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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16 (월) 07:21
분 류 문화사
ㆍ조회: 3011      
[건축] 르네상스미술 (두산)
르네상스미술 Renaissanc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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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세기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미술.

I. 개관

오늘날 통념적인 르네상스 미술의 시기는 피렌체대성당의 돔(dome)을 착공한 1420년을 상한(上限)으로 하고, 하한(下限)은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로 옮겨가는 1525∼30년경으로 잡고 있다.

19세기 이후, 15∼16세기에 유럽의 문화현상을 널리 파악하는 개념이 된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재생'을 뜻하는데, 이 말의 어원은 역사적으로 보면 이탈리아에서 미술용어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미 14세기의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및 역사가 빌라니 등이 잃어버린 고대의 문예 및 예술을 새시대에 재현한다는 뜻으로 이탈리아어(語)의 '재생ㆍ부활'을 의미하는 리나시타(rinscita)라는 어휘를 사용하였다.

다시 15세기 이탈리아의 미술가 기베르티와 알베르티, 필라레테 등의 저술에도 그러한 사관(史觀)이 계승되어 있었으나, 특히 16세기의 미술가 바사리는 그의 저서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美術家列傳)》(1550년 초판)에서 고대미술이 야만족의 침입과 중세의 우상파괴운동으로 멸망하고, 그 후 거친 고트인(人)에 의하여 '독일양식', 즉 고딕이나 딱딱한 비잔틴양식이 풍미한 뒤, 13세기 후반 이후 화가 치마부에ㆍ조토 및 조각가 피사노와 디 캄비오 등이 나와 토스카나 지방에서 뛰어난 고대미술의 전통을 부활시킨 사실을 리나시타라는 말로써 파악하였다.

이 말이 19세기 초엽, 프랑스 학자의 주목을 받아 르네상스라고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이어서 영어ㆍ독일어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이탈리아어로는 리나시멘토(rinascimento)가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란 본질적으로 이탈리아어이며, 더욱이 그 개념이 형성된 단서는 그 시기의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역사적 자각과 의욕을 보여준 미술현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ll. 고대의 재생과 이탈리아

이탈리아인은 고대의 가장 정통적인 계승자라는 자각 아래 타국민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대에 대한 동경과 향수에 빠져서 조상의 위업을 회상하는 민족적 자부심과 그 위업을 재현할 후예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 운동을 펴나갔다. 물론 고전 고대의 부흥이라는 현상이 중세에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면, 9세기 카롤링거 왕조의 고대 부흥이나 12세기의 프로트 휴머니즘이라고하는 현상은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레노바티오(renovatio:라틴) 또는 리내슨스(renascence:영국) 등으로 불리는 이러한 고대회귀현상(古代回歸現象)이 이탈리아에서의 르네상스와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비록 명확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고대를 자기 자신과 역사적으로 연속한 것으로서 파악한 데 대하여, 이탈리아의 그것은 고대를 먼 과거에 잃어버린 유산으로 파악한, 역사적 이념을 통하여 보았다는 점이다. 즉, 당시의 이탈리아인은 자기 자신과 고대인 사이에 '1,000년의 암흑시대'라는 개념을 삽입함으로써 고전 고대의 세계를 머나먼 과거로보고 취급한 점이며, 이와 같은 르네상스의 인식은 당연한 귀결로 부정적인 중세개념을 잉태케 하였다.

그런데 이미 14세기 말의 화가 치에니니는 그의 《예술의 서》(1400년경)에 조토의회화활동 가운데 그 때까지도 없었던 자연탐구에 의한 새로운 풍조와 고대의 재흥(再興)을 인정하였다. 이 자연탐구에 의한 사실(寫實)과 앞에서 든 고대연구를 2개의 큰 기둥으로 삼아 극히 이지적(理知的)ㆍ논리적으로 추진해나간 르네상스 미술은 우선 정치ㆍ경제의 근대화에 따라 시민의식이 왕성한 피렌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그 후 이탈리아 각 도시로 파급되었고, 다시 16세기 이후에는 알프스 이북의 여러 국가에까지 퍼져나갔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미술의 싹은 이미 13세기 후반~14세기 초에 화가 치마부에와 조토, 카발리니, 조각가 피사노와 캄비오 등의 활동으로 명확하게 인정된다. 이것이 조기(早期) 르네상스이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그 후 국제적인 북방 고딕 양식으로단절되었으며 그것을 극복하여 참다운 르네상스 미술로서 의식상으로나 양식으로나 본격적인 개화를 본 것은 1420년대부터이다. 이것은 피렌체 출생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조각가 도나텔로, 화가 마사초 등에게 힘입은 바가 컸다.

