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2680. 고려 청자 가마터 분포도

2680. 고려 청자 가마터 분포도
처음 청자가 제작될 때(9세기 혹은 10세기)는 경기 내륙과 서남해안 여러 곳에서 시작되었다.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에는 관요의 운영 형태를 띠어 강진과 부안 두 곳에 집중. 14세기 빈번한 왜적의 침입과 관련, 관요의 생산 체제가 무너지면서 강진의 기술자들은 전국으로 확산된다. 지방 중소 지주인 신흥 사대부의 수요와 결합, 말류 상감청자와 성근 인화기법의 분청사기가 다량 생산되기 시작.
자기는 종래의 토기와 달리 유약을 사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 아주 고온에서 환원번조. 즉,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고령토)로 형태를 만든 다음, 철분이 조금 섞인 장석질 유약을 입혀 1250∼1300도 정도에서 환원염으로 구워내어 자기화한 것.
철분이 1%면 연두색이, 3% 정도면 비색이, 5%정도면 어두운 녹색이, 9% 정도면 흑갈색이 된다. 우리 나라 청자의 유약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 즉 비취색으로 투명에 가까우며 태토의 색은 흐린 회색이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이 바탕이 된 녹청색이 되며, 고려사람들은 이를 비색이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