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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8-24 (일) 10:20
분 류 사전3
ㆍ조회: 456      
[근대] 1910년대의 독립운동
자료 : 1910년대의 민족 독립 운동

자료 1) 대한광복회의 결의

오인(吾人)은 대한 독립 광복을 위하여 오인의 생명을 희생에 공(供)함은 물론 오인이 일생의 목적을 달성치 못할 시는 자자손손이 계승하여 수적(讐敵) 일본을 완전 구축하고 국권을 광복하기까지 절대 불변하고 일심육력1)할 것을 천지신명에게 맹서해 고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2, 94쪽)

자료 2) 대한광복회 국권회복자금제공 통고문 중 군자금모집취지서

오호! 우리 동포여. 이때는 어떤 때냐. 4천년의 종사(宗社)는 회진2)에 돌아가고 2천만의 민족은 노예가 되며 국치민욕(國恥民辱)이 그 극에 달하였다. 오호라! 저 섬 오랑캐는 오히려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날로 더욱 악정 폭행을 가하여 오인(吾人)의 생명 재산을 멸망케 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동포는 아직 이를 깨닫지 못하고 점점 빠져들어 화근이 이르려 함을 알지 못하고 고식(姑息)의 방책만 꾀하려 한다. … 우리 조국을 회복하고 우리 원수를 배척하고 우리 동포를 구함은 실로 이것이 우리 민족의 천직으로서 오인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의무이다. 이것이 본회가 성패와 이익됨을 가리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이를 창립하는 까닭으로서 이미 10여 년을 경과하였다. … 재산으로써 보조를 하여도 힘이 그래도 부족함이 아니다. 단지 빠진 것은 일치된 열성이 결여한 것이다. 이 어찌 통곡하고 눈물흘릴 일이 아닌가. 바라건대 우리 동포는 자기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여 지식이 있는 자는 서로 충정을 고하여 몰래 단결해서 본회의 의로운 깃발을 동쪽으로 가리킬 때를 기다리도록, 재산이 있는 자는 각기 의무를 다하여 미리 저축해서 본회의 구함에 응하라. 나라는 회복할 것이요 도적은 멸할 것이요 공적은 기대할 것이다. 어찌 통쾌하고 장하지 않은가. 만약 흉적(凶賊)에 아부하여 기밀을 누설하여 화근을 동포에게 뿌리고 또한 본회의 규약을 준수하지 않아 기회를 헛되이 하는 자 등의 제재 방법에 대해서는 본회의 정해진 규칙이 있다. 오호라! 우리 동포는 스스로 오해함이 없이 성심열혈로써 기회를 타서 방조(幇助)를 주고 각각 천직을 다하기 바란다. 광복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2, 95∼97쪽)

자료 3) 조선국권회복단 서약서

1. 한국의 국권을 회복할 것
1. 매년 정월 15일 단군의 위패 앞에 목적 수행을 기도할 것
1. 단원은 마음대로 탈퇴하지 않을 것
1. 비밀을 누설치 말 것
1.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는 신명(神明)의 주벌(誅罰-죄가 있는 사람을 꾸짖어 벌을 내림)을 받을 것
1. 결사대로 하여금 살륙케 할 것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7-國權恢復團Ⅰ, 95쪽)

자료 4) 조선국민회의 목적

장래 구미 세력은 점차 동양에 부식되고 일본은 이와 패권을 다툴 기회가 도래할 것은 명료하며 이즈음 일본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동양 연방을 형성하여 구미 세력에 당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은 조선인으로서 지나는 지나인으로서 자치의 자유를 향유할 희망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들은 장래 쟁패의 기회를 타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금일에 동지의 결속을 꾀하며 그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2, 492∼493쪽)

자료 5) 서전서숙3) 교가

불함산이 높이 있고
두만강이 둘렀는데
서전서숙 창립하니
총준재자 운집이라
인일기백(人一己百) 공부하니
구국안민 하여보세

각주

1) 일심육력(一心戮力) : 한마음으로 서로 힘을 모아 협력함

2) 회진(灰塵) : 재와 먼지란 뜻으로 하잘 것 없이 사라지게 되었음을 이름

3) 서전서숙 : 1905년 이상설, 이동녕 등 애국지사들이 간도에 있는 한국인 자제 교육을 위해 학교를 세우려 하다 중국 관헌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6년 이들은 다시 간도 용정(龍井)에 가서 세운 것이 서전서숙이다. 경영 유지비는 이상설이 자기의 재산을 털어 충당했다. 초대 숙장은 이상설, 학생은 22명이었다. 여기서는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신교육을 시행했으며, 따라서 만주에서 행한 한국인 신교육의 효시를 이루었다.

해설 : 1910년대의 민족 독립 운동

1910년대 독립 운동의 기본 방향은 대체로 무력 항쟁을 전제로 독립군 양성이나 이의 지원에 맞추어졌다. 다만 독립 후 수립할 국가에 대해 대한제국의 회복을 주장하는 복벽파와 국민 주권 국가를 새로이 수립해야 한다는 민주공화파의 노선이 갈리고 있었다.

