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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7-31 (목) 08:50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1527      
[남북국] 경주 불국사 다보탑 (문화)
불국사다보탑(佛國寺多寶塔)

불국사다보탑. 문화재청 사진

불국사다보탑 기단부 난간과 탑신부. 문화재청 사진

불국사다보탑 기단 사자상. 문화재청 사진

종목 : 국보 제20호
명칭 : 불국사다보탑(佛國寺多寶塔)
분류 : 석탑
수량 : 1기
높이 : 10.4m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시대 :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 불국사
관리자 : 불국사

<기본 설명>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하여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다보탑과 석가탑(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4m로 같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을 세운 시기는 불국사가 대규모로 새롭게 단장을 한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전문 설명>

한국(韓國)의 석탑 중에는 일반형을 따르지 않고 특이한 모양을 지닌 것이 몇 기(基) 있는데, 이 탑도 그 중의 하나이지만, 이만큼 기발한 의장(意匠)으로 이루어진 탑은 없다.

불국사(佛國寺) 대웅전(大雄殿) 앞에 서쪽 석가탑(釋迦塔)과 대조를 이루어 동쪽에 자리한 탑으로, 감은사(感恩寺) 다음가는 전형적인 쌍탑가람(雙塔伽藍)의 배치를 보여준다.

기단부는 4방에 보계(寶階)를 마련하였는데, 보계에는 난간을 설치했던 돌기둥이 남아 있다. 그 위는 네 모서리와 중앙에 4각형 돌기둥을 세우고 교차되는 받침을 얹어 갑석(甲石)을 받치고 있다. 이 기단에는 원래 네 모서리에 석사자(石獅子)를 배치하였으나 지금은 1구(軀)만 남아 있다.

갑석 위에는 4각형 난간 속에 8각 신부(身部)를 두었으며, 다시 8각 갑석을 덮고 8각 난간을 돌린 다음, 그 안에 8개의 죽절형(竹節形) 돌기둥을 돌려 팔각연화석(八角蓮華石)을 받치고 있다. 연화석(蓮華石) 위에는 8개의 기둥머리 모양의 받침이 있어 8각 옥개석(屋蓋石)을 받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8각의 노반(路盤)·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이 탑의 구조는 완전히 의표(意表)에서 벗어난 참신한 착상으로 이루어져서 전무후무한 걸작을 남겼고, 조법(彫法)에 있어서도 마치 목조건축을 보는 듯 우려하며, 복잡한 아래위의 가교(架橋)가 중심에 통일되어 한 점의 문란함도 없다.

이 탑을 다보탑(多寶塔)이라고 하는 것은, 다보여래(多寶如來)가 석가여래(釋迦如來)와 나란히 앉아 석가의 설법을 증명하는 상으로 해석되는데, 동양의 불교국가에서 석조(石造)로서는 가장 뛰어나고 오랜 작품이다.

이 탑은 서쪽의 삼층석탑(三層石塔)과 함께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때의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佛國寺)를 중창(重創)할 때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1925년에 수리를 한 바 있다.

출전 :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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