등 한국과 유사한 입장에 있으면서 미국내에서 그 나라에 관한 연구가 고도로 발전해 온 전례를 모형으로 성립되고 발전된 것이다.

미국내의 한국학은 50년대초, 6·25 동안에 미국자체의 필요성 때문에 하버드대학교에 한국어강좌가 개설됨으로써 시작되었다. 50년대 후반기에 한국강좌가 하버드를 비롯한 수 개 대학에 정규과목으로 개설되고, 석·박사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 대학의 전반적인 팽창을 타고 한국학도 잠시 발전하는 듯하다가, 70년대에 미국경제의 일반적인 침체로 인한 대학의 위축으로 한국학도 부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대학의 한국강좌들이 70년대에 폐쇄되었다.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미국내의 한국학 진흥 필요성을 인식한 한국 문교부와 무역협회 산하 산학협동재단은 미국대학내 한국학 과정과 한국학 관계자들을 지원하여 오고 있다. 현재 전임강사급 이상 교수를 채용하여 한국관계 강좌를 개설한 곳은 하버드·컬럼비아·버클리·하와이 등의 대학이며 하와이·버클리·웨스턴·미시간 등의 대학에는 독립적인 한국연구소가 설치되어 있다.

한편 뉴욕대학에는 박성배(朴性焙)교수가 철학분야의 한국학을 미국내에 보급하고 있다. 5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학은 그동안 상당수의 한국전문가를 배출하였지만, 그 발전은 대체로 부진하였다.

한·미 상호관계의 역사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학은 중국학·일본학과 비교해 볼 때 그 규모나 인적 자원에 있어서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내에 중국·일본관계 강좌를 개설한 대학이 각각 200개를 넘었는 데 비해 한국관계 강좌를 개설한 대학은 10개 미만이었다.

미국내 한국학이 부진한 이유는 한국학 관계자 대부분이 타 분야에서 이입한 자들이어서 학문의 심화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또 이 때문에 한국학 전문대가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 한국학의 기본이 되는 한국사·한국어 등을 전공한 한국인 학자가 극히 드물다는 점, 미국정부나 학술재단에서의 지원이 드물어서 기금확보가 어렵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일본]

일본의 한국학 연구의 역사는 매우 길다. 일본은 한국과의 오랜 문화·학술 교류를 통해 한국학을 발전시켰고 메이지시대〔明治時代〕 이후 한국에 대한 침략·지배의 필요에서 한국학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한국이 광복되면서 일본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상당 기간 공백상태에 있었다. 왜냐하면 원래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형성된 한국학의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6·25가 일어나자 일제시대에 경성제대나 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51년 <조선학회>가 발족되었고, 59년에는 <조선사연구회>가 창설되어 한국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전후 시기에 각 대학의 일본사나 중국사를 전공한 젊은 세대 속에서 점차 한국사 자체를 연구하는 연구자층이 형성되어 오늘날 일본에서의 한국사 연구의 중견을 이루고 있다.

현재 한국어 전공학과를 설치한 대학은 덴리대학〔天理大學〕·도쿄외국어대학〔東京外國語大學〕·오사카외국어대학〔大阪外國語大學〕·도야마대학〔富山大學〕 등 4개교가 있고, 비전공과정으로 개설한 대학은 43개교가 있다. 이 밖에 한국관계연구소가 상당수 있는데 최서면(崔書勉)의 <한국연구원>과 <이퇴계연구원> <조선사연구원> 등을 들 수 있다.

일본의 각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는 대체로 한국사를 독자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일본사나 중국사에 부수된 주변사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 연구자들은 일본사나 중국사 전공자로서 한국사 연구를 관련되는 부분 혹은 개인취미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열의는 상당하여 오늘날 남북한에서 출판되는 거의 모든 저서와 논문을 해독하고 필요한 것은 번역·출판까지 하고 있다. 출간되는 단행본·논문들도 양적으로 상당할 뿐 아니라 한국역사·한국사에 국한하지 않고 민속, 풍토, 일본 고대문화의 뿌리에 대한 연구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재일 역사가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대표적인 학자는 이진희(李進熙)와 김달수(金達壽)이다. 특히 이진희는 종래 일본사에서 4세기 말 한반도에 <임나일본부>를 두었다는 유일한 근거로 삼고 있던 광개토왕비의 탁본을 상세히 고증, 일본인에 의한 문자의 개찬설을 주장함으로써 일본 역사계는 물론 중국에까지 파문을 일으켰다.

