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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9 (목)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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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640      
[근대] 자글룰파샤 (브리)
자글룰 Sad Zaghlūl 정식 이름은 Sa'd Zaghlūl Pasha ibn Ibrāhīm. 1857. 7 이집트 이비아나~1927. 8. 23 카이로.

이집트의 정치가·애국자.

와프드당의 지도자로서 1918~19년 민족주의운동을 지도하여 1922년 명목상이지만 이집트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1924년 잠시 동안 이집트 총리를 역임했다.

자글룰은 나일 삼각주에 위치한 이비아나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카이로에 있는 알아자르이슬람대학교와 이집트 법률학교에서 수학한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잠시 언론계에서 근무했다. 1892년 항소법원(抗訴法院) 판사가 된 그는 1895년 당시 이집트 총리였던 무스타파 파샤 파미의 딸과 결혼했다.

1906년 그는 신설된 교육부의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곧이어 인민당(the izb al-Ummah)을 창당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인민당은 영국의 점령에 대항하여 이집트 민족주의가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에 창당되었는데, 당시 이집트의 실질적인 통치자이며 영국 총영사였던 크로머 백작 1세, 에벌린 베어링은 인민당을 "이집트에 서구문명을 도입하여 유럽인들과 협조 정책을 주장하는 단체"라고 격려했다.

계속해서 교육장관으로 재직했던 그는 1910년 법무장관이 되었으나 1912년 이집트 총독 아바스 힐미 2세와의 불화로 장관직에서 사임했다. 일련의 행정부서에서 장관으로 복무한 6년 동안 그는 영국인 점령자들과 협력했으며, 이러한 그의 행위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배신자라고 비난받게 되었다. 그러나 1912년 자글룰은 자신의 태도를 바꾸었다. 제한적 권력이 부여되는 단원제 입법의회에 당선된 그는 1913년 부의장이 되었으며 1년 간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그는 정부를 비판하는 민족주의적 시각을 가진 인물로 재탄생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총독은 폐위되었고 계엄령이 공포되었으며 입법의회가 해산되었다. 이후 4년 동안 이집트에서는 공개적인 정치 행위가 중단되었다. 이집트 국민들은 인플레이션과 물자 징발, 그리고 징병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지식인과 전문가 계층은 개인의 자유에 가해지는 제약과 이집트를 임시적인 보호령에서 영구적인 식민지로 전환시키려는 영국의 명백한 의도에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1918년 11월 휴전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이집트 전역은 불만으로 들끓었다. 영국과 협력했다는 오명에서 자유로워진 자글룰과 이전의 몇몇 입법의원들은 전쟁기간 동안 정치적 선동과 행동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활동단체를 이집트 전역에 결성했다. 휴전조약 체결 2일 후인 1918년 11월 13일 자글룰의 주도하에 3명의 전 입법의원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식민지 고등판무관(이집트에 주재하는 영국대표의 명칭임)인 레지널드 윙게이트 경(卿)을 방문했다.

그들은 현정부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이집트 국민의 진정한 대표임을 통지하는 동시에 이집트에 대한 영국의 보호령을 폐지하고 동맹조약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영국 본국정부와 그러한 조약을 직접 협상할 수 있도록 런던에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요구들이 거절당하자 광범위한 소요가 발생했으며 이 소요는 자글룰과 그의 동료들이 결성한 비밀단체에 의해 조직된 것이었다. 1919년 3월 자글룰과 3명의 대표는 체포되어 말타로 추방되었고 이러한 조치는 소요사태를 악화시켰다. 영국 정부는 윈게이트를 해임하고 전시에 팔레스타인 사령관을 지낸 앨런비 장군을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했다.

