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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16 (월) 07:22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646      
[건축] 르네상스미술 (한메)
르네상스미술 -美術

14세기 말엽부터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나서, 전유럽을 휩쓸었던 문예부흥(르네상스)시대의 미술양식 및 시대구분의 개념.

[미술사에서의 르네상스]

19세기 이후, 르네상스는 일반적으로 문예부흥이라고 번역되어, 널리 유럽의 문화현상을 파악하는 개념이 되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예술·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문학·미술·사상 등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 했던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전유럽적인 운동을 가리킨다.

그러나 미술사의 통설로는 1420년 건축가 F.브루넬레스코가 고대연구의 성과를 최초로 실현한 피렌체대성당의 원개(圓蓋;돔) 공사가 기공된 무렵부터 1520∼30년경에 고전적 미술이 마니에리슴으로 이행한 연대까지의 이탈리아미술에 한정시켜 좁은 범위에 사용한다. 그런 경우 특히 1500년을 경계로 1400년대를 전기르네상스, 1500년대를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한다.

르네상스라고 하는 프랑스어는 <재생·부활>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리나시타(rin견scita)에서 유래한다. 14세기의 시인 F.페트라르카와 G.보카치오 등이 사라져가는 고대예술을 그들의 새 세대로 되실리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한 이후,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적 역사만으로 계승되고 있다. 15세기의 미술가 L.기베르티와 건축가 L.B.알베르티, A.P.A.필라레테 등의 저서에서 이것을 볼 수가 있다.

특히 16세기의 미술가 G.바사리는 그의 《미술가 열전(美術家列傳, 1550)》에서 여러 차례 리나시타라는 말을 사용하여 <고대미술의 좋은 양식이 야만민족의 침입과 중세 그리스도교에 의한 우상파괴운동 때문에 쇠퇴했으며, 또한 조잡한 마니에라 테데스카(maniera tedesca;독일양식)와 딱딱한 마니에라 그레카(maniera greca;비잔틴양식)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13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지방에서 화가인 G.치마부에와 B.조토, 조각가인 N.피사노와 아르눌포 디 캄비오 등이 나타나 고대의 뛰어난 예술정신이 부활했다>고 서술했다.

더구나 이 고대의 재생이 고전 연구와 자연모방에 입각한 자연주의의 추진에 의한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일찍이 19세기의 J.미슐레와 J.C.부르크하르트가 르네상스를 <인간과 세계의 발견>의 시대라고 말한 이후, 르네상스는 단순한 고대의 재생일 뿐만 아니라 중세와 결별한, 오히려 새로운 인간상과 세계관의 도래를 알리는 빛나는 문화사적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르네상스는 중세와의 관계를 둘러싸고 유럽문화 전체를 휩쓴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또한 카롤링거왕조와 12세기의 문화에도 르네상스가 거론되어 복잡하고 많은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바사리가 본 것처럼 르네상스는 본래 이탈리아의 미술풍토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시기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역사적 인식과 예술의지에서 생겨난 미술현상(美術現象)을 계기로 하여 형성된 개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미술의 여명]

원래 고전고대의 문화적 기반 위에 선 이탈리아에서는 고대의 재생은 15세기에 갑자기 자각한 것은 아니다. 이미 새로운 미술의 싹은 당시의 사람들이 대립시켜 취했던 중세의 고딕미술 가운데서 일찍부터 나타났다. 북방의 중세미술의 영향은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에도 미쳤다. 그러나 이 지방의 미술은 13세기경부터 차츰 독자적인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4세기에 피렌체화파(畵派)의 기초를 확립한 조토는 풍부한 자연감정에 의해 인물의 표정이나 자태에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하고, 배후의 공간에 깊이와 명암을 묘출함과 동시에 화면에 합리적인 균형과 질서를 구성하여 지성과 감정의 융화를 형성했다. 시에나에도 미술의 새로운 태동(胎動)이 일었다.