재일 학자들은 일본의 일류대학 교수들 못지않게 연구업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본사회의 폐쇄성 때문에 사회적 지위와 생활보장이 불안정하고, 한국관계 서적을 체계적으로 소장한 도서관이 일본에 거의 없기 때문에 도서를 개인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유럽]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역사적으로도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중국·일본·미국에 비해 밀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적었고, 따라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에 걸쳐 몇몇 학자들에 의해 산발적·부분적으로 학술적 연구가 이루어졌을 뿐 한국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지 못하였다.

<영국·프랑스·독일>

영국의 경우 한국연구의 역사는 매우 길어 19세기에 출판된 한국에 관한 책이나 논문들의 거의 대부분은 영국인에 의해 쓰여졌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 이후 영국에 있어서의 한국연구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60년대 런던대학교의 동양-아프리카학대학의 W.E.스킬랜드교수가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쳐 왔다.

1970년대말에 와서는 한국의 언어·역사에 대한 연구가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80년대 중반 셰필드·헐 등의 약 9개의 대학에서 한국에 대한 강의를 개설, 83년 9월에는 한국연구의 필요성 인식에서 셰필드대학교에서 <영국한국연구협의회>가 창립되어 한국학을 진흥시키고 있다.

프랑스는 한국 서지학의 금자탑인 《조선서지》를 쓴 모리스 쿠랑(1865∼1935)을 비롯, 한국학을 제도적으로 확립한 샤를르 아그노엘(1896∼1976)이 한국학에 대한 선구적 학자이다. 59년 파리대학교의 동양학부에서 정식으로 한국어 강의가 시작되었고 70년에는 한국학과가 개설되어 이후 동양학부에서 20여 명이 한국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파리대학 이외에 1983년부터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방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리옹대학에, 그리고 1987년에는 보르도대학에 한국어강의가 개설되었다. 그 밖에 <국립고등연구원> 등 3개의 대학 수준의 교육기관에도 한국에 대한 정규강의가 개설되어 있다. 연구소로는 <국립학술연수원> <한국학연구소> <프랑스극동학교> 등이 있다.

독일의 경우 1990년에 들어 통일을 이루었지만 편의상 양분해 보면 통일 전 서독에서의 한국연구의 중심은 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본대학교 교수인 구기성(丘冀星)박사의 주관 아래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구기성은 기관지로 《한(KOREA)》이라는 잡지를 펴내고 있고 김동인단편집을 독어로 출간하기도 했다.

이 외에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로는 뮌헨대학교의 G.K.킨더만교수, 함부르크대학교의 조명훈(趙明勳)교수, 쾰른대학교의 J.하커교수 등이 있다. 쾰른의 벨트포름출판사는 《한국서지》를 82년부터 발행하고 있는데 독어로 쓰여진 한국에 관한 문헌을 수록함으로써 연구를 돕고 있다.

통일 전 동독의 한국학은 베를린의 훔볼트대학교에서 시작되었고 현재까지도 이곳이 중심지이다. 동독에는 50년대 북한유학생들이 많이 왔고, 이로 인한 필요성에서 56년 독한사전이 일본어사전에 기초해서 나왔다.

북한과 같은 분·단국이었으므로 양국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다른 유럽국보다 한국학이 더 발달하지는 않았다. 옛 소련의 한국학 영향·김일성대학교와의 협력으로 60년에 와서야 훔볼트대학교에 한국학이 정규과정으로 들어섰다. 현재 I.괴텔(역사)·H.피히트(문학)·R.렌트너(문학사) 등이 한국학을 이끌어 가고 있다.

<기타>

영국·프랑스·독일 이외의 다른 서유럽국가에서도 한국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어과가 설치되어 있거나 강좌가 있는 교육기관을 보면 네덜란드 레이덴대학교 일본-한국학과, 덴마크의 스칸디나비아아세아연구소, 핀란드의 헬싱키대학교 동양-아프리카학부, 이탈리아의 나폴리대학교 동양학부 등이 있다.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과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한국과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놓인 적이 없었고, 상호 접촉도 빈번치 못했다. 그래서 동유럽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45년까지 미약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1940년대와 1950년대 동유럽 및 한반도의 정치변화와 50년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 본격적으로 태동하게 되었다.

