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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6-06 (일) 18:27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067      
[무덤] 독무덤 (브리)
독무덤

주검을 독[옹(甕)]이나 항아리[단경호(短頸壺)]에 넣어서 땅을 파고 구덩이[토광(土壙)]를 만들거나 독을 넣을 만큼 적당히 파서 묻는 무덤.

독장이나 옹관묘(甕棺墓)라고도 한다. 청동기 시대 이래로 이른 철기 시대를 거쳐, 우리 나라의 남부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오랜 전통의 무덤 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삼국 시대의 것은 봉토가 있지만 그 앞 시기의 것은 땅 위에 무덤의 자취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조사된 경우가 적다. 널[관(棺)]로 쓰여지는 독이나 항아리가 1개이면서 넓적한 돌 같은 것으로 뚜껑을 덮은 것은 외독[단옹관(單甕棺)], 항아리나 독 2개가 서로 아가리를 맞대고 뉘인 것은 이음독[합구옹관(合口甕棺)]이라 하며, 3개를 이어서 만든 것도 가끔씩 발견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이음독이 가장 널리 퍼져 있다.

독무덤이 있는 곳의 지세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청동기 시대의 것은 강이나 작은 냇가를 낀 들판과 붙어 있는 구릉 지대에서 고인돌ㆍ움무덤[토광묘(土壙墓)]ㆍ돌상자무덤[석상분(石箱墳)] 등과 함께 발견되고 있으며, 이른 철기 시대의 것은 구릉 지대를 비롯하여 산기슭에서, 김해 회현리와 부산 낙민동 유적과 같은 것은 조개더미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삼국 시대의 것은 야트막한 산기슭에 있는 경우가 많다. 청동기 시대나 이른 철기 시대의 유적은 강서ㆍ은율ㆍ신천ㆍ공주ㆍ광산ㆍ김해ㆍ부산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그다음 시기에는 이러한 무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묻는 방법을 보면 대부분 수평으로 널이 놓여 있는 모습이지만 공주 남산리 유적에서는 수직으로 놓인 것도 있어 다른 유적의 것들과 비교되며, 널로 쓰인 토기는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나 민무늬토기 계통의 적갈색 연질토기(軟質土器), 회색 삿무늬토기[승석문토기(繩蓆文土器)]가 주로 이른 시기에 사용되었는데, 강서 태성리 유적에서는 화분토기(花盆土器)를 이용한 것도 있다.

묻힌 사람[피장자(被葬者)]은 널의 크기로 보아 이른 시기에는 어린아이나 두벌묻기[이차장(二次葬)]의 방법으로 어른을 세골장하였던 것 같으며, 삼국 시대에는 나주 반남 지역의 독무덤들처럼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을 묻었던 것도 있지만 돌덧널[석곽(石槨)]로 된 큰무덤 옆에 딸린 것이 발견되고 있어 독무덤의 복합성과 전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딸린 독무덤은 어린아이가 묻힌 것으로 여겨져 큰무덤과 서로 관련이 있는 가족 무덤의 한 형태로 이해된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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