수많은 성모자상을 그린 B.두치오는 우아한 감수성과 감미로운 색채를 특색으로 하여 실화적인 도해력을 발휘했다. 그것을 계승한 S.마르티니는 선의 리듬에 인간감정의 기복과 이국적인 정취를 표출시킨 장려한 세속적 화풍을 수립했다. 또한 로렌체티 형제는 종교화뿐만 아니라 애향적인 시민의식에 뿌리를 내린 우의적(寓意的)인 주제에도 인간의 생생한 정열과 시선을 주입하여 일상생활과 정경(情景)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한편, 공간묘사를 3차원적으로 진전시켰다.

14세기 전반까지의 이러한 토스카나 여러 도시의 미술동향을 15세기의 전기 르네상스에 선행하는 미술활동으로서 특히 플로트 르네상스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페스트(흑사병)의 내습을 전환기로 14세기 후반의 유럽사회는 극단적인 염세(厭勢)와 구원 사상에 뒤덮여서, 이탈리아미술도 그 무렵의 세속적인 사실주의와 금욕적인 초월주의의 대립이라는 상극을 반영했다.

한편으로는 르네상스의 방향을 정체 또는 역행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오히려 주변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사실적 태도와 장식적 경향을 강화하여, 마침내 1400년 전후 약 70년에 걸쳐 유럽 각 도시의 궁정을 중심으로 전개된 몽환적이면서 섬세하고 감미로운 후기 고딕 국제양식의 풍조에 합류해 나갔다.

[전기 르네상스의 미술]

조토가 재생을 예고한 새 시대의 예술이 명확하게 그 골격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의 피렌체였다. 이 도시는 정치적·경제적 번영을 배경으로, 인문주의 사조(思潮)를 기르고, 인간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했다. 미술가들은 조합을 만들고 공방(工房)을 거점으로 고전작품의 연구와 사실적인 자연탐구를 추진해 나갔다.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높은 관심과 공사(公私)에 이르는 왕성한 주문에 따라 건축·조각·회화 등 모든 조형분야가 서로 호응하면서 활성화하고 있었다. 브루넬레스코는 로마에서 고대건축을 조사하여 각종 가구기술(架構技術)을 해명함과 동시에 고전적 구성미의 본질을 체득했다.

그 성과를 피렌체의 교회건축들에 적용하여 현실적으로 제한된 도시공간에 균형잡힌 명석한 각 부분의 비례와 통일을 달성함으로써 르네상스건축의 조화 미켈로초 디 바르톨로메오와 알베르티 등은 궁전이나 교회의 건축설계에 고대양식에 바탕을 둔 구상을 열심히 추구했다.

15세기 후반에 피렌체에서 이룩된 새 양식은 이탈리아 각지에 파급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D.브라만테·P.롬바르도 등을 통해 15세기 말부터 16세기에 밀라노·베네치아·로마로 그 범위를 넓혀서 각각의 환경과 취미에 따라 독자적으로 전개해 갔다. 조각은 건축과 함께 고대 작품과 관련이 깊고, 작풍과 기법 양면에서 그 당시의 조각가는 많은 암시를 받았다.

15세기 초의 난니 디 방코·L.기베르티·브루넬레스코, 시에나의 J.퀘르치아 등이 일찍부터 연구에 착수했으며, 앞다투어 인물의 조소적(彫塑的) 표현의 여러 문제에 몰두했다. 특히 도나텔로는 고대연구와 함께 인체의 사실적 추구를 거듭하여 고전정신과 자연주의의 융합을 시도했고 고딕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혁을 가져왔다.

이 무렵, 조각은 차츰 건축에 종속된 위치에서 벗어나 조소예술 본래의 양괴적(量塊的)인 입체성과 자유로운 공간성, 그리고 독립된 기념비성을 확립해 나갔다. 종교적 주제 외에 초상이나 기마상, 이교적인 주제도 많이 등장했으며 나무·대리석·브론즈·테라코타 등 다양한 소재를 구사하여 다채로운 조형표현이 앞당겨졌다.