폴란드에서는 1905년 W.셰로쉐스키가 《코레아》라는 한국소개서를 썼으나, 그러한 한국소개 노력은 지속되지 못하였고 6·25를 기점으로 하여 바르샤바대학교에서 H.오가렉―최가 한국문학을 강의함으로써 한국학이 일어서게 되었다. 현재 바르샤바대학교에서는 한국학이 활성화되어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A.폴트르가 1940년에 한국어 강의를 하고 1954년에 체크―한국어사전을 펴냄으로써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한국학 제2세대라 할 수 있는 V.푸첵·Z.클로슬로바·J.겐조르 등이 한국어와 문학을 연구하였는데, 특히 푸첵은 80년에 한국어문법, 82년에 한국학개요서를 펴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57년에 헝가리-한국어사전이 간행되었고, 1958년에는 춘향전이 《춘향의 사랑》으로 번역되었지만, 80년대 중반까지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와 같이 대학수준에서 정규적인 한국학 연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적 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고, 1990년 한국과의 수교로 공식적 교류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헝가리에서의 한국학 발전 가능성은 많다고 할 수 있다. 유고슬로비아·루마니아·불가리아·알바니아 등의 국가에서는 아직 한국학이 제도적으로 태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동유럽에 닥친 정치적 자유화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연구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리라 예상된다.

유럽에서의 한국학 연구현황은 1976년에 창립한 <유럽한국학회(AKSE)>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다. 이것은 전유럽 한국학 학자들 상호간뿐만 아니라, 유럽의 한국학 학자들과 한국의 학자들 상호간의 학술교류, 연구결과의 교환, 친목·유대를 목적으로 하는 학술단체이다.

1977년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제1차 한국학 학술대회를 가진 후 유럽 각국이 돌아가며 매년 4월에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 <유럽한국학회>는 매년 《AKSE뉴스레터》에 각국의 한국학 관계 정보를 실어 연구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

러시아에서는 이미 19세기 제정러시아 때부터 한국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1860년대 한·러간의 국경선 확정과 한·러인의 접촉이 이루어진 이후 정치·외교적 목적에서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학자·군인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한국을 조사하고 많은 자료를 출간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900년 러시아 정부가 발행한 《한국지》인데 이것은 1800년대 러시아에서의 한국연구를 집대성한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의 기간은 한국학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17년의 혁명 이후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한국학도 위축되었고 다만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연구가 부분적으로 있었다. 하지만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학자들의 대량 숙청으로 한국학 연구는 완전히 침체되었다.

그래서 1945년 한국이 광복을 맞이하였을 때에 소련에서 한국에 대한 전문가가 전무한 상태였다. 북한정권의 성립과 6·25의 발발로 50년대에는 모스크바대학과 레닌그라드대학을 중심으로 한국학연구가 활발히 일어났다.

1950년대에는 모스크바대학에서 한국어과가 설치되어 한국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연구는 처음에는 조선 최근세사와 국제관계사가 주류를 이루었고, 이어 고대사와 중세사로 확대되고 1970년대에는 한국사 전반을 망라하게 되어 1974년 중요 학자들의 공동집필로 《한국통사》가 소련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학 연구는 언어학·경제학·문학 등으로 확대되었다. 1980년대에는 1950년대에 교육받은 학자들의 성숙된 연구가 잇따라 발표되었다. 문학에서 《구운몽》과 《옥루몽》이 번역되었고, 신라향가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나왔다. 예술에서는 O.N.글루하료바에 의해 《한국미술》이 출판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무엇보다도 한국고대사연구가 활발하여 J.M.부틴은 《한국:고조선에서 삼국까지》에서 한사군과 삼한의 위치에 대해 다루었고, A.P.데레반코는 《극동과 한국의 구석기시대》에서 한반도 고대문화를 연해주·중국대륙과 연관지어 서술하였다.

원래 소련은 한국에 대해 북한과만 40년 이상의 공식관계를 맺어왔고, 한국을 공식적인 실체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남한)에 대한 연구는 자연히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정책으로 학문의 자율성과 실증주의 정신이 싹틈에 따라 옛 소련의 한국학 연구는 하나의 전기를 맞았다.

1990년 한국과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어 한국의 실체를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한국을 경제적 선진국으로 인식하고 러시아의 기술·경제개발의 범례로까지 상정하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러시아의 한국학 연구는 그 시각과 방법에 있어 전면적인 수정이 예상된다.

