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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6 (수) 11:49
분 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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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4875      
[불교 미술] 1510.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1510.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백제 7세기, 높이 8.33m, 충남 부여읍 동남리 256. 국보 제9호.

백제는 '절과 탑이 매우 많은(寺塔甚多)' 나라였고, 황룡사 9층목탑을 만들 때에도 백제의 아비지가 초청되어 가는 등 건축기술이 뛰어 났다. 미륵사지탑과 같이 백제의 석탑이 목탑의 번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한 눈에 보여준다.

그러나 세부 수법에 있어서 맹목적인 모방에서 탈피하여 정돈된 형태로 세련미와 창조적인 조형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형태가 장중하고 명쾌하여 격조높은 기품을 보인다. 비상하는 새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과거에 일본 학자들이 이를 평제탑(平濟塔)이라 칭하기도 했었는데 백제를 정복한 당나라 군사가 초층탑신에 장난질을 쳐서 각자를 했던 것이 당나라 탑으로 오해되었던 것이다. 7세기 초반 미륵사지 석탑 다음으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의 아름다운 탑이다.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복잡한 목조 건물의 구조가 간결하게 요약되고, 탑의 규모는 미륵사지 석탑에 비하여 작아지나, 높이 솟은 느낌(상승감)을 주기 위해 1층 탑신을 크게 올렸다. 2층탑신부터는 미륵사지 석탑보다 체감률을 높여 훤칠한 느낌을 준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대단히 우아하고 세련된 멋을 갖추고 있어 7세기 백제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탑은 상승감을 주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힘이 없고 안정감이 부족하다. 이는 신라의 삼층석탑 양식과 비교해 기단부가 낮고 좁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경주 분황사 석탑의 넓은 기단부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석탑의 독특한 구조와 지붕돌의 특징은 뒤에 충청도 지역에서 유행하는 고려 시대의 백제계 석탑의 선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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