대한제국을 다시 세운다는 복벽주의(復辟主義-물러났던 임금ㆍ왕조를 되살리자는 주장)를 내세운 대표적 단체는 의병 전쟁의 맥을 잇던 임병찬이 주도한 독립의군부였다. 의병 운동으로 대마도에 유배당했던 임병찬이 귀국하여 1912년 조직하고 격문을 배포하고 동지를 규합하였다. 임병찬이 전라남북도를 중심으로 조직을 결성한 후, 1914년에 서울로 올라와 각도 대표를 선정하는 등 전국 조직으로 확대하고 대한독립의군부 편제를 완료하였다. 독립의군부는 조직을 갖춘 후 일본 내각총리대신과 조선총독 등에게 국권반환요구서를 제출하여 일제강점의 부당성을 밝히고 외국에 대해 한국민이 일제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음을 선언하면서 일시에 일제를 내몰려는 일대 국권회복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그해 임병찬을 비롯한 간부들이 체포되어 활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광복회는 1913년 박상진, 채기중 등이 중심이 되어 풍기에서 조국 광복을 목표로 조직된 대한광복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후 1915년에 대한광복회라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확대하였다. [자료1] 1916년에는 노백린, 김좌진 등이 가담하여 다시 광복단이라 이름을 고쳤다. 이 단체는 투쟁 방법으로 만주 지방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의병, 해산 군인 및 만주 이주민 등 애국 청년을 훈련시켜 군대를 편성한 후 무력으로 국권을 회복하려 했다. 이를 위한 군자금은 국내 부호로부터의 기부금, 각처에 잡화상을 경영한 이익금, 해외에서의 일본 화폐 위조 등의 방법으로 조달키로 했다. 실제 활동으로 1917년 10월부터 국내 각지와 만주 등지에 [국권회복운동자금제공통고문]을 발송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비비애국적인 부호와 친일도배들을 살해하는 일을 전개하였다. [자료2] 그러나 본회의 활동은 박상진과 채기중 등이 일제에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고, 많은 회원들이 장기간 감옥에 갇히게 되는 등 심한 박해를 받게 되면서 3·1 운동 발발까지 한때 활동이 위축되었다.

1915년에는 대종교를 신봉한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등 유생들이 조선국권회복단을 경상북도 달성군에 조직하였다. 이들은 이시영, 서상일 등으로 하여금 러시아령의 독립 운동과 연결을 맺어 해외로 운동을 확대시키려 꾀하던 중 3·1 운동을 맞았다. [자료3] 또 1915년 평양에서는 숭실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이 중심이 되어 조선국민회를 조직하였다. [자료4] 장인환 등 회원들은 '대한독립결사' 등의 혈서를 써 결의를 굳게 하였으며, 국외의 동지들과 연락을 도모하고 군자금을 모아 권총을 구입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1918년 일제에 체포되었다.

이같이 강점 이후에도 국내에서 독립을 목표로 한 민족 운동이 끊이지 않았지만 일제의 폭력적 탄압으로 큰 힘을 쓰기 어려웠다. 국내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기 어렵게 된 민족 운동 세력들은 만주와 연해주, 하와이, 중국 관내 등지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을 계속하였다. 특히 만주와 연해주 지방은 당시까지 일제의 침략 정도가 미약하고 동포들이 많이 이주해 있었기 때문에 독립 운동 기지로 적합했다.

만주 지역에 독립 운동 기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은 강점 이전부터 있었고, 이를 위해 이상설은 만주 간도의 용정에 서전서숙을 세우기도 했다. [자료5] 이같은 토대 위에 이곳에서 강점 초기에 활동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대종교를 신봉하며 간도를 독립군 기지로 하여 장차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인 만주 일대를 회복하려는 큰 계획을 갖고 있었다. 망명한 독립 운동가들은 만주 일대에 거주하던 50만 민족의 지원을 받으며 이곳에 산업을 육성해 경제 기반을 다지고 교육과 군사 훈련으로 군대를 양성해 독립 전쟁을 위한 군사 기지를 튼튼히 다져 나갔다.

대종교도였던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이상룡 등은 서간도 유하원 삼원보에 경학사라는 자치 기관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무관학교를 설치하였다. 또 대종교 3대 교주 윤세복이 환인 지방에 세웠던 동창 학교에는 신채호와 박은식 등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참가하였다. 이곳에서는 역사와 군사의 교육이 가장 중시되었다.

이들 만주 일대의 독립 운동가들은 1918년 12월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일제에 대항하여 무력 항쟁을 전개할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였다.

연해주 지방에는 일찍부터 한국인의 자기 기관이 설치되고 언론 활동과 교육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일제강점 이후에는 이상설과 이동휘 등이 블라디보스톡에 대한광복군정부라는 최초의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군을 조직하여 무장 투쟁을 계획하였다. 또 1917년 시베리아 한인들은 전로한족회중앙총회를 조직했는데, 1919년에 대한국민의회로 발전하였다. 이외에도 연해주에는 이상설이 세운 권업회, 철혈단 등 많은 조직이 있었다. 1918년 이동휘 등은 한인사회당을 결성했는데, 1921년 고려공산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중국의 상하이도 국외 독립 운동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신규식은 1912년 대종교를 바탕으로 동제사를 조직하였고, 1915년 박은식과 더불어 대동보국단을 조직하였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편간,『한국독립운동사(1∼5)』, 1965∼1969
맥켄지(이광린 역),『한국의 독립운동』, 일조각, 1969
국사편찬위원회 편간,『한국독립운동사-자료편 1∼7』, 1970∼1977
金正明 편,『朝鮮獨立運動』(1·2·3·5), 原書房, 196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10), 원호처, 1969∼1978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14), 1971∼1979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3), 1971∼1979
고려대아세아문제연구소,『일제하의 민족운동사』, 1971
켄달,『한국독립운동의 진상』, 탐구당, 1975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 22-근대 민족운동의 전개』, 1978
姜萬吉,『한국민족운동사론』, 한길사, 1985
趙東杰,『한국민족주의의 성립과 독립운동사연구』,지식산업사, 1989

출전 : 인터넷스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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