[중국]

중국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근접하여 예로부터 비슷한 문화전통과 친선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상호간에 깊은 연구가 있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부터 중국에서의 한국연구사업은 지속되었는데 더욱이 문화대혁명이란 대격변을 치른 후 중국 각 분야의 학술활동은 활발하게 펼쳐져 한국연구사업도 역시 전례없는 커다란 발전을 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여러 대학과 사회과학원에서 전문적인 한국연구소를 설치하였다. 한국연구학회들은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잇따라 설립되었는데, 전국적인 학회도 있고 그 산하에는 각 성·시의 부속학회들이 설립되었다. 1979년에는 <중국조선역사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1980년에는 <중국조선경제학회 >, 1983년에는 <지린성조선학회>가 설립되었다.

연구소로서는 중국사회과학원 부속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가 중국의 한국연구를 총괄하고 있고, 북경대학교의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에서 한국의 언어와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한국연구에 있어 특징은 창춘〔長春〕·선양〔瀋陽〕·옌볜〔延邊〕 등 중국 북부도시에서 한국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조선족학자들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조선족자치지방에 있는 옌볜은 한국인 인구가 80만 명에 달하여 옌볜 총인구의 44%를 차지하는 곳으로서 많은 한국연구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옌볜은 중국에서 한국연구에 가장 중요한 곳 중의 하나로 되어 있다.

<옌볜대학 조선어문학부> <옌볜사회과학원 조선어어문연구소>가 한국어와 문학을, <옌볜대학 역사학부> <조선역사연구실>이 한국역사를, <옌볜대학 조선경제연구실>이 한국경제를 각각 연구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한국연구에 있어서 옌볜은 하나의 중심지가 되어 정보교환·회의소집 등 다방면에 걸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문화혁명 후 좌절되었던 학술활동들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1980년 처음으로 전국적인 한국역사와 경제에 대한 학술토론회가 모두 옌볜에서 개최되었고, 이후에도 한국문제연구회가 여러 차례 개최되었다. 여기서 나온 저서 중 중요한 것은 역사에 박찬석의 《중·조(中朝) 친선 3000년》, 김광수의 《조선근대사》, 철학에 주찬성의 《박지원의 철학사상》, 임현구의 《서경덕의 기일원론철학》, 경제에 공저로 《남조선경제개론》 등이 있다.

[과제와 전망]

해외에서의 한국연구에 있어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고, 각국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인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① 독립된 과정의 설치

아직도 한국학이 독립된 학과 또는 과정이 되지 못하고, 중국학·일본학을 하는 대학에 부설강좌로만 되어 있는 곳이 많다. 이를 독립된 학과로 승격시키고 전문학자를 충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② 후학양성

한국학에 애착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해외에서의 한국인 학생들은 절대다수가 공학·자연과학 등 비인문분야를 선택하고, 한국학을 전공하더라도 이들을 수용할 일자리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도중에 좌절되는 경우가 많아 후학양성에 문제가 되고 있다.

③ 자료문제

한국학의 주요내용인 역사·철학연구에는 방대한 문헌이 필요한데,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한국관계자료를 체계적으로 소장한 도서관이 거의 없는 실정이어서 한국학 연구에 있어 커다란 어려움이 되고 있다.

④ 균형있는 학술교류의 결핍

러시아를 비롯한 옛 공산권 국가의 경우 90년도 이전까지 한국과의·학술교류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에서의 한국연구는 북한자료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 편향된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화된 해외장학생의 선발, 급속히 변모하는 한국과의 접촉을 늘이기 위한 해외학자들의 초청, 출판된 도서들의 공급확대 등 정부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에서의 한국학의 발전에는 그 이전에 한국학의 필요와 요청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유발하는 요소는 한국학 자체의 대상이 한반도의 정세, 경제발전, 국제사회에서의 지위향상 등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느 문화권에 관한 연구는 거기에 사는 국민들의 생명력·영향력·잠재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외에서의 한국학 진흥은 한국의 발전과 거의 평행적으로 변동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학의 <수요증대>는 간단히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나, 모든 관계자들의 지속적·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제발전,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 증대에 따라 한국에 대한 관심은 더 고조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한국 연구열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어 해외에서의 한국학은 보다 밝은 미래를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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