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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8 (일) 00:31
분 류 사전2
ㆍ조회: 674      
[근대] 제국주의 (한메)
제국주의 帝國主義 imperialism

다른 나라를 정복·지배하려는 일체의 침략주의적 경향.

넓은 뜻으로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 등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지는 국가나 민족의 침략주의적 경향을 의미하며, 좁은 뜻으로는 V.I.레닌의 개념으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최후단계를 의미한다. 제국주의의 어원이 된 임페리움(imperium)은 원래 로마공화정 시대에는 명령과 권력, 특히 법에 의한 명령을 뜻하는 일반명사였지만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이후에는 로마에 의한 타민족 지배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이 일반화된 것은 나폴레옹 3세의 몰락을 보도한 영국의 신문 《데일리뉴스》에 의해서였다. 《데일리뉴스》의 1870년 6월 8일자 신문은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을 제국주의라고 지칭하여 전제정치와 동의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말이 사회적으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1877년 이후이다. 즉 영국의 총리 B.디즈레일리는 1877년 러시아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려고 하자 이에 대해 무력행사도 불사한다는 대외강경책을 구사하여 소위 징고이즘(jingoism)이 생겨나게 하였는데 이때부터 제국주의는 열광적인 주전론(主戰論), 혹은 배타적 대외강경책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말은 근대자본주의 사회의 성격이 자유경쟁단계의 산업자본에서 독점·금융자본으로 변화함으로써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이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식민지를 획득하기 위해 벌인 대립과 분쟁을 가리키게 되었다.

[형성 과정과 역사적 전개]

근대 자본주의체제를 확립하였던 영국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세계전역에 걸쳐 통상권을 지배하고 군사력을 동원하여 영토를 병합해 나갔다. 그리하여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자국영토의 100배에 달하는 55개의 식민지를 경영하게 되어 대영제국의 번영과 진보를 상징하였다. 이러한 영국도 19세기 후반 독일·프랑스·미국 등의 도전을 받아 그 지위가 크게 흔들렸다. 세계는 자본주의제국간의 경쟁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특히 1873년부터 무려 23년 동안이나 유럽을 강타한 대불황은 이러한 경쟁을 더욱 가속시켰다.

이에 영국은 그 동안의 자유무역정책을 보호무역정책으로 전환하고 광범위한 식민지를 긴밀하게 조직하려 하였다. 1870년대의 수에즈운하주(運河株) 매수, 인도에 대한 지배 강화, 1884년의 제국연방동맹의 설립에 의거한 자치령과 본국과의 결합 시도, 1903년 식민지장관 A.N.체임벌린의 보호관세정책, 트란스발·오렌지자유국과의 보어전쟁 등은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장기적인 경제공황은, 영국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국가들로 하여금 원료공급지와 소비시장으로서 식민지 획득이라는 대외정책과 독점적 기업결합이라는 대내정책을 수행하게 하였다. 그 결과 식민지를 둘러싼 자본주의국가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880년부터 1914년까지 아프리카를 분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열강들의 외교적 충돌과 군사적 대립은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발생하였다. 그 중에서도 영국의 종단정책과 프랑스의 횡단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한 파쇼다사건과, 독일과 프랑스가 충돌한 모로코문제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오스트리아·세르비아의 지역전쟁으로 시작된 제1차세계대전도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선진자본주의국가와 그렇지 못한 후발자본주의국가들이 식민지 분할을 둘러싸고 벌였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열강들이 충돌하게 된 배경에는 자본주의국가들이 금융자본을 바탕으로 한 독점자본주의로 변모하였다는 새로운 사실이 숨어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간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카르텔이나 트러스트와 같은 독점적 기업결합을 출현하게 하였고 이러한 기업결합의 독점자본에 의한 생산과잉은 소비시장으로서뿐만 아니라 자본투자지로서의 식민지를 더욱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식민지를 소유하지 못한 후발자본주의국가들은 기존의 식민지 소유국에게 식민지의 재분할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지배를 둘러싸고 자본주의국가들이 각축을 벌였던 1870년부터 제1차세계대전에 이르는 시기를 <고전적 제국주의시대>라 한다.

