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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14 (화) 08:56
분 류 사전2
ㆍ조회: 740      
[근대] 이이륙사건 (브리)
2·26사건 二二六事件 February 26th Incident

일본의 육군부대 반란사건(1936. 2. 26~28).

도쿄[東京]에 사령부를 둔 제1사단 소속 도쿄 보병 제1·3연대, 지바 현[千葉縣] 고쿠부다이[國府臺]의 야전 중포 제7연대, 천황의 수호를 맡은 근위사단의 근위보병 제3연대의 일부 장교·하사관·병사 약 1,400명이 1936년 2월 26일 오전 5~7시에 중기관총·경기관총·소총·권총으로 무장하고 정부 요인들을 습격한 사건이다. 총리대신 관저에서 오카다 게이스케[岡田啓介] 총리로 착각한 총리의 의제(義弟)를 살해했으며, 내무상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대장상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淸]를 사저에서 죽이고 시종장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郎]에게 중상을 입혔다. 또 육군교육총감 와타나베 조타로[渡邊錠太郎]를 사살하고, 유가와라[湯河原]에 체재중인 전 내무상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顯]를 습격했으나 마키노는 탈출했다.

경시청을 완전히 점거하고 육군상 관저에 침입하여 가와시마 요시유키[川島義之] 육군상에게 '궐기취지서'와 육군상에 대한 '요망사항'을 낭독해주며 자신들이 궐기한 이유를 밝히고 당면한 구체적인 조치의 결행을 요구했다. 26일 새벽의 군대 봉기에 대해 군수뇌부는 궁중에서 회의를 열고 대책을 강구했다. 우선 '대신고시'(大臣告示)를 작성하여 봉기한 부대에 전달해 일단 진정시킨 후 27일 오전 2시 50분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도쿄 부근의 육군부대를 집결시키고 잔류 보병 제1·3연대, 근위사단과 합세해 봉기한 부대를 포위했다.

28일 오전 5시 8분 봉기 부대에 대해 무조건 원대복귀하라는 천황의 직접명령을 하달하고, 이에 복종하지 않으면 29일 오전 9시를 기해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공격은 없었으며 여러 가지 설득을 통해 그날 오후 봉기군은 귀순했다. 주모자인 노나카 시로[野中四郎] 대위는 자결했으며 장교 17명, 전직 장교 3명은 체포되었다. 체포된 장교 중 15명은 군사재판에 의해 1936년 7월 12일 총살되었고 계엄령은 18일에 해제되었다.

전직 장교인 무라나카 다카지[村中孝次], 이소베 아사이치[磯部淺一]와 직접 사건에 참가하지 않은 기타 잇키[北一輝], 니시다 미쓰구[西田稅]는 민간측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이듬해인 1937년 8월 19일 총살되었다. 또 일본·조선·만주의 부대에서 사건의 동조자 혐의를 받은 다수의 장교가 체포되었으며 10여 명의 장교가 유기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쿠데타이지만 일본 군대의 특수한 사정에서 원인과 동기를 찾을 수 있다.

군대의 병사는 징병제에 의한 국민개병(國民皆兵) 원칙으로 뽑히는데 그 대부분이 농촌 출신이었으며 장교의 대부분도 중산층 이하의 출신이었다. 이 군대는 현인신(現人神)으로 받드는 천황에 의해 직접 통수되는 군대이며 여기에 건군(建軍)의 기반이 있었다. 그러나 군도 정부의 한 기관이며 예산과 인사를 다루고 정책을 시행하는 행정기관이기도 하다. 이것이 군부 내의 권력을 행사하는 군관료라고도 할 고급군인을 존재하게 했으며, 한편 병사와 함께 훈련에 힘쓰는 하급장교 집단이 군대의 중핵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존재했다.

이 두 군인층이 통제파(統制派)· 황도파(皇道派)라고 불리는 당시의 육군 2대 파벌의 원류가 되어 각기의 배경 아래 군 내부에 대립과 항쟁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통제파는 전자(前者)인 중견 군관료를 중심으로 쿠데타를 배제하고 군의 통제를 중시하면서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파벌이었다. 이에 비해 황도파의 성원은 주로 하급장교들이었으며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 마자키 진자부로[眞崎甚三郞] 두 대장을 중심으로 받들어 정신주의적 경향이 강했는데, 그 의도하는 바는 직접주의였다. 이 두 파는 국내정치에서의 군부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강력해짐에 따라 그 투쟁도 격화되어갔다.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말부터 일본의 정당정치는 많은 실정을 거듭했고, 특히 경제공황·농촌공황 속에서 국민의 생활은 암담한 상태에 빠졌다. 병사들은 이 실정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농촌 출신이었다. 병사들의 가정적 위기는 부대소속 하급장교에게 동정과 위기감을 안겨주었으며, 이들은 이런 상황이 나타나게 된 원인이 원로나 중신, 그리고 정부·정당의 수뇌가 천황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고 제멋대로 정치를 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또한 그들 군·정부·정당 요인들을 일거에 타도하고 천황이 친히 정치를 하도록 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일본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앞서 거론한 군부 내의 파벌투쟁과 맞물려 마침내 폭발한 것이 이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2월 26일 오전 9시 30분, 입궐한 가와지마 육군상에게 천황은 사건의 신속한 진압을 독촉했고, 이같은 천황의 강한 의지에 의해 사건은 진압되었다. 군관료(통제파)는 반란 장교를 극형에 처하는 한편 군의 기강을 바로잡고 인사를 단행하여 군부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이 사건을 위압의 도구로 삼아 정치 주도권을 잡고 일본 파시즘 제패의 길로 나아갔다. 이런 의미에서도 2·26사건은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의 가장 중요한 국내정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BIE

참고문헌

順逆の 昭和史 - 二二六事件までの 陸軍 : 高宮太平, 原書房, 1971
二二六事件(中公新書) : 高橋正衛, 中央公論社, 1965
國家主義運動(現代史資料 4 - 5) : 今井淸一, 高橋正衛 解說, みすず書房, 1963 - 64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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