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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6-06 (일) 18:24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122      
[무덤] 독무덤 (민족)
독무덤

큰 독을 널로 사용한 선사 및 고대의 무덤. '옹관묘(甕棺墓)'라고도 한다.

[기원]

나무널[목관(木棺)]이나 돌널(石棺)이 아닌 독[옹(甕)]이나 항아리[호(壺)] 등 토기를 널로 사용하는 무덤은 장소와 시대를 불문하고 전세계적으로 널리 쓰였다. 우리 나라와 중국ㆍ일본 등에서는 선사 시대부터 이용되었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하대(夏代)부터 독무덤이 만들어져 옹관(甕棺)을 와관(瓦棺)으로 부르고 있다. 주대(周代)에 와서는 무복자, 즉 7세 이하의 어린이를 장사지내는데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면 서안(西安) 반파(半坡)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조그마한 항아리에 뚜껑을 덮어 수직으로 매장한 독무덤이 발견되어 독무덤의 기원은 훨씬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독무덤은 중국 대륙으로부터의 전래와 남방(南方)으로부터 전래로 보는 견해가 있어 지금으로서는 명확히 단언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독무덤은 일찍이 청동기 시대부터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해 한반도(韓半島)에 분포, 발전하였다.

[시대별 전개 양상]

우리 나라 독무덤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청동기 시대 기원 단계(起源段階)의 시원형(始源型)시기이다. 부여 송국리(松菊里)독무덤, 공주 남산리(南山里) 독무덤 등이 있다. 민무늬토기〔無文土器〕를 직립 매설하고 판석(板石)으로 복개(覆蓋)하고 있다.

② 초기철기 시대 전형적인 양식이 완성된 시기이다. 북부 지방의 강서 태성리, 신천 명사리, 은률 운성리, 평양 호남리 등의 독무덤과 남부지방의 광주 신창동, 삼천포 늑도(勒島), 김해 지내동, 김해 회현동 등의 독무덤이 있다. 모든 형태와 온갖 양식을 갖춰 마침내 전형적인 양식을 완성하였다.

③ 원삼국 시대 발전기이다. 대동강 유역의 정백동(貞栢洞)ㆍ복사리(伏獅里), 한강유역의 몽촌토성(夢村土城)ㆍ가락동ㆍ석촌동, 호남지방의 남원 두락리ㆍ초촌리, 나주 마산리, 고창 송룡리, 영남지방의 경주 조양동, 부산 노포동, 동래 낙민동, 김해 퇴래리, 창원 삼동동, 제주도의 용담동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다수의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원삼국 시대의 연질도기(軟質陶器)인 독과 경질도기(硬質陶器)인 항아리를 혼용해 구성되어 있다. 석곽묘(石槨墓)와 토광묘(土壙墓) 등과 함께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삼동동독무덤 경우는 34기의 독무덤군을 이루고 있다. 곧, 한 곳에 집군을 형성하여 주옹(主甕)과 개호(蓋壺)에 당시의 각종 토기류가 이용되고, 구성 형식이 다양하며, 형태가 정돈되어 발전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④ 삼국 시대 전성기이다. 신라의 예로 왕도 경주의 황남동 미추왕릉 지역(味鄒王陵地域), 인왕동고분군 지역(仁旺洞古墳群地域), 경주 부근 지역에 많은 독무덤이 조사되어 있다. 가야의 예로 낙동강유역의 안동 조탑동, 경산 임당동, 대구 복현동, 김해 예안리, 부산 오륜대ㆍ괴정동, 창녕 사리, 사천 예수리, 합천 저포리 등이 조사되어 있다. 신라와 가야의 독무덤은 공통된 양상을 지님과 동시에 독자작인 양식을 갖추고 있다.

한편, 백제의 예로는 금강유역의 공주ㆍ부여 왕도 부근의 남산리(南山里) 호관묘(壺棺墓), 염창리(鹽倉里) 호관묘, 능산리(陵山里) 호관묘 등과 영산강 유역의 나주 신촌리ㆍ덕산리ㆍ대안리, 영암 내동리ㆍ만수리 등의 대형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금강 유역의 독무덤은 대체로 소규모의 호관묘(壺棺墓)로서 백제 왕도 지역(王都地域)의 서민묘제(庶民墓制)일 것이다.

특히, 영산강 유역의 독무덤은 특별히 제작된 대형독, 곧 옹관전용(甕棺專用)으로 제작된 옹관 수기를 매장하고 있다. 이는 영산강 유역의 전통적인 특수 독무덤집단의 묘제이다. 여기서 독무덤은 고총고분(高塚古墳)으로, 귀족들의 가족묘(家族墓)가 최고도로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신촌리(新村里) 9호 독무덤에 금동관(金銅冠)ㆍ금동리(金銅履)ㆍ봉황환두대도(鳳凰環頭大刀), 각종 식옥류(飾玉類)가 부장된 것으로 볼 때, 이 지역의 독무덤은 찬란한 귀족 문화로 화려하게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삼국 시대의 독무덤은 다양하게 최고도로 발전해 마침내 전성기 양상을 이루었다.

⑤ 통일신라 시대ㆍ고려 시대 독무덤이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도 지속되었는지 확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시기에 독무덤은 쇠퇴기에 들면서도 그 명맥은 이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예로는 경주 용강동의 통일신라기 고분군 속에서 독무덤이 발굴 조사된 바 있고, 화장(火葬)에 따른 골호(骨壺)에 유골을 봉납하는 통일기 골호묘제(骨壺墓制)가 있다. 또한 공주 마암리에서 고려 시대의 장방형 도관(陶棺)이 발견되었고, 천안 청당동에서 고려시대의 독무덤이 발굴 조사되었다.