15세기 후반에는 진보적인 폴라이우올로 형제, A.베로키오 등이 해부학적 탐구와 운동표현·심리묘사에 의해 사실주의를 한층 촉진시켰다. 회화에서 르네상스의 개화는 국제고딕양식의 극복과 조토의 예술정신의 재흥을 의미했다. 그 획기적인 혁신자는 1420년대의 마사초였다.

브루넬레스코로부터 투시도법(透視圖法)을 배우고 도나텔로로부터 엄격한 사실주의를 배운 그는 현실의 생명감 넘치는 인체, 합리적인 명암법과 원근법에 의한 넓고 장엄한 통일된 구도로 새 시대의 인간존엄과 자연공간의 예술성을 실증했다.

그 후 종교화에 자연주의를 도입해서 청순하고도 평화로운 세계를 묘사한 F.안젤리코, 투시도법의 기하학적 연구에 열중하여 몽환적(夢幻的)인 화경(畵境)을 구축한 P.우첼로, 성모에게도 세속적인 인간감정을 이입한 F.F.리피, 빛과 색채의 합리적 관계를 착안한D.베네치아노, 철저한 사실(寫實)에 예민한 감정을 불어넣은 A.카스타뇨, 장려한 풍속화 두루마리를 그린 B.고촐리, 정묘한 인체와 풍경을 그린 A.발도비네티 등이 활약했다.

또한 15세기 후반에는 자연관찰을 인체해부 등의 과학연구에까지 추진시키고 있던 폴라이우올로 형제와 A.베로키오, 초상과 풍속묘사에 객관적 사실주의를 관철시킨 D.기를란다요가 있다. 그리고 격렬한 정념(情念)의 화가 S.보티첼리는르네상스예술의 형식과 이념을 내세우면서 화풍에 후기 고딕의 신비한 시적인 정취를 풍기게 하여 고대와 중세의 불가사의한 화해를 시도했다.

피렌체 이외 지역의 회화에서는 중부 이탈리아에 페루지노, 핀투리키오, 특히 원근법과 인체비례를 연구하고 세련된 색채를 사용하여 격조 높은 화풍을 형성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있다. 북이탈리아에서는 원근법을 구사한 견고한 인물묘사를 통해 독자적인 예술적 개성을 주장하는 A.만테냐를 비롯하여 F.코사가 주목을 끈다. 이 밖에 J.벨리니 동문(同門) 안토넬로 다 메시나, C.크리벨리 등이 있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미술]

전기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열성적인 고대작품의 연구, 치밀한 묘사대상의 관찰, 인체의 해부학적 연구, 빛과 명암의 광학적 추구, 공간에 대한 기하학적 법칙성의 해명 등에 대해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태도로 임했다.

이러한 자연모방, 즉 인간과 자연에 관한 객관적인 사실주의의 증대는 고대예술의 재생을 뜻하며 고전적인 이상주의에의 도달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고차원의 고전적 예술로 가는 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의해 간신히 열렸다.

그는 회화·조각·건축의 조형예술은 물론, 다방면에 이르는 과학적 연구에도 뛰어나 르네상스 미술가로서 가장 전형적인 <만능의 천재>였다. 그는 우연적인 것을 배제하고 보편적인 것을 지향했으며 객관적인 묘사대상에 주관적인 깊은 정신내용을 통일시켰다.

미켈란젤로도 이 무렵 넘치는 정열과 왕성한 조형력을 구사하여 힘이 넘치는 영원한 인간상을 회화와 조각에 표현했다. 그는 오히려 사실(寫實)을 억제한 주관적인 이상형식(理想形式)에 치우쳤다.

S.라파엘로는 전생애를 전성기 르네상스에 바쳤다고 해도 무방하며, 고대 연구에서 얻은 식견을 종합하여 이상적인 인간미의 형식을 수립했다. 그 밖의 화가로서는 피렌체의 바르톨로메오와 A.사르토, 시에나의 G.A.B.소도마, 에밀리아의 코레지오와 D.도시, 그리고 특히 베네치아의 조르조네와 초기의 V.티치아노 등이 있다.

<우경희>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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