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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14 (화) 09:30
분 류 사전2
ㆍ조회: 732      
[근대] 에스파냐내전=스페인내란 (브리)
스페인 내란 -內亂 Spanish Civil War

스페인 제2공화국의 인민전선(人民戰線) 정부에 대항해서 군부를 주축으로 한 국가주의자들이 일으킨 군사반란(1936~39).

처음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가 전국을 장악하는 데 실패하자 군사반란은 잔인한 유혈 내란으로 확산되었다. 반란군은 보수주의자, 파시스트 이탈리아, 나치 독일의 지원을 받았으며 공화파는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 온 대규모 지원병 부대인 국제여단과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스페인 내란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스페인 역사와 정치가 양극화한 결과로 일어났다. 내란의 양측은 구성세력부터 달랐다. 국가주의자는 스페인의 로마 가톨릭 교회, 군부세력, 토지소유자, 기업가 등이었고, 공화파는 도시노동자, 농업노동자, 교육받은 중산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세력의 차이는 정치적으로 파시스트적 팔랑헤당(국가주의자)과 호전적 무정부주의(공화파)라는 극단적이고 격렬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이 양극단 세력 사이에는 군주주의와 보수주의를 비롯해 자유주의, 그리고 소련 지도자 요시프 스탈린과 그의 최대 라이벌 레온 트로츠키의 추종자로 양분되어 있는 소규모 공산주의 운동을 포함한 사회주의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란이 본격화하자 암살과 폭력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1934년에는 발렌시아와 사라고사에서 총파업이 발생했고,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도 전투가 벌어졌으며, 아스투리아스에서는 광부들의 유혈폭동이 일어나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공화국 정부의 계속된 위기는, 1936년 2월 16일 선거에서 좌익정당의 지지와 우익 및 나머지 중도파 정당의 반대를 받던 인민전선이 정권을 잡음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다.

1936년 7월 17일 스페인 전역의 수비대 주둔지역에서 정확히 계획된 군사봉기가 시작되었다. 7월 21일까지 반란군은 스페인령 모로코, 카나리아 제도, 발레아레스 제도(메노르카 제외), 과다르라마 산맥, 에브로 강 북쪽의 스페인 지역을 장악했고 단지 아스투리아스, 산탄데르, 북쪽 해안의 바스크 지방, 북동쪽의 카탈루냐 지방만을 점령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공화파 군대는 세비야·그라나다·코르도바 같은 안달루시아의 몇몇 대도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반란군의 봉기를 진압했다. 국가주의자와 공화파 모두는 각각의 영토를 조직하고 반대세력을 진압해 나갔다. 양측에서 최소한 5만 명 이상이 처형, 살해, 암살되었다는 사실은 스페인 내란이 엄청난 감정폭발을 일으켰음을 보여준다.

국가주의자들의 지휘권은 차츰 프랑코 장군에게 넘어갔다. 1936년 10월 1일 국가수반이 된 프랑코는 부르고스에서 정부를 구성했다. 반면 공화국 정부는 1936년 9월부터 사회주의 지도자인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가 이끌었다. 1937년 5월 카바예로의 후임으로 등장한 후안 네그린 역시 사회주의자로서 내란이 끝난 뒤 1945년까지 망명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인물이었다. 내란이 거의 끝날 때까지 스페인 공화국 대통령은 교권(敎權)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 마누엘 아사냐였다.

세력이 너무 약해 신속한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한 양측은 외국의 원조로 눈을 돌렸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병력·탱크·비행기 등을 보내 국가주의자를 도왔다. 소련은 이미 프랑스와 멕시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던 공화파에 장비와 물자를 공급했다. 4만여 명의 외국인 용병이 국제여단의 이름으로 공화파 편에서 싸웠고 후방에서 의료와 보급활동을 한 사람도 2만여 명에 이르렀다.

1936년 11월경 국가주의자들은 마드리드 외곽까지 진격해 마드리드를 점령하기 위해 공세를 폈지만 유니버시티시티 지역을 넘어갈 수 없었다. 이들은 1937년 여름 바스크 북부지방, 그 다음에는 아스투리아스 지방을 점령해 10월경에는 북부 해안 전지역을 장악했다. 이제 내란은 지구전이 되었다. 국가주의자들은 테루엘을 통해 동쪽 요새를 향해 돌진함으로써 지중해에 닿았고 1938년 4월에는 공화파를 양분할 수 있었다.

1938년 12월에는 북동쪽에 있는 카탈루냐로 진출해 공화파 군대를 북쪽 프랑스 편으로 몰아붙였다. 1939년 2월 25만 명의 공화파 군인들은 비슷한 수의 민간인과 함께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도망쳤고 3월 5일 공화파 정부도 프랑스로 망명했다. 3월 7일에는 마드리드에서 공산당과 반(反)공산당 세력 사이에 또다른 내란이 발생했다. 3월 28일 모든 공화파 부대는 해산하거나 투항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날 국가주의자들은 마드리드에 입성했다.

스페인 내란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가주의자측에서는 희생자수를 전쟁에서 죽은 사람뿐 아니라 공중폭격·처형·암살 등으로 희생당한 사람을 포함해서 약 100만 명으로 추산했다. 최근의 통계는 이 숫자를 50만 명 내외로 잡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영양실조·기아 등 전쟁이 일으킨 부수적인 질병으로 죽은 사람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스페인 내란의 정치적·감정적 여파는 한 국가의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들은 각기 자국의 관점에서 스페인 내란을 전제주의와 민주주의, 파시즘과 자유, 혹은 공산주의와 문명 사이의 국제적 갈등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에 있어서 스페인은 새로운 모델의 탱크와 비행기 등 자국의 군비를 시험하는 장소가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에 있어서 스페인 내란은 자신들이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제적 평형상태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었다. 결국 이 평형상태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깨졌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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