⑥ 조선 시대이 시기에는 다시 생활 용기인 옹기를 이용한 아장묘(兒葬墓)로서의 독무덤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분류]

이와 같은 수많은 유적에서 발굴 조사된 우리 나라의 각 시대별, 지역별 특수성을 지닌 독무덤은 다음과 같이 특징적인 분류를 할 수 있다.

첫째, 공주 남산리(南山里)의 백제 독무덤과 같은 호형토기(壺形土器)로 축조된 호관묘(壺棺墓)와 흔히 많은 예를 볼 수 있는 옹형토기(甕形土器)를 주체로 해 축조된 옹관묘(甕棺墓)로 구분된다.

둘째, 호관묘(壺棺墓) 또는 옹관묘(甕棺墓)는 1개만으로 축조된 단관식(單棺式) 옹관묘, 2개의 호형토기 또는 2개의 옹형토기, 그리고 호형토기와 옹형토기를 맞붙여 축조한 합구식(合口式) 옹관묘, 호형토기와 옹형토기 3개를 연결축조한 연결식(連結式) 옹관묘가 있다. 이 단관식(單棺式) 옹관묘는 매설상태상 직립식단관(直立式單棺)과 횡치식단관(橫置式單棺)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다시 덮개의 재료에 의해 판석(板石)을 덮은 석개형단관(石蓋形單棺), 도기편(陶器片)을 덮은 도개형단관(陶蓋形單棺)으로 구분된다.

셋째, 토광을 파고 매장하는 일반적인 옹관묘인 옹관토광묘인 단독형(單獨形) 옹관묘가 있고, 옹관 밖을 석곽으로 돌려 축조하는 옹관석곽묘인 복합형(複合形) 옹관묘가 있다. 또한 매장법(埋葬法)과 장납법(葬納法)에 의해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매장법에 의해 3가지로 분류된다.

① 군장식옹관묘(群葬式甕棺墓) : 일정한 지역에 다수의 옹관묘를 군집 매장하는 방법으로 옹관집단 사회의 묘제임을 알 수 있다.

② 배장식옹관묘(陪葬式甕棺墓) : 규모가 큰 분묘의 주체인 주곽(主槨)에 인접해 부설하는 방법이다. 분묘의 주인공을 규모가 큰 묘곽 또는 묘실에 매장하고 옹관을 이용해 시종자(侍從者) 또는 비속인(卑屬人)을 배장하는 묘제임을 알 수 있다.

③ 다장식옹관묘(多葬式甕棺墓) : 한 봉토 내에 여러 개의 옹관을 매장하는 방법으로 여러 가족을 추가장해나가는 묘제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장납법(葬納法)에 의해 2가지로 분류된다.

① 소아장옹관묘(小兒葬甕棺墓) : 규모가 작은 독무덤으로 소아 또는 유아를 장납하는 방법이다. 실례로 김해 예안리(禮安里)독무덤에서 소아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② 세골장옹관묘(洗骨葬甕棺墓) : 성인의 시신이 육탈된 후의 유골을 옹관에 장납한 이중장제도(二重葬制度)에 따른 방법이다. 다수의 규모가 작은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삼국지≫ 동옥저조(東沃沮條)에 “새로 죽은자는 모두 가매장했다가 가죽과 살이 다한 후에 뼈를 취해 곽 중에 두었다(新死者 皆假埋立 才使覆形 皮肉盡 乃取骨置槨中).”는 기록으로 볼 때, 독무덤은 아니지만 세골장 풍속이 있었던 듯하다. 또한 ≪수서 隋書≫ 고구려전(高句麗傳)에 “죽은 자를 옥 내에 임빈했다가 3년이 지난 뒤 택일해 정장하였다(死者殯於屋內 經三年 擇吉日而葬).”고 한 기록도 세골장의 풍속으로 생각된다. 이로 볼 때, 우리 나라 고대 사회에서는 지역에 따라 세골장이 시행되고, 또 세골장을 하는 독무덤도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③ 성인장(成人葬) : 중간 규모의 독널이나 수직매설한 독널 등은 성인을 굽혀묻기[굴장(屈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규모가 큰 나주 반남면독무덤과 영암 내동리독무덤 등은 성인을 펴묻기[신전장(伸展葬)]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영암 내동리독무덤에서는 20세 내외의 성인 인골이 출토되어 성인장옹관묘의 실증을 얻게되었다.

[전파]

우리 나라의 독무덤은 대체로 중국의 독무덤과 연결되고, 나아가 일본으로 전해져 구주 지방(九州地方)의 독무덤을 축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부산 괴정동ㆍ생곡동, 합천 저포리 등의 옹관석곽묘(甕棺石槨墓)의 예가 일본 다지마(但馬)지방에 전수되었음을 발굴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ㆍ중국ㆍ일본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독무덤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참고문헌≫

禮記, 三國志. 隋書, 太平御覽, 韓國의 甕棺解釋에 대한 一小考(金貞培, 古文化 5ㆍ6, 韓國大學博物館協會, 1969), 甕棺墓(韓炳三, 한국사 1-고대-, 國史編纂委員會, 1974), 新昌里甕棺墓(金元龍, 서울大學校, 1964), 榮山江流域의 甕棺墓硏究(成洛俊, 百濟文化, 15, 1983), 百濟甕棺墓에 관한 硏究(百濟文化 15, 1983), 昌原三東洞甕棺墓(安春培, 釜山女子大學校博物館, 1984), 三東洞甕棺墓의 編年(安春培, 釜山史學 8, 1984), 韓國의 甕棺墓에 관한 硏究(釜山女子大學校論文集 18, 1985), 靈岩臥牛里甕棺墓(國立光州博物館ㆍ百濟文化開發硏究院), 특별전 한국의 옹관묘(국립광주박물관).

<이은창>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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