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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7-19 (토) 10:34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271      
[남북국] 경주 감은사지 3층석탑 (한메)
감은사지삼층석탑 感恩寺址三層石塔

 감은사지삼층석탑 서탑.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사진   감은사지삼층석탑 동탑.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사진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양북면(陽北面) 용당리(龍堂里)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3층석탑.

2기(基)의 화강석제 석탑이다. 현재 동·서 탑의 높이는 양탑 똑같이 13.4m로, 상륜(相輪)은 없어졌고 그것을 끼웠던 철간(鐵竿)만이 남아 있다. 양 탑의 규모와 형식도 동일하다.

기단(基壇)은 그 시대의 전형적 형식인 상·하 2중기단으로 되어 있고, 지대석(地臺石)·중석(中石)·갑석(甲石)은 여러 장의 돌로 조립되었으며, 위아래 면석(面石)에는 각기 2∼3개의 중간기둥을 모서리기둥 사이에 세웠다.

탑신부에서 1층은 모서리기둥과 면석을 각각 다른 돌로, 2층은 각 면을 돌 하나로, 3층은 전체를 1개의 돌로 각각 구성하였으며 표면에는 아무 장식도 하지 않았다. 옥개(屋蓋)는 비교적 널찍하며, 각각 4개씩의 옥개석과 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이 옥개석과 받침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져 있고, 받침은 각층 모두 5단씩으로 되어 있다.

고선사지(高仙寺址) 3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초기에 유행했던 삼층석탑의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옥개석의 경쾌한 미와 주위경관에 어울리는 비례가 잘 표현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탑은 682년(신문왕 2)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1959년 12월의 해체·보수 때 제3층 옥신에서 사리(舍利) 장엄구가 발견되었다. 국보 제112호.

<김석보>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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