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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7-20 (일) 17:12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795      
[남북국] 경주 고선사지 3층석탑 (브리)
고선사지삼층석탑 高仙寺址三層石塔

           고선사지3층석탑, 통일신라 초기 석탑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우수한 예로 1977년 댐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해 이건했다, 국보 제38호, 높이 900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사진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

국보 제38호. 높이 9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원래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 고선사지에 있던 탑인데 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해 1977년 경주박물관으로 이건(移建)했다.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규모가 워낙 커서 탑의 여러 부분을 각기 몇 개의 석재로 나누어 가공한 후 결합하는 건축방식이 사용되었다. 석재들이 서로 연결되는 부위에는 I자 모양의 철제은장을 박아 고정했다. 동자주(童子柱)를 하층기단의 중석(中石)에는 5개, 상층기단에는 4개 조각했다.

초층옥신(初層屋身)의 높이와 너비는 감은사서탑(西塔)과 동일하지만 옥신의 각면에는 감은사서탑과 달리 문비(門扉) 모양을 모각했다. 문비 모양의 내부 모서리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는 각면에 금동판 같은 것을 덧씌워 장식하기 위해 못을 박았던 구멍으로 추측된다. 문비 모양의 한 가운데에 새겨진 2개의 원형은 문고리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의 축조연대는 원효(617~686)가 고선사에 주석(住錫)했다는 사실과 함께 탑의 규모와 형식이 감은사서탑(682)과 비슷한 점으로 미루어 7세기말경으로 추정된다. 목조탑을 석재로 표현한 거대한 크기의 초기 석탑의 하나로서 당당한 균형이 잡힌 모습은 감은사서탑과 함께 통일신라 초기 석탑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우수한 예이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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