내각 총사퇴 압력과 전국적인 반란진압작전에 직면하여 앨런비는 이집트 여론을 달래기 위해 자글룰과 그의 동료들을 석방했다. 자굴룰은 즉시 평화회담이 열리고 있던 파리로 가서 연합국 측에 이집트 안건을 제출했다. 그는 파리에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지만 이집트에서는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자글룰이 석방됨에 따라 이집트의 소요사태는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1919년 가을 앨런비의 추천에 의해 영국의 식민장관인 밀너 경이 이끄는 사절단이 미래의 양국관계에 대한 권고안을 만들기 위해 이집트에 도착했다. 자글룰은 이집트 여론이 사절단을 거부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자신만이 영국과 협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20년 여름 그는 런던에서 밀너와 여러 차례 협상모임을 가졌는데 이 협상에서 밀너는 비록 비공식적이기는 했지만 1918년 11월 윈게이트에게 자글룰이 요구했던 핵심적인 사항인 보호령을 동맹조약으로 대체하는 문제에 동의했다. 그러나 자글룰은 영국과의 합의조항이 이집트에서 자신의 지위를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이집트 국민의 지지는 그의 영국에 대한 저항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합의안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집트로 돌아와 국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1921년 2월 보호령의 철폐와 조약협상을 제안하는 밀너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자글룰의 경쟁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아들리 파샤 야칸에 의해 구성된 정부는 거의 1년 동안 조약 협상을 위해 노력했으나 자글룰은 이에 대해 실질적인 거부권을 행사했다. 마침내 아들리가 사임하자 자글룰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거리로 진출시켜 어떠한 새 정부의 구성도 방해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앨런비는 자글룰을 체포하여 세이셸로 추방했다. 앨런비는 이어서 소극적인 영국정부에 대해 밀너의 권고안을 승인하고 이집트의 제한적 독립을 승인하는 선언을 명백히 공표하라고 1922년 2월 제안했다 (→ 색인 : 밀러 위원회).

이전에 자글룰을 지지했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집트 정치인들은 자글룰의 추방이 가져온 사회적 여파에 충격을 받아 새로운 정치체제하에서 영국과 협조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유헌법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이 창당되었으며 헌법이 공포되었다. 그러나 자글룰에 의해 고삐가 풀린 세력들은 자글룰의 반대자들이나 자글룰 자신의 힘에 의해서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자글룰은 추방에서 돌아와 새 헌법 아래서 처음 실시되는 선거에 참가했다. 그가 지도하는 와프드당은 거의 전 의석을 석권했고 1924년 1월 그는 총리가 되었다.

총리 재직시 그는 자신이 촉발시켰던 폭력소요를 더이상 그 자신도 통제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많은 영국 공무원들과 이집트 '부역자'들이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했고 1924년 11월 이집트 군대를 지휘하던 영국 총사령관이 암살당했다. 자글룰은 앨런비로부터 최후통첩을 통보받은 후 사임했다. 1926년 5월의 총선 결과는 와프드당이 여전히 이집트 국민들의 신임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영국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야기된 충격은 극단주의자들을 약화시키고 온건주의자들을 결집시켰다.

거의 70세에 달한 자글룰 역시 더이상 공직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았다. 영국의 신임 고등판무관인 로이드 경의 압력에 따라 자글룰은 연립정부를 형성하기로 합의하고 자신을 국회의장으로 임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국회의장으로 임명된 자글룰은 죽을 때까지 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추종자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 대체로 성공했다.

자글룰은 건설적인 정치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외국인의 점령과 토착적인 독재주의, 그리고 사회적 봉건주의를 철폐시키기 위한 국민들의 투쟁을 촉진시킨 촉매제 역할을 한 정치가였을 뿐이다. 그의 그러한 투쟁을 완결시킨 것은 1952년에 일어난 혁명이었다. 자글룰의 영향력은 그의 웅변술과 순수한 이집트 농민 출신으로서 농민의 미덕과 한계를 고스란히 체현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와 동시대의 권력자들 대부분은 옛 터키 귀족가문의 후예였기 때문이다.

J. Marlowe 글

참고문헌

Sa'd Zaghlūl : Abbas Mahmud al-Aqqad, 1936
Sa'd Zaghlūl and the British : E. Kedourie, 〈Middle Eastern Affairs:Number Two, pp. 139-160〉, A. Hourani (ed.), 1961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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