[제국주의의 비판]

제국주의국가들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자국의 사회경제 질서유지를 위한 식민지 경영은 식민지에게도 문명의 혜택과 경제적 발전에 유익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민지에서 벌어진 실상은 명분과는 전혀 동떨어진 비참한 것이었다. 벨기에령 콩고에서는 고무의 채집권을 가진 회사가 고무채집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주민의 팔다리를 자르는 일도 있었다. 또 영국은 3년 동안 끈질기게 항쟁하는 보어인들을 무력으로 정복하여(보어전쟁;1899∼1902) 남아프리카연방을 창설하기에 이르렀지만 국제여론의 악화로 많은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보어전쟁을 계기로 사람들은 제국주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J.A.홉슨은 특파원으로 남아프리카를 방문, 보어전쟁의 배후에는 금융업자들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고 귀국하여 당시 열광적으로 선전되던 제국주의를 자유주의적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비판한 《제국주의론(1902)》을 썼다.

그는 저서를 통하여 제국주의가 성립하게 된 경제적 요인은 국내상품의 과잉생산과 산업자본가와 금융자본가에 의한 무력적 대외정책에 있다고 보고, 평등한 소득분배와 소비의 증대를 통해 과잉생산 및 과잉자본이 해소되면 제국주의 정책이 불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개량주의로 비판받았지만 훗날 J.M.케인스에 의해 높이 평가되기도 하였다.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은행의 역할, 보호관세정책의 목적, 군국주의 등에 대해 심각한 논쟁을 벌였는데 오스트리아의 R.힐퍼딩은 《금융자본론(1910)》을 통하여 산업자본으로 전환되는 은행자본을 금융자본으로 규정하고, 금융자본에 의한 산업과 카르텔·트러스트와 같은 독점적 기업결합을 자본주의의 새로운 특징이라고 논함으로써 제국주의를 금융자본이 대외적으로 취하는 정책으로 이해했다.

온건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제2인터내셔널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K.J.카우츠키는 힐퍼딩의 이론을 발전시켜 초제국주의론(超帝國主義論)을 내세웠다. 제국주의전쟁의 엄청난 결과를 목격한 카우츠키는, 초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를, 금융자본으로 독점이윤을 획득하려는 선진공업국가의 후진농업지역에 대한 정책체계로 보고, 자본가들이 경쟁의 결과가 비참한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국제적 금융자본의 전세계적 트러스트를 형성시켜야 국가간의 경쟁과 전쟁이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R.룩셈부르크는 《자본축적론(1913)》을 통하여 카우츠키를 비판하였다. 그녀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자본축적은 비자본주의 지역의 수탈을 매개로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보호관세와 군국주의와 같은 제국주의 경향과 비자본주의 지역의 축소화가 초래되어 자본주의는 결국 종말을 고하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론은 훗날 A.G.프랑크나 S.아민 등에 의해 종속이론에 선행하는 이론으로 재평가받았다.

J.A.슘페터는 제국주의의 소멸론을 주장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와는 다른 이론을 개진하였다. 그의 저서 《제국주의의 사회학(1919)》에 의하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와 기원을 달리 하는 것으로서 근대사회에 남아 있는 봉건적 요소가 대외팽창과 국제대립이라는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나타난 일종의 격세유전적(隔世遺傳的)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사회가 합리화되면 제국주의는 소멸된다.

[레닌의 제국주의론]

제국주의에 대하여 가장 포괄적이고 역사적인 정의를 내린 사람은 레닌이다. 레닌은 1916년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이하 《제국주의론》)를 통해 기존의 제국주의론을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 분석을 집대성하였다. 《제국주의론》에서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독점단계로 규정하고 그 특징을 5가지로 서술하였다.

① 자유경쟁자본주의의 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시장경쟁을 통하여 생산과 자본이 점차 소수의 대기업에 집중되며, 생산과 자본의 고도집중은 카르텔·트러스트·신디케이트와 같은 독점적 기업결합으로 발전한다. 이는 다시 시장과 가격의 지배를 통해 독점적 고이윤을 생산함으로써 한충 더 발전된 소수의 기업결합체로 발전한다.

② 지배적 자본형태로서의 금융자본의 존재:기업독점은 자금융자와 주식발행 등을 통하여 거대산업과 거대은행의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데 여기서 금융자본이 형성된다. 금융자본은 생산과 자본을 지배하고 독점이윤을 취득함으로써 경제 전반에 걸친 금융과두제(金融寡頭制)를 가능하게 한다.

