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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16 (일) 21:31
분 류 문화사
ㆍ조회: 6221      
[미술] 불교미술 (두산)
불교미술 佛敎美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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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발생 ·생성 이후, 불교국의 으뜸가는 조형예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미술

I. 개관

동양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것 가운데 하나로서, 불타(佛陀)가 말한 심오한 교설(敎說)을 따르는 교단의 형성과 그에 따른 신앙의 시각적 표현으로 활발하게 되었다. 불교의 발생지였던 인도를 비롯하여 중국과 한국 및 일본 등 대승불교국(大乘佛敎國)이나 스리랑카 ·타이 ·미얀마 등 소승불교국(小乘佛敎國) 등 지역적으로 광범위한 점이라든지 BC 6세기 이래 유구한 불교의 역사와 함께 폭넓은 시대적 전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술이 지니고 있는 각 장르의 독자적인 조형성을 부여받아 건축 ·조각 ·회화 ·공예에 걸쳐 다양하게 발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불교미술의 특수성은 신앙의 한 결정체인 동시에 불교적 사고방식에 기반을 둔 불교미학의 시각적 구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교미술의 출발과 함께 그 귀착점은 어디까지나 불설(佛說)에 입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불교교리의 시각적 표현이나 사원(寺院) 등의 장엄(莊嚴)을 위한 조형화가 곧 불교미술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II. 기원

불교미술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후 건립한 기원정사(祇園精舍:Jettavana)나 죽림정사(竹林精舍:Venavana)와 같은 건축물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를 반드시 본격적인 조형활동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격적인 불교미술의 전개는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후 다비(茶毘:화장)하여 얻은 신골(身骨), 즉 사리(舍利)의 봉안을 위한 일정한 가구물(架構物)의 축조에서 비롯된다.

이 때 인도에서는 사리분쟁(舍利紛爭) 후 근본팔탑(根本八塔)을 건립하였다. 이 탑의 시원은 곧 불교적 조형화의 출발점인 동시에 신앙활동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그 뒤 호불왕(護佛王)인 아소카(As厚ka:재위 BC 298∼BC 232)가 불탑을 다시 8만 4천 탑으로 건립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불교적 조형활동이 활발해졌다.

이와 같은 바탕은 象化)한 불상(佛像)이 조성되었다. 인도의 마투라(Mathur嚆) 지방을 중심으로 재래적 조각 양식과 간다라(Gandhara) 지방을 중심으로 헬레니즘 문화 등 유럽의 영향을 받은 조각 양식 등이 발달하였다.

점차 불상조각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종래의 탑 중심 신앙형태 또한 불상으로 옮아갔다. 즉, 사원의 중심축이 탑에서 서서히 불상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교세의 확장으로 사원 건축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각 분야에 걸쳐 화려하고도 다양한 조형활동이 가능해져 불교미술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이 나타났다.

불교미술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후 건립한 기원정사(祇園精舍:Jettavana)나 죽림정사(竹林精舍:Venavana)와 같은 건축물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를 반드시 본격적인 조형활동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격적인 불교미술의 전개는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후 다비(茶毘:화장)하여 얻은 신골(身骨), 즉 사리(舍利)의 봉안을 위한 일정한 가구물(架構物)의 축조에서 비롯된다.

이 때 인도에서는 사리분쟁(舍利紛爭) 후 근본팔탑(根本八塔)을 건립하였다. 이 탑의 시원은 곧 불교적 조형화의 출발점인 동시에 신앙활동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그 뒤 호불왕(護佛王)인 아소카(As厚ka:재위 BC 298∼BC 232)가 불탑을 다시 8만 4천 탑으로 건립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불교적 조형활동이 활발해졌다.

이와 같은 바탕은 象化)한 불상(佛像)이 조성되었다. 인도의 마투라(Mathur嚆) 지방을 중심으로 재래적 조각 양식과 간다라(Gandhara) 지방을 중심으로 헬레니즘 문화 등 유럽의 영향을 받은 조각 양식 등이 발달하였다.

