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7-22 (목) 16:33
분 류 문화사
ㆍ조회: 3046      
[남북국] 중원 탑평리 7층석탑 (충주)
중원 탑평리 7층석탑 (중앙탑, 국보 제6호)

중원 탑평리 7층석탑 원경. GO 충주 사진

    중원 탑평리 7층석탑 정면 사진. GO 충주 사진

    중원 탑평리 7층석탑 측면 사진. GO 충주 사진

◆ 위치 :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번지

탄금대에서 창동을 지나 가금면을 향하면 탑평리에 이르게 된다. 탑평리는 태초 이래 이 고장 문화의 젖줄기 역할을 해온 남한강변에 인접한 마을인데 여기에 천여년 세월을 강물의 흐름을 지켜보며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있는 대형석답을 보게된다. 이 지방에서는 흔히 중앙탑으로 불려지고 있는 7층의 이 석탑은 중원지방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 유산이다. 이 탑은 현재 국보 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탑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전설이 유래되고 있다.

하나는 이 곳 충주에 왕기가 있다고 하여 이를 제압코자 이 탑을 건립했다고 하며, 또 하나의 설에는 신라 때 고승인 김생이 이웃 반송산에 사찰을 건립하고 고대의 참고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탑을 세웠다 하며, 마지막으로 통일신라 원성왕 때 신라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같은 보폭을 가진 건각자(걸음을 잘 걷는 사람)를 남과 북에서 동시에 출발시키면 꼭 이 곳에서 만났기에 이 탑을 세워 신라 국토의 중앙임을 표시했다고 한다.

탑의 건립 시기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고 있으나 탑의 조성양식을 보아 전설이 유래되는 원성왕 때인 8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 14.5m의 웅장한 이 탑은 전체가 7층으로 되어 있고 상륜부에는 노반과 앙화까지 잘 보존되어 있고 기단부에는 양 우주외에도 4개의 탱주를 세우고 있으며 탑신부는 몇 개의 석재로 조립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탑신과 옥개석의 높이와 폭이 좁아지는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옥개석의 받침은 각층이 모두 5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옥개석 각 층마다 낙수홈이 파여져 있다. 1917년 이 탑을 해체 보수할 때에 제6층의 탑신과 기단 밑에서 사리 장치가 발견되었는데 사리공 내에서 은으로 만든 사리병과 그 안에서 유리로 만든 사리병이 발견되었고 경판이 2매가 출토되었는데 이 경판은 고려경(高麗經)으로서 탑의 창건 후 2차적인 사리장치를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이 탑의 주변 일대가 절터로서 많은 석조물 등이 파손되어 산재해 있으며 특히 고구려 계통의 양식을 가진 연화문 와당을 비롯한 수 많은 종류의 기와가 출토되고 있고 학계에 주목받고 있으나 사찰명과 창건연대를 규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명문와당(글자가 새겨져 있는 기와)이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아 아직까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중앙탑은 국내에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탑으로 가장 큰 규모의 석탑임에 틀림없다.

출전 : GO 충주, 국보/보물
   
윗글 [남북국] 중원 탑평리 7층석탑 (교육)
아래글 [남북국] 중원 탑평리 7층석탑 (문화)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292 문화사 [삼국] 고구려 와당 2 (서울대) 이창호 2011-02-06 1345
1291 문화사 [삼국] 고구려 와당 1 (서울대) 이창호 2011-02-06 1094
1290 문화사 [삼국] 신라 천마총 금관 (두산) 이창호 2002-01-26 1161
1289 문화사 [삼국] 신라 회화 (한메) 이창호 2001-11-26 1535
1288 문화사 [삼국] 신라의 서화 (두산) 이창호 2001-11-26 1062
1287 문화사 [삼국] 백제 회화 (한메) 이창호 2001-11-26 899
1286 문화사 [삼국] 백제의 회화 (두산) 이창호 2001-11-26 965
1285 문화사 [삼국] 고구려 회화 (한메) 이창호 2001-11-26 928
1284 문화사 [삼국] 고구려의 회화 (두산) 이창호 2001-11-25 1033
1283 문화사 무용총 (한메) 이창호 2001-11-25 955
12345678910,,,13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