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18 (월) 21:25
분 류 문화사
ㆍ조회: 5922      
[조선] <특집> 조선 시대의 도자기
<특집> 조선 시대의 도자기

고려 시대에는 청자를 중심으로 도예 문화가 발달했음에 비해 유학을 정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 시대에는 거칠어진 상감청자를 계승한 분청사기와 당시 인접 중국을 비롯한 도자 예술 문화를 가진 나라들의 유행에 따라 백자의 제작이 크게 발전하였다. 백자의 흰 빛을 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 우리 나라의 심성에 맞는 색깔이 이루어졌고 그릇의 형태 또한 특색 있는 조형미를 보여주는데, 특히 크고 작은 항아리가 지닌 둥근 맛은 우리 나라 미술의 바탕이 되었다.

흔히 백자를 서민적 취향으로(특히 후기에 널리 유행하는 청화 백자를 서술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백자의 미감이 고려청자에비하여 덜 귀족적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백자를 사용한 수요자들이 일반 서민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백자는 처음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고 그 외에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 후 일부 사대부들도 사용하게 되어 그 수요가 확대되었지만, 일반 서민들은 여전히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던 자기였다.

고려 말기 정치·사회의 문란과 왜구의 침입으로 청자의 제작이 점차 쇠퇴하여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는 강진, 부안 등 주요 청자가마가 없어졌다. 그러나 도자기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여 새로운 도자기를 굽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조선 시대 도자 예술의 특색을 지닌 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가마가 크게 성행하였다. 광주 무등산 충효동 주변의 가마들은 고려 말기의 청자, 조선초기의 분청사기, 백자로 이어지는 변모를 잘 보여준다. 조선 시대에는 사옹원(司饔院)이 있어 궁중이나 관청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제작하였다. 《세종실록》의 지리지를 보면 전국에 자기소(백자를 굽던 가마로 추정)가 139개, 도기소(분청을 굽던 가마로 추정)가 195개소나 기록되어 있어 조선 초기에 번성했던 도자기 생산의 양상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모두 만들어졌으나, 상감청자와 백자에서 변모한 분청사기가 특징 있는 도자기로 많이 제작된다. 거칠면서도 자유분방함을 지닌 분청사기는 점차 백자화되고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자취를 감춘다. 또한 초기의 백자는 중국 원과 명의 자극을 받아 그 기술이 발전하였고 상감기법이 응용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의 질이 좋은 백자는 분원이었던 경기도 광주군 일대에서 주로 만들어졌는데, 15세기 중엽부터는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17∼8세기에 오면서 흰색 바탕에 간결한 푸른색 그림과 무늬를 넣은 청화백자는 당시 미술의 동향과 마찬가지로 선비 문화에 바탕을 둔 우리 나라 특유의 풍토 감각이 잘 살리고 있다. 한편 철화백자와 진사백자도 만들어진다.

1. 분청사기(粉靑沙器)

분청사기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이다. 분청사기는 청자 태토나 짙은 회색조의 거친 태토 위에 백토(고령토)를 물에 풀어서 그릇에 바르거나 덤벙 담근 후 여러 가지 기법으로 무늬를 나타내고 그 위에 유약을 씌워서 구워낸 도자기를 말한다. 이것은 여말 청자가 퇴화하면서 이를 탈피하는 새로운 시도로 제작되었다. 분청사기는 신진 사대부들의 미감에 맞는 새로운 공예품으로 조선 초기부터 전국적으로 흔하게 제작되었다. 물론 이것이 일반 민중이 사용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분청사기의 종류는 백토 분장과 무늬를 장식하는 기법에 따라 분류된다. 조선 초기(15세기)에는 상감청자와 연결되는 상감무늬와 인화무늬가 주로 만들어진다. 16세기에 와서는 분장한 귀얄자국이 거칠어지며 무늬도 힘차고 추상화하는 경향을 띤 분청사기가 나타난다. 이 때 분청사기는 기법에 따라 귀얄 덤벙분청이 있고 박지 무늬(분장한 그릇표면을 긁어내는 기법), 조화 무늬(날카로운 칼끝으로 만든 무늬), 철화 무늬(분장 위에 철회로 그린 무늬) 등이 있다.