lll. 3인의 혁신자

건축에서는 미(美)와 힘을 통합하여 조화와 율동의 공간질서를 드러낸 브루넬레스키에 의하여 비롯된다.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마리아)대성당의 붉은색 대형 돔은 역학상의 난점을 훌륭하게 해결한 걸작일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건축 중에서 빛나는 최초의 수확이기도 하였다. 또한 고대 로마의 판테온의 가구기술(架構技術)을 채용하여 돔을 설계하고, 조화를 이룬 당당한 볼륨을 공간에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고딕건축의 수직적 상승성을 배제하고 조화를 이루면서도 장중한 공간을 살린 르네상스 건축은 여기서부터 출발하였다.

조각에서는 조각을 건축의 부속적 지위로부터 해방하여 조각 본래의 양체성(量體性)을 올바로 자각하고 고딕양식으로 회화화(繪畵化)한 조각을 정도(正道)로 되돌려 고전정신과 사실주의(寫實主義)를 융합시킨 도나텔로에 의하여 르네상스의 개막을 알리게 되었다. 그의 《성(聖) 조르조》와 《다비데》나 《성고(聖告)》를 비롯한 대표작은 모두가 고아(高雅)한 고전적 품위와 사실에 따른 엄격한 양체성의 훌륭한 융합이다.

그리하여 파도바의 일 세인트성당 앞 광장에 서 있는 《가타멜라타 장군 기마상》은 장중한 건축적 구성 가운데 사람과 말이 일체가 되어 위용이 넘친 용감한 자태, 상(像)과 대좌(臺座)의 뛰어난 균형, 또한 말을 탄 장군의 날카로운 성격의 각출(刻出)로 그의 투철한 자연관찰에 의한 두드러진 리얼리즘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회화에서는 15세기 초기임에도 이미 지배적인 국제 고딕 양식의 유행을 물리치고 피렌체화파(畵派) 본래의 힘찬 조형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마사초에 의하여 르네상스의 회화는 막이 열렸다. 앞의 두 위대한 선배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 공기와 빛과 색채에 의한 엄격한 조형성을 바탕으로 주제의 본질을 추구한 1427년경의 카르미네성당 브란카치 예배당의 《헌상의 동전》 외에 5장면 정도의 벽화는 조토의 조형적인 엄격성을 훌륭하게 재생ㆍ발전시킨 작품이며, 당대의 수준을 능가한 획기적인 양식이었다. 27세 요절하였으나, 그가 피렌체화파에 끼친 영향은 컸다.

lV. 미술활동 전개

건축에서는 알베르티, 필라레테, 미켈로조, 마야노 형제, 크로나카, 상갈로를 거쳐서 브라만테에 이르고, 조각에서는 반코, 로비아 일족, 세티냐노, 로셀리니 형제, 폴라이우올로, 베로키오, 베르톨도를 거쳐서 미켈란젤로에 이르고, 회화에서는 우첼로, 안젤리코, 리피, 카스타뇨, 베네치아노, 발도비네티,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등을 거쳐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이르렀다.

단적으로 말하여, 15세기 초의 르네상스 미술은 피렌체파(派)의 주도 아래 각 분야와도 긴밀히 교류하면서 원근법과 인체균형론(人體均衡論) 등의 여러 탐구와 그를 위한 기법을 확대하여 자연주의적 주류 아래 전개해 나갔다. 더욱이 피렌체에서 탄생ㆍ양육된 르네상스 미술은 앞의 3대 예술가를 비롯한 같은 파(派)의 미술가들이 이탈리아의 각지에 초대받아 여러 곳에서 눈부시게 활약했기 때문에 지방에도 확산되어, 15세기 후반에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 각기 지방적 특색을 보유하면서 새시대의 예술운동에 참여한 유파가 서로 그 특색을 겨루어 활기를 띠었다.