점차 불상조각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종래의 탑 중심 신앙형태 또한 불상으로 옮아갔다. 즉, 사원의 중심축이 탑에서 서서히 불상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교세의 확장으로 사원 건축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각 분야에 걸쳐 화려하고도 다양한 조형활동이 가능해져 불교미술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이 나타났다.

III. 한국

한반도에서는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4세기에 이르러서야 조형미술이 나타났다.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순도(順道)는 불상과 함께 불경을 가지고 왔으며, 375년(소수림왕 5)에는 최초의 사원 초문사(肖門寺)가 건립되었다. 한국의 불교는 고구려를 기점으로 백제와 신라에도 잇달아 전해지면서 곧 한반도의 사상체계와 신앙을 하나로 일체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불교미술은 이 땅에서 이룩된 최초의 시각혁명(視覺革命)으로서 한국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불교 자체가 외래종교이기는 하나 독자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그 조형활동 역시 독특하게 발전하였다. 세 나라가 나름대로 성격을 달리한 삼국시대의 조형활동은 매우 다채로웠으며, 신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된 이후에도 그 전통은 계승되어 더욱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따라서 통일신라시대의 미술은 한국 불교미술의 절정기를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며 이와 같은 신라미술의 찬란한 조형적 성과로 불교미술은 전성기를 맞았다. 통일신라 이후 고려시대 역시 불교를 국교로 하여 불교미술은 새롭고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다만 선종(禪宗)의 대두와 더불어 이 시대의 조형물은 특징을 달리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였다.

그러므로 고려미술의 특색 또한 불교미술이라는 커다란 민족미술의 한 주류에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의 위축과 더불어 그 미술 활동도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다. 전국 각지의 불사(佛寺) 건축물을 비롯한 모든 조형활동은 점차 퇴조하게 되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화(戰禍)로 말미암아 수천년의 전통을 이어온 민족문화재가 수난을 당해 황폐화하는 시련기를 거치게 되었다.

IV. 건축

불교미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건축이다. 가람(伽藍)의 배치에서 탑과 법당(法堂) 등 불전(佛殿)을 중심으로 사찰이 구성된다. 원래 사찰을 의미하는 절[寺]은 중국에서 외교사절을 맞이하는 관청을 뜻하였다. 이것은 불교가 처음으로 수용될 때의 사정을 짐작하게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일반 민간건축과는 달리 사원과 궁정(宮廷)의 건축물이 동일한 양식을 가진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람배치의 형태는 각기 특색을 이루고 있으나, 크게 보면 대부분 탑 ·금당(金堂) ·승원(僧院) 등을 복합한 형식이다. 감은사(感恩寺)의 경우, 중문(中門)을 지나 쌍탑(雙塔)이 있으며 중심부에 금당을 세우고 뒤에 강당을 건립하는 한편 그 주위에는 회랑을 구축하였다. 고대 사원 건축의 유례로는 경북 경주 단석산(斷石山)의 신선사(神仙寺)를 비롯한 석굴사원(石窟寺院)이 있으며 평지와 산지에 각종 사원이 건립되었다. 이것은 대개 목조건축물인데, 고려시대의 유례(遺例)로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조사당(祖師堂) 및 안동(安東) 봉정사(鳳停寺)의 극락전(極樂殿) 등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가람배치의 여러 양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특성을 달리하면서 발전되었다. 그 중 탑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탑은 원래 산스크리트의 스투파(st後pa)와 팔리어(語)의 투파(th後pa)를 한자(漢字)로 음역(音譯)한 것이다. 따라서 탑파(塔婆)라는 말의 시원이기도 하다. 탑은 쉽게 말하여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한 무덤이다. 다만 불교도들의 주요 예배 대상이 되면서 사원의 중심부를 이루어 그 성가(聲價)가 높아간 것이다. 인도탑(印度塔)의 경우는 복발형(覆鉢形)으로 탑의 기본양식은 기단부(基壇部)와 탑신부(塔身部), 그리고 상륜부(相輪部)로 구성되어 있다.