2. 순백자

순백자란 흰색 이외에 다른 색깔의 장식 무늬가 없는 것을 말한다. 조선 초기 백자에는 두 가지 계통이 있다. 그 하나는 고려 시대 백자의 전통을 이은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 원과 명의 백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후자가 조선 백자의 전통을 이룬다.

백자는 조선 초부터 세련되기 시작하여 15세기 후반부터는 사옹원이 맡아 도자기를 굽던 광주분원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조선 시대의 순백자는 단순한 형태와 흰색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청화백자 등 모든 백자의 기본이다. 특히 이러한 백자의 아름다움은 한국 예술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나타낸 것으로 손꼽힌다.

3. 청화백자

백자에 푸른색을 내는 천연 코발트 안료로 무늬나 그림을 그려 구워낸 것이 청화 백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5세기 중엽부터 청화 백자를 굽기 시작했으나 코발트 안료는 페르시아 지방에서 가져온 것을 중국을 통하여 수입하여 썼다. 그래서 회청(回靑) 또는 회회청이라 부른다. 따라서 조선 시대 전반기에는 이 회청을 구하기가 어려워 사실적이고 회화적인 무늬로 장식했는데, 후기에는 토청(土靑)이 개발되고 회청의 수입이 원활해져 무늬가 일부 지나치게 번잡스러워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후기의 청화백자에는 진사나 철화를 함께 사용하여 색깔을 내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흰색과 청색의 간결한 무늬가 조화를 이룬 청화 백자에 대한 기호가 매우 컸는데, 이것은 선비 문화의 특징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4. 철화백자

백자 바탕에 석간주 등 산화철 안료와 무늬를 넣은 것을 철화백자라 부른다. 산화철의 안료는 다갈색, 흑갈색, 녹갈색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철화백자 또는 백자철회문이라고도 한다. 철화 백자는 조선 초기부터 그 예가 나타나며 철화 무늬가 일반화되고 세련되는 것은 청화백자와 마찬가지로 17, 8세기였다. 이 철화백자는 그 무늬로 보아 청화백자의 대용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지만, 힘차고 추상적이거나 익살스러움을 표현한 철화백자 나름대로의 맛을 지닌 것이 많다. 조선 후기에 오면서 철화는 진사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5. 진사백자

산화동 성분을 안료로 쓰는 진사는 붉은 색으로 화려하게 발색한다. 우리 나라 도자기에 진사의 사용은 흔하지 않지만 고려 시대 때 처음으로 청자에 쓰여졌으며 조선 중기에 와서 백자에 조금씩 사용되다가 후기에는 비교적 그 예가 많아진다. 그리고 이 진사는 청화나 철화를 함께 조금씩 사용하기도 하였다.
   
윗글 [조선] 3820. 해남 대흥사 부도밭
아래글 [조선] 3810. 청화백자 매조문 항아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292 문화사 [삼국] 고구려 와당 2 (서울대) 이창호 2011-02-06 1346
1291 문화사 [삼국] 고구려 와당 1 (서울대) 이창호 2011-02-06 1095
1290 문화사 [삼국] 신라 천마총 금관 (두산) 이창호 2002-01-26 1162
1289 문화사 [삼국] 신라 회화 (한메) 이창호 2001-11-26 1535
1288 문화사 [삼국] 신라의 서화 (두산) 이창호 2001-11-26 1063
1287 문화사 [삼국] 백제 회화 (한메) 이창호 2001-11-26 900
1286 문화사 [삼국] 백제의 회화 (두산) 이창호 2001-11-26 966
1285 문화사 [삼국] 고구려 회화 (한메) 이창호 2001-11-26 929
1284 문화사 [삼국] 고구려의 회화 (두산) 이창호 2001-11-25 1034
1283 문화사 무용총 (한메) 이창호 2001-11-25 955
12345678910,,,130

이창호의 역사교육