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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8 (금) 23:41
분 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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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186      
[조선] 2520. 파주 용미리 마애불

2520. 파주 용미리 마애불

조선 15세기, 17.4m, 보물 제93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이 불상의 고려 시대의 마애불로 여겨졌으나, 1995년 명문 확인을 통하여 조선 시대 세종 27년(1445)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명문에는

坡州 德隱里石佛像背記
正統十」
年乙丑」
五月化」
主德▨」

(파주 덕은리 석불상 배기(背記)
정통 10년 을축년(세종 22, 1445년) 5월.
화주(化主, 절의 사업에 참여자를 모아 진행하는 사람)는 덕▨(德▨)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화주(化主)를 중심으로 신도들이 불상을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높이가 17.4미터. 거대한 천연 암벽 위에 따로 만든 목과 머리 및 갓을 차례로 올려놓은 특이한 모습이다. 자연석을 그대로 몸체로 사용함으로써 신체 각 부분의 비례가 맞지 않으나 거대한 신체에서 알 수 없는 어떤 신령스런 힘이 느껴진다. 둥글고 모난 모자를 각기 쓰고 멀리를 보는 듯 안보는 듯 표정 없는 얼굴은 현대판 로봇 같기도 하고 괴기적인 분위기를 준다. 천연석을 이용한 탓에 신체 각 부위의 비례가 잘 맞지 않아 다소 기형적인 측면도 있지만 워낙 거대한 체구의 당당한 불상이어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이 지방에 전해지는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한다.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위키백과)

(2015년 5월 19일 부분 수정 및 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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