탑의 재료는 금 ·은 ·동을 비롯한 금속 이외에 나무나 돌 또는 흙벽돌 등 다채롭게 사용되었다. 그것은 나라별로도 특성을 가져 일반적으로 중국이 전탑(塼塔), 일본이 목탑(木塔)을 즐겨 건립한 반면, 한국은 석탑(石塔)의 나라라고 일컬을 만큼 석탑이 많다. 현재 확인된 석탑만도 1,500기(基) 정도에 이른다. 석조건축의 핵심을 이루는 석탑의 시원 양식은 전북 익산(益山)의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국보 11)으로 본다. 일찍부터 동양의 대탑(大塔)이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큰 이 탑은 석재(石材)로 목탑양식을 충실하게 모방하여 건립한 한국 석탑의 시원형(始原形)이다.

이러한 한국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은 부여(扶餘)의 정림사지(定林寺址)5층석탑(국보 9)에서도 볼 수 있다. 신라탑은 전탑(塼塔)을 모방한 분황사탑(芬皇寺塔)이 있으며, 다음으로 감은사지(感恩寺址)동서 3층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이 있다. 대개 석탑은 화강석을 재료로 건립한 한국의 독자적인 조형양식(造形樣式)이다.

V. 조각

불상조각에는 여래상(如來像)을 비롯하여 보살상(菩薩像)이나 신장상(神將像) ·조사상(祖師像)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불상들은 금이나 은 ·구리 ·철과 같은 금속 이외에 돌이나 나무 또는 흙 등의 다양한 재료로 조성하였다.

불상의 표현에는 32길상(吉相), 80종호(種好)라는 의궤방식이 따로 있어 보통 인간의 신체상과는 다른 불격(佛格) 특징의 차별상이 있다. 여래상에는 석가불(釋迦佛)을 비롯하여 화엄세계(華嚴世界)를 주재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불(藥師佛) 등이 있다. 보살상에는 문수(文殊) ·보현(普賢)을 비롯, 관음(觀音) ·대세지(大勢至) ·미륵(彌勒) ·지장(地藏) 보살 등이 있다. 또한 갖가지의 나한상(羅漢像)이 있으며, 팔부중(八部衆)이나 사천왕상 또는 조사상(祖師像) 등이 있다.

불상의 형식은 불신(佛身)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대좌(臺座)라는 자리가 있고, 뒤에는 발산되는 빛의 상징인 광배(光背)가 있다. 또한 불상의 명호는 대개 손의 모습인 수인(手印)으로 구별하는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석가의 근본 5인(五印)으로서 선정인(禪定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전법륜인(轉法輪印)과 시무여원인(施無與願印), 그리고 천지인(天地印) 등이 있으며,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과 지권인(智拳印) 등이 있다.

한국 불상은 여래상과 보살상, 반가사유보살상(半跏思惟菩薩像)의 3대 양식으로 나뉜다. 여기에는 독존상(獨尊像)과 삼존상(三尊像) 이외에 바위에 새긴 마애상(磨崖像)이라는 특이한 양식도 있다. 한국의 현존 조상례(造像例)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구려의 경우,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이라는 7세기의 불상을 비롯하여 평양 평천리(平川里)에서 발견된 금동미륵반가상이 있다. 백제의 경우는 몇몇 금동상 이외에 충남 태안(泰安)과 서산의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이 주목을 끈다. 또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백제 유민(遺民)들에 의한 비상(碑像)이 충남 연기(燕岐) 지방을 중심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신라(古新羅)의 것으로는 서울 삼양동(三陽洞)에서 출토된 금동관음보살입상을 비롯하여 경북 구미와 경기 양평(楊平)에서 근래에 출토된 금동불상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신선사(神仙寺) 등 석굴사원의 마애불이 있으며, 금동미륵반가상의 존재는 특기할 만한 것이다. 삼국이 모두 신앙의 내용에 따라 그 조형양식을 달리하는 조상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불상조각의 절정 역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뚜렷해진다. 경북 군위(軍威)의 삼존석불을 비롯하여 불국사(佛國寺)의 금동상 2구와 백률사(百栗寺)의 약사여래입상은 그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그러나 신라조각의 핵심은 경주 토함산(吐含山)의 석굴암(石窟庵)에서 찾을 수 있다. 석굴암은 석굴사원의 전형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전방후원(前方後圓)으로 본존상(本尊像)을 비롯하여 보살 ·천부 ·10대 제사상과 사천왕상 ·인왕상 ·신장상 등이 섬세하고도 장엄하게 조성되어 있는 한국 조각사의 백미(白眉)이다. 신라 말에 이르러서는 선종(禪宗)의 대두와 함께 철조 비로자나상(鐵造毘盧遮那像)이 유행되었다. 또한 금동상보다는 석상(石像)이 많이 조성되었으며, 점차 조각술은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쇠퇴하였다.