예를 들면 토스카나와 에밀리아 지방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그의 문하생인 멜로조 다 포를리, 루카 시뇨렐리, 페루지아의 두초와 페루지노, 핀토리키오, 우르비노의 루치아노 라우라나, 만토바의 만테냐, 페라라의 코스메 투라, 코사, 볼로냐의 프란치아, 파피아의 아마데오, 나폴리에서의 라우라나, 베네치아에서의 벨리니 일가(一家)와 롬바르도 부자, 안토넬로 다 메시나, 크리벨리 등의 활동이 현저하였고, 거의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각기의 분야에서 유니크한 예술활동을 전개하였다.

V. 고전양식의 달성

초기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이룬 객관주의는 1450년 전후에 태어난 세대의 미술가들에 의하여 달성되었으나 완성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이것을 지양하여 한층 더 높은 주관과 객관의 융합으로 형성된 전아(典雅)한 고전적 예술로 향하는 길을 연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그의 천재성은 15세기 말에 이미 그 세기의 객관사실(客觀寫實)을 심화하여 주관적인 정신 내용과의 통일을 기도하여 《최후의 만찬》을 비롯하여 그 후의 여러 작품에서 이상주의적 고전양식을 완성하게 하였다.

이어 70년과 80년대에 출생한 미술가들, 예를 들면 피렌체파의 프라 바르톨로메오와 미켈란젤로, 사르토, 우르비노 출생의 라파엘로, 피렌체파의 조르조네ㆍ티치아노ㆍ피옴보, 에밀리아파의 코레지오, 시에나파의 소도마 등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실현한 업적을 계승하고, 고대미술에서도 많은 것을 배워 대상을 주관적으로 잘 순화하여 우연적이고 특수적인 것을 제거, 고전적 이상을 추구하여 여기에 고전양식의 전성기를 구축하였다.

이때가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하는 16세기 초의 4반기(四半期)이다. 그 중에서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코레조는 이 시기의 대표적 미술가로서 각자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못지않는 개성적인 고전적 예술을 이루어놓았다.

Vl. 말기의 두 경향과 북유럽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고, 당시의 국제정세에 의해 이탈리아의 정치적ㆍ사회적 혼란이 겹쳐 이미 16세기 중엽부터 고전적이고 조화있는 양식이 무너지면서 동적인 바로크 양식의 싹(프로토 바로크)이 나타났다. 한편, 마니에리스모라 불리는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주관주의 양식이 나타나 16세기 중엽에는 건축ㆍ조각ㆍ회화의 주류가 되었다.

특히 피렌체파의 화가 폰토르모와 브론치노, 바사리, 조각가인 첼리니, 안마나티, 장 볼로냐 등을 대표적인 마니에리스트로 들 수 있으나, 페라라파(派)의 도소 도시, 에밀리아파의 파르미자니노, 베네치아파의 틴토레토 등도 만년에는 마니에리스모로 옮겨갔다. 또 베네치아파의 최후를 장식한 파올로 베로네제는 바로크적 경향으로 끝나, 결국 이탈리아에서의 르네상스 미술은 16세기 중엽 이 두 경향이 교차하면서 실질적으로 끝났다.

한편, 알프스 이북의 여러 국가에서도 15세기 말 이후 뒤러 등의 북방(北方)미술가의이탈리아 방문, 1527년의 카를 5세 군대의 '로마 약탈' 등으로 인한 이탈리아 미술가의 도피 등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북방 여러 나라에도 전파되어 16세기 중엽부터 르네상스적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본래부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역사적 현상으로, 고대미술이나 학예(學藝)를 갖지 않은 북방 여러 나라의 그러한 현상을 르네상스 본래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무리이며, 동시대적 파악은 가능할지 모르나 특별히 북방 르네상스라는 개념으로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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