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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6 (수) 00:07
분 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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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619      
[삼국] 0870. 단양 적성비

0870. 단양 적성비

신라(6세기 중엽), 높이 93cm, 충북 단양군 단양읍 하방리 산 3-1. 국보 제198호.

단양 적성비는 1978년 단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이 온달과 관련된 유적지를 찾는 도중 단양군 하방리 적성 안에서 발견, 조사되었다.

비석은 화강암으로 된 자연석으로, 곱고 판판한 면을 이용하여 비문을 새겼다. 글씨는 얕게 음각했으나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으므로 비석면은 깨끗하고 자획이 생생하였으나, 무절제한 탁본으로 비석면이 많이 훼손되었다.

왼쪽 상단은 비석이 깨져 전문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은 부분은 288자 정도와 깨진 조각을 통하여 21자가 밝혀져 합계 309자가 해독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과 해석은 주보돈, <단양 적성비>(《역주한국고대금석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pp.33∼40) 참조. 글씨체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해서체이지만, 예서의 여운이 남아 있다. 비문은 순수한 한문이 아니라 신라식 이두문과 한문이 혼용되고 있다.

이 비는 진흥왕 때 신라가 죽령을 넘어 단양 일대의 고구려 영토를 차지하여 이곳의 백성들을 선무(宣撫)한 표적으로 세운 것이다. 비문에는 진흥왕이 이사부 등 10명의 고관에게 명령하여 신라의 영토 확장을 도운 야이차의 공훈을 표창하고 장차 여이차와 같이 신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비는 뒤의 진흥왕 순수비의 선구적인 것으로서 척경비(拓境碑)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비는 진흥왕대에 신라가 그 동안 고구려에 빼앗겼던 소백산맥 이남 지방을 회복하고, 죽령을 넘어 남한강 상류인 단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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