VI. 회화

불교회화의 대종은 존상화(尊像畵)이나, 넓은 의미로 불교세계를 조형화한 회화는 모두 포괄된다. 불타 재세시(在世時)에도 불화 제작의 사례가 있은 듯하지만 현존 최고(最古)의 예는 BC 2세기경의 인도 아잔타(Ajanta)석굴의 벽화이다. 불화는 흙이나 나무 ·종이 ·베 ·비단 등의 재료에 자유롭게 그려져 있었다. 또한 건축물에 직접 그려진 벽화가 있는데 경북 영주 부석사(浮石寺)의 조사당(祖師堂) 벽화가 바로 그 예이다.

그러나 불화의 주축은 탱화(幀畵)나 경화(經畵)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교화(敎化)와 예배, 또는 사원의 장엄을 위해 제작되는 것이 상례이다. 주제에 따라 석가모니 후불화(後佛畵)로서 법화경(法華經)의 변상(變相)인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나 석가의 일생을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八相圖)가 있다. 이밖에 비로자나불의 불화와 아미타불의 불화 등 조각에서 조성되는 내용을 대개 그림으로도 표현하였다.

한국 고대 불화의 경우, 그 수준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르고 있어 고구려의 담징(曇徵)과 같은 화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각종 고분벽화(古墳壁畵)의 불교적 요소는 흥미 있는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신라의 솔거(率居)는 분황사(芬皇寺) 관음보살 등을 그려 그의 화명(畵名)을 널리 떨쳤다. 고려시대는 곧 불화시대라고 일컬을 만큼 불화가 성행하였다. 유존작품의 대부분이 현재 일본 등 해외로 유출되어 있으나 그 100여 점의 진가는 고려회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VII. 공예

불교공예품은 각종 의식구(儀式具)로부터 사찰의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편이다. 그 내용은 범종(梵鐘)과 같은 법구(法具)를 비롯하여 부처님에게 공양드리는 향로(香爐)나 정병(淨甁) 등이 있다. 이 밖에 불단(佛壇)의 장엄을 위하여 제작된 것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는 사보(四寶) 또는 사물(四物)이라 하여 종 ·북 ·목어(木魚)와 운판(雲版)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예불이나 의식 때 소리를 내는 의식구이다. 그 중에서도 범종은 매우 중요하다. 종 역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위한 신앙적인 의미와 함께 실용성을 지니고 있다.

종의 양식은 중국 주(周)나라 때의 고동기(古銅器)나 악기, 또는 청동기의 탁(鐸)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다. 한국의 경우는 학명(學名)으로까지 ‘한국종’이라 일컬을 만큼 독자적인 범종양식을 이룩하였다. 안정감이 있는 외형에서부터 그 섬세한 부조(浮彫) 등 조형적인 우수성이 특히 두드러진다. 양식상으로 보면 단두룡(單頭龍)의 고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유곽(乳廓)이나 당좌(撞座)가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 비천상(飛天像)이나 명문(銘文)이 양각되어 있다. 특히 종정부(鐘頂部)의 원통(圓筒)은 신라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의 조형화와 연결시켜 해석되기도 한다. 그 밖의 금속공예로서 향완(香亶)이나 사리장치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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