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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6 (수) 00:13
분 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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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5092      
[삼국] 0900. 장군총

0900. 장군총

4세기 말∼5세기 초, 높이 13m, 통구.

돌무덤은 고구려 건국초부터 조성되어 온 돌무지무덤이 발전하여 형성되었으며, 압록강의 지류인 훈강 유역의 환인(桓因) 지방과 독로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다. 처음에는 냇돌을 네모지게 깔고 널(棺)을 놓은 후 다시 냇돌로 덮는 정도의 간단한 구조였으나, 점차 냇돌 대신에 모난 깬돌[割石]을 써서 벽이 무너지지 않게 계단식으로 쌓아 올렸다. 이러한 무덤의 외형은 방대형(方臺形)을 이루고 있다.

돌무덤 중 대표적인 무덤인 장군총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축조된 돌무지무덤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7층의 모난 단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리고 5층의 단에서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꼭대기에는 접시를 엎어놓은 것 같은 무덤무지를 만들었다.

맨 아랫 단의 길이는 29.34m이고 무덤무지 위까지의 전체 높이는 13m 가량 된다. 무덤의 측면 윤곽은 포물선형으로 되어 안정감을 준다. 무덤 각면에는 크기가 3∼5m인 돌기둥 같은 모양의 이른바 호석(護石)이 3개씩 적당한 간격으로 비스듬히 놓여져 있다.

이것은 피라밋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시설로 보기도 하고 기능적인 의미보다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상과 같은 범주로 보기도 한다. 혹은 무덤무지 꼭대기에 목조 건축이 세워져 능묘 위에 사당(향당)이 세워진 형태의 묘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들 돌무덤은 5세기 전반 평양 천도 이후 점차 쇠퇴하여 자취를 감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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