③ 후진국에 대한 자본수출;독점과 금융자본에 의해 형성되는 과잉자본은 높은 이윤과 유리한 투자기회를 찾아 후진지역으로 수출된다. 배타적이고 특권적인 거래조건(특혜적 통상조약, 철도와 항만의 배타적 점유, 유리한 조건의 증권발행 등)으로 이루어지는 자본수출은 금융자본의 막대한 이윤의 주요 원천이다.

④ 세계시장의 분할·지배:전기산업·석유산업·국제금융자본 등은 카르텔·트러스트·신디케이트 등을 통해 세계시장을 분할·지배한다. ⑤ 열강에 의한 식민지 분할의 완료:세계시장의 재분할은 열강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경제적 기초가 된다.

이상과 같은 제국주의의 특정에 의해 1914년에는 영국과 프랑스를 필두로 하여 러시아·독일·미국·일본 등 6대 열강에 의해 아프리카의 90% 남태평양군도의 대부분이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자본주의국가들은 제각기 영토확장과 지배력강화를 도모하여 세계의 재분할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나아가서는 국가간의 무력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고의 발전단계>에 해당된다.

또한 제국주의는 국내외에 걸친 독점과 금융자본에 의한 경제 지배와 정치적 전제 위에 성립하므로 금리를 추구하는 기생성과 자본주의의 노후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는 제국주의를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제국주의의 독점적 고이윤은 열강 국내의 일부 노동자들에게 특권적 지위를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국제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에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민족억압과 정치·경제의 독점지배의 성격 때문에 이들 운동을 확대·강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제국주의는 <사회주의혁명의 전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레닌은 《제국주의론》을 통해 기존의 제국주의 이론을 비판하고,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기본성격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전쟁에서 내란으로, 그리고 혁명으로>라는 그의 혁명전략은 바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제국주의론》에서 기초된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을 거치며 러시아혁명이 성공함으로써 그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공식적 교과서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실제 그 이후의 연구로 몇 가지 모순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즉 영국의 식민지 경영이 1870∼80년대를 고비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 유럽으로부터의 자본수출의 주대상지역은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점, 전쟁의 결정요인으로 경제적 요인이 중요한 경우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등이 밝혀진 것이다.

[현대의 제국주의]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정치·경제적 동향은 레닌의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났다. 첫째, 식민지·종속국의 대부분이 독립함으로써 식민지주의가 붕괴되고 제국주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둘째, 영국·프랑스·독일·미국 등과 같은 구제국주의 열강들은 경제적 혼란을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셋째, 독재자 스탈린의 죽음을 계기로 동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하였지만, 자본주의체제에 비해 사회주의체제의 경제발전이 미진하고 오히려 옛 소련 대 동구, 옛 소련 대 중국이라는 새로운 대립구조가 생겼다. 넷째, 전후 독립을 성취한 과거의 식민지국가들이 국제연합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국제적 다수파로 등장하여 발언권을 증대시켜 왔다.

이와 같은 세계정세의 변화는 레닌의 이론은 물론 구식민지의 독립을 새로운 형태의 정치·경제·군사적 종속에 불과하다고 보는 신식민지주의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종속이론과 같은 신제국주의 이론은 현대의 국제관계를 중심적인 선진공업국가와 주변적인 개발도상국가간의 불평등한 지배·종속관계로 파악하여 개발도상국이 자립적인 국민경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중심국가에 의한 종속의 사슬을 절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해 나가는 신흥공업국가 역시 막대한 대외채무를 안고 있으며 이 채무가 신흥공업국가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에 어느 정도 기여하였다는 점과 채무관계가 현대의 국제사회에서 지배·종속과 바로 연결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제국주의 이론도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한편 개발도상국가의 저개발·저발전의 원인을, 선진국의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무기수출과 개발도상국가내의 군사정권의 대두에서 찾으려는 경향도 생겼다. 예를 들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보고서는 개발도상국가의 군비확장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자본과 자원의 낭비일 뿐이며 무기와 군사기술의 도입으로 인한 강대국의 군산복합체를 강화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후진저개발국가의 자립경제에 있다. 그들의 경제적 실패는 과거의 식민지시대와는 달리 자국내의 정치적 불안과 국제적 분쟁을 야기시킬 소지가 있다. 이런 점에서 구제국주의와는 달리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등의 분야에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선진국의 정책 및 전략은 여전히 제국주의적 성격을 띨 가능성이 있다.

<박동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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